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나는 대로 각종 문서 및 서류들을 파쇄하고 있다.
짬을 내서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이제야 겨우 절반 가량 한 것 같다.
오늘은 두꺼운 '클리어화일' 하나를 정리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아주 오래된 리플렛을 발견했다.
1997년 초봄에 제작된 리플렛이었다.
그러니까 얼추 30년쯤 된 것이다.
"아이고. 네가 이 타임캡슐 안에서 꼬박 30년간 긴 잠을 자고 있었구나"
감회가 새로웠다.
까맣게 잊고 지냈던 삼십 년 전의 일기장을 낡은 서가에서 다시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 심정이었다.
반가웠다.
아주 오래 전 리플렛이라 꼼꼼하게 다시 읽어 보았다.
1997년도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 당시엔 반향이 상당했던 '신입사원 채용광고'였다.
리플렛으로 제작했다.
그리고 동일한 내용을 몇 개 일간지에 '신입사원 공채 광고'로 실었다.
신문이 나가자마자 여기저기서 반가운 연락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유력 일간지의 영향이 그렇게 큰 것인지 나는 그때 처음 깨달았다.
아무튼 다양한 경로를 통해 내 지인들의 연락이 밀물처럼 쇄도했다.
그 당시 내가 다녔던 회사는 평범한 직장이 아니었다.
참신한 사풍과 경영이념 그리고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로 청년들에게 상당한 호기심을 끌던 시기였다.
예컨대, 캐주얼로 출근하기, 월요일 아침은 채플로 시작하기, 매일 큐티하기, 점심땐 각자가 싸 온 도시락 먹거, 회식은 볼링이나 영화감상(미션컴퍼니라 음주는 불가), 매년 한 주간씩 스키장에서 수련회 개최, 잦은 해외출장, 고3을 방불케 했던 학습분위기, 1년에 2-3배씩 매출이 성장하는 회사, 30대 중반에 각 사업부를 대표하는 중책으로 임명, 연말 성탄절 시즌에 각 사업부별로 치열하게 경쟁했던 송페스티벌, 여성이 전체 직원의 절반, 직원들 8할 이상이 크리스천 등등 여러 면에서 일반 기업체와는 다른 점이 많았다.
그 당시의 상황에선 혁신적인 사풍과 라이프 스타일로 인구에 회자되곤 했었다.
한마디로 신세대 풍의 쿨한 컴퍼니였다.
각 일간지에 '공채공고'가 나가자 대졸 예정자들의 입사지원 서류가 산더미처럼 밀려들었다.
인사과 및 실무 부서장들이 엄청난 입사 서류들을 일일이 체크했다.
우리만의 명확한 '인재상'이 있었기에 1차 서류전형과 선발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채용인원의 3-4배 정도로 후보자들을 압축했다.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한 자들에겐 우편으로 개별통지했다.
2차는 '본부장단'의 집중면접이었다.
그 엄격한 관문을 통과해야만 최종 합격이었다.
주로 '스피릿', '마인드', 삶에 대한 '가치관', 업무나 고객을 향한 '태도' 등을 집중적으로 체크했다.
'영혼의 DNA'가 다르면 먼 길을 함께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정장을 입은 채 긴장한 표정으로 2차 응시자들이 대기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지원자들을 부르기 전에 우리 '본부장단'은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최선의 면접'과 '최상의 인재'를 위한 진심어린 간구였다.
'공정'과 '진정' 그리고 '성심'을 다했던 날들이었다.
그렇게 몇 년간 다양한 방법으로 최종 면접을 진행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나도 청년들로부터 많은 배움과 깨달음을 얻었다.
면접과 토의 그리고 다양한 Q&A는 서로를 성장케 하는 똑똑한 참고서였다.
나에게도 뜻 깊은 시간이었다.
이 리플렛을 보자 30년 전의 기억들이 아스라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확실히 그랬다.
기록과 물증은 기억을 지배했다.
원초적으로 기억은 증표를 이길 수 없었다.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이 명제는 언제나 진리였다.
그래서 기록과 증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몇 자 적는다.
양면으로 인쇄된 고화질 리플렛이었다.
이것 때문에 한동안 옛 추억을 회상했다.
커피 한 잔을 들고 3층 사무실에서 비 내리는 창문을 바라보며 20여 분간 회상에 잠겼다.
(대학 후배들에게 보내는 짧은 글을 자필로 메모해 두었다. 그런데 그 메모는 특정 커뮤니티 후배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화이트로 지운 뒤 사진으로 남겼다)
나는 '무드셀라 신드롬' 환자가 아니다.
하지만 실재했던 과거를 있는 그대로 한번 더 반추해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것도 소중한 감사의 편린이니까.
우연찮게 오래 전 리플렛을 발견했는데, 그 리플렛 하나가 잊고 지냈던 과거의 스토리들을 술술술 풀어주었다.
굳게 잠겨 있던 타임캡슐의 문을 부드럽게 열어 준 고마운 패스워드처럼 말이다.
며칠째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다.
빗물 때문인가?
오늘따라 과거의 기억들이 더 다정하고 푸근하게 느껴진다.
오늘은 9월 1일이다.
모든 이들에게 최고의 9월이 되길 소망한다.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