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도蝟島 거륜리 칠산 앞바다에서,
위도 거륜리 칠산 앞바다는 썰물이라서 물이 빠져 있었고, 돌김과 파래들이 부끄러움도 없이 몸을 드러낸 바위 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하지만 지천으로 많았다던 자연산 홍합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고, 갯가의 검은 벌레들만 쉴새 없이 바위틈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수레의 바퀴를 닮았다는 거륜도와 검푸른 갯바위 사이로 멀리 보이는 내조도, 오조도, 중조도라고 불리는 새(鳥) 섬이 마치 오륙도처럼 세 개인 듯 네 개인 듯 보이고. 그 너머로 약간 흐릿하게 보이는 섬이 상왕등도와 하왕등도다.
저 섬에 고려 때 사람, 이규보 선생이 머물렀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이미 지나간 고려는 과연 이 세상에 실재했던 나라였을까?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옛사람이 남긴 글들이 멈추지 않고 흐르는 시간의 존재와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알게 할 뿐이고, 세월이라는 거울은 모든 것을 생성시키고 모든 것을 소멸시키기도 한다는 것, 그것만이 진실이다.
그렇다는 전제하에서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 시간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 중에서 가장 막강한 독재자가 아닐까? 그러므로 나도 당신도 그 시간이라는 촘촘한 그물에 걸린 포로라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패배하고 마는 나약한 존재가 아닐까?
사람들은 저 멀리 보이는 왕등도 너머로 해가 지는 것을 지상의 가장 아름다운 절경 중의 하나라고 했다. ‘왕등낙조王登落照. ’ 그러나 망사 같은 옅은 구름이 나지막하게 바다를 감싸듯 드리워진 그 속에 해는 숨었는지 아니면 단잠에 빠졌는지, 머리카락만큼도 보이지 않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2020년 5월 21일 왕등도 너머로 지는 해는 그림 속 풍경일 것 같았다.
‘오늘은 해를 볼 수 없겠군,’ 김이 다 빠져서 허전하게 혼잣말을 하는 그 짧은 순간에, 그렇다. 해는 순식간에 모습을 드러내며 불기둥을 늘어뜨렸다. 그리고, 어느새 바다는 수천수만 개의 별들을 풀어놓아 잠시 은하수를 빚어냈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미풍微風이 두 뺨을 어루만졌고, 그 미풍을 타고 왔는지 물살을 가르며 지나가는 작은 배, 그리고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몇 마리 새들의 울음소리가 수평선 너머로 점점이 멀어져 갔다.
새들은 떠나도 해가 저물고 어둠이 내려도 남아 있는 섬, 고슴도치를 닮은 섬 위도蝟島! 거륜리 칠산 앞바다에 봄이 언뜻 가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하얀 손수건도 흔들지 않고 봄을 보내는 무정한 전송객! 회한도 없이, 그냥 무심히 봄을 보내며 바라보던 위도 거륜리 칠산 앞바다에 흔들리고 흔들리던 물살, 물살들,
2020년 5월 24일 일요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