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을 위한 간편 요리 강좌
지금은 저녁 6시, 나는 지금 삼례에 있다. “띵똥땡!” 하는 차임벨 소리가 난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내보내는 방송이 나오려고 하는 것이다.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쳐들어오는 방송 소리는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하고, 나는 컴퓨터 모니터를 드려다 보느라고 피곤해진 눈을 지그시 감았다. 금방 끝날테니까. 아줌마의 목소리였다.
“노인정에서 알려드립니다. 노인정에서 알려드립니다. 다사다난했던 계사년도 저물어가고 희망찬 갑오년이 삐익 삐익...... 여보세요? 삐익 삐익...... 왜 이래?”
내 저럴 줄 알았지.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교과서를 읽는 듯한 어조였지만 잘 나갔는데, 그만 “희망찬 갑오년”에서 막힌 것이다. 빌어먹을! 갑오년이 어떤 년이야?
“왜 이래? 됐어? 그냥 해? 에...... 노인정에서 알려드립니다. 노인정에서 알려드립니다. 다사다난했던......”
맨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까지는 없었잖아? 하여간 요번에는 “희망찬 갑오년”도 잘 넘어갔고 무사히 잘 끝났다. 나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는 내용이었다.
“세모의 종소리가 울리는 이즈음 노인정에서는 회원 여러분을 모시고 백운갈비에서 식사 대접을 하려고 하오니......”
물론 나는 동일한 내용을 한번 더 들어야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노인정에서 알려......”
어쨌건 방송이 끝났다. 그러니 다시 일에 달려들면 된다. 그러나 그것이 잘 안 된다. 빌어먹을. 노인들 식사 대접 때문에 내 일을 망쳐버렸네. 그런데, 가만 있거라. 그것이 나하고는 정말로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일까? 내가 내일 슬쩍 큰 길 건너 백운갈비에 가서 돼지갈비가 지글지글 익고 있는 테이블의 말석에 끼어 앉는다는 것은 정말로 정신 나간 짓일까? 몇 살부터 노인으로 쳐주나? 여기서는 마이가리가 통하지 않나? 안 될 것 같아. ‘회원 여러분’을 모신다고 분명하게 말했잖아? 노인이 아니고 회원 말이야. 내가 회원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냥 집에서 내 손으로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해먹든지, ‘김치 꽁치볶음’을 해먹든지, 아니면 간편하게 ‘간장 두부 2’를 해먹든지 해야겠다.
이렇게 된 것이다. 일도 잘 안되고, 잠시 쉬고 싶기도 하고, 또 (갑자기 바빠진 것은 사실이지만) 송년의 글을 빼먹을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들고 해서 글이나 한 편 써서 까페에 올리기로 하였다. 이런 글이 송년 인사를 대신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이하의 요리법은 내가 실지로 해 본 것이다. (내가 요리를 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다.) 라면 끓이기와 계란 삶기 및 계란 후라이 하기는 누구나 다 아는 것일테니 적지 않겠다. 우리는 그런 것은 요리로 인정하지도 않지만.
<쓴 미역국>
1. 비닐 봉지에 든 미역을 산다.
2. 가위로 먹을 만큼 자른다.
3. 바가지에 넣고 물로 씻으면서 여러 번 치댄다.
4. 불린다. (약 한 시간 정도)
5. 냄비에 미역과 마늘 다진 것 및 간장을 적정량 넣고 푹 끓인다.
특징: 맛이 써서 먹기 힘이 듬
<쓴 미역국 2>
1.2.3.4. 위와 동일함
5. 마늘 다진 것과 간장 이외에 멸치(국물 내는 큰 멸치)를 넣고 끓임
특징: 마찬가지로 쓰고 먹기 힘듬.
<쓴 미역국 3>
1.2.3.4. 위와 동일함
5. 따로 멸치 국물을 만들고 멸치는 건져낸 후, 그 국물에 미역국을 끓인다.
특징: 별로 나아지지 않음. 그 이후로 다시는 미역국에 도전하지 않았음.
<간장 두부>
1. 두부를 오목한 접시에 담는다.
2. 간장을 뿌려서 먹는다.
<간장 두부 2>
1. 두부를 데운다.
2. 오목한 접시에 담는다.
3. 간장을 뿌려서 먹는다.
주의 사항: 특히 겨울철에는 이 조리법을 권장함.
<초고추장 굴>
1. 굴을 사서 잘 씻는다.
2.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데친 오징어>
1. 오징어를 사서 살짝 데친다.
2.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주의 사항: 살짝 데치는 것이 중요한데, 항상 너무 익히게 됨.
<홍합탕>
1. 홍합을 사서 껍데기를 수세미로 박박 씻는다.
2. 큰 솥에 넣고 삶아서 먹는다.
특징: 소금도, 조미료도 넣을 필요 없음. 매우 맛있음.
<오뎅>
1. 오뎅을 사서 끓인다.
2. 물을 따라버리고 오뎅만 건져 먹는다.
특징: 짭짤해서 간장에 찍어 먹을 필요가 없음.
<두부 김치찌개>
1. 김밥천국 등에 전화해서 공손하게 김치찌개를 1인분 주문한다.
2. 미리 준비해 둔 두부를 김치찌개에 넣고 조금 더 끓인다.
<돼지고기 김치찌개>
1. 마트에 가서 “김치찌개용 돼지고기 2천원어치만 주세요”라고 말한다.
2. 그 고기를 미리 끓여 놓은 후, 도착한 김치찌개에 넣고 조금 더 끓인다.
주의사항: ‘김치찌개용 돼지고기’라고 분명하게 말해야 비계가 붙은 고기를 줌.
<김치 꽁치 볶음>
1. 통조림 꽁치를 후라이팬에 넣는다.
2. 후라이팬에 김치도 넣고 양파도 넣는다.
3. 볶아서 먹는다.
주의 사항: 김치가 신 것일수록 맛이 좋음.
<김치 꽁치 볶음 2>
1. 마트에서 김치를 넣은 꽁치 통조림 사서 후라이팬에 넣는다.
2. 3. 위와 동일.
주의 사항: 김치 꽁치 통조림을 산 경우라도 김치를 많이 추가해야 함.
<훈제 오리>
1. 마트에서 훈제 오리를 사온다.
2. 후라이팬에 데워서 먹는다.
<양파 훈제 오리>
1. 마트에서 훈제 오리를 사온다.
2. 후라이팬에 양파를 넉넉하게 깔아 놓고 그 위에서 오리를 데운다.
특징: 재한이 사모님에게서 전수받은 것임.
첫댓글 이 정도 레서피는 마누라 있어도 당연히 터득한 것 아닌가.
좋은 레시피 있으면 (쉬운 걸로) 소개 좀 해줘. 계란과 두부만 해 먹었더니, 아주 죽겠어.
순수 경험에 의한 레알 요리법이네 ㅎㅎㅎ 내가 아는 한가지, 꽁치 통조림을 고추가루 좀 뿌려서 데운다 - 초간장을 살짝 찍어 먹는다 - 간단한 소주 안주로 마른 오징어 보다 훨씬 낫다
에휴 그냥 사먹지...그게 안되면 아! 내가 중이다 생각하고 생식해!ㅋ
아, 꽁치 통조림을 고추가루와 초고추장에? 아니, 초간장에? 기발한데. 당장 해 봐야지. (짜지 않을까?) 생식 해봤어. 40대 초반에 거의 2년 가까이 해봤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는데, 마구다지로 해서 나중에는 약간 영양실조가 되었어.ㅎ
한국 갈 기회가 있다면 조교수옆에 붙어있으면 먹을 수는 있겠군..
처음으로 쓰는 댓글인데요 ^^;;; 아, 아빠 안타깝다.. 지금까지 자유토론 이야기방에 올라온 글들을 전부 읽은 조영태 교수의 딸이자 카페 독자인데요... 웃픈(웃기고 슬픈)이야기입니다...^^& ㅠㅠ
앗! 진주양..반가워요^^*
진주님, 반가워요. 댓글로나마 자주 뵙기를...
조기자, 짠한 모양이구나. 어제는 김밥 한 줄 하고 우동(2500원) 시켜 먹었다. ㅎㅎ
나이들어 가며 간단히 때우는 것 보다 영양있게 먹어야... 남자도 요리학원 가지말라는 법 없다. ㅎ
그래도 꽤나 메뉴가 다양한걸? 나도 같은 처지일 때가 많이 있는데 참고 할께..
조영태 교수님!화 참으시고 가끔은 노인정가셔서 식사 대접 받으세요.자격이 충분(?)하십니다.허!허!허!
Hanoi DKNY(독거노인)은 다시다 한숟가락 퍼넣는거 말구는 아는게 없으니....
아, 다시다? 그래. 그게 그렇게 해로운 것도 아니라고 하더라고. 알았어. 노인정은 정말 불가능이야. 70대가 가면 얼라 취급받는다는데, 우리는 아직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