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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공양 운동을 하는 사람>....여러분이 나를 이렇게 기억해 주기 바란다.....2012.9.16
9월 16일자 사진을 정리하면서 다시 한 번
‘맞나’ 하고 확인을 했습니다.
짧은 소매를 입으신 분들이 많아서
혹시 여름 사진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지요.
이번 달에는 법회가 한주가 미뤄지긴 했지만
그래도 겨우 한달인데요.
그 사이 계절은 이렇게 극적으로 변했어요.
거리에 은행잎들, 플라타너스 잎들 수북하게
노랗게 붉게 낙엽이 되어 쌓이고...
어제 비는 그마저도 후두득 녹여버렸겠지요.
9월 법회날에 큰스님께서는
자원봉사 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다래헌에도
법당과 연결되는 스피커를 달았으면 좋겠다고
총무스님께 말씀하셨어요.
먼저부터 안타까와 하신 일이었어요.
공양을 다 드시고 자원봉사자들과 작별 인사를 하면서
“내가 총무스님께 말씀드렸으니 스피커
여러분이 다시 졸라봐요.”라고 말씀 하셨어요.
자원봉사자분들 중에 한 분이
큰스님은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느냐고 물었지요.
“나는 슴슴한 청국장을 좋아해요.”
큰스님이 웃으셨어요.
오늘 봉은사 큰스님의 점심공양에는
청국장이 올라올까요?
한달동안 얼마나 많이 ‘공양’이라는
말을 썼는지 꼽아보았습니다.
이제 법회에서 뵐게요^^~~
<법문>
그렇게 무덥던 날씨도 선선하게 바뀌었다.
불자들은 더우면 더운대로 시원하면 시원한대로
공부하기 좋은 계절이다.
모두들 건강하고
정신도 건강하도록 열심히 정진하시기 바란다.
<나무묘법연화경>
8. 경전을 믿고 널리 전하기를 권하다
비유품 마지막 부분이 되겠다.
경전은 부처님의 말씀이다.
이것을 공부해서 세상사와 인생에 있어서
‘진리다, 참다운 이치다’ 라고 납득이 가고,
‘내가 이러한 바르고 참된 이치를 몰라서 어리석게 살았구나’ 라고 이해하고 믿는다면
꿀먹은 벙어리처럼 혼자 수용하고 말아서는 안된다.
경전을 널리 전해야한다.
부처님은 이 법화경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 너무나도 큰 희생을 했다.
태자라고 하면 얼마나 호의호식하며 존경과 공양공경을 받았겠는가.
그런데 부처님은 180도 전환하여
출가하여 6년이라고 하는 세월을 피나는 고행을 했다.
역사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대강 듣고 말지만
이 사실은 참으로 엄청난 일이다.
부처님은 6년 고행 후 보리수 나무 아래서 정각을 성취했다.
이 사실은 태자의 지위를 버린 일이나 6년고행 보다
더 큰 일이다.
태자의 지위를 버린 사람은 많다.
고행한 사람도 더욱 많다.
그러나
정각을 성취했다고 하는 사실은 아무에게나 있었던
일은 아니다.
그러한 투자와 희생과 경력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여 우리에게 고구정녕하게
일러주신 말씀이 경전이다.
이것을 우리가 열심히 공부하고
깊은 사유를 통해 나름의 이해가 있고
감동이 된다면
가까운 가족에게 친지에게 이웃에게
열심히 전해야 한다.
그것이 불자가 할 일이고 부처님께 공양하는 일이다.
어릴 때 선생님이 심부름을 시키면 그날은 구름을 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랑에 또 자랑거리였다.
그런데 우리는 부처님의 심부름꾼이다.
부처님이 바라는 바를
경전을 통해서 이해하고 그 심부름을 한다면 얼마나
자랑스럽고 보람된 일이겠는가.
우리는 진리의 심부름을 하는 것이다.
참되고 바른 이치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일이다.
거기에 마음을 담아 신심을 담아 곰곰이 생각한다면
대단한 일이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일이
너무나도 절박하여 ‘송장을 타고라도 뭍으로 나가서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것처럼 절박한 일이다‘라는
비유를 했다.
어떤 사람이 항해에 나가 배가 전복되어
사람들이 다 죽고 같이 타고 있는 친구도 송장이 되어
떠내려 갈 때, 친구의 송장이라도 타고나가
생명을 부지해야 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부처님은
법을 전한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수많은 생과 금생을 통해 쏟은 열정과
공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45. 그대 사리불이여, 내가 말한 이 진실한 법은
세간의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려고 설하는 것이니라.
진리의 가르침을 통해, 인생사에 있어서
참 되고 바른 이치를 전하여 세상사람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것이다.
46. 만약 어떤 이가 이 법을 듣고 기뻐하여 받아지니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퇴전하지 아니하는 보살이니라.
이 법은 일불승사상이다.
사람이 부처님이라고 하는 인불사상이다.
만일 어떤 이가 이 경을 믿고 받아 가지면
이 사람은 이미 지난 세상서 부처님을 만나 뵙고
공경하며 공양하고 경전의 가르침까지 들었느니라.
지난 봉은법회지에 보니 인불사상을 실참 속에서
실천하는 아이디어를 공모하고 있었다.
나는 공양이라는 말을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운동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부처님께 이바지 하는 일을 공양이라고 한다.
절에서는 때가 되면 무조건 분별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공양하십시오” 라고 한다.
부처님께 하는 말을 어찌하여 모든 사람에게 사용하는가.
거기에는 근본적으로 법화경 인불사상이 깔려 있다.
당신도 부처님이므로
부처님처럼 공양 받아 마땅하다.
당신은 그런 존재다라는 의미다.
불성인간임을 깨우쳐주는 의미다.
그래서 이 공양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 장소가 된다면
무조건 쓰는 운동을 전개하면 좋겠다.
불자가정이라면 밥 먹으라는 말보다도
“공양하십시오.”
아이들에게도 “공양하십시오.”라고 하면 좋겠다.
아이들이라도 당연히 부처님이니까, 존칭을 쓰는 것이다.
얼마나 품위있는가.
내가 이것을 자주 권했더니 절에도 잘 안가는 거사님인데
어느날 아이들 어머니보고
“보살님 고맙습니다.” 라고 하고
와서 공양을 하더라는 것이다.
(박수)
공양중에는 법공양이 제일이다.
공교롭게도 오늘 제가 법공양 ‘당신은 부처님’을
2천부를 준비해 왔는데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여건과 맞물렸다.
이 기회에 저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법공양을 하는 사람이다.
법공양에 제일 주력하는 사람이다.
어느날 송광사에 갔더니 탁자에 보왕삼매론이
놓여 있었다.
1988년 올림픽이 있는 해,
내가 그걸 가지고 인쇄소에 가서 수만 장을 인쇄했다.
테이블을 하나 맞춰서 범어사 일주문 앞에 놓고
그 위에 보왕삼매론을 잔뜩 놓았다.
그 주변에 사진사가 있었는데 그에게 관리해달라고
해서 그때부터 법공양을 시작했다.
88올림픽때 영어 일어 등의 법구경을 짜집기 하여
8페이지 되는 가벼운 책을 만들어서
선수촌 법당에 쌓아 놓았다.
25년간 그 일을 펼쳐왔다.
한 종이 경전, 한 페이지 경전이라고 해서
일지경도 만들어 끊임없이 법공양 해온다.
네모난 플라스틱에 부처님 경을 써서 관광객이 오는 나무밑에 걸어 놓았다.
와서 그 밑에서 쉬면서 부처님 말씀 한마디라도
알고가라는 의미였다.
이런 것들은 나의 창작이 아니라 경전에 다 근거가 있다.
설산동자는 어느날 길을 가다가
‘제행무상 시생멸법 (諸行無常 是生滅法)’ ‘제행은 무상하여, 생멸이 있으니’
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이 소리가 어디서 나왔는가 살펴보니 흉악한 나찰이 나와서 자기가 그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부족한 것 같다.
나머지 구절까지 소개해 달라고 하니 나찰은 배가 고파서
전해 줄 수 없으니 공양을 주면 전해주겠다고 하였다.
‘그럼 좋다. 무엇을 먹느냐’고 설산동자가 물었다.
‘나는 사람의 뜨거운 피를 먹는다.’ 나찰이 말했다.
‘내가 나의 뜨거운 피를 주면 내 목숨이 사라지는데 어떻게 알아 듣겠나. 그러니 내가 먼저 듣고 틀림없이 당신에게 공양하겠다.’ 설산동자가 말했다.
그래서 나찰이 그 약속을 믿고 다음 구절을 전해주었다.
‘생멸멸이 적멸위락 (生滅滅已 寂滅爲樂)’‘생멸을 멸하면 적멸의 락이 있다’
그러나서 나찰이 잡아먹으려 하자
이 귀중한 법문을 듣고 죽을 수 없고 석벽에 적고 죽겠다고 하여서 설산동자는 자기의 피를 내서 석벽 곳곳에 그 구절을 썼다.
그리고 나서 ‘나무에 올라가 떨어질테니 당신이 받아먹으시오’하면서 떨어진다.
그러자 나찰은 제석천으로 변해서 설산동자를 받아들며
‘내가 당신의 수행을 시험하기 위해서 하늘에서 내려온 제석천이다. 당신은 참으로 갸륵하고 훌륭한 수행자다’라고 하였다.
그 설산동자가 석가모니의 전신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열반경에 전해진다.
“당신은 부처님”이라고 하는 이 책이
법화경 사상 뿐만 아니라 불교 경전의 엑기스를
다 뽑은 열매다.
내가 뜬금없이 지나가다가 주지스님에게 법공양 해달라고
전한다면 모양이 아니다.
그래도 여기 열달가까이 법회를 하니까 이제
자연스러운 시기가 되었다고 해서
주문하여 올려보냈는데 오늘 마침 이런 기회가 되었다.
우리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데
음식을 공양하는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법공양을 염두에 두고 부처님의
법을 전해준다면 더 값진 일일 것이다.
<당신은 부처님>에는 법화경 뿐만 아니라
여러 선사들의 사상과 불국사 다보탑의 의미도 나온다.
사람이 다보다.
그걸 일깨우기 위해 불국사에 다보탑이 있다.
사람의 존귀함을 드러낸 탑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문화적인 차원에서는 알 까닭이 없지만 불자들은 그런 의미를 알아야 한다.
46. ...만일 어떤 사람들이 그대의 말을 믿는다면
그는 곧 나를 친견한 것이며 그대 자신도 친견한 것이 되고
비구승 대중들과 보살들을 친견한 것이니라.
법화경은 깊은 지혜가 있는 이를 위하여 설한 것이니
얕은 소견 가진 이가 들으면 미혹하여 이해하지 못하느니라.
부처님을 친견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아함부경전에는 박칼리 비구경이 있다.
박칼리 비구가 나이들고 병들어서
어느 신도님 집에서 숨을 거두게 되었다.
박칼리는 신도님을 시켜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눈감는게 소원이다. 그 말을
전해 주시오’하였다.
부처님이 그 말을 듣고 달려와 위로의 말씀을 한다.
박칼리 비구가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며 일어나
마지막으로 절을 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부처님은 돌변하여
‘썩어가는 몸뚱이가 썩어가는 몸뚱이에게 절을
한 번 더 한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는 것이고
나를 본다고 하는 자는 법을 보는 것이다.
나의 가르침이 곧 나다.’라고 하였다.
박칼리와 부처님은 얼마나 차원이 다른가.
‘내 정신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된다’
부처님의 경전을 전한다는 것은 부처님을 친견하는 일이다.
부처님의 정신을 만나는 일이다.
나를 생각할 때
‘저 스님은 법공양 운동하는 사람이다’
그 생각을 해주면 좋겠다.
‘부처님의 법을 많은 사람에게 전하는 운동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기억해 주면 좋겠다.
만약에 내 묘비명을 쓴다면
“법공양 운동하던 사람이 여기 잠들었다”
나는 대만 정공법사와 증엄스님을 존경한다.
대만의 정공법사는 불타교육기금회를 통해
전세계에 법공양을 전하는 사람이다.
우리나라에도 컨테이너로 얼마나 많은 법공양을 올렸는지
모르고 나도 그 책을 많이 받아 보았다.
부처님의 법을 만천하 사람에게 공양올리고자 하는 그 뜻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내가 흉내를 내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그 스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뜻이
같으니 항상 정공법사와 함께 하고 있다고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전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많은 사람에게 깨우쳐 주려고 하는 마음이 같다.
일지경을 수십만장 찍어서 많은 사람에게 법공양하지만
‘저 봐라 읽지도 않고 아무 데나 버리지 않느냐, 왜 그런 짓을 하느냐’하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저는 만 명이 가져가서 그 중에 한 사람만 깨우쳐도 천배 만배 소득을 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정공법사는 전 세계에 수백만 권을 보낸다.
그 가운데 한사람이라도 거기에 감동하고 눈을 뜬 사람이 있다면 그 값을 했다고 보는 것이다.
원력을 가진 사람은 정신이 그렇다.
이런 기회에 내가 법공양 운동을 말씀드리는 것은
‘뭔가 사람으로 태어나 나도 저런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 사람만 나오면
그 값을 하는 것이다라는 생각 때문이다.
사리불이여, 그대도 오히려 이 경전에 대하여
믿는 마음을 가지고야 들어갈 수 있거늘 하물며
다른 성문들이겠는가.
그들 다른 성문들도 부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써
이 경을 수순하지만 자신의 지혜는 아니다.
이 경전을 믿음으로 해서 내가 100퍼센트 소화된 뒤에 하는 것은 어렵다.
조금만 이해헤도 ‘부처님 말씀이니까’하고 믿고 들어가면 된다. 무조건 믿는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47. 또 사리불이여, 교만하고 게으르고
나라는 소견이 있는 이에게는 이 경전을 설하지 말라.
범부들은 소견이 얕아서 오욕에만 탐착하여
경전을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니 그런 이들에게도 역시 설하지 말라.
부처님은 씨앗을 뿌리되 심지어 바위에도 뿌리는 분이다.
혹 그 씨앗이 어디로 날려가서 싹을 틔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서 법문을 못 듣더라도 미국 쯤에 이민을 가서 고생하다가 거기서 새롭게 발심하는 수가 있다.
실컷 공부하라고 할 때는 안하다가 엉뚱하게 다른 곳에 가서
고생하다가 부처님 생각이 나서 발심할 수가 있다.
씨앗을 바위에 뿌려놔도 그것이 날려가서
흙을 만나고 습기를 만나 싹을 틔울 수가 있다.
불법의 이치가 그와 같다.
그런 부처님인데 여기 나온 말씀은 그 반대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형이하학적인 사람에게는 부처님의 말씀이 이해가
안된다는 뜻이다.
물질 가치에만
인간의 가치를 두고 사는 사람에게는
전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다.
똑같은 사람인데 사람의 차원이 그렇게 다르다.
그래서 47번과 48번에는 진리를 등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48.... 오직 생각하는 것은 물과 풀 뿐이요 다른 것은 모르느니라.
부처님이 죄없는 소나 말, 당나귀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와 같은 사람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자나깨나 평생 의식주 문제 하나만 가지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 다행히 부처님법을 만났는데
기껏해야 의식주 문제 해결에 평생 마음을 묶어가지고서야
어찌 부처님 제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다른 차원의 눈을 뜰 수 있어야 사람이다.
법화경은 무서운 소리다.
우리에게 귀에 달콤한 소리만 하지 않는다.
사정없이 형이하학적인 인간을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도 채찍을 맞을 땐 맞아야 한다.
나는 법화경 이 구절을 보고 얼마나 반성했는지 모른다.
승속을 막론하고 사람으로 태어나 의식주 문제에만 목을 매면 사람이냐
동물도 의식주 문제엔 열심히고 지 새끼를 위하는 것은 더 한다.
50.....만약 사람으로 태어나면 귀머거리, 소경, 벙어리에
가난뱅이 등 이런 못난 것으로 자신을 장엄하리라.
법화경을 등진사람은 못난 것으로써 장엄한다.
못난 것도 그 사람을 장엄한 것이다.
어째서 장엄이라는 말을 썼을까.
법화경을 비웃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세상 사람이 살아가는 데 대한 참다운 이치를 등진
사람들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어디 있는지 어떤 종교를 믿든지 상관없다.
참다운 이치를 등진 사람의 삶은 바로 이러한 삶이다
하는 이야기다.
겉으로는 번지르르 하지만 사실은 그와 같은 삶이다.
51. 만약 어떤 사람이 영리하여 지혜가 있고 총명해서
많이 듣고 모두 기억하여 부처님의 도를 구하는 이라면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설하여 줄 것이니라.
이것은 경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의 경지다.
법화경이야기에 귀가 솔깃한 사람이 영리한 사람이고 지혜가 있는 사람이다.
...만약 어떤 이가 지난 세상에서 백 천 만 억 부처님을 친견하고 온갖 선근을 많이 심어서 마음이 깊고 견고하면
이러한 사람들에게 이 경전을 설할지니라.
백천만억 부처님을 친견한다고 했는데
어디에 백천만억 부처님이 있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불교상식으로는 이런 말이 풀리지 않는다.
모든 사람 보든 생명을 부처님으로 섬길 때
‘백천만억 부처님’이라고 하는 말이 성립한다.
앞에서 말한
“공양하십시오.” 라고 말하는 의미 속에
이미 ‘당신은 부처님’이라고 하는 의미가 포함된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일상에서 “공양”이라는 말을 쓰자는
운동을 하자는 것이다.
그 사람이 신심있다,
불교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 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전에는 그것을
“자미득도선도타(自未得度先度他)”라고 표현한다.
자기는 제도하지 못해도 남을 먼저 득도케 하는 것이다.
이것이 불심이다.
발심, 불심, 신심, 불교에 대한 이해, 불교를 믿는다 - 이 모든 말의 의미는 자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다른 사람부터 우선시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다른 사람이 전부 부처님이기 때문이다.
부처님 먼저 공양하시고
부처님 먼저 내리시고
부처님 먼저 차를 타시라고 하는
마음이 불자에겐 스며있다.
오늘 ‘당신은 부처님’이라고 하는 책 속에
왜 우리는 중생을 부처님으로 공경하고 찬탄하는가.
우리나라 불교는 선불교라고 하면서도
임제스님의 사상을 본받고 있다.
임제스님은
‘임제 이전에 임제없고 임제 이후에 임제없다’고 표현한다.
이것은 가장 큰 칭찬이다.
그런 임제스님의 사상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부족한 게 무엇이냐 [흠소십마(欠少什麽)]’현재 이대로 완전하다는 것이다.
조건이 좋아서 완전무결하다는 것이 아니다.
몸에 온갖 병고가 있더라도 누구나 다 완전무결한 존재다.
이 말이 곧 ‘당신은 부처님이다’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임제이후의 스님들은
전부 임제 스님에게 줄을 선다.
임제스님의 사상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현재 이대로 완전무결하다는 사상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불자는 땀흘리며 기도하고 용맹정진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전을 통해 무엇으로 깨달아야 하는가?
내 자신에 대한 존귀성이다.
우리는 내 자신의 소중함을 모른다.
그것을 안다면 부러울 것도 없고
당당하고 행복하다.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이 그와 같이 소중하다.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이것을 깨닫고 느끼고 확신을 갖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한 대승경전을 통해
연마를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면 어느날 무릎을 치며
‘참으로 나는 현재 그대로 부처님이구나. 완전무결한 존재구나.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완전무결한 존재구나’ 하고 알 것이다.
법화경은 어디를 펼쳐도 일불승 사상이고
인불사상이다.
당신은 부처님이라고 하는 사상이다.
이것이 일상생활에 적용이 된다면 더 이상 나아갈 데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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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슴슴한... 무슨 뜻인가요?
녹취하다가 간혹 걸리는 방언. 머트롭다는 말을 아세요?
아마도 짜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것 같아요. 머트롭다는 말은 모르겠구요.
옴마야 휙휙 날으는 수경심 보살님.
'날기만 하나?' 꾀꼬리 수경심 보살님.
건재 하셨구려? 노 시모는요?
있는 그대로 잔잔하게 펼치는 일상사 얘기들이 참 그립네요.
슴슴한 청국장 = 삼삼한 청국장.
삼삼하다는 눈앞에 보이는 듯 하다. 또는 싱거운 것은 아닌 짜지않다지요?
^^뒷북이지만~~ 두 분 말씀이 다 맞는 것 것 같아요 ...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 정말 좋지요. 오늘 저도 본의아니게 어떤 집에 초대되어 여자 넷이서 실컷 수다를....나이를 초월해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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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가 할 일.. 법공양 하는 일..
공양하십시오.. 저도 실천하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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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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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대로 완전하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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