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점심’의 유혹
이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기보다 자식이 더 잘되기를 염원하고 기도하며 어떤 노력이나 희생도 마다않는다. 인류가 지속적으로 발전해 온 원동력 중의 하나가 다음 세대를 위한 배려와 희생이다. 가장 단적인 예가 자식 교육이다. 한국이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단기간에 이룩해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것도 교육열에 힘입은 바 크다. 우리 부모들은 거의 유일한 생계 수단인 논밭과 소까지 팔아 가며 자식들을 위해 과감한 희생을 감내했다. 비단 교육이나 후세 양육뿐만이 아니다. 경제도 원리는 똑같다. 나라의 장래와 후대를 위해 현재의 어려움을 참거나 희생을 감수하는 노력이 바로 저축이요 자본 축적이다.
개인, 기업, 국가 등 경제 주체가 축적해 놓은 자본이 없거나 모자라면 어떻게든 돈을 융통해 하고자 하는 사업(자녀 교육도 마찬가지)을 때 놓치지 않고 실현하는 지혜와 용기, 안목과 통찰력, 기획력과 추진력이 요긴하다. 그렇게 해서 자녀 교육에 성공한 부모들이 한국의 지난 세대 주역들이고, 나아가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지도자와 기업가 및 정책 당국이었다.
인간은 누군가가 밥을 사 주면 좋아하기 마련이다. 그것도 한두 끼가 아니라 매번 공짜로 주고, 나아가 모든 사람이 똑같은 혜택을 누리게 한다면 가히 천국이 따로 없다고 할 만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세상 어디에도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경제학의 기본 원리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 반론의 여지가 없는 법칙이다. 내가 지금 호주머니 돈을 내지 않고 점심을 먹더라도 누군가가 그 값을 대신 치르거나 나중에 본인 아니면 후손이 그 비용을 반드시 갚아야 하는 냉혹한 현실이 도사리고 있다.
거대 야당이 이른바 기본소득 정책의 일환으로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 원을 지급하는 법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국회를 통과시켰다. 한 번 시행에 12조~13조 원의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포풀리즘의 전형이다. 우리 사회에 어려운 사람들이 아직도 많으므로 이런 공짜 점심을 준다고 하면 좋아할 유권자도 꽤 많을 것이다. 이 법안이 그 점을 노린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경제학 이론을 굳이 들이댈 것도 없다. 이런 정책이 세계 최초이거나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므로 그동안 시행된 사례를 분석하면 그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여기서는 세 나라만 간단히 살펴본다.
세계 최대 산유국의 하나인 베네수엘라는 전도유망한 나라였다. 그러나 1980년대에 닥친 제2차 석유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아 자국의 정유 기술 향상과 장래를 위한 산업 구조조정을 추진할 기회를 놓쳤다. 대통령으로 내리 4번 당선돼 14년간 장기 집권하다 암으로 사망한 우고 차베스는 외국 자본 소유의 석유기업 국유화와 더불어 모든 국민에게 마구 퍼주는 정책을 서슴지 않았다. 그의 뒤를 이은 지도자들마저 같은 포퓰리즘을 강행하는 바람에 베네수엘라는 오랫동안 천문학적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다 남미에서 가장 비참한 나라로 전락했고, 많은 국민이 살기 위해 조국을 등져야 했다.
그 정반대 사례가 북유럽의 부국 노르웨이다. 이 나라는 북해유전 발견으로 일약 산유국이 되면서 막대한 부가 계속 창출되는 엄청난 행운이 찾아 왔다. 이때 정부가 제안하고 국민이 지지한 정책은 이 ‘뜻밖의 부’를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나눠 주거나 당장 써 버리는 게 아니라 국부펀드를 만들어 장래에도 부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게 만들고 후손들이 그 혜택을 누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 정책은 지금도 그대로 실천되고 있다.
다른 유럽 국가의 예로 스위스를 들 수 있다. 역시 부국인 이 나라는 사회복지제도의 일환으로 모든 성인에게 매월 약 300만 원(미성년자는 80만 원)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려는 시도가 여러 번 되풀이됐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대유행으로 스위스도 예외 없이 크고 작은 경제적 고통을 감수하며 견뎌야 했을 때에도 그랬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기본소득 지급안은 국민투표에서 70% 이상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포퓰리즘을 경계하는 스위스 국민의 현명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정당한 대가 없이 받아먹는 행위가 반복되면 인간이나 동물이나 다음을 기대하기 마련이고, 공짜 공급이 계속되지 않으면 불평과 원망이 쌓일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불편한 심정이나 장래를 고려하는 염려가 없지 않겠지만 계속 반복되다 보면 당연한 권리로 여길 것이고, 공짜가 중단되거나 축소되면 참지 못하고 불만을 터뜨리고 말 것이다.
현대 사회가 지향하는 복지형 국가라면 정부든, 사회든, 개인이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적극 돌보기를 주저해선 안 된다. 그러나 정치권이 앞장서서 공짜 점심을 바라는 풍조를 조장한다면, 국가와 사회는 몰락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정권을 잡으려고 표만 되면 어떤 짓도 불사하는 불순한 정치 세력은 나라의 앞날은 아랑곳없고 당장의 표심만 쫓는다. 이렇게 선공후사(先公後私)가 아닌 선사후공을 택하면 나라꼴이 어찌 되겠는가! 우리들은 행복해진 순간마다 잊는다. 누군가가 우리들을 위해 피를 흘렸다는 것을. *프랭클린 루스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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