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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열매 맺는 삶/갈5장22- 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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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고신일목사(기둥교회)
<목회기도>
좋으신 하나님!
행복한 동행을 하며
기쁨으로 예배의 자리에 오게 하심 감사합니다.
성령강림주일을 맞아
성령님을 보내심으로 약속을 이루신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립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
이 시간 우리 가운데 임하셔서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고,
우리와 동행하시며 삶을 변화시켜 주옵소서.
오순절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했듯이
오늘 말씀 듣는 자리가 기둥교회이든지,
아프리카 어느 마을이든지, 남미의 어느 도시이든지,
남몰래 숨어 휴대전화로 말씀을 듣든지 …
그 자리가 뜨거운 능력의 제단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삶에 지친 영혼들이
새 힘을 얻고 안식을 얻게 하시며
영육간에 병든 이들이 치료 받으며,
믿음 없는 이들이 확신함의 자리에 서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예배의 자리에 함께 있지 못한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객지에, 외국에, 군대에, 병상에 있는
성도들과 성령으로 함께 하여 주옵소서.
세계 곳곳에서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기둥교회 예배에 동참하는 성도들에게도
은혜와 평강의 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고
회복과 치료의 역사를 하실 줄 믿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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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평안하셨습니까?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예배에 동참하며 말씀을 듣는 모든 분들에게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 분에게서 온 편지를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미국 알래스카주에 거주하는 배성용입니다.
어머님을 대신해서 감사의 말씀 드리려 편지를 써봅니다.
저희 식구들 모두 항상 감사한 마음이 있구요.
어머님이 많이 편찮으셔서 병원에 계시고 방금 전까지 병원에 있다가 지금 들어왔네요.
어머님은 기둥교회를 사랑하십니다.
집에 계실 때는 한국에서 다니셨던 지구촌교회 인터넷으로 예배드리셨지만 작년에 병원에 입원하신 뒤로는 기둥교회 예배드리시더라구요
우리 식구들은 많은 종류의 영어성경이 있어서 91tv를 많이 접하였고, 그 때 기둥교회 참 귀한 교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둥교회 덕분에 어머님이 병원에서 휴대전화로 매일 고신일 목사님 설교 들으십니다.
세상이 변하여 전화기로 예배를 드리는 날이 왔네요.
지난주 설교 때 목사님께서 자식들에게 살아있을 때 재산 물려주지 말라고 하셨다고, 미리 저에게 주신 걸 후회하신다고 농담도 하시더군요. 진담이셨을까요?
아 그리고 앙골라에서 박유신님이 계획하신 일에 저희가 헌금 또는 물품 후원을 하고 싶은데 연락처나 메일주소 알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그래서 제가 답장을 보냈더니 편지가 왔습니다.
아이고 목사님 ~ 이렇게 빨리 답장을 주시다니 …
박유신님 메일주소도 받았으니 연락하여 보겠습니다.
한국에 가게 되면 미리 연락드리고 허락하신다면 목사님들께 식사 한 끼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뵈올 날을 기대하며 살겠습니다.
아, 우리 이쁜 딸이 목사님이 배우 이병헌 닮았다고 멋있으시다고 전해드리랍니다.
이 편지를 전산실장에게 보여줬더니 알래스카에서는 화질이 안좋아서 착각하는 것 같다고 하네요.
그리고 다른 편지를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원양어선업체에서 일하는 기관장 김경영입니다.
지금 수리남에서 정박하며 대서양에서 조업을 하고 있습니다.
벌써 몇 년 되었네요.
가정의 달에 식구들 보고 싶은데 목사님이 어린이와 부모님 말씀 자꾸 하셔서 요즘 더 보고 싶네요.
배에서 위성이나 전화로 설교와 성경 잘 보고 듣고 있습니다.
오지에서도 예배를 드릴 수 있고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해주셔서 기둥교회에 참으로 감사하며 개인적으로 기둥교회 야간학교 출신 유학생활 하는 학생들 아니면 아프리카의 앙골라에 후원하고 싶습니다.
꼭 방법을 알려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내일 새벽 조업을 위해 이만 줄이겠습니다.
제가 아프리카 앙골라의 박유신 선생님 주소도 알려 드렸습니다.
현재 기둥야학교 출신 중에 외국에 나가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을 소개합니다.
<미국 버클리공대 : 김진환
일본 고베대학교 : 송미애
호주 뉴캐슬대학교 : 김효진
미국 영해리스대학 : 박호경>
2부 예배 때 이름을 밝혔더니 호주에서 공부하는 김효진씨가 인터넷으로 예배드리다가 자기 이름이 불려져 깜짝 놀랐다고 편지가 왔습니다.
그리고 대만에서 온 편지입니다.
안녕하세요 ~~ Taipei 사람 徐小湘(서소상) 입니다.
한국유학 후 Taipei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유교 때문에 교회가 없어 한국말 완벽하게는 목하지만 목사님 말씀도 잘 듣고 있습니다.
4부 예배 잘 모를 때는 저녁에 설교문 보면서 다시 들으며 깨닫습니다.
말씀이 항상 감동입니다. 기둥교회 하는 일도 최고입니다.
많은 Taipei 사람들과 공유하겠습니다.
기둥교회 복받으세요.
참으로 감사합니다.
어느 곳에서 말씀을 들으시든지 말씀을 듣는 여러분
그 자리가 성령이 충만한 복된 자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강림주일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그래서 강단의 꽃도 … 제 넥타이도 … 붉은색입니다.
성령강림주일은 사도행전 2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50일째 되던 날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행 2:2~3)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행1:8)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때 제자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고,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자의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행2:4,6)
그때부터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이어졌습니다.
오늘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부활절 후 50일이 되는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성령강림주일은 그 옛날 제자들에게 임했던 성령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되살리는 기념일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지금도 예수 믿는 우리와 함께 계시고 일하신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하는 날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이미 성령을 받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높이 들고
「예수 믿어 구원받았다」고,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다」고,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내 안에 성령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 가능한 것입니다.
방언으로 기도해야만 …기적이 일어나야만 … 성령 받은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 삼위일체 중에 성령님은 내 안에 계셔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 말씀대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했습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 믿는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최초로 안디옥 교회 성도들에게 사용되었던 말입니다.(행11:26)
‣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롬6:23)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인도대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는 오늘 본문이 자세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육체의 일을 버리는 것
본문은 성령과 육체의 일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6~17) 했습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삶과 육체를 따라 사는 삶은 서로 대립됩니다.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이 번역하여 내놓은 메시지(The Message)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물론, 영어로 된 것을 또 한글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 두 가지 생활방식은 정반대입니다.
여러분은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서, 어떤 때는 이렇게 살고, 어떤 때는 저렇게 살 수 없습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삶을 선택하여, 율법이 지배하는 변덕스런 욕망의 삶에서 빠져나오십시오.”(The Message, 갈 5:17~18) 했습니다.
육체를 따르는 삶에 대해서는 19절~21절에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갈 5:19~21) 했습니다.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는 육체의 일이 아닌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요즘, 내비게이션 없이 운전하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다 찾아다녔던 길도 이제는 내비게이션이 있어야 편안히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있으면 길을 잘 몰라도 안내 멘트를 따라가다 보면 목적지에 잘 도착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성능이 좋아져서 막힌 길도 돌아가게 해줍니다.
성령은 우리의 삶에 영적 내비게이션 역할을 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주와 함께 행복한 동행의 길’로 이끌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24시간 365일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는 성령 내비게이션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잘못된 길을 가지 않고, 멀리 돌아가지 않습니다.
성령의 열매
본문 말씀에는 육체를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살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육체의 일과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성령의 열매에 대해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령의 열매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성경 원어를 보면 육체의 일과 연관된 죄들은 복수(여러 개)로 표현되어있지만 성령의 열매는 단수(하나)로 표현되어있습니다.
즉 성령의 열매는 9개가 따로 따로 맺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열매라는 사실입니다.
누구는 사랑을, 누구는 희락을 …또 다른 누구는 온유를, 절제를 … 맺는 것이 아니라 9개가 하나의 열매로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미자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미자는 단맛·신맛·쓴맛·짠맛·매운맛의 5가지 맛이 납니다.
그래서 오미자(五味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열매는 9가지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하나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에 사로잡혀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사는 사람은 9가지 맛을 내는 열매를 맺습니다.
그 사람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열매가 있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7장 17, 20절에 “…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17, 20) 하였고
요한복음 15장 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하였습니다.
나무는 그 열매를 봐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가, 예수님의 제자인가, 성령님의 동행자인가 하는 것도 열매(드러나는 삶)를 보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할 또 다른 하나는, 성령의 열매는 관계 속에서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공동체적인 삶에서 맺어야할 열매가 성령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당시 갈라디아교회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에 관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이 대부분이었지만 많은 이방인들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이방인들도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이 문제 때문에 갈라디아교회에 큰 갈등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갈라디아교회에 편지를 보내 하나님의 ‘구원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받을 수 있음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믿음, 성령, 사랑, 자유 안에서 어떻게 열매를 맺어야 하는 지를 말했습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성령의 열매는 공동체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 사람과의 관계도 바르게 될 때 맺어지는 열매가 성령의 열매입니다.
본문(갈5:22~23)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를 구별해 보면
첫 그룹인 <사랑, 희락, 화평>은 자기 안에 표현되는 제일 기초적인 것들입니다.
둘째 그룹인 <인내, 자비, 양선>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성질입니다.
셋째 그룹인 <충성, 온유, 절제>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물론이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더 명확하게 드러나야 하는 중요한 것들입니다.
① 사랑 (Love)
“사랑”이 성령 열매 가운데 제일 먼저 온 이유는
그것이 그 전체를 인도하는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어야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고,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기초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다른 열매도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② 희락 (Joy)
원어는 chara(하라)인데
- 은혜 (하리스 charis)
- 기뻐한다 (하이로 chairo)
- 감사한다 (유하리스테오 eucharisteo) 와 같은 어근(語根)에서 왔습니다.
참으로 은혜 받은 자들만이 참 기뻐하고, 참 감사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기쁨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일상생활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③ 화평 (Peace)
사랑하는 사람이 평안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만 화평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화평은 주님이 주신 것(요14:27)이며 세상이 줄 수도 빼앗아 갈 수도 없는 평화를 말합니다.
여러분 마음에 있는 평안함을 잘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마귀는 그 평안을 깨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의 평안함을 잘 지켜 가시기 바랍니다.
교회도 평안해야 합니다.
많은 교회가 평안하지 못합니다. 다툼이 있고, 분쟁이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평안이 있고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이 평안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안을 깨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화평을 깨는 자는 마귀의 자녀입니다.
어떤 이유가 있어도 평안을 깨면 안됩니다.
④ 오래참음 (Patience, longsuffering)
그 원래 문자적인 뜻은 “긴, 수난” 죽음은 순간이지만 오래 참음은 죽음의 긴 시간입니다.
사랑이 충만한 사람은 참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인내/참는 것은 ‘용서’를 수반합니다.
용서하지 않고 그 순간만 넘기고 마음에 담아 두는 것은 참 인내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
⑤ 자비 (慈悲, 사랑하고 가엽게 여김, kindness)
사랑하고 가엽게 여기는 것이며,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길 모르는 사람, 어려운 사람에게,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친절히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⑥ 양선 (良善, 선한 것, goodness)
마음 뿐 아니라 행위가 수반된 착한 행실을 말합니다.
⑦ 충성 (忠誠, faithfulness)
“신뢰성, 정직”을 말합니다.(딛2:10, 마23:23)
하나님 앞에도 충성하지만(성실하지만) 사람들에게도 믿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디에 가든지 그 사람 예수 믿는 사람이라 성실하고, 분명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⑧ 온유 (溫柔, 온화하고 부드러움, humility, meekness, gentleness)
온화하고 부드러운 것을 말합니다. 착한 것을 말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온화하고 부드러워야 합니다.
교회에 와서 성질부리는 분들! 이제는 그 성질 죽이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법대로 살려고 하는 자신과 세상 법대로 살려고 하는 자신이 속안에서 다투자 너무 괴로워서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 했고,“내가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했습니다.
그것이 참 온유입니다.
태생적으로 누가 때려도 아무 반응이 없는 것은 바보입니다.
그런데 성질 낼 수 있는 사람인데 참고 온순하게 유순하게 사는 것이 성령의 열매를 맺고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성령 열매 중 “사랑”이 처음 온 것은 ‘기초’입니다.
성령 열매 중 “절제”가 나중 온 것은 ‘완성’입니다.
만사에 절제 잘 하는 사람이 성공자입니다.
이 절제가 마지막에 있는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과유불급’(過:지날 과, 猶: 오히려 유, 不: 아닐 불, 及: 미칠 급)이란 말이 있습니다.
‘너무 과하면 하지 아니한 것보다 못하다’는 뜻입니다.
넘치면 문제가 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는 ‘일체구면’(一體九面)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몸에 아홉 개의 면이 있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이같이 성령의 열매는 하나가 성장하면 다른 것도 함께 성장합니다.
한 열매가 다른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성령의 열매를 드러내는 하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열매는 맺혀야 한다
아무리 씨가 좋고 줄기가 튼튼하고 잎이 많아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신앙을 가진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나를 통해서 맺어져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온순하고, 착하고, 기쁘게 살아도 소용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되어야 하고 나를 통해 드러나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8~11절에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엡 5:5~11) 했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빛의 자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 일터에서 … 학교에서 … 어디서든지 성령과 동행하는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성령의 열매를 드러내며 살아야 합니다.
성경에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의 편지’(고후3:3),
‘그리스도의 향기’(고후2:15)
‘그리스도의 대사’(고후5:20),
‘세상의 빛과 소금’(마5:13-16) … 등 여러 비유를 통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속에서 예수님의 편지, 향기, 대사로서 제대로 된 영향력을 끼치고 사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존 맥스웰(John Maxwell)목사님은 지도력(Leadership)에 대하여 연구한 뒤 리더십은‘영향력(Influence)’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이 다릅니다.
누구의 영향을 받았을까요? 엄마의 영향을 받습니다.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커서도 어렸을 때 먹었던 음식 맛이 그립다고 합니다.
솜씨가 있네 없네 하지만 그 맛을 느끼고 자란 사람은 그 맛을 그리워한답니다.
닮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아버지 닮고,닮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머니 닮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풍이라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사십니까?
저는 오늘 성령강림절의 사건을 설명함보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의 삶 열매 맺는 삶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답게 믿음을 지키며 살아야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불신자들에게도 / 타종교를 믿는 자들에게도 친절과 온유와 예절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는 것이라 했습니다.(고전13:5)
그러므로 무례한 기독교/무례한 기독교인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종교가 있는 사회에서 복음을 소유한자로 온전하게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노력해야 합니다.
불신자들에게, 불교인들에게까지 친절히 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친절하게 온유하게 대한다고 해서 우리의 믿음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 전에 결혼 주례 때 있었던 일입니다.
신부댁에서 “목사님 우리 가족 중에 출가하여 승려가 된 분이 있는데 결혼식에 꼭 오고 싶다고 하는데 …기둥교회 예배실에 들어와도 되나요?”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둥교회 고신일목사는 절에 많이 다녔던 사람이니까 안심하고 오십시오. 오시면 친절하게 안내해 드리고 잘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꼭 앞자리에 앉으십시오.”라고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요, 중학교 때 소풍은 강화 전등사로 갔고, 고등학교 수학여행은 경주 불국사로 갔습니다.
결혼식 날 두 분이 오셨습니다.
안내위원에게 친절히 대하라고 하고 불편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도우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들이 가시면서 “정말 감사합니다. 친절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셨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성령의 열매를 드러내야 합니다.
그 사람들에게 성령의 열매를 맺고 사는 사람으로서 삶을/삶의 태도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울려 있든지 …가정에서 식구들과 있든지, 교회에서 성도들과 있든지,학교에서 친구들과 있든지, 직장에서 동료들과 있든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의 향기를 풍기고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빛 되고 소금된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