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8058편 폭파 김현희
김현희(金賢姬)
( 1962년 1월 27일 - )는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의 범인이다.
범행 후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사면조치 되었다.
생애
북조선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외국어대학 일본어과를 졸업했고,
공작에 투입되기 전까지 일본인 납북자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로 추정되는
리은혜(李恩惠)로부터 개인 집중교육을 받았다. 덕분에 일본어 구사 능력이 뛰어나다.
경찰에 잡히기 직전에 하치야 신이치(일본어: 蜂谷 一)라는 일본명으로 활동한
공범 김승일(金勝一)과 음독 자살을 도모했지만 김현희는 목숨을 건졌다.
이력
외교관인 아버지 김원석(金元錫)와 교사인 어머니 림명식(林名植)
사이에서 태어났고, 태어난지 얼마 안 지나서 아버지의 부임지인
쿠바로 갔다가 4살 때 평양으로 돌아갔다.
여동생 김현옥(金賢玉, 남편은 심장마비로 사망),
남동생 김현수(金賢洙)와 김범수(金範洙, 15세 때 위암으로 사망)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1987 년 11월 29일 하치야 마유미(일본어: 蜂谷 由美)라는
일본명으로 가장하여, KAL기 폭파사건의 폭파 범행(수사결과)
1989 년 2월 3일 검찰(서울지검)에 의해 살인, 항공기폭파치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
1990 년 3월 27일 대법원, 김현희 사형 확정 판결.
1990 년 4월 12일 사면
후에 외교관인 친아버지를 포함한 가족이 강제수용소에 수용된
것을 알게 됨.1991 년 6월 2일 수기집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발간.
1997 년 12월 28일 사면 이후 자신을 경호했던 전직 안기부
직원과 결혼. 현재 서울에서 거주.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을 저지른 김현희가
1987년 12월 바레인 공항에서 붙잡혀 김포공항으로 압송돼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대한항공858기 폭파사건 - 일본인 하치야 마유미로 가장해온
북괴공작원 김현희가 15일 오전 대한항공858기 폭파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곤혹스런 표정으로 대답하고 있다. 1988/02/09 동아일보 자료사진
김현희 피고인 - 21일 오전 대한항공기 폭파사건2차공판에 출정한
김현희는 체크무늬 상의에 갈색골덴바지차림 김씨는 이날 출정하면서
머리를 약간 숙인 자세로 손수건으로 입을 가렸다.
1989/03/15 동아일보 자료사진
KAL기 폭파범 - 대한항공기 폭파사건2차공판 재판받기 위해
김현희가 여수사관의 호송을 받으며 들어가고 있다.
1989/07/08 동아일보 자료사진
김현희 외가친척상봉 - KAL기 폭파범 김현희가 남한에 살고 있는
외가 친척들을 뜻밖에 만나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1990/07/21 동아일보 자료사진
예배를 드리는 김현희 - 16일 오후 자유의 몸으로 기자회견을 가진
KAL기 폭파범 김현희가 회견에 앞서 침례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있다.
1990/05/17 동아일보 자료사진
소설가 노수민(59) 씨가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의
범인인 김현희의 자서전을 대필한 사실을 공개했다.
노씨는 5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국가안전기획부의 의뢰로
1990년 무렵 2년여 간 김씨를 가까이 지켜보며
자서전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1991년)와
'사랑을 느낄 때면 눈물을 흘립니다'(1992년)를 대신 집필했다"고 말했다.
사진은 노수민씨가 김현희의 자서전을 집필할 당시 함께 찍은 사진.
2009.1.5 연합
[1987년 대한항공기 폭파범 김현희씨가 입을 열었다.
김씨는 2009년 3월 11일 오전 부산벡스코에서 자신의 일본어
선생이었던 다구치 야에코씨의 오빠이자 '일본인 납치 피해자
가족회의' 대표인 이즈카 시게오(70)씨와 다구치 야에코씨의
아들 이즈카 고이치로씨와 함께 기자회견을 가졌다.
[출처] 대한항공 8058편 폭파 김현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