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풍운의 무림맹 (3)
장염이 추료와 헤어지고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에 도착한 것은 삼월 하순
경이었다. 이미 날씨는 많이 풀려 있었고, 관도로 오가는 상인과 무림인의 수도
적지 않았다. 서안에 도착한 장염은 흥경궁(興慶宮)이라고 쓰인 거대한 편액을
힐끔 바라보다가 햇살이 잘 드는 곳으로 걸어갔다.
지금 장염의 수중에는 은자는 커녕 동전 일문도 없었다. 이미 수계현을 떠나올
때부터 빈털터리였던 장염과 향이는 추료 일행에게 붙어서 필요한 것들을 조달해
왔다. 그러나 그것도 장염이 난주로 가기 위해 홀로 갈라져 나오면서부터는 끝이
났던 것이다.
그래도 장염의 마음은 한없이 가벼웠는데 그것은 이미 과거에 충분한 걸식(乞
食)을 해보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따지고 보면 형편은 그때와 비교하면 더욱 나
은 것이었다. 그때는 무공도 회복하지 못한 때였지만 지금은 이미 내공을 회복한
뒤였기 때문이다.
장염은 흥경궁 외곽의 돌담아래 잠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 왔는데, 수중에 돈이 없으니 길바닥에라도 잠시 쉬었다가 가야 했다.
사방에는 봄의 햇살을 즐기기 위해 집에서 뛰쳐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조금이
라도 볕이 드는 곳에는 어느새 삼삼오오(三三五五) 무리들이 모여 장기를 두거나
잡담을 나누기에 정신이 없었다.
엉덩이를 통해서 따뜻한 기운이 장염의 몸으로 전해져 왔다. 봄볕은 대기(大
氣)보다 지표(地表)를 더 따뜻하게 데워놓고 있었다. 장염은 벽에 등을 기대고
잠시 눈을 붙였다. 추료 일행과 헤어진 뒤로 밤낮 없이 걷는 통에 누적되었던 피
로가 한꺼번에 밀려 왔다.
챙그렁!
장염은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에 슬며시 눈을 떴다.
'어엇!'
장염의 앞에는 동전이 몇 개 놓여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둘러보던 장염을
향해 옆자리의 노인이 히죽 웃어 보였다.
'자네가 연장이 없이 나온 것 같아서 내가 하나 깔아 두었네.'
장염이 노인의 옆모습을 자세히 보니 관록이 붙은 거지가 분명했다. 노인의 앞
에는 나무로 조악하게 깍은 작은 그릇이 있었고 그 속에도 몇 개의 동전이 담겨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살금살금 느껴지던 기척은 바로 이 노인의 것이
분명했다. 잠시 앉아서 졸았던 것뿐인데 그사이 노인은 장염의 앞에 작은 나무그
릇을 하나 가져다 놓았던 것이다.
'흥경궁에 놀러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부유한 사람들이니, 자네는 오늘 자
리를 잘 잡은 것이라고 할 수 있네.'
흥경궁은 당나라시대 현종이 양귀비와 함께 살면서 집무를 보았던 곳이다. 과
거의 영화도 한때, 이제는 지키는 사람도 없어져 모란 정원과 침향정(沈香亭)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장염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무그릇에 담긴 동전을 쓸어다가 품에 집어넣고 다시
무릎사이로 머리를 묻었다.
'이런 우라질 자식이 있나. 연장을 깔아줬는데도 모른척하다니.'
노(老)거지 모의자(毛依子)의 속이 뒤집어 졌다. 모의자가 젊은이를 처음 보았
을 때 그는 구걸하는 사람 같지 않았다. 그걸 믿고 슬쩍 연장을 넓게 벌여놓았는
데, 이 젊은 녀석은 마치 구걸이라도 하려고 했던 놈처럼 자연스럽게 돈을 품안
에 쓸어 담은 뒤 고개를 처박고 있는 것이다.
'고수다!'
십 년 경력의 모의자는 문득 이 젊은 녀석이 구걸의 고수임을 눈치챘다. 수많
은 사람들 앞에서 전혀 당황하지 않고 돈을 챙기는 수법과 또다시 자연스럽게 고
개를 처박는 저 모양새는 하루 이틀의 수련으로 얻어지는 경지가 아니었다.
모의자는 젊은 녀석의 앞에 놓아둔 나무그릇에 슬금슬금 손을 뻗치다가 움직임
을 멈추었다. 젊은 녀석의 어깨가 움찔하며 작은 경련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허억! 연장을 회수하지 말라는 뜻이구나. 지독한 놈. 남의 연장으로 빌어먹는
놈이 나타나다니, 말세(末世)로구나.'
모의자는 다시 손을 거둬들였다. 힘으로 하자면 저 막되 먹은 젊은 거지를 당
할 재간이 없었다. 자신은 집안은 명대(明代)에 이르러 완전히 몰락했지만 뼈대
있는 문사(文士) 출신으로 쌈박질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휴우, 근본 없는 거지에게 쪽박을 내준 내 잘못이 크다.'
모의자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릇에 남은 동전을 긁어모았다. 어찌된 게 자기
보다 젊은 놈의 그릇에 좀 더 많은 동전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허 참, 세상 더럽구나. 사지가 멀쩡한 젊은 놈에게 어찌 동정이 더 간단 말이
냐. 내가 십년 만 젊었어도 어디가서 막일을 하지 구걸은 안 할 터인데.'
노인이 젊은 놈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리며 가래침을 '퇴!'하고 내뱉었다.
그러나 젊은 거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모의자는 몇 번이나 더 투덜거렸지만
젊은 놈에게서 반응이 나타나지 않자 곧 자기의 그릇으로 관심을 돌렸다. 거지의
입에서 욕이 나가기 시작하면 그 날의 영업은 끝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특
히 늙은 거지가 혼자서 씨부렁거리면 사람들은 미친 줄 알고 멀리 돌아다니기까
지 했다. 지금은 조금 참는 것이 자기 자신을 위해 나은 것이다.
장염은 정오가 되자 허기를 느끼고 다시 눈을 떴다. 앉은자리에서 진기를 일으
켜 전신으로 한바퀴 돌리자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상쾌해졌다. 나무그릇을 바라보
니 그사이 동전이 몇 개 담겨져 있었다. 장염은 옆에 앉아있는 노인에게 그릇을
내밀었다.
'잘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임대료라고 생각하고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노인의 얼굴 근육이 꿈틀거리며 환한 웃음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네는 역시 내가 처음 본 그대로 아주 경우가 바른 젊은이구먼'
모의자가 입을 헤벌죽 벌리고 장염에게 온갖 아부를 다 할 때였다.
멀리서 한 청년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고초를 많이 겪은 듯한 그의 얼굴에는
혈흔이 뚜렷했다. 그는 달려오던 그대로 장염과 모의자를 지나쳐 흥경궁으로 향
하는 사람들 속에 묻혀갔다.
장염과 모의자가 서로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데, 연이어 병장기를 휴대한
흉악하게 생긴 무림인 네 명이 달려왔다. 그들은 흥경궁의 근처에 이르자 뛰기를
멈추고 주변을 둘러 보더니 장염과 노인을 향해 다가왔다.
그들 중 대감도를 든 장한이 장염을 향해 말했다.
'너는 지금 이리로 뛰어온 젊은 남자를 보지 못했느냐?'
'보았습니다.'
'그는 어디로 갔느냐?'
장염이 주위를 둘러보니 흥경궁으로 들어가는 문과 조금 더가서 꺽인 돌담이
보였다. 이들은 저 돌담을 꺽어 다른 길로 갈 것인지, 흥경궁 안으로 들어갈 것
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묻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노인은 사단이 벌어지자 슬그머니 눈을 내리깔고 나무그릇의 테두리를 열심히
닦기 시작했다.
슥삭 슥삭.
거친 노인의 손바닥과 바싹 마른 나무그릇의 표면이 부딪치자 건조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장염은 이 사내들의 얼굴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알려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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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ㅈㄷㄳ..
감사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고민은 ,,,,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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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즐겁게 잘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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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요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