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볕어린이문학 31. 백정의 아들, 포와에 가다
남경희 지음, 오승민 그림
국내 어린이문학 / 초등 고학년
무선제본 | 148*210mm, 책등 10mm | 164쪽 / 2023년 10월 13일 발행 | 값 14,000원
ISBN 979-11-93150-16-0 (73810)
도서출판 봄볕 (☏ 02-6375-1849)
주제어 : 이민, 이민사, 하와이 이민사, 독립운동, 개화기, 민중사, 한국사, 역사동화
교과연계 :
4학년 1학기 국어 10. 인물의 마음을 알아봐요
4학년 2학기 국어 4. 이야기 속 세상
5학년 1학기 국어 10. 주인공이 되어
6학년 1학기 국어 8. 인물의 삶을 찾아서
6학년 2학기 국어 1. 작품 속 인물과 나
6학년 1학기 사회 1. 사회의 새로운 변화와 오늘날의 우리
하와이 이민사 뒤에 묻힌 백성들의 생생한 역사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씨앗이 된 하와이 첫 이민자들의 땀과 눈물의 이야기
머나먼 하와이 하늘에 땀과 눈물로 띄운 무지개
1900년 초, 용이는 글을 배우고 싶은데
백정의 아들이라 안 된대요.
하와이에 가면 부자가 되고, 글도 배울 수 있다 하여
용이 가족은 하와이로 떠나요.
녹록지 않은 하와이의 생활,
땀과 눈물로 아로새긴 하와이 이민사가 생생하게 펼쳐져요.
| 출판사 서평
그들은 왜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을까?
올해는 하와이 이민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02년 12월 22일 제물포에서 떠나는 겐카이호에 탄 조선 이민단은 나가사키를 거쳐,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첫 발을 디뎠다. 121명이 승선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86명만 하와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와이 이민사가 시작되었다.
“모든 섬에 다 학교가 있어 영문을 가르치며 학비를 받지 않음, 월급은 미국 금전으로 매월 15원(대한 돈으로는 약 50원), 일하는 시간은 매일 10시간이고 일요일은 휴식함.”
하와이 이주민을 모집할 때 쓰였던 홍보 문구이다. 50원은 그 당시 매우 큰돈이었다. 조선에서 살기 힘든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유혹적인 조건이었다.
처음 이민을 떠난 사람들은 어떤 사연을 갖고 있었을까? 무엇이 그들의 등을 떠밀었을까? 조상의 묘를 지켜야 하고 예를 갖추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던 시절에 고국을 떠나 하와이까지 가게 만든 역사적인 배경은 어떤 것이었을까? 남경희 작가는 하와이를 오가며 이민사를 살펴보다가 이민을 떠났던 우리 조상들의 삶을 그려 보기로 마음먹었다. 백정의 아들이었던 용이를 중심으로 이민을 떠난 한 가족, 그들과 함께 떠난 우리 조상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한 것이 《백정의 아들, 포와에 가다》이다.
글을 배우고 싶었던 백정의 아들 용이, 포와에 가다
1900년 초 우리나라는 혼란하고 급변하는 사회였다. 갑오개혁으로 조선 왕조 체제가 무너졌고 1897년 고종이 국호를 ‘대한’으로 바꿨다. 일본의 간섭이 점점 심해지는 가운데 왕도 그대로고 나라의 체제만 바뀐 듯한 세상에서 백성들은 여러모로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어수선한 세상에 나고 자란 백정의 아이, 용이는 장날 책을 읽어 주는 전기수를 보고 글을 배우고 싶어 한다. 세상이 달라진 듯해도 백정의 아이는 여전히 글을 배울 수 없다. 용이 엄마 아빠는 당장은 어쩔 수 없다고만 할 뿐이다.
용이 엄마를 쫓아온 누군가 때문에 용이 가족은 야반도주를 하여 제물포에 당도했다. 당시 제물포에는 다양한 일거리가 많았다. 외국인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존 목사라는 사람이 포와에 가면 사시사철 따뜻하게 지내며 굶어 죽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이민을 권유하자 용이 가족은 포와에 가기로 결심한다. 백정으로서는 조선 어딜 가도 차별받는 삶을 살아야 하니 차라리 외국 땅에서 일하는 게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면 큰돈을 벌 수도 있다고 들었다. 용이는 학교를 다닐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어서 포와에 가고 싶었다.
채찍질을 견뎌야 했던 고된 이민 생활
긴 항해였다. 용이 가족과 여러 조선 사람들이 포와 즉 하와이 땅에 드디어 발을 디뎠다. 하와이에는 신기한 게 많았다. 하늘로 치솟은 나무에 둥근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기도 하고, 쇠 당나귀라 하는 전차도 있고, 끝도 보이지 않는 사탕수수밭의 규모를 보고 입을 떡 벌리기도 했다.
하지만 사탕수수 농장에서의 일은 꿈처럼 달콤하지 않았다. 여차하면 채찍을 휘두르는 루나(십장)에게 맞지 않으려면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야 했다. 용이와 장쇠 같은 아이들도 일을 했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매일 고된 노동을 해야 했다. 친구 장쇠의 보호자인 양반 나리는 사탕수수 농장의 힘든 노동을 견뎌 내지 못했다. 굼뜨게 일한다고 루나에게 상투가 잘리는 치욕을 경험하기도 했다. 상투가 잘린다는 건 양반의 정체성을 잃었다는 뜻이다. 조선의 계급이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괴로워하던 양반 나리는 미국 본토로 떠났다. 그 바람에 용이는 하와이 이민 길에서 만난 유일한 친구 장쇠와 이별을 한다.
먼저 이민 온 일본인들과 갈등을 빚기도 하고 루나의 폭압에 괴로워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용이는 아이답게 일본인 친구와 딱지치기를 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일에 재미를 붙여 나갔다. 시간은 갔고 조선에서 새로운 이민단이 왔다. 조선인들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학교를 만들기로 했다. 그제야 알고 보니 용이 엄마는 몰락한 양반가의 여식이었다. 노비로 팔려갔다가 도망 온 처지라 용이에게 글을 가르쳐 줄 수도 없었던 용이 엄마는 하와이에 와서야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선생이 되었다.
캠프에 교회가 세워지고 국어 학교가 문을 열었다. 조국에서는 나라 잃은 슬픈 소식이 들려왔지만 하와이에 이민 온 사람들은 열심히 일했고 열심히 돈을 모았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독립 자금을 모아 조국에 전달하기도 했고 ‘3.1 독립선언서’를 영어로 낭독하며 만세 운동을 하기도 했다. 서당 담장에 까치발을 딛고 귀동냥을 하던 용이는 하와이에 와서 간절히 바라던 글을 배웠고 독립 운동에 보탬이 될 만큼 하와이에 뿌리를 제대로 내렸다.
하와이 이민사 뒤에 묻힌 개개인의 생생한 역사
1903년 이후 2년에 걸쳐 약 7천여 명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다. 부자가 되겠다는 희망을 품고 떠났지만 녹록지 않은 타향살이였다. 조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도 먼 타국에서 힘없는 조국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조국에서는 양반 백정 따졌지만 타국에서는 그런 계급 차는 소용이 없다. 그저 제시간에 일을 잘하는 사람만 필요할 뿐이다. 양반이면서도 타국까지 가야 했던 이의 사정, 백정이라 차별받는 조국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 이민 여정 중 아비를 잃은 아이 등 하와이 이민사라는 큰 카테고리로 뭉뚱그릴 수 없는 사람들의 생생한 삶이 이 책에는 잘 드러나 있다.
요즘 우리 땅의 역사에 무관심한 경우가 허다하다. 일본이나 다른 나라로 떠난 해외 이주 동포들의 역사는 더더욱 잊힌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 동화의 역할과 의의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 신인 작가이지만 힘 있는 필력으로 하와이 이민사를 생생하게 그려 냈다.
| 차례
귀동냥 · 6
송충이와 솔잎 · 12
신통한 부적 · 22
끝없는 물고개 · 32
땅꼬마 이야기꾼 · 43
돈이 열리는 나무 · 53
루나의 채찍 · 63
카우카우 타임 · 76
망측한 일 · 95
나리의 상투 · 101
목욕탕 주인 기무라 · 116
헤어지는 아픔 · 126
감추어진 이야기 · 134
다시 만난 사람들 · 145
에필로그 · 159
작가의 말 · 163
| 작가의 말
몇 년 전, 하와이를 여행하다 ‘하와이 플랜테이션 빌리지’라는 곳에 들렀습니다. 옛 사탕수수 농장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야외 생활사 박물관 같은 곳이지요. 그런데 오래전 우리 선조들도 그곳으로 건너와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조들이 생활했던 움막이나 통나무집도 보고 이발소, 병원, 목욕탕도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다 농장 매점 앞에서 용이와 장쇠를 만났지요. 더벅머리 두 친구는 난생처음 콜라를 맛보고는 코끝이 찡해져 인상을 찌푸렸어요. 그러고 나서는 콜라병 뚜껑을 납작하게 만들어 신나게 딱지놀이를 했지요. 힘든 삶 속에서도 아주 밝은 표정이었습니다. 나는 그런 상상을 하며 용이와 장쇠가 왜 하와이로 떠났는지, 그곳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1903년, 86명의 조선인이 처음으로 하와이 땅을 밟았습니다. 우리나라 첫 공식적인 이민자들이지요. 그 당시 하와이를 포와(布哇)라고 불렀는데, 그들은 부자가 되겠다는 희망을 품고 하와이로 떠났습니다. 그 후 약 2년간 7천여 명의 선조가 하와이로 건너가 여러 섬에 흩어져 사탕수수 농장에서 힘들게 일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떠나온 조국을 늘 걱정했습니다. 언젠가 꼭 돌아가고픈 조국인데, 우리나라가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가자 실망이 컸지요. 그래서 국권 회복 운동에 앞장서 독립 자금을 모아 김구 선생님이 계시는 상해 임시 정부에 전달했습니다.
그러다 조국 해방의 기쁨도 잠시, 한국 전쟁이 일어나고 말았지요. 하와이 선조들은 우리나라도 공업 기술이 발전해야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뜻을 모아 1954년 인천과 하와이의 첫 글자를 따서 ‘인하공과대학(현재의 인하대학교)’을 설립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하와이 이민 1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만큼 발전하는 데 하와이 선조들의 희생과 땀과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 주신 도서출판 봄볕의 관계자 여러분과 멋진 그림을 그려 주신 오승민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 2023년 다시 찾아온 하와이에서
| 작가 소개
지은이_남경희
일본에서 일본 문학을 전공하고 귀국 후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퇴직 후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동화 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202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에 <내 이름은 구름이>로 등단하고, <바다를 건너온 피아노>로 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 지원자로 선정되었다. 늦은 나이에 햇병아리 작가가 되어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동화를 쓸 수 있을까 베란다 꽃밭에서 흙장난하며 고민하고 있다.
그린이_오승민
2004년 첫 창작 그림책 《꼭꼭 숨어라》로 한국 안데르센 그림자상, 국제 노마 콩쿠르 가작 상을 받았다. 2007 BIB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에 《못생긴 아기 오리》가 출품되었고, 2009년에는 《아깨비의 노래》로 볼로냐 국제 도서전 한국관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었다. 2023년에는 《오늘은 돈가스 카레라이스》가 ‘IBBY Selection of Outstanding Books for Young People with Disabilities’ 프로젝트의 최종 도서 목록에 선정되었다.
그림책, 동화, 논픽션 등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로 200여 작품에 그림을 그렸다. 그림의 역할이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안내자’라고 생각하며, 각 작품의 소재와 주제를 잘 살릴 수 있는 다양한 그림 스타일을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