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허돌과 비비추
 
 
 
카페 게시글
동산*문학관* 스크랩 도플갱어 / 김왕노
동산 추천 0 조회 212 18.03.31 20:2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도플갱어 / 김왕노

 

 

  돌아다니는 자, 자신의 분신, 자기의 환영이 도플갱어다.

도플갱어를 만나면 자기가 죽는 다는 암시도 되지만 자신을 사칭

하는 또 다른 자신을 본다는 것은 곤혹스럽지만 놀라운 사실이다.

무리 같더라도 다른 곳에서 떠돌았으므로 마주 앉아 무용담을

나누다가 보면 하루가 짧을 것이다. 나의 도플갱어도 지금 쯤

푸른 청바지와 청재킷을 입고 고대 도시의 오후를 늙은 개처럼

슬렁거릴 것이다.

 

  내가 나를 스친 적이 있다. 지하철이 비껴가는 사이에 낯선 듯이

나를 바라보는 나를 보았다. 조간을 한 손에 말아 쥐고 있는

스타일이 전혀 나와 맞지 않았지만 가볍게 목례를 보내 왔다.

게서 떨어져간 나이거나 나로부터 떨어져 나온 더블이

맞은 편에 선 것이었다. 어딘가에 나를 집요하게 지켜보는

내가 있다는 생각 때로는 먼 사막의 대상이 되어 푸른 달밤

터벅이며 내가 가고 있다는 생각에 내가 그리워지는 것이다.

내가 잊어버렸던 것을 또 다른 내가 가지고 있을 것도 같다.

어릴 때 쥐똥나무 Y 가지로 만든 새총 겨누었다 하면 백발백중

명중에 가깝던 손때가 묻어 반질거리던 새총, 가슴의 가졌던

순정의 이름 순이 어느 날 먼 하늘을 건너오는 외로움을

못 견뎌 울부짖는 소리가 또 다른 내가 지르는 목소리란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한 때 나도 내가 너무나 외로워 벽에 머리를

짓찧는 자학으로 길고 깊은 겨울밤을 보낸 적이 있다.

나와 다른 또 다른 나이나 분명 하나의 뿌리를 가진 것이다.

인생이 이렇게 외로운 것은 잃어버린 나를 내가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려고 나는 나에게서 또 다른 나를

세상 저편으로 보냈으며 나는 나로 부터 또 다른 내가 되어

어떻게 어성초 푸른 이 밤으로 떠나왔을까. 서로가 떠나므로

반쪽의 나와 반쪽의 또 다른 나로 불완전하게 되었으므로

남은 생이란 하나의 나를 위해 잃어버린 원형의 복구를 위해

떠도는 것

 

  나는 또 다른 나와 수시로 교감을 나누는 것이다.

내가 울적 할 때 또 다른 나도 울적 한 것이다. 분리될 수 없는

감정의 끈을 본능처럼 흔들어 대므로 나와 또 다른 나와 감정의

합일점에 이른다. 내가 또 다른 나를 떠나왔으므로 껍질인 듯

남은 또 다른 내 안으로 귀환하는 꽃 피는 날도 있을 것이다.

합체에 이르러 비로소 별을 향해 발돋움하거나 감자 꽃 필 때

비로소 하나가 된 우리가 도시 외곽으로 야유회도 갈 것이다.

지금은 다만 씨감자 같은 꿈을 가슴에 묻고 움츠려야 할 때

내 그리움만 나무처럼 일어서서 또 다른 나에게 끝없이

푸른 텔레파시를 보내는 것이다.

 

 

 

 

  

**************************************************


나를 보는 또 다른 나

 

몸 밖으로의 상상에는 도플갱어도 있다.

도플갱어는 독일어로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라는 뜻이다.

간단하게는 더블(Double 분신복제)이라고도 하는데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서 자신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거울 속이 아닌 현실 속에서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 현상을 말한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죽음이 임박했을 때 보이는 자신의 환영을

가리켜서 '레이드' 혹은 '페치'라고 부르고, 일본어에는

'타닌노소라니(他人の空似)'라고해서 '혈연관계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닮은 사람'이라는 뜻의 단어가 있다.

도플갱어는 정확히 일치 하는 외모를 가지고 있으나 당시자가

아니면 알아볼 수 없으며, 이를 만나는 사람은 곧 죽는다고

상상되었다.

예로부터 분신·환영과 관련된 상상적 이야기는 독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전해져오는데, 지역에 따라서 상징이나 의미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죽음과 관련된 것이 많다.

분신이나 자기 환영이라는 현상은 이름은 달라도 거울 속 몸이

거울 밖으로 나오는 상상력의 형태들이다. 현실 속 몸의 장소를

떠나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노마드적 몸이다.

 

이는 현대 정신의학 용어로는 '오토스카피(자기상 환시)'라고

하며,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거나 자신을 제대로 제어하지

경우에 생기는 일종의 정신질환으로 보고 있다.

심적으로 굉장히 큰 타격을 받았거나 정신적 형평성이 부족할

경우 자신과 같은 모습의 환영을 본다고 한다.

환영은 자신의 실제 성격과 반대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평소 자신이 바라던 이상형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정상적인 사람도 지나치게 자아도취가 심할 경우 스스로 그러한

환영을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무협소설을 자주 읽는 사람이

날아다니면서 검을 휘두르는 자신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돈키호테는 전형적으로 이 경우에 속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도플갱어는 문학작품이나 영화의 중요한 단골 소재다.

R.L.B.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도 도플갱어 이야기를

변형시킨 작품이고, 똑같지만 다른 두 여인을 통해 이데올로기로

나뉜 두 개 유럽을 그린 폴린드 감독 키에슬로프스키의 정치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1991)도 도플갱어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2003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일본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도플갱어>는 도플갱어 자체를 소재로 한

영화다.

 

<도플갱어>와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두 작품 모두 시대를 앞선

과학기술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시대적 차이는 있지만,

두 작품은 각각 과학기술 전환기에서 기계와 기술이 인간 운명을

어떻게 결정지을 것인가에 대한 상상을 보여준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에서 지킬은 사람을 양분할 수 없을까, 라는

실험에 착수해 선한 면은 더욱 선하게 하고 악한 면을 더 악하게

만드는 약물을 개발하고, <도플갱어>의 주인공 하야사키 미치오는

첨단의료부품 회사의 인공지능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두 주인공 모두 과학자로서, 몸에 대한 미래적 상상력의 주역들이다.

스토리는 몸에 대한 미래적 과학실험에서 발생하는 사건들로서,

첨단과학기술이 초래하는 폐단을 다룬다.

지킬은 분신인 하이드가 되는 것에 중독되어 약물을 냠용하다가

결국에는 지킬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이에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여기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은 거울의 모티브다.

지킬은 거울에서 하이드로 변한 모습을 보며 흥분한다.

그리고 변한 모습을 매번 확인하기 위해 실험실에 거울을 가져다

놓기까지 한다.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거울을 통해 연결되면서

선과 악이라는 정반대의 캐릭터에 길들여진다.

거울은 이질적인 두 몸을 낳기도 하고 연결시키기도 하는 상상력의

매개체다. 지킬박사 최후의 진술 부분은 자신의 약물개발이 나약한

현실적인 몸을 벗어나 또 다른 몸을 가지고자 함이었음을 입증한다.

 

"결국 나는 우리가 걸치고 다니는 이 육체는 언뜻 견고해 보이지만

실은 실체도 없고 안개처럼 덧없는 것이라는 인식에 그 어느 때

보다도 깊이 도달했네. 내가 발견한 약재에는 마치 바람이 천막을

뒤집어놓듯 육체라는 껍질을 흔들어대며 채가는 힘이 있었지."

 

하야사키 역시 인공인체를 만드는 과학자로서 연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자신과 똑같이 닮은 도플갱어가 나타나 유혹의 손을

내민다. 도플갱어는 하야사키와는 정반대 성격을 가지고 있어

그가 도덕심 때문에 하지 못했던 일들, 예를 들어 연구비 조달을 위한

도둑질이나 살인을 대신 해준다.

인공인체가 완성되면서 하야사키는 자신의 도플갱어를 죽이는데,

이것은 그의 도덕적 양심을 복원시키기 위한 당연한 귀결이다.

다른 몸에 대한 상상은 이처럼 자신이 하지 못했던 것을 대신하는

욕망을 배경으로 한다.

지킬박사와 과학자 하야사키의 차이점은, 지킬박사는 철저히

양분된 몸과 의식을 가진 개체였던 반면, 하야사키는 분신을 죽인 후

자신 안에 내재한 악한 성격을 새롭게 발견하고 이에 동화된다는

것이다.

하야사키의 살인은 자신의 분신을 죽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불신감을 갖고 있었던 조수를 죽이는 것으로까지 이어진다.

지킬박사가 자신의 전 재산을 하이드에게 양도한다는 유언을 하고

죽음을 택한 반면 <도플갱어>에서는 하야사키의 죽음 대신

인공인체가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는

반전을 보여준다.

과학기술의 양면성을 다루는 구로사와 기요시 상상력의 새로운 점은

바로 인간 안에 있는 양면성이리는 낡은 주제를 넘어 인공지능이라는

제3의 개체를 개입시킨 것이다.

 

도플갱어는 디지털 기상공간에서도 인기 있는 소재다.

한 온라인 게임 업체에서는 게임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 도플갱어를

이용한 게임 상품을 내놓았다. 이 게임 프로그램은 라이브 비전

카메라를 이용해 캐릭터 이미지를 게이머의 도플갱어로 만들었다.

게임은 사실 자신과 게임 캐릭터와의 동일화가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그 게임 캐릭터가 자신의 도플갱어라면 몰입감은

훨씬 증가할 것이다. 라이브 비전 카메라를 통해 게이머들은

자신의 도플갱어 캐릭터와 완전히 동일시되면서 스크린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이러한 몰입감은 실제 자신의 몸을 벗어나는

유체이탈까지도 경험하게 한다고 한다.

 

[Daum백과] 도플갱어 – 몸, 멈출 수 없는 상상의 유혹, 허정아,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