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흐곡들은 재즈로 많이 편곡되어서 연주되었잖아요.
: 특히 다른 클래식 작곡가들보다
: 더 많이 사용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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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 뿐만이 아니라 여라가지 형태로
: 다른 음악 장르와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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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이유에 관해서 많이 궁금한데
: 회원분들의 도움을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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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하신 대로 바흐의 작품은 많은 장르에 수용되어 연주되는 게 사실입니다. 제가 이론적 지식이 별로 없기 때문에 순수 음악적 요소의 비교 설명은 못 드리겠고 다만 음악사적인 입장에서 그 요인과 대표적인 사례들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그 범위는 가장 두드러진 움직임을 보였던 재즈와 록 음악의 경우를 살펴볼까 합니다.
먼저 재즈의 경우입니다.
재즈음악에서 클래식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시기는 1950년대부터입니다. 재즈사적으로 볼 때는 쿨 재즈와 여기서 파생되는 이른바 웨스트코스트 재즈가 이러한 움직임을 선도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은 이전까지 재즈 뮤지션의 절대 다수를 차지했던 흑인들을 대신해 백인 연주자들이 대거 재즈계에 등장한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전까지의 재즈가 흑인들의 피 속에 녹아 있는 열정과 리듬감, 그리고 자아 정체성과 소외감의 표출이었던 데 반해 백인들의 재즈는 즉흥적 요소가 줄고 지극히 세련된 양식화된 재즈(이후 완성되는 모드 재즈가 대표적임)로의 경향이 강해집니다. 할렘가에서 평생을 빈민으로 살아야 했던 흑인들에 비해 백인들은 좋은 시설에서 정규 음악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잘 이해가 될 겁니다. 스파이크 리가 '모 베터 블루스'에서 잘 보여주었듯이 '살아남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열심히 운동을 해서 NBA의 프로농구선수가 되거나 재즈뮤지션이 되는 것 밖에 없는' 흑인들의 재즈와 자신들의 음악적 역량을 시험하기 위해 연주를 하는 백인들의 재즈가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흑인들에게 블루스와 재즈는 음악이기 이전에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는 수단이자 삶 그 자체였지만 백인들에게는 이러한 정신적인 요소가 제거되고 순수 음악적인 면만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웨스트코스트 재즈가 편곡 중심으로 흘러간 것(클래식 작품의 편곡을 포함해서)은 이러한 배경을 가지는 것입니다.
재즈음악에 있어서 바흐 수용 움직임 역시 백인에 의한 재즈 연주라는 새로운 전통과 그 괘를 같이 합니다. 통주저음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바흐의 음악은 코드를 정점으로 각 악기들이 즉흥연주를 펼치는(물론 모드 재즈에 이르면 그것조차도 지극히 양식화의 길을 겁게 됩니다만) 재즈와 공통분모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물론 복잡한 3,4성부 푸가를 제대로 연주하는 데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만.^^
바흐음악에 관심을 가졌던 재즈 뮤지션들을 몇몇 살펴 보면,
먼저 재즈 피아니스트 존 루이스입니다. 그는 Modern Jazz Quartet의 리더로서 재즈역사상 가장 지성적인(?) 사운드를 창조했던 장본인입니다. 특히 밀트 잭슨과의 호흡을 통해 보여주었던 피아노와 바이브라폰의 대위적인 움직임, 그리고 나아가 4명의 연주자가 균등한 앙상블을 유지함으로써 전체가 하나의 효과로 통합되는 섬세하고 세련된 실내악적 이디엄은 재즈사에 길이 남을 만한 시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이러한 영감은 아마도 바흐에서 온 게 아닌가 나름대로 추측됩니다) 그는 콘트라베이스, 기타, 바이올린, 비올라를 적당히 가감하여 푸가들을 표현해 낸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과 음반 타이틀처럼 자신의 아내와 마치 체스 게임하듯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각 변주들을 번갈아 연주한 음반을 남길 정도로 바흐에 심취했었습니다. 그 외 모던재즈쿼텟의 이름으로도 다수의 바흐곡을 연주한 바 있습니다.
자크 루시에의 경우는 자신의 연주생활 전체를 바흐연주에 바쳤다는 점과 기본적으로 바흐곡을 그대로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재즈를 기본으로 바흐를 활용했다는 점에 특징이 있습니다. 그가 전성기 시절에 남긴 일련의 바흐편곡 작업은 많은 이들에게 음악적 자극을 준 바 있습니다. 특히나 재즈 본연의 감각(스윙감과 임프로바이제이션)을 유지하면서 바흐를 편곡해 낸다는 점은 놀랍습니다. 사실 바흐음악의 대위적인 진행을 살리기 위해 재즈 본연의 '스윙'을 놓치는 경우를 우리는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일련의 바흐 음반을 남긴 키스 재릿을 빼 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재릿은 앞의 두 사람과는 달리 편곡연주가 아니라 원텍스트를 그대로 충실히 연주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평균율 클라비어곡집(1권은 피아노로 2권은 쳄발로로 연주), 골트베르크 변주곡(쳄발로 연주), 프랑스 조곡(쳄발로 연주), 페트리와의 리코더 소나타(쳄발로 연주). 카쉬카쉬안과의 감바 소나타(쳄발로 연주) 등 다수의 바흐 연주를 남긴 바 있습니다. 콘티누오 연주에는 대체적으로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지만 프랑스 조곡이나 골트베르크 쪽은 기존 연주들에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다만 그의 '쾰른 콘서트'를 비롯한 일련의 솔로 임프로바이제이션 음반에서 들으셨던 즉흥성의 무한확장을 기대하신다면 곤란합니다. 반복구의 충실한 연주와 적절한 장식처리라는 측면에서 오히려 기본에 충실한 보수적인(?) 연주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외 일본연주자들로 구성된 Tim Hardin Trio의 바흐 편곡은 약간 실망스러웠고, 오히려 오르간 파트를 추가한 웨이겐 키케로 쪽이 낫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 카펠라로 바흐의 푸가를 멋지게 소화한 스윙글 싱어즈의 음반은 아주 흥미로운 것이었습니다. 테너 색소폰으로 연주한 야스아키 시미즈의 무반주 첼로조곡은 제가 관악편곡연주를 별로 안 좋아해서 뭐라 말씀을 못 드리겠고, 론 카터의 콘트라베이스판 무반주 첼로 조곡은 연주에 들인 노력과 시도자체는 획기적이었지만 편한 곡만(?) 선택적으로 연주했다는 점이 좀 걸립니다. 이 외에도 단편적으로는 많은 연주들이 있었던 것 같은 데 오래되서 기억이 잘 안 납니다...^^
한편, 록음악에 있어서도 바흐의 음악은 많은 연구대상이었습니다. 잉베이 말름스틴이 인터뷰에서 유일하게 존경하는 음악인이 바흐라고 말하고 실제 라이브에서도 바흐곡을 종종 단편적으로나마 연주를 하면서 록 음악계에서도 바흐에 관한 관심이 고조된 바 있습니다만, 사실 바흐를 포함하는 바로크 음악의 영향은 그 기원이 더 이전으로 소급됩니다. 딥 퍼플의 초기작들 'The Book Of Taliesyn'이나 존 로드가 작곡과 오케스트레이션을 담당한(물론 키보드연주도 같이 합니다) 로열 필하모니과의 협연 음반인 '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에서 그러한 사실은 쉽게 감지됩니다. 그 외에도 바흐의 칸타타 140번을 편곡한 바 있는 프로콜 하룸(이 팀 역시 에드먼튼 심포니와 협연한 음반을 남긴 바 있음), 그리고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 활동했던 유럽 3국(이태리, 독일, 프랑스)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들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은 충분히 있어왔습니다. 바흐에게 헌정된 '레알레 아카데미아 디 무지카'의 'Contaminazione'나 마태수난곡의 일부를 편곡연주한 '라떼 에 미엘레'의 'Passio Secundum Mattheum'이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 그룹들의 공통점은 전체 사운드에서 건반악기(하몬드 오르간, 신디사이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들 키보드 연주자들은 전부가 정규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딥 퍼플의 존 로드만 해도 유명한 영국의 왕립음악원 수석 졸업생 출신입니다. 결국 이들이 바흐에 관심을 가진 이유라면 건반악기가 중심이 된 록사운드에 바흐의 음악이 어울리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일렉기타가 중심이 된 록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블루스 음악(흔히 블루스 펜타토닉이라 불리는)이 그 뿌리가 됩니다만, 기타가 주변적 위치로 전락하는 록에서는 건반악기의 비중이 커지고 호모포닉한 화성음악보다는 폴리포닉한 바로크음악이 수용되게 된 것입니다. 선적인 흐름이 강조되는 바로크 음악이 비트 단위로 전개되는 록음악의 진행에 섞이는 게 상대적으로 쉬웠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기타리스트인 리치 블랙모어의 입김이 강해지는 중,후기 딥 퍼플의 사운드가 초창기와는 달리 강한 금속성의 전형적인 헤비 메틀 사운드로 변해간다는 사실을 볼 때 이러한 추측이 전혀 근거 없는 억측은 아닐 거라 생각됩니다.
80년대에 이르면 록음악에 있어 바로크음악의 영향이 보다 확대되어 나타나면서 바로크 록(혹은 바로크 메틀)이라는 하위 장르까지 형성이 됩니다. 그 선두주자는 당연히 잉베이 맘스틴입니다. 잉베이는 블루스 펜타토닉이 아닌 클래시컬한 코드진행의 연주를 완성시켰는데, 그가 영향을 받은 음악은 정확하게는 사실 중세의 선법음악들입니다. 피리지언, 이오니안. 믹솔리니안, 도리안.... 이러한 모드를 기타 스케일에 적용시킨 경우입니다. 그 결과 기존의 끈적끈적한 록기타 연주 대신 부드럽고 우아하며 물흐르듯 진행하는 멜로디 라인을 가지는 신개념의 록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 후 등장하는 비니 무어, 제이슨 베커... 크리스 임펠리테리에 이르는 거의 모든 바로크 록 기타리스들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파악이 됩니다. 실제로 다성음악적인 이디엄을 적용시킨 사례도 있는데, 제이슨 베커와 마티 프리드만의 프로젝트 그룹인 캐코포니(Cacophony)의 연주를 들어보면 기타 2대로 더빙을 통해 여러 개의 독립적인 진행을 가지는 성부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물론 이들은 화성의 파괴를 근간으로 하는 현대의 무조음악과도 통하는 것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제이슨 베커의 데뷔음반에 수록된 기타 독주곡 'Air'(바로크 모음곡의 악장에서 이름을 따옴)를 가장 뛰어난 클래시컬 록 퓨전(여기서의 클래시컬은 바로크 음악을 의미)의 수작으로 꼽고 싶습니다.
결론을 내자면 록음악에 있어 바흐(나아가 바로크 음악)의 수용은 기존의 블루스를 그 기원으로 하는 록들(블루스 록, 하드 록. 헤비 메틀)과는 다른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타(때로는 키보드)가 기본 라인을 연주하고 나머지 악기들이 통주저음으로 뒤쫓아가는(가끔씩은 오블리가토를 하기도 합니다^^) 방식이 가장 손쉽고 이상적이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더구나 록 음악에서도 금속성 파열음이나 끈적끈적한 feel이 아니라 세련되고 우아하며 때론 화려하고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잇다는 점은 크나큰 매력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상 재즈와 록음악에 있어서 바흐음악의 수용양상에 대해 제 생각을 적어 보았습니다. 최근에는 힙합을 비롯한 여러 팝 음악에서도 바흐의 음악(혹은 다른 클래식곡)이 샘플링하는 예가 있습니다. 이 경우에 사용되는 곡들은 전부가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곡들(이를테면 'g선상의 아리아', 파헬벨의 캐논, 비발디 사계처럼)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흥미유발 차원으로 이해하면 되지 않을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