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성차표>>>
1988년, 그러니까 88서울올림픽이 개최되던 해 전후쯤 이야기다. 그 해 나는 대전에서 가족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추석귀성차표를 예매하던 날 새벽4시에 집을 나섰다. 택시에서 바로 뛰어 갔건만 줄은 벌써 길게 늘어져 있었다.
아직 5시가 안됐으니 매표가 시작되는 8시까지는 3시간이상을 긴 줄에 엮여 있어야 했다. 처음에는 다리가 아프고 나중에는 허리도 아플 때쯤 매표가 시작되었다
줄이 짧아지며 차례가 다가오니 반갑기도 하려니와 내 앞에서 매진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생겼다. 다행스레 내차례가 되어 4장의 표를 샀다.
갈 때 차표를 구하고 나니 올 때 차표가 걱정되었다. 돌아오는 차표는 매번 강릉사시는 숙모한테 부탁하곤 하였으나 더 이상 부탁하기 미안했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는 사이 어느덧 귀향하는 날이 되었다. 여행하는 기분으로 차를 탔으나 아이들은 멀미약에 취해 곧 잠이 들었다.
잠에 취한 아이들을 데리고 강릉에 내리자마자, 다시 잽싸게 속초행직행버스를, 그리고 하조대에서 내려서는, 뉘엿뉘엿 해지는 비포장 길을 또 한 시간가량 걸어야 했다.
드디어 꿈결 같은 연휴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하조대까지 10리 길을 걸어 내려오는 동안 아내는 내내 차표 걱정만 했다.
“걱정 말어, 어떻게 해보지 뭐, 내가 누구야?” 농담을 섞어가며 큰소리는 쳤지만 나도 내심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강릉에 도착하자 터미널대합실 밑에 있는 지하다방으로 향했다. 말이 다방이지 대합실 같다.
평소 썰렁하던 넓은 홀은 마치 재래시장 같이 사람들로 붐비고 시끌벅적하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그 옆에 짐 보따리들을 놓고 집에서 싸온 음식들을 펼쳐서 먹고 있었다.
나도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종업원을 불러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료수를 시켜줬다. 아내와 아이들을 거기에 남겨둔 채로 매표소가 있는 일층으로 올라왔다.
매점에서 담배 한 보루를 사서 종이팩에 담아들고, 긴 줄이 늘어서 있는 매표소를 지나서 고속버스사무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는 짧은 복도가 있고 그 앞에는 철책이 있는데 자물쇠가 달려있는 철책 문이 있고, 그 뒤에 버스회사 팻말이 보이는 사무실이 있었다.
반쯤 열린 철책 문으로 들어가려니 허름하게 차려입은 40대로 보이는 여인이 문 옆에 서 있다가 비켜준다. 나는 무심코 지나쳐서 사무실로 들어갔다.
책상 몇 개와 그 옆에 응접세트가 있고 한쪽구석에 유난히 큰 금고가 눈에 띄는, 장식을 하지 않은 사무실에 여직원 2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그리고 칸막이 반대쪽에 작은 방이 더 있는 것 같았다.
총무를 찾으니 칸막이 저쪽에서 나 또래의 남자가 사무복을 입고 나타났다. 나는 사무복에 달린 명찰부터 유심히 봤다. 성씨가 김씨인 것을 보니 이 사람도 사주의 친척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 김 총무님 안녕하십니까?” 나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악수부터 청했다. 마치 친분이 있었던 사람처럼..
“저는 대전에 사는데요, ooo라고 합니다.
정 총무님이 안부 전하데요.
아쉬운 일이 있으면 김 총무님 찾아가라고...”
나도 모르게 말끝이 흐려졌다.
그러면서 담배가 든 종이팩을 슬며시 내려놨다.
하도 넉살이 좋게 나가니까, 김 총무는
“이 사람이 아는 사람인가, 전에 본적이 있나?”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도 많은 사람이 찾아오니 기억하기도 힘들 것이다.
“아 그래요?” 김정철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는 총무라는 사람은 정 총무를 잘 모르는 듯한 표정을 했다. 그러면서 종이팩으로 시선이 갔다.
당연히 그럴 것이, 대전총무의 성씨는 내가 임시방편으로 지어낸 것이며,
김 총무 성씨도 명찰보고 알았다.
“대전 차표요? 몇 장이 필요하세요?”나를 처음 보는 사람으로 결론을 지었는지 총무는 사무적이었다. 내가 대전에서 왔다니까 대전차표가 필요한줄 금방 알아챈다. 그를 찾아오는 사람의 용건은 뻔했다.
당시에는 매시간 출발하는 버스마다 최소 차표 몇 장씩은 비워 놓는다는 게 상식이었다.
자가용 차량이 귀하던 시절이어서 경찰이나 권력기관에서 요구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었다.
남겨둔 표는 덤을 얹어 팔거나 출발 직전에 창구에서 팔면 된다.
그래도 안 팔리면 다음 차 승객으로 채우면 그만 이었다. 그걸 아는 사람들은 출발 몇 시간 전부터 줄을 서있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핑계 삼아 버스회사들이 암표장사를 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 예, 대전 차표 4장이 필요해요.”그때가 대략 2시30분 이였다.
“3시차는 안되겠고 5시차는 좀 있어 봐야 알겠는데요. 4시 지나서 와 보세요. 두장도 아니고 4장이나 되니..좀 ”
“예, 고맙습니다.”
확답은 아니지만, 차표를 구 한거나 마찬가지였다. 기분이 좋아서 덩실 덩실 가족들이 기다리는 지하다방으로 뛰어 내려갔다.
내입만 처다 보는 아내에게
“ 잘될 것 같아!”이렇게 말했다.
“몇 시찬데?”올해 초등학교 6학년인 첫째가 묻는다.
“5시 차야 ”나는 마치 차표를 사온 것처럼 말했다.
“ 아휴. 그러면 아직도 두 시간도 더 기다려야 겠네!”초등학교2학년 둘째가 말했다.
“ 아빠랑 놀다 보면 금방 지나잖아. 내가 책 읽어 줄게.”
사실 내가 더 지루하다, 확답을 못 받았으니. 그리고 만약 차표가 안 된다면 또 어쩐단 말인가?
강릉에서 오늘 밤을 자면 비용이 드는 데다, 나는 물론이고 아이들이 내일 학교를 결석해야 된다. 큰아이가 6년 개근상을 받겠다고 하던데..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자꾸만 책읽기가 멈춰버렸다.
“빨리 읽어 아빠는 책을 읽다 말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시계를 보니 4시가 가까워졌다. 기다리기 지루해서 다시 사무실로 올라갔다. 아까 그 여자가 문 옆에 서 있다가 또 비켜주며 나를 쳐다본다.
사무실로 들어가 총무를 만나니 아무 말도 없이 차표 4장을 봉투에 넣어 건네준다.
나는 얼른 계산을 하고 내려오는데 그 여자가 급히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바로 큰소리가 문밖까지 나왔다. 나는 즉시 멈춰 섰다.
“아니 누군 주고 누군 안줘? 나도 차표 내놔!!”
“누구한테 차표줬다고 그래요? 이 아줌마가 생사람잡네 정말!”
“내가 모를 줄 알아? 방금나간 사람한테 차표 줬잖아, 내가 다 알어.”
“아니? 누구 말이요?
“ 내가 모를 줄 알아, 좀 전에 나간 사람 말야!”
그러더니 곧바로 문을 열고 사람이 나오는 기척이 났다. 정신이 번쩍 났다.
내가 잡히면.. 나도 나지만, 나를 도와준 총무가 나 땜에 곤란을 겪게 된다. 나는 뒤도 안돌아 보고 허겁지겁 가족들한테로 왔다.
그리고 체크무늬 저고리를 벗어서 가방에 구겨 넣었다. 생각한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소란스런 소리와 함께 그들도 따라 내려왔다.
“누구냐 말이요? 증거를 대요 증거를!!” 그 여자에 끌려서 지하다방까지 내려온 총무가 고함을 질렀다. 다방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이들을 처다 봤다.
그 여자는 이런 시선은 개의치 않고 분한지 씩씩거리며 무언가 찾으려는 듯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분명 이 다방으로 들어왔을 것 같아, 증거를 대겠다고 큰소리치며, 여기 까지 총무를 데리고 여기까지 왔건 만,
바로 눈앞에서 놓쳐버린 너무도 선명한 증거, 체크무늬 저고리가 사라졌으니 말이다. 금방 눈앞에 다시 나타날 것만 같은데 안보이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그러나 찾을 수가 없다. 왜냐면 그건 내가 먼저 생각하고 저고리를 벗어서 가방에 넣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 여자가 흥분을 갈아 앉히고 자세히 관찰하였다면 와이셔츠만 입은 나를 금방 발견했을 텐데..
어째던 나는 가족들에 파묻혀서 책을 읽는 척 고개를 약간 숙이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한참을 둘러보던 그 여자는 “아하! 여기 없는걸 보니 금방 밖으로 나갔을 거야. 뛰어봤자 벼룩이지, 가긴 어딜 가겠어 터미널 안에 있을 테니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곧바로 나가는 기척이 났다.
“ 갔어?”잠시 후 조용해지자 얼굴을 숙인채로 아내에게 물었다.
“ 예, 갔어요.” 아내가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여기 있다가 시간되면 애들 데리고 버스를 타. 나기다리지 말고. 그 여자가 언제 또 들어 닥칠지 몰라 ”라고 말하며 봉투를 꺼내서 한 장을 빼고 차표3장을 아내에게 내밀었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면 잠시 후 다시 와서 저고리 안 입은 나를 발견할 것이다.
“ 왜 그래요. 뭐가 잘못 됐어요?” 아내가 걱정스레 묻는다.
“ 아무 것도 아니야, 나중에 얘기해줄게!”
“그럼 차안에서 만나.”나는 독립 운동이라도 하러 가는 전사처럼 그들이 나간 계단을 통해서 밖으로 나갔다.
가을 날씨지만 날씨가 흐려서 와이셔츠만 입은 나는 조금 춥게 느껴졌다.
아직도 30십 분을 더 기다려야 하는데 있을 곳도 마땅치 않다.
“ 아마 내 얼굴은 기억 못하겠지. 체크무늬 내 저고리만 기억할거야.
그래도 저고리 안 입은 나를 의심하면 어쩌나? ”
서성대다 그 여자를 마주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화장실로 들어갔다.
“여자니까 남자 화장실까지는 못 들어오겠지”하면서 화장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일행이 있는 사람이 버스에 탔다가 화장실에 갈 때는 겉옷을 차에 두고 오는 사람이 많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다소 안심이 되었었다.
드디어 5시10분전, 밖으로 나왔다. 대전행 고속버스 승강장에 오니, 그 여자가 버스출입문을 지키고 서있었다.
양손으로 출입문을 잡고 버스를 향해서 서있으니 얼굴을 마주 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체크무늬를 찾아서 차안은 이미 둘러봤을 것이다. 그리고는 출입문을 막고 사람이 타고 내릴 때마다 체크무늬가 나타나기 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멀찌감치 서서 잠시 지켜보았다. 몇 사람이 용무가 있는지 내리기도 하고 타기도 했다. 그럴 때 마다 여자는 조금 비켜서 사람을 지나가게 하고 있었다.
나는 자신감이 생겼다. 저고리를 안 입었으니 전혀 의심 안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마치 화장실에라도 다녀온 사람처럼, 왼손으로 슬쩍 아주머니 바른손을 밀치며 머리를 약간 숙이고 차에 올랐다.
차안에는 거의 빈틈없이 손님으로 가득 찼다. 안내양이 앉던 보조석까지도 말이다.
이내 아내 옆에 있는 내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들어 왔어요. 문에서 그 여자가 지키고 있던데..
아까 당신이 나가고 금방, 다시 그 여자가 왔었어요. 나는 당신이 잡히면 어쩌나 하고 가슴이 떨려서..”
“ 괜찮아 이제 금방 떠날 테니까.”
“자 이제 비키세요. 문 닫습니다. 아주머니!”벌써 몇 번째다. 50대의 잘생긴 버스기사는 젊잖게 말을 했다. 출발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러고 있으니
차에 가득 찬 손님들 중에도 투덜거리는 소리는 들렸으나 특별히 앞에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화가 바짝 오른 40대 여자를 누군들 건드리고 싶겠는가?
여자는 어쩔 수 없이 비켜서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차창 밖에서 차를 한바퀴 돌면서 또다시 일일이 확인했다.
이렇게 해서 차는 정시보다 5분이나 늦게 출발했다. 잠시 후 버스가 커브를 돌며 터미널을 벗어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정차해 있던 승강장과 수직을 이루는 순간 그 제서야 머리를 들고 밖을 내다봤다. 멀어져 가는 그 여자를 차창 밖으로 보였다.
그때까지도 분이 안 풀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듯 했다. 나는 그때서야 편한 숨을 길게 내쉬었다.
“눈앞에[서 현장 범인을 잡힐 듯 놓쳤으니 분하기도 하겠지.”갑자기 그 여자가 애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김 총무에게는 정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호의를 베풀다가 그 곤역을 치렀으니 다음에 만나면 인사라도 해야겠다.
그러나 오늘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러면서도 또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다.
“ 이 상황을 아이들에게 설명해야 하나?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나는 문득 몇 년 전에 본 이탈리아 영화 “자전거 도둑”이 생각났다.
2차 대전 후 이탈리아 빈민촌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내용은 이렇다.
남의 빨래를 해서 먹고사는 아내에게 짐만 되던, 갖은것이라고는 자전거 한대뿐인 40대 가장이 자전거 때문에 광고 붙이는 일자리를 어렵게 얻는다.
아내에게 자랑하며 12살 아들을 데리고 첫 근무를 나가서 아들과 사다리에 올라 벽에다 광고를 붙이다가 눈앞에서 자전거를 날치기 당한다.
재산과 함께 일자리를 잃게 된 아버지는 눈이 뒤집혀서 곧바로 남의 자전거를 훔치려다 경찰에 덜미를 잡힌다.
그리고는 아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만 당하고 훈방되어 아들과 같이 울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난다.
어렵게 얻은 일자리와 유일한 재산인 자전거를 동시에 잃고, 울면서 아들과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나도 오늘 그 사람처럼 아들 앞에서 똑같은 짓을 했구나. 단지 잡히지만 않았다 뿐이지...”
그러는 사이 버스는 대관령에 접어들어 또다시 굽이굽이 산마루를 돌고 아이들은 멀미약에 취해 자고 있었다.
“원주부터는 밀릴 텐데.. 대전에 도착하려면 12시가 넘을 것이고. 또 어렵게 택시를 잡아 집에 가면 1시도 넘겠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며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그날은 정말 피곤한 하루였다.
|
첫댓글 오경석님 반가워요





읽어 내려가는 내내 저도 조마조마해서 혼났어요
그 시절엔 귀성차표 구하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에구...
자가용족들이 지금보단 덜해서 길에서 보내는 시간은
반대로 좀 나았겠지만... 고생 많으셨겠어요.
지금은 대전터미널도 무자게 좋아졌지요
같은 대전이라 더 반갑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그자리에서 자주 뵈요
감사합니다. 보잘것 없는 글을 끝까지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오경석님 반갑습니다
실환가요?
참말로 흥미진진하네요.
첨엔 글이 넘 길어서
읽지 말까
근성으로 읽고 댓글만 후딱 달까? 하다가 읽었는데
참으로 읽은 보람이 있네요.
잘 감상합니다~`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이야기는 진짜 있었던 실화랍니다.
감사 합니다. 그럼 아까보다 좀더 재미없는 걸로 쏘겠습니다.
이렇게 답글 주실 때는
댓글
답글이라고 보이실 거예요.
고거 코옥 누르시고 답글 남겨 주세요.
그럼 해당되는 분께 알림이 가서
찾아 보시기 쉽답니다.
카페 왼편 젤 위쪽에 내정보 코옥 누르시면
댓글 알림을 쉽게 찾아 보실 수 있는 것처럼요.
틈틈이 답글 남겨 주셔서 더욱 고맙습니다.
@스칼릿 아! 이제 알았습니다. 감사 합니다.
@오경석
잘하셨어요. 

고맙습니다
@스칼릿 이제 하나만 더올리고 퇴근해야겠네. 바쁘지 않으면 담주에도 또 놀러올게요.
@오경석 그러세요. 편안한 마음으로 천천히 좋은 글 소개해 주세요.
만나서 반가웠구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시간되세요
@스칼릿 감사합니다. 얼마전엔 해외파견 준비중이어서 좀 바빳었는데,
요즘은 가끔씩 한가한 때가 있답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