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숙도에서 몰운대로
주말에 비가 내리고 맞은 삼월 셋째 월요일은 춘분이었다. 내가 퇴직 이후 여가가 있음을 아는 문학회 동인 세 분이 길안내를 요청한 트레킹을 나섰다. 지난 이월 물금역으로 나가 임경대를 올랐다가 낙동강 강변 자전거 길을 따라 원동으로 함께 걸었던 그 구성원들이다. 본래 본포 강가와 대산 들녘으로 나가보려다 행선지를 을숙도와 다대포로 바꾸어 몰운대까지 잡은 여정이다.
창원역 근처 사는 회원이 몰아온 차에 이웃 아파트 사는 편집장과 동승해 진해에서 부회장이 타 일행이 넷으로 늘어 안민터널을 지나 동진해로 향했다. 진해구청을 지나 대발령 쉼터에서 핸드드립으로 내려온 향긋한 커피를 들면서 하루 동선을 의논했다. 용원 근처 부산진해 신항까지는 지난 삼 년간 주말이면 내가 거제 근무지로 오가면서 차창 밖으로 봤던 익숙한 지형지물이었다.
녹산에서 명지를 거쳐 을숙도에 닿아 초화원을 둘러 차를 잠시 세워두고 낙동강 하구 탐방 체험장으로 나아갔다. 낙동강 하굿둑을 빠져나온 강물은 너울너울 다대포로 흘러갔다. 생태탐방 체험장 실내 공간은 월요일에 휴관이라도 옥외에서 낙동강 하구의 모래톱과 시든 갈대밭을 살필 수 있었다. 철이 철인지라 겨울철새들은 북녘으로 귀환하고 텃새가 되어 머무는 오리들만 보였다.
을숙도 남단에서 돌아 나와 북단의 물문화관에 주차를 하고 낙동강하굿둑을 걸어서 하단으로 갔다. 부산의 해안을 따라가는 갈맷길의 일부 구간에 해당하는 다대포 강변대로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북녘이 본향인 물닭과 고방오리들은 봄이 되어도 귀환을 단념하고 텃새가 되어 머무는 녀석들이 동동 떠다녔다. 봄철이면 담수 근처로 몰려오는 숭어를 잡는 고깃배나 태공들도 보였다.
명지에서 건너와 을숙도 남단 걸쳐진 을숙도대교를 지나 산책로를 따라 가니 장림 포구는 도시 재생사업에서 부네치아로 새롭게 단장되어 있었다. 바다와 점차 가까워진 을숙도 바깥은 장자도와 진우도를 비롯한 여러 모래톱이 드러났다. 무인도 모래톱 건너는 가덕도였고 더 멀리는 거제도 해금강이 아스라했다. 일행은 고니나루를 앞둔 쉼터에서 다과를 들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강변대로가 끝나니 다대포해수욕장이 나왔다. 낙조 분수대 바깥은 해운대보다 결이 고운 강모래라 신발 바닥 와 닿는 감촉이 더 보드라웠다. 몰운대 능선과 형제섬이 에워싸 있었지만 아득한 수평선에는 점점이 몇 척 배가 떠 있었다. 파도가 밀려와 부서지는 모래톱에는 바람과 물결이 스치면서 신비로운 무늬를 빚어냈다. 모래밭에서 숫눈을 밟아보는 기분으로 발을 디디며 지났다.
해풍을 막아주는 솔숲을 지나니 낙조 분수대 광장이었다. 우리에겐 저녁까지 머물 시간이 아니라 다대포 낙조와는 연이 닿을 수 없었다. 점심때가 되어 해물칼국수와 파전을 시켜 맑은 술로 방전된 열량을 충전시켰다. 식후에 남은 여정은 몰운대 탐방 코스가 기다렸다. 산책로 들머리를 지나니 다대포 객사가 나왔고 자갈마당 바깥 몰운대에 서니 망망대해 왼쪽은 영도 태종대였다.
몰운대에서 되돌아 나와 오솔길을 따라 화손대 전망대에 오르니 감천항과 남항 앞바다가 드러났다. 감천만 산책로를 따라 걸어 지하철 1호선 종점 다대포역에서 하단으로 이동했다. 지하철 출구에서 나와 아까 차를 둔 을숙도 물문화관까지는 명지로 가는 버스로 환승했다. 하루 여정을 같이 보낸 일행은 같은 차에 동승해 진해로 향하면서 귀가가 늦어질 행선지를 변경하게 되었다.
열흘 전 함안 아라가야 답사에서 봐둔 말이산고분군 고목 살구나무에서 꽃이 핀다는 소식이 왔다. 그날 가야 현지에서 안내를 맡아준 문화해설사로부터 온 문자 연락이었다. 일행 가운데 한 분이 작품 소재로 삼아야 하는 왕릉이기에 내비가 시키는 대로 함안박물관으로 향해 문화해설사를 만나 고분군으로 올랐다. 해가 저무는 어스름에 이제 막 피려는 분홍 살구꽃 아래서 서성였다. 22.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