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에서 만나는 신뢰의 즐거움 을 읽었다. 사막과 바다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뭘까? 둘다 길과 마실물이 없다는 것이고 차이는 사막에서는 가끔 오아시스가 존재하며 바다는 생선이 있어 먹을 수있다는 것이다. 종교는 상대적인 인간의 행위를 절대적인 것으로 바꾸고 전쟁을 축복한다. 전쟁은 패배자의 문명을 파괴하고 종교도 그렇다. 그리고 승리자와 살아남은 종교도 언젠가는 파괴되거나 사라지는 것이 운명이기도 하다. 베르베르인인 투아레그족은 10세기동안 사하라사막을 지배했다. 이들은 프랑스의 정복을 가장 끝까지 저항했다. 하지만 선진화기에 대적할 수는 없었고 식민지가 되었다가 1960년에 니제르, 말리, 알레지, 리비아, 부르키나파소 등으로 분할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대기근으로 초원지대가 황폐화하자 큰 타격을 받는다.
1990년 투아레그족이 말리에서 폭동을 일으켜 내전이 발생하자 정부군은 유목민 캠프를 파괴하고 우물에 독을 넣었으며 낙타를 사살했다. 29 사람간의 고통은 언제나 잘 못된 것이며 상대적이지만 종교는 이 것을 절대 선의 영역으로 올려놓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정복자들도 결국은 평등하게 죽음과 파괴에 다다른다. 시간은 승리자를 제거하기 때문이다. 항상 절정의 순간에 그 반대의 경우를 생각하라. 사실 시간이 지나면서 둘은 비슷해 지기 때문에 승리에 너무 기뻐하거나 반대로 패배에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그냥 바른 일을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34
지표최저점은 해수면 아래 400미터인 사해다. 지중해의 물이 유입되어 생긴 사해는 빙하기이후 바다에서의 유입은 중지되어 지금은 갈릴리호에서 시작하는 요단강을 통해 수량이 유입되고 있으나 더운 날씨로 증발이 많아 염도가 바다의 10배에 달한다. 그래서 일부 박테리아만이 생존가능할 뿐이다. 말라가는 사해를 구하기위해 인근 아카바만에서 운하를 건설하는 프로젝트가 추진중인데 아카바의 염도 역시 바다의 두배에 달한다. 41
나바테아인들은 사막에서 유황무역을 독점하면서 축재했고 이를 이용해서 페트라를 건설했다. 지금 요르단에 있는 페트라는 폭이 3미터에 불과한 길이 3키로씩 연결된 중심에 수도원과 왕족의 무덤이 건설되었으나 1세기경 로마에 점령되고 바닷길이 활성화되면서 버려져 모래에 파뭍혀 19세기까지 버려지고 염소를 치를 배두인들만 방목지를 옮기면서 무덤속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1980년대에 유네스코 문화재로 등재된 이후에는 배두인은 페드라에 거주할 수없게 되었다. 문화재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록의 부족으로 아직 90%는 발굴되지 않은 상태이기도 하다. 51
에티오피아는 솔로몬과 시바의 후손이 세웠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2차대전중 이태리의 침략을 막아내 유일한 아프리카 독립국이었지만 결국 점령당해 1941년 영국이 이태리를 쫒아내고서야 황제가 귀국했다. 1952년 해안을 끼고 있던 에리트리아와 연방을 맺어 바다로 통하는 길을 확보했지만 10년후에 병합하면서 에리트리아 독립전쟁이 발생했다. 한국전에 지원하여 123명의 전사자를 내기도 했지만 경제난으로 1973년 석유파동을 계기로 마르쿠스 쿠데타로 왕정이 폐지되었다.
하지만 군부 공포정치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고 결국 다음해 내전이 발생하여 1991년까지 많은 혼란을 몰고왔다. 소련의 몰락으로 자금줄이 차단되자 마르크스정권은 반군에 의해 타도되고 반군과 같이 정부군에 맞서 싸우던 에리트리아는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 면적은 112만평방킬로미터로 한국의 11배고 인구는 2016년 1억을 달성하여 나이지리아에 이어 아프리카 2위다. 한국전에 참전했던 부대는 황제 친위대로서 이에 맞은 전투 성과를 내고 귀국했으나 마르크스정권은 황제를 암매장하고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핍박했다. 현재도 기아는 심각한 수준이다. 75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 동쪽에 소재한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섬이다. 2.5억년전 판게아가 대륙으로 분리되먼서 생성되었기에 태평양의 갈라파고스처럼 인도양에서 이질적인 생물군을 보유하고 있다. 기원전후에 보르네오에서 카누를 타고온 오스트로네이사인이 처음 정착했고 10세기경 아프리카 반투족이 이주하여 혼혈로 이루어진 민족이 말라가시인이다. 19세기말 다른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과 같이 프랑스 식민지가 되었다. 1960년 마다가스카로 공화국으로 독립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사회주의 정권이 해외자본을 무상몰수하면서 경제가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세계 최빈국중의 하나다. 94
죽은 후에 더 유명해진 사람이 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예수와 체 게바라다. 둘의 공통점은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세상을 위해 헌신했다는 점이다. 예수의 일생을 잘 알려져있으니 체의 일생을 살펴본다.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의사가 되어 배부르게 살 팔자였다. 하지만 자본주의로 빈부차가 크다는 점을 인식하고 아내와 딸을 멕시코에 둔 채 쿠바혁명에 참가한다. 80여명중 대부분이 죽었으니 자신은 물론 가족을 위해서라면 미친 짓을 한 셈이다.
다행히 쿠바혁명은 성공했고 혁명2인자로서 장관을 역임하기도 하지만 다시 사회주의혁명이 시도되고 있는 다른 나라로 이동한다. 그 때는 다섯으로 늘어난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죽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자신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체포되어 사형된다. 쿠바와는 달리 농민들이 체제유지를 선호했기에 반군을 돕지않았던 까닭이다. 생각해보면 최근 영생에 관심도 없는데 계속 전도를 하던 목사 동서와 다를 것이 없다. 그 나라에서는 원하지 않는데 자신이 바르다고 생각해서 어찌보면 침입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어쨌건 나보다 남을 생각했던 것은 높게 평가할 수있다. 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