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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Jazz 포럼의 머슴(?) Jerry Sloan입니다.
플레이오프도 못 나간 우울한 시즌이라 기분 전환을 위해 조용히 재즈 포럼의 글들을 돌아보면서 지냈는데
우리 팀만은 올타임 팀 관련 글이 없더군요. 그래서 이참에 제가 하나 남기고자 글을 써봅니다.
부족한 필력이지만 이쁘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
Jazz 프랜차이져의 역사는 원래 뉴올리언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74년에 뉴올리언스 재즈라는 이름으로 NBA의 18번째 구단으로 탄생된 팀으로 재즈 음악의 본고장인
뉴올리언스였기에 팀의 이름이 재즈가 되었죠.
이후 재정적 문제로 인해 뉴올리언스에서의 활동이 어렵게 되자
1979년 유타주의 솔트레이크 시티로 이적함으로서 팀의 이름도 Utah Jazz로 바뀌었고
우리가 아는 재즈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약 250만명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는 몰몬교도들의 조용한 도시에 연고를 두고 있는 팀이지만
컨퍼런스 우승 2회(1997,1998)
디비전 우승 8회(1984, 1989, 1992, 1997, 1998, 2000, 2007, 2008)
플레이오프 25회 진출이라는 굵직하고 실속있는 기록을 지니고 있는 팀입니다.
(우승을 제외하곤 모든 걸 다해본 구단이죠. 눈물좀 닦겠습니다...ㅠㅠ)
42년의 역사동안 수많은 선수들을 배출했는데 그중에서 영구결번된 선수들이 7명이 있는데 하나같이
어딜 내놔도 당당하게 소개할 수 있는 걸출한 기량을 지닌 선수들이었죠.
한가지 양해를 구할 점은 제 주관적인 의견으로 선정해본 올타임 팀이기 때문에 틀릴수도 있고
부족한 지식으로 쓴 글이기 때문에 부족한 점들이 많다는 겁니다. 그런 점들을 생각하셔서 관대하게
봐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
Starting Member
C-마크 이튼
1982년에 드레프트된 마크 이튼은 요즘에도 보기 드문 7"4이나 되는 거인으로서 11년 동안 재즈에서만
NBA 커리어를 보낸 선수였습니다. 비록 공격에 뛰어난 재능은 없었지만 수비에서의 존재감은
역대 그 어떤 센터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대단한 수비수였으며
2회의 올해의 수비수에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1985,1989)
강인한 신체를 바탕으로한 터프한 몸빵 수비는 카림 압둘자바 같은 대형급 센터들조차 애먹었을 정도로
좋았으며 특히 장신의 신장과 긴 팔을 이용한 블락슛에 일가견이 있었던 선수였죠.
재즈가 80년대에 실점에서 1~2위를 다투었던 팀이었는데 그 이유는 마크 이튼의 강력한 수비력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수비에서 큰 위력을 보여졌던 선수였지만
공격에서는 자신의 큰 신장을 활용해 활약을 하지 못했던 선수라서 아쉽습니다. 만약 이튼이
장신이라는 점을 활용해 공격까지 잘했다면 재즈의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튼은 93년을 마지막으로 코트 위를 떠났고 11년동안 골밑을 사수한 그의 공을 높이 산 재즈에서는
그를 영구결번시켰습니다. (53번)
커리어 평균 기록 : 6.0득점 7.9리바 3.5 블락
PF - 칼 말론
너무나 유명한 선수라서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겠죠?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85년 드레프트에 재즈에 지명되어 18년 동안 프랜차이져 스타로서 커리어를 보낸 메일맨 칼 말론은
우승반지만 없었을 뿐 역대 최고의 파워포워드 중 한 명이었습니다.
역대 2위(36928점)의 통산 득점과 엄청난 누적 스텟, 2차례의 정규시즌 MVP까지...
당연히 영구결번 되어 있는 선수고(32번) 동상까지 재즈 홈 경기장 앞에 모셔져 있는
재즈 역사상 최고의 에이스였던 선수입니다.
커리어 평균 기록 : 25.0득점 10.1 리바운드 3.6어시
SF- 애드리안 댄틀리
유타 재즈 역사상 최고의 스코어러중 한명이었던 애드리언 댄틀리는 76년에 드레프트 되어서
NBA 커리어를 시작해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다가 스펜서 헤이우드와 트레이드 되어
79년부터 재즈에서의 선수생활을 시작하면서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했던 선수입니다.
신장은 6"5밖에 되지 않아 포워드로서는 작은 선수였지만 탄탄한 몸과 뛰어난 센스를 바탕으로
81년부터 84년까지 평득 30점이상을 꾸준히 득점해줬으며 2번의 득점왕을 차지했습니다. (81년, 84년)
풋워크가 뛰어났고, 퍼스트스탭의 타이밍이 빨라서 페이크 동작에 이은 페네트레이션을 주 공격 옵션으로
사용했습니다. 상체의 강인함 또한 대단해 웬만한 빅맨들과의 몸싸움에서도 우위를 점하곤 했습니다.
슛까지 뛰어 나서 그를 수비하는 선수들은 그를 거리를 두고 수비할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신장에 비해
팔다리가 길어서 수비에 조금의 틈만 보이면 은근슬쩍 보폭을 늘여 양손을 모두 이용한 훅 슛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했기에 1:1로 막는건 거의 불가능했던 선수였죠.
당시 수비수들로서는 댄틀리가 페인트존에 들어오면 무조건 파울을 해야만 했고,
덕분에 자유투 시도 회수에서도 6번이나 리그 수위를 차지했던 선수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폴 피어스가 가장 비슷한 유형의 선수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댄틀리가 오기 전까지 유타 재즈라는 팀은 약체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댄틀리라는 스코어러를 중심으로 점점 상승세를 타서 플레이오프에 꾸준히 진출하는 강팀으로서의
기반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7년간 재즈에서 선수생활을 보낸 댄틀리는 후에 피스톤스로 떠났고
91년을 마지막으로 코트를 떠났습니다. 구단에서는 첫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루었고
강팀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일조했던 댄틀리의 공을 높이 사서 그를 영구결번 시켰습니다.(4번)
커리어 평균 기록 : 24.3득점 5.7 리바운드 3.0어시
SG - 피트 마라비치
재즈 역사를 살펴보면 뛰어난 스코어러들이 재법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스코어러를 꼽는다면
마라비치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개인능력만 따진다면 역대 최고 수준이었던 선수입니다.
공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다고 극찬받았던 매직 존슨 이전의 마술사였던 그는
우리에게 비하인드 백 패스로 유명한 선수지만 사실 리그 최고의 스코어러로서 명성을 떨쳤던 선수였습니다.
루애지애나 주립 대학에서 NCAA 역대 최고 득점을 세웠을 정도로 뛰어난 스코어러였던 그는
뉴올리언스 재즈에 와서도 그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죠. 마라비치가 재즈에서 6시즌을 보냈는데
3점슛도 없던 시절에 가드였던 그가 6시즌 동안 평균 25.2득점을 기록했고 득점왕(1977년)이 되었다는 건
마라비치가 얼마나 뛰어난 스코어러였는지 알 수 있죠. 어릴때부터 아버지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아
최고 수준의 드리블 능력과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었던 마라비치는 돌파면 돌파, 슛이면 슛으로 상대 수비수를
초토화시킬 수 있었던 만능 테크니션이었는데 지금으로 치면 코비 브라이언트와 같은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천부적인 스코어러였음에도 불구하고 팀보다 자기 자신을 우선시하고 즐기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기에 팀의 성적은 날이 갈수록 나빠졌고 결국 뉴올리언스 재즈는 연고지를 유타로 이전하게 되고
이후 80년에 유타에서 방출되어 팀을 떠나게 됩니다. 마라비치가 자신보다 팀을 우선시 하는 마음으로
플레이에 임했다면 아마 뉴올리언스 재즈는 단순히 마라비치 효과로 잠깐 흥행만 한 것이 아니라
유타에서의 재즈의 역사는 시작도 안했을지도 모릅니다. 선수생활을 은퇴한 후 마라비치는
1988년 1월 5일 캘리포니아 파사데나의 한 농구장에서 친구들과 3:3 픽업 게임을 하던 도중심장 발작으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록 팀을 승리로 이끌지는 못했지만 재즈 초기의 슈퍼스타였고
관중들의관심을 이끌었던 공을 높이 산 구단에서는 마라비치를 영구결번시켰습니다.(7번)
커리어 평균 기록 : 24.2득점 4.2리바 5.4 어시
PG -존 스탁턴
모르면 재즈팬이 아님을 증명하는 수준이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전설의 84년 드레프트에서 재즈에 지명되어 19년 동안 재즈 한 팀에서만 뛰었던
프랜차이져 스타 스탁턴은 통산 어시스트 1위(15806개), 통산 스틸 1위(3265개)의 대기록을 가지고 있는
역대 최고의 사령탑중 한명이자 유타 역사상 최고의 포인트가드였습니다.
커리어 평균 기록 : 13.1득점 10.5어시 2.2 스틸
Bench Member
C - 메밋 오쿠어
백업 빅맨으로서 2004년 피스톤스의 우승에 공을 세운 메밋 오쿠어는 04년부터 재즈에 와서
7년간 주전 센터로서 활약한 선수입니다. 6"11의 신장에 부드러운 움직임을 가지고 있는 오쿠어는
신체능력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자리 선정 능력이 좋아 이를 바탕으로 리바운드를 사수했으며
수비에서는 크게 빛을 보지 못했던 선수였지만 공격에서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던 선수였습니다.
빅맨답지 않게 슛 터치가 부드럽고 좋았으며 중거리포까지 가지고 있어서 상대 빅맨들을
밖으로 끌고 나와 공간을 열어줄수 있었고 가드가 찔러주는 패스를 받아 먹는데 일가견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장점들을 바탕으로 활약하면서 2007년에는 올스타에도 뽑히면서 전성기를 누렸지만
이후 부상으로 신음하면서 기량이 점점 떨어지면서 입지가 좁아지다가 결국
12년에 뉴저지로 떠남으로서 재즈에서의 커리어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커리어 평균 기록 : 13.5득점 7.0리바
PF - 폴 밀샙
2006년 드레프트에서 2라운드 47픽으로 재즈에 지명되었던 언더사이즈 파워포워드로
흙속에서 건진 진주의 유형에 속하는 대표적인 선수입니다. 신장은 6"8 밖에 안되지만
좋은 힘과 넘치는 에너지를 바탕으로 근성있는 플레이로 골밑에서 활약하면서 2007년 루키 세컨드 팀에 들면서
감독이었던 제리 슬로언의 눈도장을 찍는데 성공해 팀에서의 지분을 넓혔던 선수입니다. 이후 언더사이즈라
골밑에서의 경쟁에서 한계를 느끼면서 슛을 장착하고 기량을 꾸준히 향상시키면서 카롤로스 부저가 떠난
골밑에서의 축으로서 활약했습니다. 2013년 시즌이 끝나고 팀이 리빌딩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FA로 풀린 밀샙을 잡지 않기로 하면서 밀샙은 결국 애틀란타로 떠났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했던 선수라 안타까웠고 이후에도 애틀란타에 활약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애틀란타에서 올스타에도 뽑히면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중이라 흐뭇합니다. 말년에
유타로 돌아와서 커리어를 끝맺었으면 하는 선수입니다.
커리어 평균 기록 : 13.9득점 7.4리바(현재 진행형)
SF -안드레이 키릴렌코
24픽으로 재즈에 지명되어 NBA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 키릴렌코는 러시아 출신인데 이니셜(AK)에
등번호 47번이 절묘하게 조화가 되어서 별명이 AK-47로 관심을 끌었던 선수입니다.
6"9의 좋은 신체조건을 가진 키릴렌코는 뛰어난 신체능력에 다재다능함까지 갖추고 있어서
스탁턴, 말론의 시대를 끝낸 재즈를 이끌 새싹으로서 기대를 모았죠. 공격도 잘하고 패스 센스도 괜찮았지만
키릴렌코의 진가는 역시 수비에 있었습니다. 특히 큰 키와 긴 팔을 이용한 타점높은 블락슛에 능했는데
덕분에 키릴렌코는 2004년에 올스타 선정, 2006년에는 디펜시브 퍼스트 팀에 뽑히게 됩니다.
이후 데런-부저-키렐렌코의 절묘한 조화로 유타재즈는 서부 강호로 도약해
2007년에는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게 됩니다.
하지만 키렐렌코는 본인 스스로 성장과 전성기를 동시에 끝내는 미친 선택을 하게 되는데
바로 게임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했던 겁니다.( WOW라는 게임...)
결국 게임에 빠지면서 연습도 안하게 되더니 소홀한 몸관리로 부상에 빠지면서 기량이 뚝 떨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끝으로는 한 팀의 미래였던 선수가 게임에 빠져 망한 대표적인 예가 됩니다.
이후 계약이 끝난 키렐렌코는 미네소타와 브루클린을 돌다가 NBA를 떠나게 됩니다.
정말 귀한 재능을 지닌 선수였는데 게임으로 획을 그어서 지금도 아쉬운 선수입니다.
커리어 평균 기록 : 11.8득점 5.5리바 1.8 블락
SG - 데럴 그리피스
Dr. Dunkenstein, 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덩커였던 선수로 커리어 10년간 유타재즈에서만
뛰어온 프랜차이져 스타이기도 합니다. 덩크 이외에는 저평가를 받는 선수인데 신인왕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올스타에 한번도 뽑혀본 적이 없는 비운의 선수라 그렇지 올스타급의 기량을 지니고 있던
뛰어난 선수였습니다. 80년대 유타재즈의 스코어러였던 댄틀리와 함께 원투 펀치 역할을 맡았을 정도로 득점력이 좋았는데 그리피스가 부상으로 시즌아웃되기 전까지 5년간 평균 20득점 꾸준히 해주고 있었다는 것만 봐도
그의 득점능력이 얼마나 출중했는지 알 수 있죠. 신장은 6"4밖에 되지 않지만
48인치나 되는 엄청난 서전트를 바탕으로한 공중전의 달인이었으며
빠른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뛰어난 속공 능력, 세트 상황에서의 뛰어난 오프볼 무브와
타점높은 미들슛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죠. 선수 생활이 10년밖에 되지 않았던 건 한시즌 통째로 날려먹게 했던
발부상이 발목을 잡아 기량이 빠른 속도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후 재즈 구단에서는 10년간 팀을 위해
활약한 그리피스를 영구결번 시켰습니다.(35번)
커리어 평균 기록 : 16.2득점 3.3리바 2.1어시
PG -데런 윌리엄스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비록 팀과의 결별과정이 좋지 않았고
부상으로 한참 한물가긴 했지만 한때 2000년대 유타 재즈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던 일리노이 대학 출신의
에이스 가드 데런 윌리엄스입니다.
커리어 평균 기록 : 16.8득점 3.2리바 8.3어시(현재진행형)
위의 10명의 선수가 주관적으로 선정한 Utah Jazz All-Time Team입니다.
사실 스타팅 맴버에서는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는데 벤치 맴버를 생각할때 정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후보였던 제프 호나섹, 오스터텍, 카롤로스 부저, 리키 그린, 썰 베일리등이 떠오르더군요.
특히 4,5번 포지션에서는 고민을 많이 했는데 4번에서는 카롤로스 부저가 실적자체는 폴 밀샙보다 좋았지만
프랜차이져 스타라는 점을 +@ 점수가 더해져서 밀샙을 선택했는데 사실 썰 베일리도 고민되더군요.
5번 포지션의 경우 워낙 유타 역사상 재능없는 포지션이길래 넣기 참 힘들더군요. 기간이나 공헌도를 봤을때는
오스터텍이 들어가는게 맞지만 선수로서의 클라스는 오쿠어가 뛰어나고 재즈에서 2~3옵션을 맡았기 때문에
결국 오쿠어를 선택하는 등 쉽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2번의 경우 유타 재즈안에서의 뛴 기간이나 공헌도를 봤을때
그리피스 대신 호나섹을 넣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판단해서 그리피스를 넣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쭉 생각해봤는데 정말 좋은 선수들이 많이 거쳐간 팀입니다.
다만 5번 포지션이 너무 암울했습니다. 다른 팀 가면 써드팀에 절대 못들 오스터텍이나 메모가
거론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지만 몇년만 있으면 바뀔꺼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유타에
고베어라는 유타 5번의 흑역사를 바꿔줄 훌륭한 센터 유망주가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마크 이튼의 커리어를 넘어 재즈 넘버원 센터자리를 갈아치울 가능성도 있어서
내심 기대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위에 있는 선수들은 모두 재즈를 떠나고 없습니다.
하지만 다음 세대들이 착실히 자라면서 새로운 재즈를 이끌면서 비상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영건들중 당장 싹수만 본다면 스타팅에 올라갈 재능들은 보이지 않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그들에게는 젊음과 가능성이라는 재산이 있으니까요.
이 젊은 영건들이 잘 성장해줘서 부디 제가 쓴 올타임 팀 글을 수정하게 만들어 줬으면 합니다.
이번에 플레이오프를 탈락해 많이 실망스러웠고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들을 젊고 가능성있는 선수들이니 다시 한번 믿어보면서 응원하려고 합니다.
부족한 글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글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내야겠죠?
Let's Go Jazz~!!!
첫댓글 센터와는 인연이 정말 없는 구단이긴 하죠. 유능한 센터들이 득실대던 7~80년대에도 이튼 빼곤 이렇다 할 인물이 없었고...
저 같으면, 리키 그린, 제프 호나섹, 제프 말론, 썰 베일리, 칼로스 부저를 포함한 15인 로스터로 만들고 싶습니다. 제프 말론은 재즈 구단에서 세 시즌 반 밖에 뛰진 않았지만, 뛰는 동안엔 상당히 좋은 활약을 하며 빅 3를 구성했었고요. 썰 베일리는 현 시대에 뛰었다면 훨씬 고평가를 받았을 유용하고 착실한 선수였죠. 3번~5번까지 커버가 가능하고, 수비도 엄청 좋았고요, 받아먹기도 잘 하고 속공 피니쉬까지 능했던 운동능력 좋은 전천후 선수였으니까요.
사실 충분히 로스터에 넣을만한 선수들이었는데 굳이 퍼스트,세컨드만 짤려고 하다 보니 10명만 딱 넣어 버렸습니다. ㅎㅎ 제프 말론의 경우 능력에는 두말할 여지가 없는데 말 그대로 3시즌 반밖에 뛰지 않아서 고민하다가 대상에서도 빼버렸습니다. 최소 6시즌 정도는 뛴 선수들로만 넣었는데 그 부분에서는 사실 피트 마라비치도 5시즌이라 다른 선수들에 비해 짧은 재즈 생활을 했지만 구단 역사상 첫 슈퍼스타였고 끼친 영향이 큰 선수라 약간 예외적인 케이스죠. 박사님의 의견대로 썰 베일리가 지금 재즈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습니다. 장신에 다재다능한데다가 보기 드물게 기동성까지 갖춘 선수였으니까요.
폴 밀샙, 더마 캐롤, 카일 코버... 모두 유타에서 나가고 1~2시즌 후에 성공적은 NBA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죠.
그런걸 보면 지금 선수들이 당장 실망스러워도 더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사실 밀샙은 올스타로 뽑히지만 않았을 뿐 유타에서의 마지막 1~2년에는 기량만 놓고 따진다면 올스타에 뽑힐만한 기량을 보여줬죠. 카일 코버, 더마 캐롤은 그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쏠쏠히 좋은 선수들이라 어딜가든 잘할꺼라 믿었는데 그 이상으로 성장했을뿐이고...-_-;; 이런 저런 불만들을 많이 해봤는데 그래도 생각해보면 우리 팀을 거친 선수들중 좋은 선수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중하위 픽으로 뽑은 선수들을 잘 골라서 키우는 점도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진짜로 키릴렌코가 게임에 빠져서 커리어를 망쳤나요?? 그정도로 중독이 되는건가.. 저도 게임 엄청 좋아하지만 누가 나가서 농구나 축구하자고 하면 게임 바로 끄고 나가는데..선수가 얼마나 게임에 빠졌길래..wow를 안해봐서 모르겠지만..
너무 유명한 일화죠. 사실 키릴렌코가 연습을 특출나게 열심히 한다거나 독한 노력을 했던 선수는 아니었지만 묵묵히 할 일은 하던 선수였는데 WOW 때문에 연습도, 자기관리도 소홀해져서 더 성장할 수 있었던 여지나 롱런할 수 있었던 NBA 커리어까지 한꺼번에 말아먹었죠.
뒤늦게읽었습니다ㅜㅜ 덕분에 좋은글읽고갑니다 ㅋㅋㅋㅋ^^
부족한 글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