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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광주광역시 명소
영산포 역사갤러리, 타오르는강 문학관, 영산포 홍어의거리, 영산강 황포돛배선착장, 영산포등대, 동양척식주식회사문서고, 영산강, 영산포, 영산포철도공원, 김천일장군묘소, 정렬사, 광주학생독립운동 진원지나주역사, 나주학생독립운동 기념관, 나주역역사공원, 동학농민들 희생자를기리는 사죄의비, 나주읍성, 남고문, 동점문, 금성관사당, 나주목향청, 나주향교, 충경서원, 완사천, 영모재, 나주박경중가옥, 나주남파고택, 나주역전근린공원.
1.영산포 역사갤러리
1908년 한국에 이주해 온 일본인들의 사업자금을 지원하는데 주력하였던 광주 농공은행 영산포 지점이 설립 되었다. 1918년 농공은행을 모체로 한 조선식산은행이 설립되면서 영산포 사람들은 이 건물을 '식산은행'이라 불렀다. 2012년 9월 나주시가 매입하여 영산포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 갤러리로 조성하였다. 영산포 역사갤러리는 고려시대 흑산도 사람들의 이주에서 시작되어 개항 이후 호남 3대 근대도시로 성장하고 영산강의 대표도시로 발전한 영산포의 역사와 변천과정을 알리고 공유하는 공간으로 2015년 개관했다. 나주 영산이란 지명은 원래 흑산도에 설치되었던 현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신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고려 말엽에 일본 해적질의 노략질을 피해 흑산도 사람들이 남포강가에 피난 와서 살았기에 이곳을 흑산도 영산현의 이름을 따서 영산현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이후 영사창 앞을 흐르는 강이라 하여 영산강 또는 영강이라 부르게 되었고 영산포라는 지명은 포구의 이름으로 사용되었으나 일제 강점기인 1937년 영산면이 읍으로 승격될 때 행정지명 영산포읍으로 확정되었다. 나주 영산포에는 목포 개항과 동시에 1900년대 초반부터 일본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여 그 당시 인구의 3분의 1이 일본인이었다고 한다. 영상포역사갤러리는 영산포 홍어거리에 위치해 있는데 주변의 풍경은 시간이 멈춘 듯 오래된 목조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영산포에는 근대건축물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동양척식주식회사 문서고, 조선식산은행건물, 쿠로즈미 이타로 저택이 대표적이다. 그중 조선식산은행건물을 나주시가 매입하여 영산포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 갤러리로 조성하였다. 영산포 등대와 오일장, 우시장 등 과거 영산포의 변천과정을 흑백사진을 통해 느낄 수 있고 영산포의 전통 음식과 문화를 모형과 실물로 전시하였다. 문화해설사가 상주하여 있으므로 영산포와 전시 자료에 대한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 MS에서 40m
2.타오르는강문학관
타오르는 강 문학관은 일제강점기에 나주 지역에서 가장 많은 농토를 보유했던 일본인 대지주 구로즈미 이타로가 살던 가옥이다. 1935년경 건립되었다고 알려져있으며, 청기와 등 모든 건축자재를 일본에서 운송하여 지었다고 한다. 일본식 주택과 의향풍(서양풍을 흉내냄)의 사무소가 함께 있는 형태의 건물이다. 해방 후 선교사가 고아원으로 운영하였고, 1981년 개인이 매입해 주택으로 사용하였으며 2009년 영산포 근대거리의 역사적 가치를 살리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나주시가 매입했다. 현재 나주시노인복지관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역사 갤러리를 통해 19~20세기 영산포 일대의 옛 사진과 당시 시대상황을 알 수 있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으며, 전통 찻집과 지역주민 추억의 사진관을 운영하여 지역주민 및 관광객들에게 친교와 휴식의 장소를 제공하고 세대간 추억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2024년 10월 4일 '타오르는강문학관'으로 개관했다. 타오르는강문학관은 영산강을 무대로 나주와 영산포 민중들의 고향과 한에 대한 민중사를 사실적으로 다룬 대하소설 '타오르는 강'(전 9권)을 테마로 한 문학관으로 영산강의 인문학적 가치를 확산하고자 조성된 문학관이다.
* MS에서 300m
3.영산포홍어거리
영산포 홍어는 굽이굽이 영산강 뱃길을 따라 올라와 닻을 내리면 잡힌 홍어가 먼 뱃길을 따라 올라오는 사이에 자연 발효되어 독특하고 절묘한 맛을 내는 웰빙 식품이다. 옛 영산포구가 있던 자리에 40여 곳의 홍어 음식점과 도매상이 들어서 있어 홍어거리에 들어서면 퀴퀴한 홍어 냄새가 진동한다. 고려 말 흑산도를 비롯한 전라도 섬에는 왜구의 침입이 잦았다. 늘 생명의 위협을 받고 살던 섬주민들이 강을 따라 뭍으로 거슬러 왔는데, 그곳이 바로 나주의 영산포였다. 흑산도 주변 영산도에서 피신 온 사람들이 많아 마을 이름이 영산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들이 흑산도 인근에서 고기를 잡아 배에 싣고 돌아왔는데, 더운 날이면 다른 생선은 썩어서 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홍어만은 먹어도 아무런 탈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삭힌 홍어는 영산포의 특산물이 된 것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나주인들은 삭힌 홍어를 즐겨 먹는데, 탁주 안주로 곁들여 먹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인접해서 선창거리에 영산강 황포돛배나루터가 있으며 영산교를 건너면 강변을 따라 영산강체육공원이 있다.
* MS에서 150m
4.영산강황포돛배 선착장.황포돛배 체험
문의전화 061-332-1755
영산포 선창은 1960년대까지 각종 선박이 왕래하며 홍어, 추자 멸치젓 등 수많은 수산물이 유통되었다. 황포돛배는 바닷물이 영산강 물길을 따라 오르내리던 시설 온갖 생필품을 실어 나르던 황토로 물들인 돛을 단 배를 말하는데 1977년을 끝으로 자취를 감추었다가 2008년 다시 예전 모습으로 부활하여 그 옛날의 추억을 싣고 영산강을 오르내린다. 영산강 비단 물결을 따라 유람하는 황포돛배 체험은 나주 여행의 백미다. 영산포 선창에서 출발하는 황포돛배를 타면 선장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해설을 들을 수 있다. 황포돛배는 또한 사랑의 공간이고 이별의 공간이다. 수백번은 오갔을 물길 위에서 황포돛배는 숱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던 사랑의 장소였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임을 그리워하던 눈물이 모여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그곳, 석관정의 이별바위에는 애잔함이 서려있다. 나라의 부름을 받은 장정들도 배에 몸을 싣고 먼 길 떠나면 가족들과 아내들은 이별바위 부근에 이르러 더 이상 배를 쫓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야 했다. 하지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이별바위가 당신의 사랑을 지켜줄 것이다. 황포돛배는 영산포 선착장에 가면 승선할 수 있으며. 왕복 5km의 뱃길은 50분 정도 소요된다. 황포돛배는 최소 3인부터 승선이 가능하다. 승선 30분 전까지 도착. 11시 배를 타려면 10시30분까지 도착. 승선신고서 작성 후 승선
영산강선착장-한국천연염색박물관까지 왕복 10km. 매주 월요일 휴무
왕복 50분 소요.예약없음.현장발권.승선시간 30분 전까지 도착해서 발권후 승선신고서 작성
운항시간표(2026.10~):09:40, 10:20, 11:00, 13:00, 13:40, 14:20, 15:00, 15:40, 16:20, 17:00
요금:성인 8,000원 경로 4,000원(신분증 제시)
탑승인원이 3명 이상:빛가람호, 13명 이상:나주호, 50명 이상:왕건호 출항
* MS에서 350m
5.영산포 등대
영산포 등대는 일제강점기 영산강의 가항종점인 영산포 선창에 건립된 등대이다. 이 등대는 우리나라 내륙 하천에 있는 유일한 것으로 1989년까지 수위 관측시설로 사용되었다. 1915년 영산강의 가항 종점인 영산포 선창에 건립된 등대이다. 한국의 내륙 하천에 있는 유일한 등대로 해마다 범람하던 영산강의 수위 측정과 등대의 기능을 겸했으며 1989년까지 사용되었다. 영산포 선창은 일제 강점기에는 곡창지대인 호남 지역의 수탈의 거점으로 이용되었으며 1960년대까지 각종 선박이 왕래하면서 많은 수산물이 유통되었다. 영산포 등대는 흰색 원통형의 콘크리트 구조이며, 높이는 아파트 3층 정도로 다른 등대에 비해 크기가 작은 편에 속하며 본래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산 홍어와 추자 멸치젓 배가 왕래해 지금도 선창가에는 어물전들이 남아서 그 옛날의 정취를 느끼게 해주며, 밤이 되면 등대는 불을 밝혀 존재감을 드러낸다. 영산포 등대 바로 앞 선착장에는 영산강 황포돛배 체험장이 있고, 주변에 나주 홍어거리가 있다.
* MS에서는 270m. 영산강황포돛단배나루에서는 50m.하선 후나 승선 전에 볼 것
6. 동양척식주식회사문서고
영산나루의 오른쪽에 붉은 벽돌집이 있는데, 이 건물이 바로 1910년에 세워 동양척식회사 부속 건물로 각종 문서를 보관하던 문서고가 있던 자리다. 동양척식회사는 일제가 조선의 토지를 수탈하고자 만든 기관이다. 일제가 토지를 수탈하기 위하여 만든 대표적인 기관인 동양척식주식회사가 1910년 7월, 나주 궁삼면(현재의 영산포·왕곡면·세지면·봉황면·일원) 일대의 하천답 1만4552정보와 묘지 1800필지를 8만원을 주고 강제로 매수했다. 이 당시 궁삼면 토지는 고종의 후궁인 엄귀인이 거처하던 경선궁의 속지였다. 이후 일제는 궁삼면 토지를 관리하기 위해 동양척식회사 영산포출장소를 영산포구 앞인 영산동 306-13번지에 개설했다. 지금의 영산나루 찻집 일대다. 그리고는 강제로 매수한 그 땅을 일본 본토에서 이주해온 일본인들에게 헐값에 넘겼다. 토지를 매수하면서 1910년대에 나주시 영산동 306-13번지 영산포에 설치한 영산포출장소 사무실 건물 중 일부이다. 1920년대에 목포로 사무실이 옮겨질 때까지 사용되었던 동양척식주식회사 사무실 터에는 현재 건물들이 거의 없어지고 문서를 보관하던 지상 1층의 붉은 벽돌집인 문서고(文書庫)와 숙직실만 남아 있다. 문서고는 현재 개인별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후 1920년대 후반에 서남해의 작은 고을 목포가 신흥도시로 번성하면서 동척 사무실이 목포로 옮기게 되자 영산포 동척 건물은 폐쇄되었다. 그 후 반재철 원장이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아 20년간 관리했다. 주인 부부는 찻집 ‘영산나루’를 열어 운영 중인데, 동척 건물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문서고 건물은 페인트를 칠하고 내부를 개조해 주인부부의 거주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 MS에서는 750m.영산강황포돛단배나루터에서는 450m.하선 후 탐방할 것
7.영산강
영산강은 전라남도 담양군 월산면 용흥리 병풍산 북쪽 용흥사 계곡에서 발원하여 장성군, 광주광역시, 나주시, 영암군, 함평군, 무안군, 목포시 등지를 지나 영산강하굿둑을 통해 서해로 흐르는 강으로 길이 138.75km, 유역면적 3,371㎢이다. 남서류하면서 광주천, 황룡강, 지석천, 고막원천, 함평천 등의 지류와 합류하는 우리나라의 국가하천 중 본류 기준으로 다섯 번째로 길고 넓은 강이다. 조석의 영향이 나주 부근까지 미쳐 연안 농경지에 하천 범람, 농토 침식 등의 피해를 주기도 하였으나 1981년 12월에 하굿둑이 축조됨으로써 감조구역이 크게 줄어들었다.
* MS에서 길 건너 바로 앞에 있음
8.영산포
영산포는 전남 나주시에 있었던 옛 항구이다. 영산강하구둑이 건설되기 전까지 배들이 드나들었다. 지금은 항구시설들이 다 사라져서 없고 영산포라는 지명으로만 쓰이고 있다. 고려시대때부터 조창이 설치되어 전라도의 전세등 여기로 모아서 배로 서울까지 운반하였기에 나주 영산포는 꽤나 큰 마을이었다.
* MS 바로 앞 영산강변에 있음
9.영산포철도공원
2003년에 폐역 된 영산포역에 있기 때문에 영산포 철도공원이라고도 불린다. 옛 역사는 철거되고 현재 증기기관차 1량과 레일 등 공원만 남아 있다. 폐쇄된 철도역이라 기차는 운행하지 않고, 현재는 레일바이크만 철로 위로 운영하며, 공원을 한 바퀴 돌 수 있다. 레일바이크는 일 3회 운영하며, 월요일은 휴무다. 철도공원 주변으로 이어진 산책로를 걷기도 좋다.
* MS에서 900m.영산강황포돛배나루테에서는 920m
10.김천일장군 묘소
조선 중기의 문신 ·의병장. 임진왜란 때 나주에 있다가 고경명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왜적에게 점령된 서울에 결사대를 잠입시켜 싸우고, 명나라 제독 이여송의 군대를 도왔으며, 진주성을 사수하다가 성이 함락되자 남강에 투신자결하였다.
* MS에서 1.6km.영산포철도공원에서는 870m
11.정렬사
전라남도 나주시 대호동에 있는 사당.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임진왜란 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김천일(1537∼1593)과 그의 아들 상건(1557~1593), 양산숙(1561~1593), 임회(1562~1624), 이용재 등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1606년 (선조 39) 현 나주고등학교 뒤편 월정봉 아래(교동)에 창건하였으며 1607년 정렬사로 사액되면서 사우를 나주 읍내(현 나주잠사공장터) 부근으로 옮겼다. 이후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으며 1953년 문열공사업추진회가 조직되고 1963년 송월동에 신실을 마련하면서 복원을 시작하였다. 1966년 사우를 남산공원으로 옮겼다가 1984년 현재의 위치에 자리잡았으며 1986년 정렬사비와 건재동상을 옮겨세웠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반의 규모로서 팔작지붕이고, 내삼문과 외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 평대문이다. 정렬사비는 시도기념물 제 48호로서 인조 4년(1626년)에 건립되었다. 비문은 장유가 지었으며, 김천일의 활약과 당시의 국내상황이 자세히 적혀 있다.
* MS에서 6km.택시 1만원.버스도 있다. 버스는 1450원. 김천일 묘소에서는 6.2km 택시 9천원
12.광주학생독립운동진원지 나주역사(구 나주역)
1929년 10월 30일 오후 5시 30분경 나주역에서 발생한 일본인 남학생들의 한국인 여학생 희롱 사건과 이를 꾸짖은 박준채 등 한국인 학생 간의 충돌은 대규모 항일 운동인 광주학생독립운동의 결정적 도화선이 된 역사적 현장이다. 1929년 10월 30일 광주역을 출발하여 나주역에 도착한 호남선 통학 열차에서 일본인 중학생 남학생들이 한국인 여학생들 박기옥, 이광춘 등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며 모욕하고 희롱했다. 이를 목격한 광주 고등보통학교(조선인 학교) 학생 박준채(박기옥의 서촌동생)가 일본인 학생(후쿠다 슈조 등)을 꾸짖으며 언쟁과 격투가 벌어졌다. 다음 날인 10월 31일, 통학 열차 안에서 다시 일본인 학생들이 조선인을 비하하고 일본 학생들만 두둔하여 민족 감정이 자극됐다. 11월 1일 통학생 전체로 다툼이 확대됐고, 일제 유도 교사가 일본 학생 편을 들어 한국 학생을 제압하려 하면서 항일 시위로 번져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나주역은 현재 구 나주역사(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인근)로서 이러한 민족 항쟁의 시발점이 된 중요한 사적지로, 11월 3일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의 배경이 되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된 나주역은 1929년 11월 3일 일어난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실질적인 진원지다. 현재 이 장소는 '광주학생독립운동진원지 나주역사'라는 명칭으로 전라남도 기념물 제183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이 사건이 발단이 되어 11월 3일 광주에서 대규모 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났고,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것이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촉발시킨 나주역 사건의 정황이다. 이를 계기로 일본의 4대절의 하나인 명치절에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명치절 기념식 후에 있을 신사참배를 집단 거부하고 일제히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항쟁소식은 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 전국의 194개교 54,000여명이 시위운동에 참가한 역사적 사건으로 확산됐다. 이렇듯 나주역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라는 역사적 의미가 평가 돼 2000년 12월 29일에 전라남도 기념물 제183호로 지정됐다.
나주인의 항일정신을 보여준 전남 나주시 죽림동의 구 나주역은 1913년 7월 1일 영업을 시작한 근대 교통 시설로, 일제강점기 당시의 규모와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현재 구 나주역사내에는 나주역 영업당시의 개찰모습, 일제 강점기에 썼을 법한 역무원들의 근무모습이 밀랍인형들로 재현되어 있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역사 바로 옆에는 광주학생항일 운동 기념관이 개관해 당시의 학생독립운동과 관련된 영상자료도 볼 수 있다. 2001년 호남선 복선화 사업으로 인해 실제 기차역 기능은 나주시 송월동의 신(新) 나주역으로 옮겨졌으며, 옛 나주역사는 보존되어 역사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옛 나주역사 바로 옆에는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과 공원 조성되어 당시의 기록과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MS에서 4.4km 택시 7,200원
13.나주학생독립운동 기념관
일제강점기 학생운동의 산실인 나주학생독립운동을 기념하는 기념관이 구 나주역사 옆에 자리 잡고 있다. 나주 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0월 30일 당시 나주역에서 나주-광주 간 기차를 이용해 통학하던 한, 일 학생의 충돌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학생독립운동은 흔히 일제강점기 3대 독립운동의 하나로 평가된다.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은 학생독립운동 진원지 ‘옛 나주역’ 옆에 당시의 역사를 생생하게 일깨울 수 있도록, 전남지역의 식민지적 상황과 학생독립운동의 전개과정 등을 주제로 2008년 7월 25일개관하였다. 기념관은 평일과 주말 09:00 ~ 18:00까지 관람할 수 있으며, 나주학생독립운동의 역사를 전시하고 감상할 수 있는 시설이 준비돼있다. 관람료는 무료이다. 이 곳을 방문하게 되면 전라남도 기념물 제183호로 지정된 나주역사도 함께 볼 수 있다.
* 광주학생독립운동진원지나주역사에서 105m
14.나주역 역사공원.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
나주역 역사공원은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된 '나주역 사건'의 현장인 구 나주역(옛 나주역사)을 중심으로 조성된 역사 테마 공원이다. 1913년에 건립된 민트색 외관의 근대 건축물과 당시의 역사적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나주의 대표적인 역사 관광지로 꼽힌다. 매주 월요일, 국가공휴일 (삼일절, 현충일, 광복절은 개관)은 휴무다. 입장료는 무료다. 구 나주역사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183호다. 1929년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으며, 내부에는 옛 기차 시간표, 요금표, 철도 용품 등이 전시되어 있어 과거의 기차역 분위기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도 역사공원 바로 옆에 위치하며, 학생독립운동의 전개 과정과 나주 지역의 항일 운동 역사를 상세히 소개하는 1, 2전시실을 운영하고 있다. 역사공원 광장은 나주의 역사와 독립운동의 기억을 담은 원형 아트플로어가 조성되어 있으며,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과 일송정 등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특유의 민트색 외관과 옛 간이역의 감성 덕분에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유명하다. 실제 호남선 선로 옆에 있어 운이 좋으면 지나가는 현재의 기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인근에 나주 곰탕 거리와 나주읍성 등이 있어 당일치기 여행 코스로 방문하기 좋다. 학생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된 장소인 만큼 자녀들과 함께 역사적 체험 교육장이다.
* 광주학생독립운동진원지나주역사에서 110m
15.동학농민들 희생자를기리는 사죄의비
동학농민혁명 당시 일본군에 의해 희생된 농민군을 기리고 사죄하는 의미를 담은 '동학농민군 희생자를 기리는 사죄의 비'는 2023년 10월 30일 나주시민의 날 전남 나주시 나주역사공원에 세워졌다. 이 비석은 일본의 양심 있는 지식인들과 한국 시민들이 힘을 모아 건립한 것으로, 일본인이 동학농민군 학살과 관련해 직접 '사죄'의 뜻을 담아 비를 세운 것은 혁명 발발 129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건립 장소는 전남 나주시 나주역사공원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인근)이다. 일본 지식인 나카쓰카 아키라(나라여자대학 명예교수), 이노우에 가쓰오(홋카이도대학 명예교수) 등과 한국의 사죄비건립추진위원회에서 1894년 나주에 주둔했던 일본군 보병 제19대대가 동학농민군을 잔혹하게 학살했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사죄하기 위함으로 건립했다. 비문의 내용은 한국어와 일본어로 병기되어 있으며, 일본군에 의해 희생된 농민군을 추모하고 다시는 이러한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당시 나주는 일본군이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본부를 설치했던 곳으로, 수많은 농민군이 처형된 가슴 아픈 역사가 깃든 장소이기도 하다.
*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에서 200m
16.나주읍성
전라남도 나주시 성북동과 교동 일대에 위치한 나주읍성은 전라도의 중심지였던 나주목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성곽으로, 현재 사적 제337호로 지정되어 있다. 둘레 약 3,530m에 달하는 평지 읍성으로, 남북으로 긴 타원형 형태를 띠고 있다. 동·서·남·북에 4개의 성문이 있었으며,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훼손되었으나 최근 모두 복원되었다. 남문(남고문)이 1993년 가장 먼저 복원되었다. 동문(동점문)은 2006년 복원되었다. 서문(영금문)은 2011년 옛 모습대로 복원되었다. 북문(북망문)은 2018년 마지막으로 복원되었다. 고려시대에 왜구 방어를 위해 처음 토성으로 쌓았으며, 1457년 조선시대 세조 때 돌로 다시 쌓아 확장되었다. 나주읍성 안팎으로는 나주목의 권위를 보여주는 핵심 시설들이 밀집해 있다.
나주 금성관은 조선 시대 나주목의 객사로,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지방 궁궐이다
나주 목사내아는 나주목사가 살던 관저로, 현재는 한옥 스테이 숙소로 활용되고 있다.
정수루는 나주 관아의 정문 역할을 하던 2층 누각이다.
나주 곰탕 거리는 금성관 인근에 위치하며, 나주를 대표하는 먹거리인 곰탕 맛집들이 모여 있다.
나주읍성 내 한옥에서 머물며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생활관광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성문을 따라 걷는 역사 산책 코스가 잘 마련되어 있어 유적지를 감상하며 걷기에 좋다.
* MS에서 3.8km 택시 7천원. 버스도 있다.
17.남고문
나주 남고문은 전라남도 나주시 남내동에 위치한 나주읍성의 남문이다. 서울의 숭례문(남대문)과 유사한 위용을 자랑하며, 과거 나주읍성을 드나들던 4대문 중 가장 활발하게 이용되었던 문이다. '남고문'이라는 이름은 이 성문을 나서 남쪽으로 떠나는 관리나 선비들이 임금이 계신 북쪽(금성관 방향)을 다시 돌아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 조선 시대 나주목사 김계희 재임 시절(1457~1459년)에 완성되었으나, 1910년대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었다. 이후 1993년 옛 모습대로 중층 문루(2층) 형식으로 복원되었다. 나주읍성 터는 사적 제337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현대적인 도로 한복판에 성문이 우뚝 솟아 있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풍경을 자아냅니다. 밤에는 야간 경관 조명이 켜져 나주의 밤을 아름답게 밝히는 명소다. 나주읍성 4대문(동점문, 서성문, 남고문, 북망문) 중 하나이며, 인근에 금성관과 나주목사내아 등 역사적 명소들이 밀집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 나주읍성에서 3m
18.동점문
동점문은 전라남도 나주시 중앙동에 위치한 나주읍성의 동쪽 성문이다. '동쪽에서 온 덕화가 점차적으로 물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나주의 관문 역할을 해왔다.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었다가 2004년부터 복원 공사를 시작해 현재는 옹성과 문루를 갖춘 웅장한 옛 모습을 되찾았다. 성문 앞을 둥글게 감싸 안은 옹성 구조로 설계되어 방어력을 높였다. 사적 지정: 남고문, 서성문, 북망문과 함께 나주읍성(사적 제377호)의 사대문 중 하나로 관리되고 있다. 나주 동점문 밖 석당간 (보물 제49호)은 동점문 바로 바깥에 위치한 고려시대의 돌기둥이다. 사찰의 깃발(당)을 다는 장대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나주곰탕거리가 인근에 위치하여 역사 탐방 후 현지 맛집을 즐기기에 좋다. 휠체어 이용이 가능한 출입구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으며, 아이들과 함께 산책하기 좋은 장소다. 24시간 개방되어 있어 언제든 성곽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
* 나주읍성에서 831m
19.나주읍성 서문 영금문(서성문)
나주읍성의 서문인 영금문은 전라남도 나주시 성북동에 위치한 조선 시대 읍성의 문이다. 나주읍성 4대문 중 하나로, 과거 나주가 전라도의 핵심 거점이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문화유산이다. 원래 이름은 서성문이나, '나주를 비추는 비단결 같은 문'이라는 뜻의 영금문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과 나주 관군 사이의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서성문은 나주읍성 4대문 중 가장 슬픈 사연을 안고 있다. 동학농민운동에 관한 것이다. 1894년 7월 5일, 금성산에 진을 치고 있던 동학농민군들이 서성문을 공격했다. 호남의 다른 대부분의 지방관아는 이미 농민군의 손에 넘어갔지만 전국에서 가장 많은 세곡을 바친다는 나주는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다. 농민군은 나주를 두 차례 공격했지만 끝내 서성문을 넘지 못하고 3000여명의 사상자를 남기며 대패하였다. 신망이 높기로 유명했던 민종렬 목사를 중심으로 270여명의 향리와 일가권속들 또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맞섰던 것이다. 성이 함락되지 않자 전봉준 장군이 나주목사 민종렬과 협상을 위해 들어갔던 문이기도 하다. 동학농민군에게는 서성문을 지켰지만, 이 후 침략한 일본인들에 의해 나주읍성은 결국 무참히 사라지게 되었다. 조금이나마 옛나주읍성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서성문길이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경 철거되었다가, 2007년 발굴 조사를 거쳐 2011년에 복원되었다. 나주읍성 전체는 사적 제337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나주 서성문 안 석등 (보물 제364호)은 원래 영금문 안에 있던 고려 시대 석등으로, 현재는 국립나주박물관 중앙 홀에 보관 및 전시되고 있다. 나주향교는 영금문 인근에 전국 최대 규모의 향교 중 하나인 나주향교가 위치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나주읍성 4대문인 남문인 남고문, 동문인 동점문, 북문인 북망문과 함께 성곽길을 따라 도보 투어도 가능하다.
20.금성관
금성관은 나주가 호남의 웅도로써 그 중심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역사유적이다. 금성산에 올라 나주 시내를 내려다보면 시내 한복판에 큰 기와지붕과 600년 수령의 큰 은행나무가 한눈에 들어온다. 금성관은 그 규모나 명성, 나주고을 한복판이라는 입지조건, 그리고 주변에 나주곰탕이라는 먹거리 집이 있어 관광객들에게는 ‘나주 답사 1번지’로 손색이 없다. 때문에 나주를 안내하는 해설사들도 방문객들을 늘 금성관 으로 먼저 안내한다. 금성관은 나주목에 있는 객사이다. 객사는 고려·조선시대에 각 고을에 설치하였던 관사를 말한다. 해설사를 따라 객사 건물 뒷마당으로 돌아가 보면 수령이 600년이나 되는 우람한 은행나무가 무성한 잎을 피어 올리고 있다. 금성관은 근대에는 또 나주인 들의 항일정신을 대표하는 장소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천일 선생이 이곳에서 의병을 모아 출병식을 가졌고, 명성황후가 시해되었을 때 빈소가 마련되어 나주인들의 항일정신을 고조시킨 곳도 금성관이다. 금성관은 일제 강점기에 창호·마루등 내부를 개조하여 나주군청 청사로 사용되면서 원형이 크게 변형되었다. 그래서 1976~1977년까지 금성관을 완전해체한 뒤 거의 원형에 가깝도록 복원하는 작업이 이뤄졌다.
* 나주읍성 610m
21.나주목 향청
나주목 향청은 나주시 금계동이 있다. 나주목 관아 내 조선 시대 지방 수령을 자문하고 보좌하던 자치 기구로, 전라남도 나주시 금계동에 위치한 나주목 관아와 향교(사적 제483호)의 핵심 시설 중 하나다. 지역 양반들이 지방 행정의 보조 역할을 수행하며 향풍(지방 풍속)을 바로잡고, 중앙에서 파견된 수령의 정치를 자문하던 기관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향사당' 또는 '유향소'로도 불렸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훼손되었으나, 나주시의 역사문화관광 정비 사업을 통해 약 50년 만에 복원되어 2023년 7월 낙성식을 가졌다. 1897년 발간된 금성읍지의 기록에 따라 현판 명칭은 향사당으로 정해졌다. 매주 토요일 오후, 나주 풍류를 즐길 수 있는 국악 공연인 「천년의 樂 나주풍류열전」 등의 상설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나주목 향청은 인근의 금성관, 나주목사 내아와 함께 나주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주요 역사적 장소다.
* 금성관에서 200m
22.나주향교
나주는 천년목사골인만큼 나주목사가 머물던 관아가 자리 잡았고 그만큼 유림들의 위세도 막강했다. 나주시 과원동, 금계동에 있는 나주목 관아와 향교는 2007년 7월 31일 사적 제 483호로 지정되었다. 그 이유는 첫째, 나주는 농업이 산업의 근간을 이루던 삼국시대 때부터 곡창지대로 풍요를 누리던 지역이었고, 고려왕조부터 조선왕조까지 약 1,000년 동안 목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한 전라도의 대표적 고을이었다. 현존하는 관아 건물과 향교 건물들도 그에 맞는 수준의 위엄을 보여주고 있어 중세사회를 연구하는데 상당한 가치가 있다는 점이 평가되었다. 둘째, 나주 향교는 평지에 들어선 전묘후학의 배치형태를 띠고 있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향교의 건축모범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특히 보물 제 394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성전은 그 규모가 대단히 웅장할 뿐 아니라 양식, 격식이 뛰어나 조선후기 향교건축을 대표할 수 있어 건축학적 가치가 크다. 또한 나주향교는 조선시대 교육시설의 규모를 따지면 성균관 다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클 뿐 아니라 교육과 제사의 고유기능을 간직하고 있어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정렬사에서 1.8km
23.충경서원
나주 충경서원은 전라남도 나주시 삼영동에 위치한 파주 염씨의 문중 서원이다. 고려 후기의 문신인 충경공 염제신(1304~1382)을 주벽으로 모시고 있으며, 유림과 후손들이 그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1980년대에 건립하였다. 충경공 염제신을 비롯하여 염국보, 염흥방, 염연수, 염치중 등 파주 염씨 문중 인물 5위를 배향하고 있다. 1987년 5월에 착공하여 1989년 4월에 준공되었다. 서원의 명칭은 염제신의 시호인 충경'에서 따온 것이다. 고려 공민왕이 직접 그려 하사했다고 전해지는 '염제신 초상'(보물 지정)의 모사본이 보관되어 있다. (진본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문중 서원 특성상 평소에는 정문이 잠겨 있는 경우가 많아 내부 관람이 제한적일 수 있다.
* 김천일 묘소에서 460m
24.완사천
나주시 송월동 나주시청 앞 국도변에 위치한 이 샘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으며, 전라남도 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는 작은 옹달샘이었으나 1986년 석벽과 조형물을 갖춘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비단을 헹구는 샘'이라는 뜻의 완사천 설화는 고려 태조 왕건과 그의 둘째 부인인 장화왕후 오씨의 운명적인 만남이다. 고려를 건국하기 전, 궁예의 휘하 장수로 있던 왕건이 나주(당시 금성)를 평정하러 왔을 때의 일이다. 태조 왕건은 고려를 건국하기 전 이곳 나주를 몇 차례 내려오는데 10여 년 동안 네 차례나 된다. 행군 도중 목이 너무 말랐던 왕건은 완사천 근처에서 빨래를 하던 한 처녀(훗날의 장화왕후)를 발견하고 물을 청했다. 처녀는 바가지에 물을 떠서 주었는데, 특이하게도 그 위에 버드나무 잎을 한 움큼 띄워 건넸다. 급하게 물을 마시던 왕건이 이유를 묻자, 처녀는 "장군님께서 너무 급히 드시다가 체하실까 염려되어 천천히 불어가며 드시라고 띄운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왕건은 그녀의 미모뿐만 아니라 깊은 지혜와 배려심에 감동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그녀는 나주 호족 오다련의 딸이다. 왕건은 이곳 완사천에서 당시 17세의 장화왕후를 만나 인연을 맺고, 제2대 왕인 혜종(왕무)을 낳았다. 이 만남을 계기로 나주 세력은 왕건의 강력한 지지 기반이 되었다. 이 설화는 한국 역사에서 지혜로운 여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야기 중 하나로 꼽힌다. 완사천 일대는 고려 왕실의 발상지로서 역사적 의미가 깊으며, 인근에는 혜종의 위패를 모셨던 혜종사와 장화왕후 가문의 터에 세워진 흥룡사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태종 왕건이 장화왕후를 위해 지어줬다는 흥룡사가 있었는데 최근 그 절터가 발견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흥룡사는 금강진 북쪽에 있는데, 태조 왕건이 장화왕후와 인연을 맺을 때 장화왕후의 오씨 가문이 대대로 살았던 터로 혜종을 낳은 인연으로 건찰된 것이라 한다. 완사천은 자주시청과 나주역 중간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나주역 전근린공원과도 인접해 있다. 공원 내에는 말을 탄 왕건에게 물을 건네는 장화왕후의 모습을 형상화한 금빛 동상과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 MS에서 2km.나주역에서는 500m.나주역 도착하여 중식 후 탐방하고 숙소로 갈 것
25.영모재
나주시 삼영동에 위치한 영모재는 양성 이씨 문중의 재실로, 임진왜란 당시 나주 의병의 거병을 주도했던 애일당 이광익과 관련된 역사적 장소다. 양성 이씨 문중에서 조상을 추모하고 문중 회의 등을 열기 위해 건립한 재실이다. 임진왜란 때 호남 지역에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킬 것을 제안하고 사재를 털어 활동한 의병장 이광익을 배향하거나 그와 관련된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양성 이씨 문중의 역사와 호남 의병 활동을 상징하는 장소로서 의미가 크다.
* MS에서 1.3km
26.나주남파고택(박경중가옥)
전라남도 나주시 금성관길 7 (남내동) 나주남파고택은 박경중가옥으로 1987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53호로 지정된 이후 2009년 국가민속문화재 제263호로 승격되었다. 1884년 남파 박재규가 초당을 지은 것을 시작으로, 1910년대와 1930년대에 안채와 사랑채를 개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전라남도 내 단일 건물로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개인 주택으로, 안채, 사랑채, 초당, 행랑채 등 총 7채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관아 건물의 형태를 모방한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남도 지방 반가의 격식과 건축미를 잘 보여준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종가 사람들이 실제로 거주하며 관리해온 살아있는 생활 공간이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의식주 관련 민속 자료와 기록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과거에는 비공개였으나 현재는 일부 공간이 외부에 개방되어 고택 체험이나 관람이 가능하다.
* 나주 읍성에서 380m. 금성광에서 400m. 금성관과 나주읍성 중간지점에 있음
27.나주역전근린공원
나주역전근린공원은 전라남도 나주시 송월동 KTX 나주역 인근에 조성된 시민 휴식 공간이다. 과거 나주역 앞의 야산(배밭) 부지를 활용하여 조성되었으며, 역 이용객과 인근 주민들에게 녹지 쉼터를 제공한다. 소나무원, 락가든(암석원), 휴게 쉼터, 모던 원두막 쉼터 등이 마련되어 있어 산책하기 좋다. '에너지 체험 공원'으로서의 성격을 띠며 관련 안내도와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나주역 주변의 고질적인 주차난을 해소하기 위해 공원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252면 규모의 주차장이 함께 확충되었다. 시내 경관을 저해하던 국도 13호선 옆 암벽 절개지를 정비하고, 역 주변 교통 체계를 개선함과 동시에 시민들에게 여가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송월동 나눔숲은 나주역전근린공원과 인접해 있어 함께 걷기 좋은 코스다.
28.빛가람 호수공원
빛가람 호수공원은 전라남도 나주시 빛가람동(나주혁신도시) 중심에 위치한 약 16만 평 규모의 대규모 인공 호수 공원이다. 배메산을 중심으로 수변 산책로와 다양한 문화·체험 시설이 어우러진 나주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다. 하루 3번 운영되며, 화려한 조명과 음악이 어우러진 물줄기를 감상할 수 있다. 호수를 한 바퀴 도는 데 약 30~40분이 소요되며, 수국·장미 등이 식재된 웨딩 정원, 노정원 등 다양한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다. 밤이 되면 화려한 조명이 켜져 산책하기 좋으며, 특정 기간에는 별똥별·반딧불이 테마의 빛정원 페스타가 열리기도 한다.
* MS에서 8.7km 노인복지관.영산강정원입구에서 161번 광역버스 이용
* 광역버스 161번 노선:석기내.나주기점출발-풍물시장-영산포터미널-이창사거리 남교동-노인복지관.영산강정원입구-영강사거리.영산대교-영산중고.대덕A-나주국민체육센터-나주역-송월동행정복지센터-청년센터.자이리버파크-자모-석동-광석-수질복원센터-에너지팩토리-혁신클러스터단지-LH1단지정문-LH1단지-대방엘리움1차 센트럴레이크-이지더원아파트-영무예다음-빛가람초중교.봉황교-LH6단지-한아름유치원앞-루멘하임아파트-전파진흥원-우정정보관리원-중흥S클래스센트럴2차-증흥클래스센트럴1차-한전정문-산포농협하나로마트-중흥S클래스리버티-이노시티애시앙A-우미린A(북)-코오롱하늘채후문-효사랑병원.삼진종합앞-창교-호가정-동곡-유림-평호동-하선-상선-공군부대-도산역-신동사거리-광주송정역-광산구청-영광동-송정공원역-송정파출소(북)-공항역-광주공항.종점.회차
29.빛가람 전망대
빛가람 전망대 (배메산 전망대)는 빛가람 혁신도시 중앙 호수공원 중앙 배메산 정상에 있으며, 혁신도시 전체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전망대까지 편하게 올라갈 수 있는 모노레일과 스릴 있게 내려오는 돌미끄럼틀이 인기 체험 시설이 있다. 2016년 개관하였다. 빛가람 전망대는 전시동과 전망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시동은 혁신도시전시관과 기획전시실, 북카페 등이 있고 전망대는 총 5층으로 4층무인점포와 5층 전망대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체험시설로는 모노레일과 돌미끄럼틀이 있다. 북카페는 09:00 ~ 18:00 까지운영하며 18:00 이후에는 무인카페로 운영한다.
모노레일:9시부터 운행.성인 편도 1000원, 왕복2000원(올라갈때만 편도구매 원칙, 내려올때는 다시 구매) 전시관2층탑승장 앞에서 무인발권기에서 구매. 경로 동일.경로우대 없음. 모노레일은 전시동2층에서 탑승 330m 운행.20인승 2량 운행
* MS에서 9.1km. 노인복지관.영산강정원입구 정류장(MS에서 360m.거북이수퍼 바로 건너편)에서 광역버스 161번 승차(매일 30회운행)-16개 정류장 14분 소요-이지더원아파트 정류장 하차-860m-빛가람호수공원전망대.이외도 다른 버스들도 있다.
* 노인복지관.영산강정원입구 정류장에서 08:15분 버스 승차
30.전일빌딩245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45에 위치한 전일빌딩245는 5·18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간직한 상징적 공간이자, 현재는 시민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2017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조사 결과, 1980년 5·18 당시 헬기 사격으로 인한 245개의 탄흔이 발견된 것에서 비롯되었다. 1968년 완공 당시 광주 최초의 10층 이상 건물이었다. 80년 5월 당시 시민군이 대치하며 헬기 사격을 견뎌낸 역사의 목격자 역할을 했다.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는 역사 전시관뿐만 아니라 문화 체험 공간, 벤처 기업 입주 공간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10층·9층 (5·18 메모리얼 홀)은 헬기 사격 탄흔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당시 상황을 재현한 모형과 미디어아트를 전시한다. 전일마루 (옥상)는무등산,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금남로 등 광주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야경 명소다. 시민문화체험으로 매주 토요일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무료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예술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기타 남도관광센터, 디지털 정보 도서관, NGO 센터 등이 입주해 있다. 관람 시간은 하절기(3~10월) 09:00~20:00, 동절기(11~2월) 09:00~19:00 (전시관별로 상이할 수 있음) 입장료는 무료다.
* 5.18민주광장 곁에 있음. 전철 문화의전당역 하차후 먼저 전일빌딩 245를 볼 것
전망데크
탄흔보존구간
31.광주 5.18 민주광장
5·18민주광장은 광주광역시 동구 문화전당로(옛 전남도청 앞)에 위치해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앞 분수대 광장을 말한다. 1980년 5월 광주광역시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일어난 민중항쟁을 기념하기 ‘5·18 민주광장’으로 명명한 곳이다. 당시 시민들이 분수대를 연단 삼아 시국 선언과 집회를 열었던 역사를 기념하여 1996년 현재의 명칭으로 명명되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들이 계엄군에 맞서 집결했던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적인 장소다. 1980년 5월 14일 전남대에서 전남도청 앞 광장까지 행진한 전남대 학생들이 조선대 학생, 시민들과 합세, 이곳에서 민족민주대성회를 개최하면서 광주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장소가 되었다. 민족민주 대성회는 3일간 계속되면서 시국선언문이 발표되고, 민주화를 촉구하는 자유발언 등이 진행됐다. 특히 5월 16일에는 경찰의 협조하에 야간횃불집회를 평화적으로 진행되는 등 광주민주화운동의 산실로 평가되고 있다. 5월 21일 계엄군 철수 이후에는 이곳에서 민주화 투쟁 결의 등 각종 궐기대회와 시민집회가 열렸다. 현재는 5·18 관련 최대 행사인 전야제가 매년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광장에는 당시의 분수대, 상무관, 시계탑이 상징으로 남아있고 2005년에 건립된 민주의 종각이 있으며 5·18 기념일과 광복절에 타종한다. 당시 전남도청으로 사용된 옛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건설되었는데 현재는 복원되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이용되며 5·18 사적지로 1996년부터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은 항쟁 당시 가장 많은 시민이 모였던 중심지로, 사적 제5-2호로 지정되어 있다. 분수대는 1971년에 설치되어 항쟁기간 중 시민궐기대회가 열렸던 역사적 중심시설이다. 5·18 시계탑은 1980년 당시의 상황을 지켜본 상징물로, 매일 오후 5시 18분이 되면 '임의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진다. 상무관은 항쟁 당시 희생자들의 시신을 안치했던 곳으로, 민주주의를 위한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장소다. 민주의 종각은 2005년 건립되었으며, 매년 5·18 기념일과 광복절 등에 타종 행사가 진행된다. 제46주년 5·18 기념식은 2026년 5월 18일, 제46주년 국가기념식이 5·18민주광장(옛 전남도청 앞)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는 원형 복원을 마친 옛 전남도청의 개관에 맞춰 상징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결정이다. 빛의 음악 분수 운영은 2026년 4월부터 10월까지 야간 경관 콘텐츠인 '빛의 음악 분수'가 운영된다.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3회씩 화려한 조명과 음악이 어우러진 분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옛 전남도청 복원 및 개관은 약 2년 10개월간의 복원 공사를 마무리하고 2026년 5월 중 정식 개관하여 시민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전일빌딩245, 금남로 지하상가 등과 인접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 나주 빛가람 전망대-670m-루멘하임아파트 정류장 161번 광역버스 광주공항행 승차-22개 정류장 31분 소요-광주송정역하차-전철1호선(녹색) 소태 또는 녹동행 승차-문화의전당역하차-5.18민주광장
3.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은 아시아 문화 교류와 예술 창·제작, 전시, 공연이 이루어지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복합문화예술기관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대표적인 콘텐츠를 보여주는 상설전시와 기획전시, 레지던시 전시, 특별전시 등 대중과 함께 공감하고 즐기는 약 40개의 다양한 전시를 매년 선보이고 있다. 전시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요람인 광주의 지역적 정체성을 근간으로 전 세계인들이 공감하는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창의성, 혁신성, 전문성을 바탕으로 과학기술과 융합된 예술적 표현 매체를 적극 활용하는 전시를 선보임으로써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가능성을 관람객들과 공유하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의 인권과 평화 정신을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2015년 옛 전라남도청 자리에 건립되었다. 관람 시간은 내부 시설은 오전 10시 ~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 문화정보원과 문화창조원은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오후 8시까지 관람 가능하다. 외부 시설은 오전 6시 ~ 오후 10시까지 개방된다.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 및 1월 1일이다. 관람료는 기본적으로 무료이나, 일부 기획 전시나 공연은 유료로 진행될 수 있다. 어린이체험관은 만 4세~14세 미만 5,000원 / 만 14세 이상 3,000원이다.
전당은 크게 5개의 유기적인 공간으로 나뉜다.
문화창조원: 융복합 콘텐츠 전시가 열리는 창의적인 전시 공간이다.
예술극장: 아시아의 정체성을 담은 공연과 실험적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문화정보원: 아시아 문화를 연구하고 관련 수집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라이브러리파크가 있다.
어린이문화원: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관과 공연, 교육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민주평화교류원: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현장을 보존하며 민주·인권·평화의 가치를 공유한다.
* 5.18민주광장 곁에 있음
33.광주 국립 5.18민주 묘역(신묘역)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에 있는 5.18민주묘역은 1980년에 일어난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이 묻힌 공동 묘지다. 신묘역인 국립5·18민주묘지에는 1997년 조성된 현재의 국립 묘역으로, 높이 40m의 추모탑이 중앙에 서 있다. 탑신 사이의 달걀 모양 조형물은 '부활'을 상징한다. 민주 성지인 광주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묘역 안에는 5·18 영령의 묘가 있으며, 참배 광장, 전시 공간, 상징 조형물, 광주민주화운동 추모탑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5·18 묘지 중앙에 있는 사각기둥인 탑신은 높이 40m로 우리나라 전통 석조물인 당간지주를 현대감각에 맞게 형상화했다. 탑신 가운데 감싸 쥔 손 모양으로 중앙에 설치된 타원형 형상은 새로운 생명의 부활을 상징하며, 시시각각 변하는 태양광에 반사된 빛은 희망의 씨앗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5·18 추모관은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민주 영령들을 추모하고 그 뜻을 올바르게 계승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5·18민주화운동과 그 희생자 그리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 등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단순한 관람보다는 직접 참여하여 5·18 실상과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체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 5.18민주광장에서 중식 후 전남여고 앞 정류장에서 518번 시내버스 승차-5.18민주묘역 정류장하차
34.광주 5.18 망월동 묘역(구묘역)
망월동 묘역은 신묘역 조성 전 희생자들이 처참하게 묻혔던 곳이다. 현재는 민주화 운동가들이 안장되어 있으며, 입구 땅에 박힌 '전두환 비석'을 밟고 지나가는 참배 관습으로 유명하다. 5.18 망월묘역(망월동 구묘역)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들이 처참하게 실려 와 묻혔던 민주화의 성지이자 상징적인 공간이다. 현재는 바로 옆에 조성된 '국립 5.18 민주묘지(신묘역)'와 구분하여 '구묘역'이라 불린다. 비극의 시작은 1980년 5월 당시 계엄군에 의해 학살된 희생자들의 시신이 청소차와 트럭에 실려와 이곳에 가매장되었다. 군사정권의 감시와 탄압 속에서도 유족과 시민들이 매년 추모제를 열며 민주화 의지를 다졌던 장소다. 현재의 모습은 1997년 국립묘지가 완공되면서 대부분의 희생자는 신묘역으로 이장되었으나, 구묘역은 여전히 민족민주열사들이 안장되어 있으며 '오월 기억의 순례지'로서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전두환 비석 (밟는 비석)은 1982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담양 방문을 기념해 세워졌던 비석을 광주 시민들이 가져와 구묘역 입구 땅에 묻어두었다. 참배객들이 이를 밟고 지나가도록 하여 역사적 단죄의 의미를 담고 있다. 민족민주열사 묘역은 5.18 희생자뿐만 아니라 이한열, 강경대 열사, 백남기 농민 등 한국 현대사의 민주화 과정에서 희생된 분들이 이곳에 안장되어 있다.
위치: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85 (망월동).국립 5.18 민주묘지(신묘역)와 인접해 있으며, 두 곳을 연결하는 보행로가 마련되어 있다.
* 5.18민주묘역 탐방 후 망월동묘역도 탐방-공원묘지 정류장에서 518번 승차-문화의전당역 하차-전철1호선 광주송정역행 승차-송정역하차.161번 광역버스 나주행 승차-나주 노인복지관 정류장하차-석식후 숙소
35.광주학생운동발상지(전남여고 본관건물)
전남여자고등학교 (구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 여학생들이 항일 운동에 참여했던 중심지로, 학교 본관 건물이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학교 내에 별도의 역사관이 마련되어 있어 당시 여학생들의 활동상과 관련 기록물들을 확인할 수 있다. 광주학생운동발상지는 1929년 11월 3일 일어난 광주학생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지정된 곳으로, 당시 주축이 되었던 학교들의 교정 일부가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어 있다. 광주제일고등학교(구 광주고등보통학교)에도 있는데 가장 핵심적인 발상지다.
* 나주 광역버스 161번의 기점은 나주시 석기내(노인복지관.영산강정원입구정류장까지는 4번째 정류장)이며, 평일과 주말의 운행 시간표가 상이하다. 2024년 4월 노선 개편 이후, 기존 문흥종점에서 광주공항으로 종점이 단축되어 운행 중이다.
정확한 기점 출발 시간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2025년 8월 시행 기준 최신 정보 반영).
161번 기점(나주시 석기내) 출발 시간표
구분기점(석기내) 출발 시간
| 평일 (월~금) | 06:15 / 06:55 / 07:35 / 08:15 / 08:55 / 09:35 / 10:15 / 10:55 / 11:35 / 12:15 / 12:55 / 13:35 / 14:15 / 14:55 / 15:35 / 16:15 / 16:55 / 17:35 / 18:15 / 18:55 / 19:35 / 20:15 / 21:00 / 21:45 |
| 토·공휴일 | 06:15 / 07:05 / 07:55 / 08:45 / 09:35 / 10:25 / 11:15 / 12:05 / 12:55 / 13:45 / 14:35 / 15:25 / 16:15 / 17:05 / 17:55 / 18:45 / 19:35 / 20:25 / 21:15 / 22:00 |
* 광역버스 161번 노선:석기내.나주기점출발-풍물시장-영산포터미널-이창사거리 남교동-노인복지관.영산강정원입구-영강사거리.영산대교-영산중고.대덕A-나주국민체육센터-나주역-송월동행정복지센터-청년센터.자이리버파크-자모-석동-광석-수질복원센터-에너지팩토리-혁신클러스터단지-LH1단지정문-LH1단지-대방엘리움1차 센트럴레이크-이지더원아파트-영무예다음-빛가람초중교.봉황교-LH6단지-한아름유치원앞-루멘하임아파트-전파진흥원-우정정보관리원-중흥S클래스센트럴2차-증흥클래스센트럴1차-한전정문-산포농협하나로마트-중흥S클래스리버티-이노시티애시앙A-우미린A(북)-코오롱하늘채후문-효사랑병원.삼진종합앞-창교-호가정-동곡-유림-평호동-하선-상선-공군부대(여기까지는 나주)-도산역(여기부터 광주)-신동사거리-광주송정역-광산구청-영광동-송정공원역-송정파출소(북)-공항역-광주공항.종점.회차
* 광역버스 160번 노선(15~20분간격 자주있다):석기내기점출발-풍물시장-영산터미널-풍물시장(1)-보건소-이창동행정복지센터-선창-영강동행정복지센터-영강삼거리-영산중고.대덕A-나주국민체육센터-나주역-나주시청-KT나주빌딩-LG화학-송월동주공A-나주초교-남고문(서)-중앙로-성북동행정복지센터-나주중앙병원-나주터미널-성북A-구교육청-현대A정문-정렬사-싸이클경기장-동신대학교-호반A-나주북초교-청동-석현동-동산마을-노안남초교.학림-쌈지공원-해송정-용봉입구-창교-호가정-동곡-유림-평호동-하선-상선-공군부대-도산역-신동사거리-광주송정역-광산구청-영광동-송정공원역-송정파출소(북)-공항역-장암마을~~~~
* 광주송정역에서 광역 160번 승차하면-위 노선을 광주송정역에서 선창까지 역으로 보면 된다.
배차 간격: 평일 약 40분, 주말/공휴일 약 5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주요 경유지: 석기내(기점) - 영산포터미널 - 나주역 - 빛가람혁신도시 - 본덕 - 광주송정역 - 광주공항(종점).
실시간 버스 위치 및 도착 정보는 나주시 버스정보시스템(BIS)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나주 노인복지관 정류장에서 161번-이지더원아프타정류장(빛가람호수공원전망대 탐방후)다시 161번 승차광주송정역-전철1호선 녹동방면승차-13개역 24분(13km)-문화전당역 하차.4번출구-160m-5.18민주광장-이 코스도 좋다.
배차간격:35분
올때 이용시 광주송정역에서 광주공항기점출발하는 광역버스161번 승차
* 나주 광역버스 160번(배차간격:15~20분)도 광주송정역.광주공항까지 운행(광주문흥동종점)
올때 이용시 광주송정역에서 광주문흥기점출발하는 광역버스 160번 승차
배차간격:나주버스정보에서는 20~27분. 구글검색에서는 15~21분
광주송정역에서 올때 승차하면 나주 선창정류장하차-170m-숙소
* 광주 버스 518번 노선:문화전당역(묘지에서올때하차)-동구청-전남여고(묘지갈때승차)-대안시장(동)-광주고.4.19역사관-4.19기념관-중흥초교.광주역(동)-신안사거리-전남대-북구보건소-동부시잔0말바우시장(서)-말바우시장(동)-무등도서관-광주병원-동광주IC입구-농산물공판장-문흥지구입구(남)-도선사-중소기업진흥공단호남연수원-용호(북구)-석곡파출소-복다우-주룡-어운-국립5.18민주묘지(묘지갈때하차)-공원묘지(묘지에서나올때승차)-시립공원묘지~~~효령노인복지타운 종점
* 광주 버스 518번 운행시간표
<상무지구출발>:전남여고정류장에서 묘지 갈때:~11:05,11;55,12:45,13:35,14:25,15:15~
상무지구 ↔ 효령노인복지타운)이 약 100~110분이며, 전남여고는 전체 구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실제 이동 시간은 절반 정도인 40분 내외가 소요된다.
그럼 518 버스 전남여고정류장 출발시간~11:40분,12:30,13:15,14:05,14:55,15:45~
<효령노인복지타운출발>:공원묘지정류장에서 문화전당역 갈때:14:50,15:45,16:40,17:35,18:25~
효령노인복지타운(기점) → 영락공원입구 → 효령동 → 영락공원2단지 → 공원묘지(영락공원)
518번 버스를 이용하여 효령노인복지타운에서 공원묘지(영락공원)까지 이동할 경우, 순수 버스 탑승 시간은 약 10분 내외다. 배차 간격이 평일/공휴일 약 25~40분
그럼 공원묘지정류장에서 출발시간~14:55,15:50,16:45,17:40,18:30~
*시간계산:광주갈때:빛가람10:40분출발-광주송정역 11:10분도착-문화전당역12시도착-13시까지탐방-14시까지중식-전남여고정류장에서 14:55분 518번스 승차(전남여고에서 꼭 14:55분버스승차해야된다.
묘지에서 나올때:전남여고 14:55출발-국립5.18민주묘지정류장15:45분도착-17시20분까지탐방-공원묘지정류장에서 17:40분 518버스승차-문화전당역 18시도착-광주송정역 18:50분도착-19시까지 영명국밥식당석식-광주송정역정류장에서 19:30분경 160번 버스 승차-나주선창 20:30분도착-숙소9시경도착
* 숙소는 모텔스퀘어
영산동 영산강변.나주시 영산동 248-2번지
나주역에서 2.1km.택시 5,000원
나주역에서 모텔스퀘어 가는 버스(1,450원)
일반 410번, 광역 160번-6개 정류장 7분소요-선창정류장 하차-160m-모텔스퀘어
일반 100,101,111,112,113,114,115,411,414,799,701번-4개 정류장 5분소요-노인복지회관정류장-400m-모텔스퀘어(MS)
T.061-333-0927
객실:한실 8개, 양실 30개. 지상6층 지하0층
* 교통
1.갈때
건보 111번 버스 07:35분-만종역 08:22분 도착
만종역KTX 08:36분 출발-서울역 09:49분 도착 1시간 13분 소요 어른 11,400원
서울역KTX 10:32분 출발-나주역 12:44분 도착 2시간 12분 소요 어른 48,500원
2.올때
나주역KTX 10:15분 출발-서울역 12:28분 도착 2시간 13분 소요 어른 48,500원
서울역KTX 12:55분 출발-원주역 14:09분 도착 1시간 14분 소요 어른 11,800원
<일정>
1일차
나주도착.완사천.숙소입소.농혐하나로마트 장보기.동양척식주식회사문서고.영산포홍어거리
1.나주역 12:44분 도착-260m-현대옥식당.한식중식-330m-완사천-240m-나주시청정류장.160번승차(택시.2km 4300원)-섭은선창정류장하차.숙소입소.경윤은 풍물시장(1)정류장하차.장보기
2.영산포농협하나로마트쇼핑후 배달요청-880m-동양척식주식회사문서고.영산나루(숙소에서는740m)-440m-영산강홍어식당.석식-350m-숙소(약자 MS)
* 농협마트에서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있는 영산나루 카페까지는 880m
* 숙소에서 동양척식주식회사문서고가 있는 영산나루 카페까지는 740m
* 영산포농협 하나로마트.장보기.가는날까지 먹거리 넉넉히.배달요청
영산포농협 하나로마트 전화 061-331-4200. 구매 금액(예: 3~5만 원 이상)을 충족해야 하며, 근거리 지역에 한해 오후 시간대 배달. 오후 4시 30분 이전에 쇼핑 및 계산대를 마쳐야 배달.
* 숙소 근처 금성통닭 061-334-3047 전화해볼것.운영하는지, 운영시간, 등
2일차
타오르는강문학관.영산강역사갤러리.영산강황포돛배승선.나주읍성남문 남고문.광주학생독립운동진원지 구나주역.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동학운동농민희생자사죄비.나주곰탕거리.금성관.나주목향청.나주읍성 서문영금문.나주향교.정렬사
1.숙소-300m-강문학관9시입장-영산포역사갤러리10시입장.20분간관람-370m-영산강나루10시 30분도착.영산강황포돛배승선(11시배).11시50분하선
2.영산강나루-220m-선창정류장.광역160번 12:10분 승차.요금1450원.15분간격(4.5km 택시 8,900원)-11개정류장 11분소요-남고문정류장하차100m-나주읍성남문 남고문-620m-동학농민희생자사죄비-200m-나주역사공원-110m-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40m-광주학생독립운동진원지 구나주역-30m-광장기념탑
3.광장기념탑-1.3km 택시 4,300원-나주곰탕거리 나주곰탕하얀집식당.중식-10m-금성관-180m-나주목향청-370m-나주읍성서문영금문-270m-나주향교
4.나주향교-1.8km 택시 4,400원-정렬사-590m-정렬사정류장.광역160번승차.15분간격-(5.8km택시 9,000원)-21개정류장 24분소요-선창정류장하차-100m- 강변홍어식당 석식-120m-숙소
3일차
빛가람호수전망대.광주송정역.5.18민주광장.국립아시아문화전당.전일빌딩245.국립5.18민주묘지.망월공원묘지
1.숙소-360m-노인복지관.영산강정원입구정류장 161번광역버스 08:15분 승차-16개정류장 13분소요-이지더원A정류장하차-860m-빛가람호수전망대
2.빛가람호수전망대-670m-루멘하임A정류장 161번 광주행 10시25분 승차(석기내기점출발10시15분.루맨하임까지15분소요)-22개정류장 30분소요-광주송정역하차.전철1호선 녹동행이나 소태행 승차-13개역 23분 소요-문화의전당역 하차 6번출구-200m-국립아시아문화전당5.18민주광장-200m-전일빌딩245-90m-풍남옥본점식당 중식-350m-광주학생독립운동발상지(전남여고교내본관건물.가지말것)
3.전남여고정류장 버스518번 승차-28개정류장 45분소요-국립5.18민주묘지 정류장 하차-612m-국립5.18민주묘지-750m-망월동민족민주열사묘역-120m-망월공원묘지
4.망월공원묘지-270m-공원묘지정류장 518번 버스승차-28개정류장 52분소요-문화의전당역 하차-100m-문화의전당역 광주전철1호선 평동행 승차-13개역 22분소요-광주송정역 하차-1번출구 엘리베이터 승차-64m-정터국밥 등 많다.(썬베이커리.오른쪽-29m-영명국밥식당석식)(석식하지않고 그냥갈때는 3번출구근처 엘리베이터-78m-광주송정역 버스정류장 광역버스160번나주행 승차)-203m-광주송정역.광역버스160번승차.배차간격 15~20분)-44개 정류장 40분소요-나주 선창 정류장하차-140m-등대홍어식당 석식(광주송정역에서 석식하면 바로 숙소귀환)-360m-숙소
(또는 161번광역버스 나주석기행 승차-43개 정류장 59분소요-나주노인복지관 정류장하차-210m-숙소)
* 광주송정역2번출구 바로앞 영명국밥식당 062-942-2727 매일영업 05시~다음날 02:30분까지
4일차
나주역.서울역.원주역
1.숙소-170m-선창정류장 광역160번 08:35분 승차-5개정류장 5분소요-나주역 08:45분 도착-나주역주변탐방-나주역주변 또는 나주역안에서 가차안에서 먹을 중식거리 살것.또는 숙소에서 준비해올것-서울행 10:15분 ktx 탑승
2.서울역행 기차 안에서 준비해온 음식으로 각자중식-서울역 12:28분 도착-원주행ktx 12:55분 승차-원주역 14:09분 도착-귀가
* 160번 석기내 기점 출발시간: 08:17, 08:34. 08:51
석기내에서 선창까지는 5분 소요.선창정류장에서 나주역까지는 6분 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