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경남 진주 명소
진주성 촉석루,북장대,진주대첩역사공원,형평운동기념탑,진주향교,진주강민첨탄생지,은열사,진주하륜묘역,진주전통민속소힘겨루기경기장,진양호공원,석류공원,남부산림연구소수목종합전시원(네이버에 등록된 명칭) 등
1.진주성
진주성에는 촉석문, 촉석루, 남강 의암, 임진대첩 계산순의단, 김시민장군 전공비와 동상, 영남포정사문루, 북장대, 진주국립박물관, 창열사, 서장대 등이 있다. 진주성으로 불린 것은 조선시대 이후부터다. 삼국시대 거열성, 통일신라시대 만흥산성, 고려시대 촉석성이다. 성 안에는 국립진주박물관, 진주성 임진대첩 계사 순의단, 의기사, 창렬사, 호국사 등이 있다. 고려말 1377년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토성을 쌓았는데, 1379년 고려 우왕 5년 왜구의 침입으로 왜구가 퇴각한 후에야 성곽 축조를 마무리했다. 1591년 진주성을 수축하고 동쪽을 확장하였으나 지반이 약하여 임진왜란 중에 방어에 어려웠다. 일본군은 1593년 진주성을 함락시켜 평지로 만들어 진주성의 흔적을 지웠다.
진주는 삼국시대 백제 땅으로 신라와 접경한 최전선에 위치하여 두 나라 간에 전략적인 요충지로 치열한 공방전이 일어났던 곳이다. 삼국이 통일 된 이후에도 진주는 중요한 거점으로 인식되었으며 고려시대에는 남해안에 출몰하는 왜구를 섬멸하기 위한 기지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에도 진주는 그 중요성이 높았으며 경상도와 호남을 연결하는 요충지였다. 조선시대에는 도호부가 설치되었고 경상우병영의 역할을 담당했다. 진주성은 백제 때 건설되었으며 당시에는 거열성지였다고 하며, 산성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동쪽으로는 남강이 흐르고 강변 절벽 위에 성채가 만들어졌고 서쪽으로는 하천이 있어 천혜의 요새였다. 고려 말 공민왕 때 7차례 중수되면서 남해안에 출몰하여 분탕질하는 왜구를 방비하는 기지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시민장군이 성채를 보강하여 왜군의 공격을 대비하였다. 1592년 9월 왜군은 약 2만 5천 명의 병력으로 진주성으로 공격해 왔지만 김시민 장군에게 대패하여 임란 3대첩 중의 하나가 벌어진 곳이다. 1593년 6월 왜군은 곡창지대인 호남을 공략하여 군량미를 확보하고자 약 10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왔다. 진주성은 호남으로 가는 길목으로 진주성이 무너지면 호남을 잃게되는 중요한 요충지였다. 2차 전투에서는 군관민 6만이 최후까지 항쟁하여, 장렬한 최후를 마쳤고 왜군도 막대한 피해를 입어 호남으로 쳐들어갈 여력을 상실하였다. 이때 논개는 적장을 안고 남강(南江)에 투신한 일화가 유명하다. 1605년(선조 38) 진을 성내로 옮기고 성이 너무 넓어 수비가 곤란하다 하여 내성을 구축하였다. 1607년 포루 12개를 증축하였고, 1618년(광해군 10) 성 수축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지금의 진주성은 대략 이때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성의 둘레는 약 1.7km이고, 외성의 둘레는 약 4km이다.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 진주성 촉석문
진주성의 동문으로 촉석문을 통하여 촉석루, 논개사당, 의암 등으로 들어갈 수 있다.
* 진주성 촉석루
진주성 안에 돌어서면 가장 먼저 2층 높이의 촉석루가 보인다. 전시에는 군사를 지휘하던 장수의 공간이었고, 평시에는 풍류를 즐기던 선비의 공간이었다. 촉석루는 강 가운데 돌이 우뚝 솟아 있다하여 지은 이름이다. 남장대 또는 장원루라고 부르기도 한다. 1241년 건립한 촉석루는 여러 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듭했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소실되었다. 1618년에 전보다 웅장한 건물로 중건했다. 6·25전쟁에 다시 불탔으며, 지금의 건물은 1960년 진주고적보존회가 시민의 성금을 거두어 중건한 것이다. 1983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다.
* 남강 의암
임진왜란 때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순국한 바위다. 임진왜란 당시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최경회의 후처인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뛰어든 바위이며 진주성 안에 있다. 1593년(선조 26) 제2차 진주성 싸움으로 진주성이 왜군에게 함락되자 최경회는 남강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이에 논개는 최경회의 원수를 갚기 위해 촉석루에서 벌어진 연회에 참석하였으며 열 손가락 모두에 가락지를 낀 채 남강의 바위로 왜장을 유인해 끌어안고 남강에 뛰어들었다. 논개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기 위해 진주 지방의 양반들과 백성이 이 바위를 의암이라고 하였다. 1629년(인조 7) 정대륭이 바위벽에 의암이라는 글씨를 새겼고 의암의 강 쪽 절벽에는 일대장강 천추의열이라고 새겨 충의를 기리고 있다. 2001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 진주성 의기사(논개 사당)
임진왜란 당시 1593년 왜장을 껴안고 남강을 투신하여 순절한 논개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영조 16년(1740년)에 창건한 진주성 안의 조선시대 건물이다. 1983년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임진왜란 때 제2차 진주싸움 뒤 촉석루에서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의기(의로운 기생) 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1823년(순조 23)에는 새로 세우고, 경상도관찰사 이지연의 글씨로 의기사라는 현판을 게시하였다. 1956년 진주의기창열회가 의기사를 재건하였다. 안에는 김은호 화백이 그린 초상화가 봉안되어 있다. 1962년에 사당 보호를 위해 모의당을 세웠다.
* 진주성 임진대첩 계사순의단
계사순의단은 1592년 제1차 진주성 전투와 1593년 계사년 제2차 진주성 전투 때 순국한 7만 군관민의 호국영령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1986년 착공하여 1987년 준공한 제단이다. 국난극복의 표상인 계사순의단은 촉석루 옆에 있다. 네모난 단 위에 대첩비를 세웠다.
* 김시민장군 전공비
김시민 장군의 전공을 기록해 놓은 비로, 일명 진주전성각적비라고도 불리며, 진주성내에 비각을 마련하여 모시고 있다. 김시민(1554∼1592) 장군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진주목사로 있으면서 임진왜란의 3대첩 중 하나인 진주성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 비문에는 1천명도 안되는 병력으로 10만의 군대를 물리쳤다고 하나, 다른 기록에는 3,800여명의 병력이 왜군 2만여명을 맞아 치열한 전투 끝에 물리치고 진주성을 지킨 것으로 되어 있다. 영남에서 호남으로 나아가는데 중요한 길목이 되던 이곳을 지킴으로써 왜적의 호남진출을 막아내어, 불리했던 당시의 상황을 뒤집고 다시 전열을 가다듬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비는 받침대 위로 비몸을 세운 간결한 구조로, 조선시대 석비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광해군 11년(1619) 7월에 비를 세웠으며, 성여신이 비문을 짓고, 한몽인이 글씨를 썼다. 1987년에는 당시 전투에서 숨진 이들의 혼을 위로해주기 위해, 비의 뒷편에 임진대첩 계사순의단을 건립해 놓았다. 197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호 지정되었다.
*공북문
공북문은 17세기 이후에 그려진 진주성도와 진주지도에 북쪽으로 나 있는 문이다. 공북문의 공은 손을 모아 가슴까지 들여 올려 공경한다는 뜻이고, 북은 임금이 계시는 북쪽인 북두를 뜻한다. 따라서 공북문은 북쪽에 계시는 임금님을 향해 두 손을 모아 공경의 뜻을 표한다는 의미를 가진 문이다. 공북문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진주성의 실질적인 정문이며 주 출입문으로 도청 격인 관찰사영과 경상도 우병영이 소재했던 진주성의 주된 문으로 나라에 큰일이 있을때 임금이 계시는 북쪽을 향해 절을 하고 고유하던 자리로 알려지고 있다. 공북문은 2002년 5월 1일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 영남 포정사 문루
경상남도 진주성 안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건축이다. 망미루라고도 한다. 1618년(광해군 10)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집무청인 관덕당 내동문으로 세운 뒤 경상도 우병영의 관문으로 활용되었다. 1895년(고종 32) 전국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로 시행됨에 따라 진주부가 설치되면서 진주관찰부의 선화당 관문이 되었다. 1896년에 다시 전국을 13도로 개편하자 경상남도 관찰사의 정문이 되어 영남 포정사라고 하였다. 1925년 경상남도 도청이 부산부로 옮겨지기 전까지는 도청 정문으로 사용되었다. 망미루의 현판은 수원유수 중추부지사를 지낸 서영보 가 썼다. 문루 앞에는 수령이하개 하마비가 있고, 창원시 용지공원에는 이곳의 포정사를 본딴 영남포정사가 세워져 있다. 1983년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가, 2020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승격되었다.
* 진주성 북장대
진주성 북쪽 지휘소였던 북장대는 임진왜란 때 격전이 벌어진 곳이다. 1618년 광해군 10년에 중건했다. 그 후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쳐왔다. 내성 북쪽 끝 제일 높은 곳에 있어서 성밖은 물론 성내와 외성에 포진한 병력까지도 지휘할 수 있다. 그래서 편액을 진남루라 했다. 북장대는 1983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호로 지정되었다.
* 진주국립박물관
진주성 안에 있는 국립박물관이다. 1980년에 착공, 1984년 개관하였다. 개관 초기에는 선사시대 및 가야시대 유물을 중점적으로 전시하였으나, 1998년 임진왜란 전문 역사박물관으로 재개관하였다. 1, 2층으로 나뉘어진 상설전시실 2곳과 기획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는데, 1층 전시실에는 임진왜란의 결과로 남겨진 여러 문제점들을 테마별로 구분·전시하여 전쟁을 통한 문화교류와 전파양상을 보여주고, 2층 전시실에는 울산성전투를 묘사한 그림병풍, 천자총통, 거북선 모형 등 전쟁에 사용된 무기류와 전선 등을 비롯하여 의병들의 항쟁상을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해 놓았다. 한편, 2001년 새로이 개관한 두암관에는 재일교포 두암 김용두가 기증한 회화, 도자기, 목가구, 금속공예품 등 179점의 유물 중 100여 점을 전시해 놓고 있다.
* 진주국립박물관 산청범학리 삼층석탑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된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화강암으로 건조된 국보 3층 석탑이다.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4.8m의 화강암 석재로 건조된 이 석탑은 본래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범학리 범호사라고 전칭되어오는 사지에 일찍이 무너져 있었는데, 1941년경 대구의 일본인 골동상이 구입하여 일본인 공장에 옮겨놓았던 것을 당국이 압수하여 1947년 경복궁으로 이전되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을 거쳐 2018년 국립진주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이 석탑의 구조는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건립하고 그 정상에 상륜부를 형성한 신라시대의 일반형 석탑이다. 현재 기단부의 지대와 기대는 재건할 때 시멘트를 보강해서 원래의 구조는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기단부에서 하층기단 면석의 탱주가 2주인 점은 아직도 신라석탑의 전형양식을 충실하게 지키고 있는 일면이라 할 것이며, 이러한 점에서 이 석탑의 건립 연대는 9세기 초반으로 추정된다.
* 진주성 윤선정 선정비
진주성 안에 있는 비로 1614년(광해군 6) 진주병사 윤선정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윤선정은 1611년(광해군 3)부터 1613년(광해군 5)까지 진주병사를 지냈다. 1973년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비석군으로 옮겼다. 지댓돌 위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뚜껑돌을 얹었다. 비의 크기는 171㎝, 폭 76㎝, 두께 20㎝이다. 뒷면에 도마뱀과 덩굴무늬를 새겼다. 비의 제목은 고병사윤공선정무휼군졸유애비다.
* 진주성 김해김씨 비각
1976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비석을 보호하기 위하여 세운 건물로 옛날 하동으로 가는 길목인 진주성 북쪽 성벽 밑에 있다. 이 거리를 빗집거리, 즉 비각거리라고 한다. 비각 안에는 가선대부 김상현의 처인 정부인 연안차씨와 그의 아들인 김정식의 시혜불망비 2기가 서 있다. 조선 고종 재위 시절 당시의 진주성 안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질병 등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들이 사재를 털어 도와주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두 사람의 은혜를 기리기 위하여 1901년과 1907년에 각각 세운 것이라 한다. 비각은 화려하게 꾸며졌다. 한말의 비각 양식을 알 수 있는 건물이다.
* 진주성 창열사
조선시대의 사당이다. 1983년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이 사당은 진주성지 안에 있는 7동의 건물로 임진왜란 때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장렬하게 순절한 인물들의 신위를 모시기 위해 건립하여 1607년(선조 40)에 사액(賜額)을 받았다. 그뒤 1868년(고종 5)에 제1차 진주성 싸움에서 대승리를 거둔 김시민을 모신 충민사가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자 장군의 신위를 창렬사에 함께 모시게 되었다. 사당 안에는 충무공 김시민의 신위를 제일 윗자리에 모시고 있으며, 그 밖에 창의사 김천일, 충청병사 황진, 경상우병사 최경회 등 진주성 싸움과 관련된 39명의 신위가 있다.
* 진주성 서장대
진주성 서쪽에 있는 누각으로 1983년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진주성 서문의 지휘장대로 절벽 위에 위치하여 사방을 전망할 수 있는 요충지이다. 확실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618년(광해군 10)에 중건하였다. 조선 후기의 전국 읍지인 여지도서에는 회룡루로 기록되어 있는데 규모는 작았으나 촉석루와 같은 다락집이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허물어진 것을 1934년 재건하였다. 원래의 서장대란 현판은 없어지고 현재 걸린 현판은 1979년 은초 정명수가 쓴 작품이다.
* 진주성 제1차 진주성 전투
1592년 10월 5일~10월 10일까지 6일간의 전투다. 임진왜란 초기에 일본군의 기습공격에 조선군은 육상전투에서 곤경에 처했다. 조선 군대와 의병군이 대오를 가다듬고 일본군을 제압하려고 하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먼저 진주성을 확보한 후 호남지역을 공략하려고 했다.1592년 10월 5일 김시민 장군은 군사 3,800여 명으로 일본군 2만여 명의 공격을 받았으나 10월 10일까지 6일간 싸워 물리쳤다. 이것이 제1차 진주성 전투인데 승리하여 곡창지대 호남지방을 지킬 수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남해에서 일본 수군을 격퇴하고 있었다. 1972년 경상남도의 유형문화재 제1호 김시민장군전공비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 제2차 진주성 전투
1593년 6월 22일~6월 29일 8일간의 전투다. 일본군은 1592년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1593년 7만 대군을 동원하여 진주성을 공격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3년 5월 진주성을 공격하고자 장수 및 부대 배치했고, 경상도와 전라도를 장악하려 했다. 경남 김해에서부터 진주성까지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는 성을 연결하여 배치하고 부산에도 일본군의 선단을 배치했다. 일본군은 1593년 6월 진주성을 포위했다. 6월 22일부터 6월 29일까지 8일간 진주성에서 3천여 명의 조선군과 6만여 명의 민간인이 약 7만 명의 일본군과 벌어진 전투가 제2차 진주성 전투다. 6월 29일 일본군이 진주성으로 진입하자, 교전을 지휘하던 서예원은 성을 버리고 도망가 숨어 있다가 잡혀 살해당했다. 그의 처 이씨와 맏며느리 노씨, 시집가지 않은 딸 모두 남강에서 투신했다.
* 귀갑거와 양민학살
귀갑거, 귀갑차는 임진왜란 때 왜군이 성을 공격할 때 사용하던 무기다. 일본군은 바퀴 네 개인 수레에 관모양의 큰 나무궤짝을 올려놓고 돌 등 무거운 것을 채우고 군사들이 속으로 들어가 수레를 앞으로 굴려 전진하고 후퇴할 때에는 밧줄을 뒤에서 당기는 무기를 사용했던 사륜차다. 궤짝이 거북의 등같이 생겼다 하여 귀갑거라고 불렀다. 조선군이 불을 붙여 귀갑거 위로 던지자, 일본군은 퇴각했다가 귀갑거에 물기묻은 쇠가죽을 씌워 화공에 대비한 후 돌격대를 재투입했다. 6월 29일 성벽의 기초석 몇 개를 뽑아 무너뜨리고 일본군이 성벽 위로 올라섰다. 서문과 북문 방어도 무너졌다. 일본군에게 쫓긴 조선군은 촉석루 밑 남강가 바위에 모였다. 장수들은 임금이 계신 북쪽을 향해 두 번 절하고 무기를 강물에 던졌다. 김천일, 최경회, 고종후, 양산숙이 강물에 뛰어들었다. 김천일은 아들 김상건의 손을 잡고 투신했고, 이종인은 적군과 격투하다가 양쪽 팔에 적군을 하나씩 끼고 강물에 뛰어들었다. 진주성이 함락될 무렵 일본군은 백성들에게 창고로 들어가면 죽이지 않겠다고 소리쳤다. 살아남은 군졸과 백성들이 창고로 들어가자 불을 질러 죽였다. 6월 22일부터 8일간에 걸친 치열한 전투 끝에 진주성은 6월 29일 함락되었다. 일본군에게 밀려 촉석루로 온 조선군은 맞아죽거나 남강에 투신했다. 성 안의 시체는 촉석루에서부터 남강 북안에 이르기까지 쌓여 있었고, 청천강으로부터 옥봉의 강가에도 시체가 가득했다. 성이 함락된 후 도망가 숨어있던 전투 지휘자 서예원은 붙잡혀 참수되었으며 그의 목은 소금에 절여져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보내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서예원의 목을 김시민의 수급인 줄 알았다. 처절한 역사의 기억을 간직한 진주성은 1963년 사적 제118호로 지정되었다.
진주성 입장료 성인 2,000원 경로 무료
크리스탈 모텔에서 진주성까지 4.1km 택시요금 6,360원 8분 소요
2.진주대첩 역사공원
한산도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이라 불리는 진주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2007년 계획하여 10년간 보상 및 철거, 3년간 문화재 지표조사 및 정밀 발굴조사 등을 거쳐 2022년 착공했다. 17년 의 노력 끝에 2024년 준공되었다. 진주대첩은 1592년 진주성에서 진주 목사 김시민이 이끄는 조선군과 백성 등 약 3,800명이 왜군 약 3만명을 물리친 용감한 전투다.
진주대첩 역사공원-진주성-진주근린공원 순서로 배채되어 있다.
진주대첩 역사공원에서 진주성까지는 239m 도보 3분, 길 건너 아주 가까이 있다.
3.진주성근린공원
진주성에서 서문으로 나오면 진주성근린공원이 시작 되는데 먼제 남강변에 음악분수대가 있다. 거기서 천수대교를 건너면 소망진산전망대 테마공원, 진주남강 유등축제전시관, 물빛나루쉼터가 있다. 오전에 진주성 일대를 탐방하고 중식 후 진주성 근린공원 탐방하면 좋다.
진주성 서쪽 끝 서문 서장대에서 근린공원 끝부분 물빛나루까지 1.5km 도보 23분
오전: 진주대첩 역사공원-진주성 일대-김시민장군 공적비와 동상 외 유적 다수
오후:진주성근린공원 음악분수,남강 천수교-소망진산전망대-진주남강 유등전시관-물빛나루 순서로 진주성근린공원을 탐방하면 하루의 일정으로 충분하다.
*진주성근린공원 음악분수
남강둔치에 설치된 음악 분수는 아름다운 음악 선율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듯 진주의 밤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음악 분수의 연출방식은 음의 고저에 따라 입력된 값이 나오는 단순한 음악 분수가 아닌 음악에 맞추어 수동으로 분수 모양을 조합하여 조명과 각종 효과를 연출함으로써 연출가의 뛰어난 음악에 대한 해석과 예술성이 요구되는 종합 창작 예술품이다. 분수대 인근에는 진주성과 남강둔치가 있고, 진주박물관, 소망진산유등테마공원, 인사동골동품거리, 남강유등전시관 등 유명 관광지가 많은 지역이다.
* 진주근린공원 소망진산 유등공원
소망진산 유등공원은 세계적인 축제로 발돋움하고 있는 유등을 테마로 한 공원으로 남강과 진주성을 조망할 수 있는 역사와 문화의 향기가 넘치는 공원이다. 물빛나루쉼터, 김시민호선착장, 유등정원, 유등전시관, 소망데크, 잔디마당, 정자목 쉼터, 전망쉼터(무궁화정원)가 있는 공원으로 남강이 바라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가장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는 전망쉼터에는 다양한 종류의 무궁화 꽃을 조성하여 나라꽃 무궁화의 여러 가지 종류의 꽃들을 감상할 수 있다. 유등공원은 남강변의 우수한 경관을 조망할 수 있고, 시민들의 여가를 활용할 수 있는 공원으로 특히 야간에는 다양한 유등에 불이 밝혀 색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곳이다.
* 진주성근린공원 유등축제
매년 가을 진주시내를 유유히 흘러가는 남강을 따라 진주성 인근에서 펼쳐지는 남강 유등축제다. 전국 최우수상의 경력이 아니어도 그 화려한 아름다움은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유등축제의 기원은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대 대첩 중 하나로 불리는 진주대첩의 무대인 진주성을 사수하였던 진주 목사 김시민 장군과 관군, 그리고 백성들은 외부 지역 의병과의 연락을 위해 풍등을 하늘로 띄우고 남강으로 등불을 흘려보내 강을 건너는 왜군을 저지하였다. 전쟁의 혼란 속에 생사를 확인할 길 없는 가족을 찾는 사람들의 유등 또한 남강을 가득 메웠다고 한다. 당시의 모습을 기억하기 위한 유등축제는 시대에 따라 규모를 달리하며 남강을 수백 년 동안 밝혀왔다. 사람들을 모으는 대규모 지역축제로 새롭게 단장한 축제는 남강을 연결하는 부교를 중심으로 화려한 조명으로 빛나는 진주성의 모습과 함께 주변을 빛의 향연으로 장식한다. 다양한 주제를 표현한 유등이 강을 수놓으며 일본, 중국 등 외국 등불의 모습도 축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나름의 소망을 담은 손바닥 크기의 불빛이 강물을 가득 메우는 장면은 축제의 정점을 장식한다. 쓰레기통까지 불빛으로 꾸며놓은 정성은 유등축제와 진주를 더욱 아름다운 고장으로 기억하게 만든다. 가을밤의 아름다움을 담는다.
* 진주성근린공원 물빛나루 쉼터
물빛나루쉼터는 남강 유람선인 김시민호가 출발하는 선착장이다. 물빛나루쉼터가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건축물로 인정받았다. 이 건축물 설계자인 한양대학교 김재경 교수는 ‘물빛나루쉼터’를 ‘빛의 루’라는 이름으로 캐나다의 ‘우드 디자인 앤 빌딩 어워드’에 참여해 최우수상인 ‘아너’상을 받았다고 3일 밝혔다. ‘우드 디자인 앤 빌딩 어워드’는 목재 설계 및 건축 분야에서 우수한 건축가를 기념하는 상으로, 캐나다 목재위원회가 주관하는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빛의 루’(물빛나루쉼터)는 대한민국 대표로 최고의 작품상인 ‘아너’ 수상작 6개 작품 중 하나로 선정됐다. 2022 대한민국 목조건축 대전 대상, 대한민국 공간문화 대상 누리쉼터상을 받았던 망경동 남강변의 물빛나루쉼터는 이번 수상으로 한국을 넘어 세계적으로도 한국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목조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2022년 준공된 물빛나루쉼터는 진주의 촉석루가 몇백 년을 지나 발전했다면 어땠을까라는 고민에서 시작해 탄생한 21세기의 촉석루를 표현한 작품이다. 촉석루의 지붕 곡선과 기둥 및 다포 형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으로 완성한 목조 건축물이다. 특히 수백 개의 나뭇조각이 빽빽하게 맞물려 이루어진 내부의 6개 나무 기둥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는 ‘물빛나루쉼터’는 밤낮으로 아름다운 경관을 뽐내는 남강과 어우러져 진주의 새로운 관광명소가 됐다.
이곳은 카페와 매표소, 전망대, 선착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통유리로 건축된 건물 내부에서 남강을 바라보는 풍경은 힐링과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물빛나루쉼터는 소망진산 유등 테마공원 내 강 쪽 가장자리에 있으며, 진주 남강 유등전시관도 인근에 있다. 물빛나루쉼터는 진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촉석루에 견주어 현대적인 [루 樓]로 재해석해 장소와 역사성 속에 통합한 수작이다. 촉석루의 지붕 곡선과 기둥 및 다포 형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설계됐고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김재경 교수가 디자인했다. 전면이 유리로 마감돼 외부에서도 내부의 조형미를 감상할 수 있다. 한편, 물빛나루쉼터에서 출발하는 김시민호는 진주 남강의 뱃놀이라는 의미를 살리기 위해 전통 정자선 형태로 만들어졌다. 운항코스는 약 3km 코스로 물빛나루쉼터 망진나루에서 출발하여 진주성 촉석문 아래 촉석나루를 순환 운항하며 약 30분간 남강을 운항하면서 남강에서 바라보는 진주성의 아름다운 풍광을 관람할 수 있다.
진주성과 촉석루, 남강의 야간조명을 배경응로 김시민호가 유람하는 풍경
4.남부산림연구소 수목종합전시원
국립산림과학원 남부산림자원연구소는 [자원과 환경]이라는 주제로 전시된 자료를 통해,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임업과 산림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국민 학습장의 역할을 다하고, 산업화, 도시화로 점점 메말라가는 사람들의 정서를 함양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하는 동시에 산림과 관련된 자료의 수집, 보전 및 전시를 목적으로 한다. 남부산림자원연구소는 남부지역 산림자원의 다원적 기능 발굴 및 증진을 위한 산림과학기술력 확보와 건전한 산림육성을 목표로 단기소득 및 특수임산자원의 증식과 고부가가치 이용 기술 개발, 남부산림자원의 종합관리기술 개발 연구를 추진하고 있으며, 아울러 소나무재선충병정밀진단 및 방제에 대한 현장 적용 실용화 연구를 강화하면서 산림과 특수임산자원의 병해충 종합관리 기술개발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남부산림연구소 수목종합전시원 진입로도 다양한 수목으로 이뤄져 있다. 왼쪽 데크로드는 가좌산 산책로 첫 테마구간인 청풍길로 이어진다. 편백나무숲길, 대나무 숲길 등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울창하다.
무료입장,월~금 운영 문의:055-759-8231 연락하고 방문요망
크리스탈 모텔에서 2,8km 택시 5,210원 도보 8분
진주향교에서 5.3km 택시 7,370원 12분 소요
수목원에서 석류공원 553m 도보 10분
석류공원에서 크리스탈 모텔 3.7km 택시 5,750원 11분 소요
5,석류공원
진주를 관통하는 남강은 강변을 따라 길게 펼쳐진 산책길과 자전거길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석류공원은 남강 부근의 나지막한 언덕 위에 조성된 공원으로, 인공폭포를 볼 수 있어 여름철에 좋은 장소다. 낙차가 커서 폭포 아래로 퍼지는 물보라로 인해 여름철 더위를 피하기 좋은 곳다. 폭포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팔각정 망원정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내려다보면 진주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가좌산, 망진산으로 가는 등산로도 이어져 있다. 여기서 남부산림연구소 수목종합전시원은 가까운 거리에 있어 도보이동이 가능하다.
남부산림연구소 수목종합전시관에서 553m 도보 10분
석류공원에서 크리스탈 모텔까지는 3.7km 택시요금 5,750붠
6.진주남강습지원
진주남강습지원은 남강변에 있는 습지보존 지역으로 생태공원이다. 남강의 새로운 다른 모습이 담겨있고, 남강의 사계절 향기가 피어오른다. 나무도 많고, 수생식물도 많고, 꽃도 종류가 많아 아름다운 풍경이다. 깊은 산속 같은 숲속이 초록 물결로 넘실거린다. 관찰하는 마루, 새들을 위한 횃대도 있다. 습지원을 징검다리로 잇는 풍경이 정겹다. 곳곳에 너럭바위들과 벤치도 있어 쉼터로 좋다. 일상을 벗어나 자연과 하나되는 곳이다. 풍경화 같은 자연이지만 다리에서 보면 아파트가 우람하게 다가선다. 도시와 자연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진주의 숨은 명소다.
크리스탈 모텔 바로 앞 길 건너편 547m 도보 10분
7.진주향교
고려 말 조선 초 경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398년(태조 7)에 중건하였으며, 1558년(명종 13) 대성전, 동무, 서무를 중수하고 명륜당, 동재, 서재, 풍화루를 신축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3년(선조 36) 대성전을 중건하였고, 1644년(인조 22) 명륜당, 동.서재를 중건하였다. 1811년(순조 11)과 1907년에 중수하였고 1979년 동.서재를 중건하였으며, 1984년에 명륜당과 1985년에 풍화루를 각각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동무와 서무, 내삼문, 명륜당, 동재와 서재, 풍화루, 그 밖에 부속건물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 송조2현, 우리 나라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서원은 197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소장 전적은 대부분 산실되었고 진주향교유계안 등 몇 권의 책만이 남아 있다. 하계방학 때는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충효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현재 향교의 운영은 전교 1명과 장의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
동국1차아파트 정류장에서 551번 시내버스 승차.시영A정류장 하차.13개정류장 17분 소요
정류장에서 285m 도보 8분.배차간격 1시간 30분
크리스탈 모텔에서 택시는 4km 6,200원 8분 소요
8.형평운동 기념탑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형평사 활동 기념탑이다. 형평사는 말 그대로 저울처럼 공평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 단체였다. 1923년 봄 경남 진주에서 만들었다. 백정 차별의 관습을 없애고 평등사회를 만든다는 목적을 갖고 만든 단체다. 형평사의 활동을 형평운동(백정운동)이라고 부른다. 조선 5백년동안 가장 천대 받아온 백정집단운동을 시작으로 모든 사람이 똑같은 권리를 갖고 평등사회를 건설하자는 것이었다. 망건도 못쓰고, 가죽신도 못 신고, 명주옷을 못 입는 등 옷차림에서부터, 나이 어린 일반인에게 존댓말을 쓰고, 일반인 집에 가서는 머리를 조아리고, 함께 걸을 때는 몇 걸음 뒤쫓아 가는 등 생활 교제에 이르기까지, 더 나아가 출생하여 호적에 못 올리거나 좋은 이름자를 쓸 수 없는 것에서부터 결혼, 거주, 장례 등에 이르기까지 백정들이 받았던 차별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조선시대에 보편화된 사회관습이었다. 그래서 형평운동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인간 평등을 주장하며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 관습을 없애려고 활동한 인권단체로 평가된다. 일제 35년 동안에도 형평 운동은 이 시기의 어떤 사회운동보다 가장 오랫동안 단일 조직아래 지속되었다. 억눌린 민족 상황이 뒤얽혀 작용하였고, 새로운 사회 질서를 만들려는 의지가 담겨 있어 뜻깊은 운동이다. 진주 지역은 유교 전통이 강해 백정 차별이 더 심했으리라고 짐작할 수는 있어도, 그런 유교 분위기가 다른 지역에도 강하였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백정 차별이 진주만의 특성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또 진주의 백정들이 더 부유했다는 증거도 없다. 1910년 경남의 경우만 하더라도 동래, 창원, 의령, 거창, 밀양, 울산 등지의 도축 수가 진주보다 많았다. 이런 여러 사항을 고려해 볼때 오히려 진주에서의 형평운동 발생 조건은 진주 지역의 사회 문화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형평운동 기념탑은 조선 시대 최하층 천민이었던 백정들이 1923년부터 1935년까지 신분 해방과 인간 존엄성 실현을 도모한 형평사의 활동을 기념하여 건립한 탑이다. 1992년 형평운동 70주년 기념 사업회가 구성되었고, 형평사 창립 70주년 기념식을 1993년에 거행했다. 형평 운동 기념탑을 만든 조각가 심정수는 탑의 특징을 다음과 같은 글로 표현하고 있다. ~두 줄기의 나란한 기둥이여/ 영원히 평등과 자유의 정신을 높이 찬양하여라./ 칠십 수년 전 이곳 진주의 선각자들은/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 사랑 정신을 드높여 선포하였다./ 우리는 모두 존경할 수 있고 존경 받을 수 있는/ 생명의 존엄 그 자체이다./ 가진 자도, 못가진 자도, 배운 사람도, 못 배운 사람도/ 늙은이도, 젊은이도, 그녀도, 그니도, 모두/ 이 평등의 문을 나서라./ 우리는 모두 두 손을 꼭 잡고 저 남강 앞에/ 저 태양을 향해 평등과 자유의 정신만이 있을 뿐이다.~ 이곳 진주에서 시작되어 전국적인 활동으로 발전한 형평 운동은 우리나라 인권 운동의 금자탑으로 평가된다. 형평 운동 기념 사업회는 형평 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국내외 여러분들의 성금을 모아 이 탑을 건립하였다. 1996년 세계 인권 선언일에 준공된 이 탑은 모든 시민들의 자신이 되기를 바라면서 진주시에 기증되었다.
9.진주 강민첨 탄생지
1974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강민첨의 탄생지이다. 강민첨(?~1021)은 고려시대의 장군으로 1012년 현종 3년 영일 등지에 쳐들어온 동여진을 격퇴하였다. 현종 7년에 내사사인이 되었다. 1018년 현종 9년에는 거란의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상장군으로서 부원수가 되어 상원수 강감찬의 부장으로 출전하여 강감찬을 도와 10만 8천 3백의 군사를 거느리고 평남 안주인 영주에서 둔을 설치하였다. 홍화진에 이르러 기병 1만 2천을 뽑아 산골 속에 매복시키고 큰 밧줄로 소가죽을 꿰어 성 동쪽 큰 냇물을 막아두고 적을 기다렸다가 적이 이르자 막은 물을 터 놓고 복병을 내어 적을 크게 격퇴시켰다. 결국 흥화진에서 적을 물리쳤다. 그들이 군사를 이끌고 바로 서울로 들어오므로 그가 자주 래구산까지 뒤쫓아 가서 적을 크게 격퇴시키며 후에 태자태부에 올랐다. 고려 사절요에 이르기를 강민첨이 원수가 되어 북치고, 소리 지르며, 쳐들어가 반령 벌판에서 크게 이기니, 거란군사가 패해서 달아나며, 창을 던지고 갑옷을 버려, 길이 꽉 막혔다. 민첨이 사로잡아 목베인 것이 1만급이나 되었다고 한다. 강민첨의 묘는 충남 예산군 대술면 이티리에 있다. 고려 현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고 동여진·거란과의 싸움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문무를 겸비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죽자 나라에서는 3일간 조회를 하지 않았다 한다. 진주 금산의 기슭에 사당을 지어 개경원이라 하고 향화를 받들고 있다. 탄생지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시가지에 동서로 길게 뻗은 대로를 그의 익호를 따서 은열로 명명하여 그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강민첨 탄생지 경내에는 사우 1동과 개경재, 유허비와 사당이 있다.
10.은열사
고려시대의 장군 강민첨( ?~1021)을 모시는 사당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 경상남도기념물 제14호 강민첨 탄생지 바로 곁에 있다. 은열사라는 이름은 강민첨의 호, 은열을 따서 붙였다. 건물 동쪽에 부속 건물인 개경재와 유허비가 남아 있다. 그의 영정을 모신 사당 뒤편 암벽에 강은열공유지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원래 조그만 사당이 있었는데 1980∼1983년 사당과 삼문 및 재실을 신축 정화하였다. 1987년에 담장을 두르고 돌로 축대를 쌓았다. 사당에는 은열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강민첨은 고려시대의 장군으로 현재 진주강씨 은열공파의 시조이다. 본관은 진주, 태어난 곳도 진주이며, 은열공은 시호이다.
11.진주 하륜 묘역
진주 하륜 묘역은 경남 진주시 미천면 오방리에 있는 조선왕조 태종 때 문신인 하륜의 무덤을 비롯한 6기의 무덤이 있는 묘역이다. 1977년 경상남도 기념물 제41호 진양오방산조선조팔각형고분군으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조선왕조 태종 때 문신인 하륜의 무덤을 비롯한 6기의 무덤들로 해발 120m의 야산에 위치한다. 하륜(1347∼1416)은 고려 말 이색의 제자로 요동정벌을 반대하였으며 조선왕조가 건립될 때 계룡산에 도읍을 정하는 것을 반대하기도 하였다. 이방원을 도와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고, 태종의 즉위를 도와 1등공신에 등록되었다. 벼슬은 영의정부사까지 올랐고, 한나라 장자방과 비유되기도 한다. 이 지역에는 하륜의 무덤을 비롯하여 그의 할아버지 하시원, 할머니 진양정씨, 아버지 하윤린, 어머니 진양강씨 등 진양 하씨의 집안무덤이다. 할아버지 무덤을 비롯한 4기의 무덤은 장방형으로 둘레돌 호석을 둘렀다. 이 무덤은 하륜을 비롯한 3대의 무덤이 한곳에 있어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 무덤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유적지이다. 또한 하륜의 무덤도 팔각형의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어, 조선 초기 무덤연구에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12.무학대사와 진주의 지맥에 대한 전설
무학대사는 이씨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를 점쳐주고 또 서울을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긴 괴상하고 해박한 중이었다. 이태조가 고려말 신하로 있을 때 무학대사와 무학대사의 스승인 명승 뇌옹조사가 고려 공민왕을 내어쫓고 왕위에 오르자 국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겨 이씨조선 500년의 도읍지를 삼게 하고 대한민국의 서울도 되게 하였으니 이태조가 무학대사를 믿게 된 대목이다. 이성계가 등극 후에 산남 지방에 河, 姜등의 인물이 많이 나옴을 싫어하여 무학대사를 시켜 진주의 지리를 살피게 하였다. 진주성은 마음 쓸 곳이 없고, 비봉산쪽을 보니 명당 명승의 자리이며, 비봉산의 지맥이 대룡골의 황새터와 연결되어 무학대사는 지금의 비봉산과 봉원 초등학교 사이의 가마못이 있는 등을 끊어 놓았다. 동쪽 비봉루 옆의 향교도 옮겼다. 비봉산에 좋은 자리가 많아 이태조가 이씨 조선을 뒤엎을 사람이 나올 땅이라 우려했던 곳이다.다. 남쪽은 남강하류 돌산이 튀어 나와 용이 꿈틀거리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늘날 석용골이다. 인부를 시켜 석용을 파괴하는데 떨어져 나오는 돌마다 용비늘 같고, 붉은 피가 의령까지 흘러갔다는 전설이다. 무학대사가 진주의 지맥을 끊었어도 인물은 여전히 나왔다. 이태조의 다섯째 아들인 방원이 태종을 도와 왕위에 앉게 한 하륜, 임진란 때 외지사람이지만 주씨 논개,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기를 만든 정평구, 삼열사, 삼장사가 모두 진주 출생이다. 무학대사가 지맥을 끊은 후에는 진주가 보수안정의 고을로 바뀌었으니 운명적 전설인 듯하다.
13.진주전통민속소 힘겨루기 경기장
진주소싸움은 삼국시대 전쟁에서 승리한 전승기념 잔치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고려 말엽 1200년경부터 고유 민속으로 보기도 한다. 진주의 큰 판은 남강백사장이었다. 수백개의 차일을 백사장에 치고, 황소와 함께 입장하는 상머슴, 그리고 수만 군중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옛날의 소싸움은 상머슴의 날이기도 했다. 나중에는 문중 세력 과시장이 되기도 했고, 또 술과 돈을 건 승부장이 되기도 했다. 싸움에서 이긴소는 목과 뿔을 비단으로 장식하여 마을 잔치로 축제분위기였다. 이긴 소 값은 부르는 게 값, 팔지도 않는다. 싸움에 진 소는 값이 절반이하로 떨어졌다. 진 소는 도살장 신세다. 진주소싸움장은 남강백사장에서 공설운동장으로 옮겼다. 경기방법도 현대화하여 백사장에서의 제 맛을 잃었다. 싸움은 불과 몇 분 사이에 끝나고, 길게는 2∼3시간이 보통이다. 진주소싸움의 전성기는 일제 때, 민족의 억압된 울분을 소싸움에서 발산했던 것이다. 왜인들이 진주땅에 들어 설 때, 수만 군중이 백사장을 뒤덮고 시가지를 누비니, 겁에 질린 왜인들이 남강 나루를 건너지 못하고 며칠씩 머물렀다. 왜인들은 민족혼이 서린 진주 소싸움을 끝내 거부하여 산속으로 숨어들었으나 광복 후 다시 되살아났다. 진주에서 해마다 열리는 전국소싸움대회는 민속사에 지니는 뜻이 크다. 진주시 판문동에 있는 소싸움 전용경기장은 인근 관광지와 연계한 테마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농촌지역 개발과 축산발전 촉진 및 전통소싸움 활성화하기 위하여 개장하였다. 3천명의 관람석과 376대의 주차 시설을 갖추고 있다. 싸움소를 관리하는 계류사 100개와 편의시설을 갖추어 우리나라 최초의 최신식 투우장이란 명성을 얻고 있다. 2025년은 3월 15일부터 9월까지 매주 토요일에 경기를 총 20회, 매회 15경기씩 개최한다. 7월~8월은 혹서기로 사고예방을 위해 휴장한다. 진양호공원 안에 있다.
진주시청 정류장(크리스탈모텔에서 1.4km)에서 301,300,300-1,301-1번 버스 승차. 소힘겨루기경기장 정류장 하차. 33개 정류장 37분 소요. 진주전통민속소힘겨루기경기장까지 177m 도보 3분.여기서 진양호공원은 650m 도보 12분
진주논개시장에서 5.9km 택시 7,910원 11분 소요.
시내버스는 은열사에서 387m 도보 6분 거리의 논개시장정류장에서 301(40분 간격),301-1(2시간 간격),300(30분 간격),300-1번(2시간 간격) 승차.진주민속소힘겨루기경기장 정류장 하차.27개 정류장 29분 소요.여기서 경기장까지 177m 도보 3분-좋다.
14.진양호공원
진양호 호반에 조성된 대규모 공원이다. 1981년 진양호 일대를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하고, 1998년 조성되었다. 동물원, 전망대, 가족쉼터, 놀이공원(진주랜드), 삼림욕장, 자동차극장, 휴식 공간이 있고, 우약정, 양마산팔각정, 남인수동상, 이재호노래기념비, 망향비, 충혼탑 등의 시설물이 있다. 진주시의 무형문화유산 계승, 발전을 위해 2002년 준공한 전통예술회관과 노인복지시설인 상락원, 아시아레이크사이드 호텔도 공원 내에 있다. 동물원은 2008년 현재 서부경남 지역의 유일한 동물원으로, 1986년 개원하였다. 공원 내에서 유일하게 유료로 운영되는 시설로 호랑이, 사자, 곰, 독수리, 수리부엉이 등 55종(포유류 27종, 조류 27종) 300여 마리의 동물이 있다. 공원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조성된 전망대는 2003년 준공한 3층 건물로, 시원하게 펼쳐진 진양호와 남강댐의 모습뿐 아니라 지리산, 와룡산, 자굴산, 금오산 등을 조망할 수 있다. 전망대에서 연결되는 계단은 365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1년 계단이라 불리는데 계단 아래쪽에는 선착장이 있다. 이 선착장에서는 남강댐 건설로 인해 섬이 된 귀곡동 지역으로 들어가는 배를 탈 수 있다. 호반과 산의 멋진 경치를 조망하는 우약정 정자도 있다. 1974년 진주 출신의 재일교포가 건립하여 진주시에 기증한 것이다. 공원 주변으로는 진주전통소싸움경기장과 어린이교통공원 및 청소년모험공원, 한국수자원공사가 운영하는 물문화관 등이 있다.
진주민속소힘겨루기경기장에서 진양호공원까지 528m 도보 11분, 진양호동물원까지는 945m 도보 22분,진양호호반전망대까지는 1km 도보 23분
우약정 정자
* 진주역 주변 숙소
남강변 크리스탈 모텔.T.055-755-4749
진주역까지 3.5km 택시요금 6,220원 7분 소요
크리스탈 모텔 주변 대중교통:시내버스 352번 550번 동국1차아파트 정류장까지 269m
352번 시내버스 배차간격:15분~30분 간격
550번 시내버스 배차간격:30분~2시간 30분 간격
시내버스 이용이 원활하지 않아서 카카오택시 이용할 것
진주 숙소 주변 식당.편의점
1.고향식당.한식 375m 도보 5분(영업미확인) T.055-755-3402
2.해인식당 277m 도보 4분(영업미확인}
3.꽃돼지차담.한식 152m 도보 2분(영업미확인)
4.부자식당 .한식 129m 도보 2분(영업미확인}
5.대구막창 286m 도보 4분(영업미확인) T.055-755-7663-없어진듯
6.CU상평만나편의점 250m 도보 4분
7.CU점 바로 옆 건물은 치킨집
6.치킨집 바로 옆 건물은 장수돼지국밥.포장, 배달 가능 T.055-752-9879
7.또순이삼계탕.능이버섯백숙 등 181m 도보 3분 T.055-755-3336
* 진주 여행 일정
<1일차>
1.진주역 도착. 중식.
*등촌샤브칼국수진주역점T.0507-1324-9299.진주역로터리우측바로 옆.
15:00~17:00 브레이크타임(화요일 영업은 한다)
진주역에서 165m 도보 3분.1인 13,000원 정도.좋다.
*솔밭샤브진주역점.T.0507-1343-3092.진주남부농협바로 뒤편.전화문의 후 갈 것.
15:00~17:00 브레이크타임(화요일 영업은 한다)
진주역 14:15분 도착인데 가능하냐고?
진주역에서 363m 도보 6분.가까운 거리.메뉴 좋다 1인분 14900원
크리스탈모텔까지 3.7.km 택시 5700원.시내버스 요금 1,450원(시내버스 이용 불가)
중식 후 택시 승차할 것.
2.크리스탈 모텔 16시경 입소.여장 풀고 휴식 후
3.숙소 바로 잎에 있는 진주남강습지원 산책.430m 도보 이동 가능
(만약 시간이 나면 석류공원 탐방.도보거리 2.8km.택시는 4.2.km 6,290원(시내버스 이용 불가)
가게 되면 왕복 택시로 탐방할 것.(힘들면 생략해도 되고,다음날 가도 된다)
4.주변 식당 석식 후 CU 편의점 장보기
<2일차>
1.오전에는 진주대첩역사공원과 진주성 안의 모든 유적 탐방
크리스탈모텔에서 진주역사대첩역사공원까지 4.1km 택시 6,460원
시내버스는 352번 동국1차A 정류장에서 승차.숙소에서 282m 도보 5분 거리
농협중앙지점 정류장 하차.11개 정류장 15분 소요.하차 후 진주대첩역사공원까지 393m 6분 도보 이동
시내버스 352번이 자주 있어서 이 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352번 배차 간격 1일 29회. 15~25분 간격 운행-이용하기에 양호.
문의 T.삼성교통 055-752-1611
352번 기점출발 시간표:~07:05,07:40,08:30,09:00~(기점에서 동국1차A 정류장까지는 10분~20분 소요될듯)
* 352번 노선:동국1차A 승차-자동차검사소-생활체육관-동일스위트A-가람초등학교-경상국립대학교칠암캠퍼스정문-고속버스터미널-진주남중학교/제일병원-진주세무서-천전시장-포시즌-농협중앙지점 하차
2.오후에는 진주성 서문으로 나와서 중식 후
도보로 진주성근린공원 탐방-음악분수, 천수대교, 소망진산 전망대, 유등전시관, 물빛나루쉼터 등 도보 탐방 후
3.물빛나루쉼터에서 진양호공원호반전망대.콜택시 6km 7,500원.택시하차후 도보 360m
4.전망대에서 동물원.450m. 동물원 입장료:어른 1,000원 경로 무료
5.진주전통민속소힘겨루기경기장 탐방.동물원 바로 옆에 있음.
6.귀가시에는 소힘겨루기경기장 정류장에서(경기장에서 177m) 300,300-1,301,301-1번 버스 승차.
(택시는 숙소까지 18km 18,000원,너무 먼거리 요금 비싸서 버스 이용)
* 300번,301번 ,300-1,301-1 노선:소힘겨루기경기장-참빌라-오동-진양호통닭거리-진양호삼거리-평거초등학교-판문현대A-퀸즈웰가A-판문동행정복지센터-휴먼시아4단지/평거주공2단지-휴먼시아3단지/평거주공1단지-(10호광장/한보하이타운A)-덕산A/대아중고등학교-대아중고등학교-이현주공A-촉석초등학교사거리-이현상가(22개정류장 29분 소요)-오죽광장 여기서 하차 후 352번 환승. 오죽광장정류장 하차.352번 환승.동국1차A 정류장 하차.18개 22분 소요.숙소까지 269m 도보 4분
* 352번 노선:오죽광장/국제빌딩-봉곡동시외정류소-서부시장/봉곡초등학교-성북동행정복지센터-갤러리아백화점-중앙시장(우리은행.국민은행 맞은편정류장)-농협중앙지점-포시즌-천전시장-진주세무서-진주남중학교/제일병원-고속버스터미널-경상국립대학교칠암캠퍼스정문-가람초등학교/대림A-동일스위트A-생활체육관-자동차검사소-동국1차A 하차.숙소귀환
(변경 전 일정:형평운동기념탑-물빛나루쉼터에서 2.1km 택시 4,000원.시내버스 이용 불가
석류공원-형평운동 기념탑에서 석류공원까지 택시 이동. 3.3km 택시 5,300원
석류공원에서 크리스탈모텔 택시 이동.3.4km 5,500원
형평운동기념탑에서 크리스탈모텔까는 3.4km 택시 5,450원)
7.석식 후 숙소 귀환
<3일차>
1.오전에는 진주향교,강민첨탄생지,은열사.4km 택시 6,200원
시내버스는 동국1차A 정류장에서 551번(1일9회 1시간 30분 간격.기점출발 06:30분,08:00분~) 승차.기점 농산물도매시장에서 22번째 정류장이 동국1차A. 대략 10분 후 도착으로 보면 06:40분, 08:10분경 동국1차A 정류장 도착.그에 맞춰 나가면 시내버스 이용도 가능하다.
진주성 방향 정류장에서 승차
시영A 정류장 하차.13개 정류장 16분 소요. 진주향교까지 285m 도보 이동 8분
진주향교 탐방 후 도보로 진주강민첨탄생지로 이동 860m 도보 16분
근처 강민첨사당인 은열사 탐방 39m 도보 1분.은열사 탐방 후 근처의 논개시장으로 이동 중식.486m 도보 7분
* 551번 노선:동국1차A-자동차검사소-생활체육관-동일스위트A-가람초등학교/대림A-시외버스터미널-반도병원-논개시장-중앙시장(주차장)-중앙시장(국민은행)-롯데인벤스-봉수치안센터-봉래초등학교-시영A 하차
2.논개시장에서 중식 후 콜택시로 형평운동기념탑
3.형평운동기념탑에서 도보로 경상국립대학교칠암캠퍼스 탐방.박물관 등
4.콜택시로 석류공원
5.석류공원에서 콜택시로 숙소 귀환
(변경전 일정:올때는 소힘겨루기경기장 정류장에서(우약정에서 725m 도보 11분) 300,301,300-1,301-1번 승차.오죽광장정류장 하차.352번 환승.동국1차A 정류장 하차.18개 22분 소요.숙소까지 269m 도보 4분-이것도 고려해 볼 것.좋다.
* 300번,301번 ,300-1,301-1 노선(갈때):논개시장-중앙시장(주차장)_중앙시장(국민은행)-갤러리아백화점-상봉현장민원실-진주여자고등학교-진주여자고등학교사거리-상봉A-진주보건대학교/경진고등학교-서부농협하나로마트-오죽광장-이현상가-촉석초등학교사거리-이현주공A-대아중고등학교-덕산A/대아중고등학교-10호광장/한보하이타운A-휴먼시아3단지/평거주공1단지-휴먼시아4단지/평거주공2단지-판문동행정복지센터-퀸즈웰가A-판문현대A-평거초등학교-진양호삼거리-진양호통닭거리-오동-참빌라-소힘겨루기경기장 하차
* 300번,301번 ,300-1,301-1 노선(올때):소힘겨루기경기장-참빌라-오동-진양호통닭거리-진양호삼거리-평거초등학교-판문현대A-퀸즈웰가A-판문동행정복지센터-휴먼시아4단지/평거주공2단지-휴먼시아3단지/평거주공1단지-(10호광장/한보하이타운A)-덕산A/대아중고등학교-대아중고등학교-이현주공A-촉석조등학교-이현상가-오죽광장 여기서 하차 후 352번 환승
* 352번 노선:오죽광장/국제빌딩-봉곡동시외정류소-서부시장/봉곡초등학교-성북동행정복지센터-갤러리아백화점-중앙시장(우리은행.국민은행 맞은편정류장)-농협중앙지점-포시즌-천전시장-진주세무서-진주남중학교/제일병원-고속버스터미널-경상국립대학교칠암캠퍼스정문-가람초등학교/대림A-동일스위트A-생활체육관-자동차검사소-동국1차A 하차.숙소귀환.*논개시장에서 소힘겨루기경기장 가지 않고 경남식물원,석류공원 탐방하게 될 때는 석류공원까지 4.3km 카카오택시 6,900원.근처 수목원 탐방.석류공원에서 도보 이동 553m. 카카오 택시로 숙소귀환. 3.7km 택시 5,750원.시내버스 이용 불가.석식 후 숙소 귀환)
<4일차>
숙소에서 아침 일찍 카카오 택시 콜. 진주역 출발.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