지난해 프로야구 LG는 6위에 머물렀다. 전반기까지 치열한 4강싸움을 펼쳤지만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난 직후였던 후반 초반, 죽음의 9연전이라 불렸던 강팀과의 맞대결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올스타 브레이크 직전까지 LG는 40승1무50패로 5위였다. 4위 롯데와의 승차는 2.5경기였다.
후반기 첫 2경기는 좋았다. LG는 SK의 2경기를 4-0, 9-8로 이겼다. 4위 롯데와의 승차는 1경기로 줄어있었다.
문제는 이후였다. 11경기에서 2승9패로 무너졌다. 4위 다툼을 벌이던 롯데와의 3연전을 모두 내 준게 치명적이었다. KIA에게 1승2패, 삼성에게도 1승2패로 밀렸다. 11경기에서 타선은 53득점을 올리며 경기당 4.82점을 뽑았으나 마운드가 85점을 내주며 경기당 7.73실점을 기록했다. LG의 문제는 마운드였다.
올시즌 그 누구보다도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박용택. (사진=연합)
2011시즌을 준비하는 동안 LG는 마운드에 집중하고 있다. 플로리다 마무리캠프 때 프랭크 바이올라를 인스트럭터로 영입한 데 이어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는 ‘대마신’이라 불렸던 포크볼의 대가 사사키 가즈히로를 투수 인스트럭터로 데려왔다. 여기에 포수 출신의 명감독 이토 츠토무를 포수 인스트럭터로 영입했다. 인스트럭터의 효과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LG의 마운드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는 대목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여전히 LG는 마운드의 팀이라기 보다는 타격의 팀이다. LG의 선발진은 여전히 퍼즐을 짜맞추기 위해 고심하고 있고 불펜진 또한 마무리가 고정되지 않은 가운데 보물찾기가 계속되고 있다. ‘터지기만 하면 끝장’이라는 말은 벌써 수년 째 계속되는 동어반복이다.
LG는 2010시즌에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함으로써 8년 연속 ‘가을야구 실패’라는 불명예스런 신기록을 세웠다. 올해는 ‘무조건’ 진출해야 한다는 게 박종훈 감독은 물론이고 LG 구단 전체의 최우선 과제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마운드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건 ‘야구의 정석’이라는 책이 있다면 제 1 장에 소개될만한 글이다. 그렇다면, 정말 타격의 힘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한국프로야구가 8개구단 체제로 펼쳐지기 시작한 것은 쌍방울이 1군리그에 합류한 1991시즌이다. 지난해까지 총 20번의 시즌이 8개구단 체제로 치러졌다. 이 중 팀 방어율이 전체 8개 구단 중 6위 이하였던 팀이 4위 이상의 성적을 기록한 시즌은 몇 번이나 될까.
위 표에 드러나듯 팀 방어율 6위 이하 팀이 4위 이내의 팀 성적을 거둔 것은 20번의 시즌 중 절반에 가까운 8번이다. 가장 가까운 사례는 지난해 롯데. 롯데는 팀 방어율 4.82로 8개 팀 중 6위에 그쳤지만 막강한 타격의 힘(팀 타율 0.288, 1위)으로 3년 연속 4강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롯데의 2008시즌 팀 방어율은 3.64로 2위, 2009시즌 팀 방어율은 4.75로 4위였다.)
숫자로 따지면 ‘방망이의 팀’ LG의 4강 진출 가능성은 절반에 가깝다. 야구는 투수놀음이지만,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마운드의 힘이 절대적이지만, 4강에 들기 위해서라면 ‘방망이’만으로도 가능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물론, 마운드가 받쳐 준다면 훨씬 쉽다)
LG는 2010시즌 팀 방어율 5.23으로 7위, 팀 타율은 0.276으로 3위를 기록했다. 시즌 초반 이택근의 부상과 전년도 타격왕 박용택의 시즌 중반까지 이어진 극심한 슬럼프를 고려한다면 올시즌 타격 성적은 지난해를 웃돌 가능성이 높다.
LG 4강 진출을 위한 ‘방망이’의 마지막 퍼즐은 ‘장타력’이다. 롯데는 팀 타율 뿐만 아니라 리그 1위의 무시무시한 팀 장타율로 지난해 4강에 올랐다. 2004시즌 KIA도 팀 타율은 6위에 그쳤지만 팀 장타율은 0.419로 리그 2위를 기록했다. 이를 발판으로 4강에 오를 수 있었다. 당시 KIA는 심재학(22홈런), 장성호(19홈런), 이종범(17홈런), 홍세완(15홈런), 손지환(13홈런), 마해영(11홈런), 김종국(10홈런) 등 7명의 두자릿수 홈런 타자가 있었다.
2003년 SK 또한 팀 타율은 리그 4위였지만 장타율은 리그 3위였다. 36홈런을 때린 이호준과 23홈런의 조경환, 22홈런의 디아즈가 중심타선의 힘을 높였다.
LG의 2010시즌 장타율은 0.411로 리그 5위였다. 모자라고 아쉬운 대목이다. X존을 설치했지만 팀 홈런 수는 121개로 X존 없이 잠실 구장을 함께 사용하는 두산의 149개에 모자랐다. 2자릿수 홈런을 때린 타자는 조인성(28개), 이택근(14개), 오지환(13개), (작은)이병규(12개) 등 4명 뿐이었다.
방망이로 4강에 들기 위한 조건은 하나 더 있다. 그 방망이가 시즌 초반에 터져줘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LG가 홈런 3위의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도 리그 6위에 그친 것은 그 방망이기 시즌 초반 상대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용택의 부진과 이택근의 부상은 시즌 초반 상대에게 “LG 타선이 그리 세지 않다”는 이미지를 심었다.
시즌 초반 불방망이로 상대를 제압해야 하는 이유는 상대팀의 LG를 상대하는 불펜 운영을 곤란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는 LG 방망이와 LG 불펜을 두고 저울질하기 마련이다. 경기 초반 LG가 3~4점을 뽑아낸다고 가정했을 때 상대 감독은 이후 경기 운영을 두고 고민한다. 비교적 약한 LG 마운드로부터 타선이 뽑아낼 점수와 LG 타자들이 자신의 마운드를 상대로 추가 점수를 뽑을 가능성을 계산한다. LG의 공격이 압도적이지 못한다면 선발 투수를 일찍 내리고 일찌감치 ‘승리조’를 투입하는 강수가 가능하다. 반대로 LG 공격이 상대 벤치를 걱정시킬만한 능력을 보여준다면(2010 시즌 롯데 처럼) 상대는 불펜 승리조 투입 시기를 조금 더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 틈은 작아 보이지만 리그 8개팀 중 절반 안에 들어갈 수 있으냐 없느냐를 가를 정도로 크다. 롯데가 2010시즌 좋지 않은 불펜을 가지고 승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상대의 불펜 투입을 주저하게 만들 정도로 막강한 공격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군에서 돌아온 정의윤의 가세는 LG타선에 무게감을 실어줄 수 있다. (사진=연합)
2011시즌 LG 4강의 화두는 ‘빅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부족했던 오른쪽 거포 라인업에 군에서 제대한 정의윤이 가세하고, 팔꿈치 수술을 받은 박병호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한다면 LG 타선에 힘이 보태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제일 중요한 포인트는 박용택과 이택근. 지명타자와 1루수 자리가 어느 정도 보장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빅5’로 이름지어졌던 포지션 혼란에서 벗어나 얼마나 안정감있는 공격력을 보일 것인가가 제일 중요하다. 캠프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꽤 긍정적. 박용택도 비거리 증가에 집중하고 있고, 이택근도 무릎 통증에서 벗어나 “스스로도 얼마나 좋은 성적이 나올 지 두근거릴 지경”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