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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이 나는 대로 각종 서류와 물품을 정리하고 있다.
사무실 책장 맨 아랫단에 작은 상자가 하나 있었다.
"이게 뭐지?"
궁금했다.
열어 보았다.
작은 물건들이 그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기념품, 선물, 액세서리, 손수첩, 사진, 메모 등이 들어 있었다.
그중에 '손수첩' 하나가 유달리 눈에 확 들어왔다.
집어 들었다.
1998년도의 일정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해는 'IMF 사태'가 터진 다음 해였다.
'대한민국' 전체가 극심한 고통의 질곡을 통과하던 때였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힘들었고 몹시 아팠다.
그 당시 나는 약 천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어느 회사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었다.
막중한 자리였다.
'대한민국' 전체가 망망대해에서 심하게 요동쳤다.
그런 '비상시국'이라 많은 직원들, 생산과 소싱 거래처들, 전국의 매장주들, 해외의 연관회사들, 금융권과 부동산 관계자들의
애끓는 하소연, 각자가 처한 고통과 아픔, 그들의 뜨거운 눈물을 피할 수 없었다.
책임자였던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들어야 했다.
그리고 가슴으로 받아내야 했다.
가혹한 운명이었다.
어르고 달래며 안고 가야 했다.
때로는 엄중한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공유하며 협조와 인내를 당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배가 항로를 이탈하지 않도록 '평정'과 '균형'을 유지하는데 전심전력을 쏟아야 했다.
큰 조직이든 작은 조직이든 리더는 외롭고 힘든 자리였다.
경험해 보니 그랬다.
위기 때는 특히 더 그랬다.
매일 새벽 04시에 출근해 'Q.T'로 하루를 시작했다.
흔들리지 않는 '스피릿'과 '멘탈'을 위해 기도를 많이 했다.
간절한 호소였고 간구였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펼쳐 본 작은 수첩 하나.
그 안에 30여 년 전, 그때 그 긴박했던 땀의 편린들이 빼곡한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감회가 새로웠다.
어느 대목에선 콧날이 시큰했다.
손수첩을 펼쳐 놓고 사진 몇 장을 찍었다.
(7일, 아이들과 이벤트, 박물관, 이 대목이 눈에 확 들어온다 / 우측 맨 상단, 신규사업 '빅존팀' 합숙 들어가라.
비상경영 돌입 / 4일, 제2회 지방자치선거 / 좌측 하단에 '헌혈'이라고 메모가 되어 있는데, 이 시기엔 약 3년가량
혈액의 비중이 맞지 않아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 그 옆에 전 직원 연차사용 강조.
/ 6일, 신규 사업팀 빅존(BJ), 아우프(AUF), 치크(CK), 인디고뱅크(IB), 수정 경영계획(230억) 대비 각각
10%, 20%, 30% 매출 삭감 시나리오 수립하라 / 7일, 상반기 결산 '진즈클럽' 진행계획 수립)
(14일, 장애인 공동체 '주보라의집' 봉사활동 진행. 98년 여름 평가회의 / 15일, 9월 급여지급, 9월 평기회의,
11월 전략회의, 부서장들 식사추진 / 17일, 입금 독려 80% 이상. 99년 S/S 기획안 점검. 매장근무 최우수자 치하)
(20일. 순익창출에 대한 떡 파티. '준사입제' 시스템 구체적 준비. 전국을 순회하며 소싱 & 생산 협력업체들,
매장 사장님들 미팅. 그분들의 아픔과 호소를 경청하며 공감. 가슴 저릿했던 시간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 23일. 노조의 고발로 노동부 '남부지청' 출두. 협력업체 사장단 미팅 / 24일, '엘살바도르' 블루진 1만 장 매입 /
25일, 영업부 직원들 교육 / 26일, 일본에 사과 서신 작성(IMF 사태로 사업진척에 차질 발생)
(31일, 미입금 체킹, 야간금고까지 이용, 48억 4천에서 67억 8천까지 증가 / 좌측 맨 아래, 공항 약속어음(입금확인).
그 당시 하루 단위로 회사의 자금사정을 계속 체크함. 숨 가빴던 기억들이 아슴아슴 떠오른다.
/ 3일, '노동조합'과의 전투(?), 인원 지원 / 4일, 경영계획 수정회의)
(10일, 전 직원 재고정리 일. 생산을 해도 상품이 팔리지 않던 시절. 부도방지를 위해 자금순환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때였다 / 11일, 르네상스 호텔 3층 중식당, OB 사장님들 미팅 / 12일, 회장님께 겨울 상품 보고, 오전 중.
/ 13일. '미쯔비시' 상사 미팅 / 14일, 신규사업 BJ, AUF 실적 체킹)
(23일, 우리들 기존 사옥을 처분, 10분의 1로 규모 축소, 본사 건물 구석으로 이전함.
'신촌시대 개막'이라고 적혀 있다. 애틋하다 / 24일, 신규사업 '인디고 뱅크(IB)' 군장님 보고.
/ 25일,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이취임식 / 26일, 사랑하는 딸 선물준비 / 27일, 딸 생일 가족들 저녁식사)
(좌측 하단, 가구, 비품, 집기 모두 팔아치워라(근거 남길 것), 회사의 강력한 구조조정, 한 푼이라도
현금화 절실, 아픈 기억들이 스멀스멀 되살아 난다. 35세에 120여 명의 직원들을 리드하며
엄청난 파고를 뚫고 전진했다. 가보지 않은 길은 매일 매일이 위기였고 험난한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 16일, 전 직원 '순환휴직' START / 18일, 이사준비 ALL 체킹(총무과) / 20일, 하루 종일 이사, 등촌동 시대 마감.
/ 21일, '데일 카네기' 정기미팅(영등포 미가, 한 때 데일카네기 조교 및 강사로 활동)
(27일, 각 사업부 강력한 '구조조정'에 대한 본부장단 미팅. '3교대 순환 근무제' 회장님께 보고.
T/O 확정, 명단 제출 / 29일, 구조조정과 향후 대응전략 수립. 심신이 매우 고통스런 때였다.
스트레스 과다로 육신의 균형이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7일, 개천절 대휴, KAL 09:40분 '오카야마' 출장. 내 단골 '산스이엔' 료칸 1박 / 8일, 08:40분
ANA항공, '오카야마'에서 '도쿄'로 이동. 일본의 비즈니스 파트너들에게 회사의 상황전달,
라이선스 제휴건과 자금관계 조율 / 10일, MBA 공부, MBS(management by system) 레포트 작성,제출
/ 11일, 우측 맨 아래, 12억 자금 수요 대비. 매일 매일 애간장이 녹았다)
(9일, 부서장들 엠티, F/W 생존전략 수립, 모든 촛점이 오로지 '생존'이었다 / 10일, 부산출장, 직원들 격려.
/ 12일, BJ의 날. F/W 전략회의, 부산지사에서 1박 / 13일, 매장 협의회 회장님 미팅및 식사.
생존을 위한 협력 시스템 논의 / 98년 월드컵 프랑스 우승, 프랑스 개최, 브라질 준우승)
(29일, QRS 미팅 후 직원들을 위한 '문화행사' 진행 / 1일, 충청지역 순회, 폐업위기를 호소하는
사장님들 집중 미팅 / 2일, 블루진 QRS 진행 건 회장님께 보고. / 3일, 아이들과 63 SEA WORLD 방문,
오랜만에 가족과 시간 보내기)
(26일, 출장준비 철저(예상 질문과 답변), QRS와 JIT 시스템 정착을 위한 일본 파트너들과의 미팅.
/ 27일, 막내 외삼촌 생신 축하. 삼촌은 젊은 나이에 소천하심 / 28일, 노동청 청장님의 강의(해외출장으로 불참,
직원 대리참석), 오사카에서 도쿄로 이동, 신칸센 / 29일, 일본에서도 자금상황(미입금) 체크, 대책지시
/ 30일. 귀국 후 사무실 청소상태 확인, 미입금 체킹, 가족과 외식 / 31일, 여름시즌 예상 재고 컨트롤,
대안은 OUTLET 관리강화, MBA 지식자본, 자신의 몸값은 얼마인가. 내가 경영하는 회사(브랜드)의 '시장가치'는 얼마인가.
그 평가의 '근거'를 밝혀라. 정신없던 와중에도 많은 책을 읽고 공부하며 경영현장에서 MBA를 했던 기억이 난다)
서른네 살에 어느 회사의 '대표'가 되었다.
'분골쇄신' 업무에 매진했던 결과였다.
육신과 영혼, 전부를 갈아 넣고 싶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일했다.
그런데 그해 연말,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IMF 사태'가 터졌다.
'대한민국' 전체가 흔들렸고 모두가 심각한 몸살을 앓았다.
쓰나미의 전조를 어느 누가 알 수 있었으랴.
대비하지 못했기에 더욱 아팠고, 그 고통과 처절함이 뼈에 사무쳤다.
속절없이 침몰해 가는 거함을 강건하게 붙들기 위해 삼 년간 고군분투했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끝내 '위천공'이 발생했고 앰뷸런스에 실려 '성심병원'으로 이송됐다.
90년에 입사해 99년까지의 온갖 격랑과 파랑이 파노라마처럼 내 눈앞을 스치며 지나갔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다.
하고 싶지 않았다.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러나 까닭 모를 눈물이 하염없이 미간을 타고 흘렀다.
뜨거운 눈물이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으나 더 이상 육신이 따라주지 않았다.
IMF의 폭풍이 휘몰아치기 전,
내가 책임지고 있던 '블루진사업부'는 약 1천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그래서 2단계 '신규사업'으로 '빅존(BJ)', '아우프(AUF)', '치크(CK)', '인디고뱅크(IB)' 등 4개 브랜드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었다.
기존 사업은 튼튼한 '캐시카우'로서 제 역할을 잘 감당했다.
그랬던 터라 신생 비즈니스에 더 깊은 애정과 관심을 쏟으며 열심히 전진하고 있었다.
또한 신규 프로젝트에서 일하는 젊은 직원들을 자주 만났고, 수시로 그들을 격려했다.
그리고 함께 뛰었다.
시간을 쪼개서 그들과 미팅과 식사도 자주 했다.
'신규사업'이 공략할 '니치마켓'에 대한 스터디와 S.W.O.T 분석도 많이 했다.
준비는 철저했고 모두에게 'CAN DO SPIRIT'이 충일했다.
구성원들은 분명한 '목표'와 확고한 '비전'을 갖고 있었다.
또한 각 단계별로 다양한 '전략'을 수립해 둔 상태였다.
2-3년 내로 건강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시스템적으로 어린 새싹들을 차근차근 양육하고 있었다.
BJ와 IB는 블루진 마켓의 어반라이프 '다크호스'로, AUF와 CK는 엣지있는 유러피안 '앙팡테리블'로 자리매김하려 했었다.
그러나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강력한 쓰나미가 밀려들었다.
느닷없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갔다.
어린 새싹들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절망에 좌절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기존 '캐시카우'라도 살려야 했다.
과도한 스트레스와 지속적인 긴장으로 튼튼했던 위장에 빵꾸가 났다.
'미션 컴퍼니'라 그 당시에 나는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도 않던 때였다.
그러나 매일 매일 다가오는 엄청난 스트레스엔 무쇠라도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위천공'으로 쓰러진 뒤로 병원에서 며칠을 보냈다.
많은 생각들이 뇌리를 스쳤고 때때로 눈물이 흘렀다.
내 모든 것을 다 바쳐 거함의 침몰은 막아냈지만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강력한 허리케인의 상처는 너무 아팠다.
상흔도 깊었다.
내 육신도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았다.
입원 일주일 만에 눈물을 머금고 병상에서 '사직서'를 작성했다.
3년간 회장님께 숱한 보고서를 올렸지만 개인적으로 장문의 편지를 쓴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너무 아쉽고 애달팠지만 내 전부를 쏟아부었던 만큼 일말의 후회는 없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뿐이었기에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회장님이나 누구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생명값에 대한 기본 도리라고 믿었다.
주인보다 더 주인답게, 오너보다 더 오너답게.
그것 뿐이었다.
번개처럼 시간이 간다.
그리고 어제도 바로 역사가 된다.
하루하루 알차고 진실되게 각자의 삶을 엮어가야 한다고 믿는다.
신이 각자에게 허락하신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스스로의 힘으로 호흡할 수 있는 그 순간까지는 언제나 베스트를 다했으면 좋겠다.
나의 기도제목은 언제나 이것 하나였다.
오늘도 뜻깊은 하루였기를 소망한다.
편안한 저녁시간 보내시길.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첫댓글 대단한 기록입니다.
기억보다 기록.
이 말이 다시금 와 닿습니다.
깨우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