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심장 (意味深長) (외 3편)
장석남
돌 위에도 물을 부으면
그대로 의미심장
내게 온 소용돌이들이
코스모스로 피어 흔들리는
병후(病後) 문밖에
말뚝이 서넛 와 있다
오늘 밤 내 머리맡에는
티눈 같은 웃음들이 모일 것 같다
길 잃은 웃음들이, 막차 놓친 웃음들이
갈데없이 모일 것 같다
찔레 넝쿨도 바람 불면
그대로 의미심장
저물녘
—모과의 일
저물면 아무도 없는 데로 가자
가도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고요의 눈망울 속에 묻어둔
보석의 살들— 이마 눈 코
깨물던 어깨,
점이 번진 젖, 따뜻한 꽃까지 다 어루어서
잠시 골라 앉은 바윗돌아 좀 무겁느냐?
그렇게 청매빛으로다가 저문다
결국 모과는 상해버렸다
낙법 (落法)
곤하여 침 흘리며 졸았지
달콤했지
지푸라기를 문 새의 표정
근중(斤重)한 동굴
가려운 겨드랑이 긁고
등허리는 손 닿지 않아 안타깝네
산수유꽃 아래로 가
둥치에 등 비비네
꽃 몇 떨어지네
어디서
새 우네
새 우네
쌀뜨물 같은 햇볕
발등 적시네
꽃가지 하나 꺾어다 병에 꽂고
내내 낙법 익히네
다랑이길
논둑길이나 걷다 보면 낫는다
속이 울음인 사람
다랑이 논둑길을 걸으면 낫는다
울음 밑이 시퍼런 우물인
웃음 밑이 떨리는 절벽인 사람
다랑이 논둑길
약(藥)으로 걸으면
가을 가 겨울
눈길 걸어
길 잃으면
낫는다
—시집『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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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 / 1965년 인천시 덕적 출생.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젖은 눈』『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뺨에 서쪽을 빛내다』『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현재 한양여자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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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심장(意味深長) (외 3편) / 장석남
강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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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20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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