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유형의 소비자가 등장하고 유통구조의 대변혁이 시작되고 있다.
이른바 무한경쟁시대이다. 이 변화의 시대에 기업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은 피터 드러커의 말을 빌릴 필요도 없이 마케팅과 혁신. 90년대는 모든것이 변하고 변해야 한다.
매거진X는 이런 시장 환경의 흐름을 헤쳐나가는 슬기로운 시장관리 방법을 흥미롭고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소개한다. <편집자의 도움말>
소비자들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대부분 마케팅 기법에 속아서 물건을 사는 경우가 많다. 「상술(商術)」에 넘어가는 것이다. 똑같은 물건을 팔아도 잘 파는 상인이 있고 못파는 상인이 있다. 그만큼 상술(마케팅)은 중요하다. 시계 판매에도 이 원리가 적용된다. 일반적으로 시계점에 들어가 보면 바늘시계의 대부분이 10시 10분에 맞춰져 있다. 특히 건전지 없는 쿼츠시계가 그렇다. 국내의 경우 바늘 위치가 제멋대로지만 시계로 유명한 스위스나 일본 시계점의 시계는 약속이나 한듯 10시10분을 가리키고 있다. 왜 그럴까. 사실 이 「10시10분」은 시계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스위스 메이커의 아이디어다. 역사도 오래됐다. 태엽시계부터 사용해온 마케팅 기법이다. 스위스 메이커들이 이 V자형을 고안해낸 것은 12시 표시점 아래 적혀있는 브랜드명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역삼각형 구도는 또 디자인 감각을 살리고 동적인 느낌을 주는 역할도 한다.
스위스를 제치고 시계왕국으로 부상한 일본 시계업체들은 아예 한술 더뜬 마케팅을 구사하고 있다. 세이코는 10시 8분 42초에 모든 시계를 맞춰놓고 시티즌은 10시 9분 35초를 고집하고 있다. 초침만 보면 브랜드를 알 수 있다. 초침을 35초나 42초에 두는 것은 훌륭한 삼각분할이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초침이 움직이는 TV CF에도 정확하게 이 시간이 나온다
이를 위해 CF촬영을 「특별 감시」할 정도다. 요즘은 CF에 해지는 배경이 자주 나오는데 이때는 관계부서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디지털 시계도 마찬가지. 시티즌은 「MON 7, 12시 30분 28초」, 세이코는 「MON 6,10시 8분 42초」에 맞춰져 있다. 월요일로 한 것은 한주의 시작을 나타내지만 숫자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세이코의 경우 현재 「59초」로 바뀌었는데 「42」가 일본말로 「시니」(死に:죽은)로 읽혀 불길하다는 내부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백년 전통의 스위스를 이긴 비결을 보는 것 같은 치밀함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마케팅이 없다. 도금 잘하고 광고 잘하는 것은 소비자가격을 올릴 뿐이다. 국내 굴지의 시계 생산업체들이 매일 엄청난 광고를 하고 있지만 그것뿐이다. 심지어 마케팅부서에서조 차 「10시10분」 개념을 모르는 사람이 허다하다. 카탈로그 정도만이 10시 10분을 형식적으로 흉내내고 있다. 업체마다 정해진 규격도 없다. CF 찍을 때마다 달라진다. 사라고 강요하는 것보다 사게끔 만드는 방법을 개발하는 일이 절실하다. <서광원 기자>
(2) 산타클로스의 탄생
당나귀 타고 선물 나눠주던 터키 성자, 코카콜라 판촉위해 지금의 산타발
크리스마스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산타클로스일 것이다. 산타는 특히어린이들에게 루돌프사슴이 이끄는 썰매를 타고 선물을 주러오는가장 반가운 「할아버지」다. 거기엔 동화가 있고 순수함이 있고 종교가 주는 사랑이 있다. 그러나 이 산타클로스가 마케팅의 산물이라고 하면 믿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아쉽지만 사실이다. 일본인들이초콜릿을 많이 팔기 위해 역사에서 「발렌타인 데이」를 발굴해낸 것과슷하다. 사실 19세기 후반까지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산타클로스라는 존재를 몰랐다.
네덜란드계 이주민들만 아는 이 인물은 4세기초 터키에서 성자로 추앙받았던 투스 니콜라우스.네덜란드는 이 주교를 기리는 행사를 대대로 가져왔다. 그러나 당시
니콜라스는 붉고 흰 주교 복장을 했고 눈길을 달리는 사슴 썰매를 타지도 다. 고집센 당나귀를 구슬리며 돌아다녔을 뿐이다.또 크리스마스 이브가 아닌 12월6일(니콜라스의 사망일)에 선물을 주러 왔다.
16세기 네덜란드 아이들은 니콜라우스가 도착하는 날 밤이면 벽난로 가에 나무로 된 신발을 놓았다. 신발에는 선물을 싣고 다니는 당나귀에게 줄 짚이 채워져 있었다. 그 보답으로 니콜라우스는 작은 선물을 신발에 넣어주었던 것이다.미국에서는 신발을 구하기 어려워 스타킹을 굴뚝 옆에 놓기도 했다. 산타클로스는 신터클라스의 변형 발음이다. 이 산타클로스는 가장 먼저 판촉에 활용한 것은 20세기 초 의 몇몇 백화점 이었다. 네덜란드계 주민들을 유인하기 위해 정문 앞에 상징물을 세웠던 것.당시 산타는 가지각색이었다. 난쟁이에 푸른색 외투를 입은 산타클로스가 있었는가 하면 가시관을 쓰기도 했고 심지어 파이프 담배까지 문 산타도 있었다. 크리스마스카드에 등장한 산타는 차라리 희극적이었다. 자루 대신 가방을 들었고 썰매 대신 자전거가 등장했다.
이 산타를 천하통일시킨 업체가 바로 코카콜라다. 1931년 겨울철마다 격감하는 판매량에 고심하던 코카콜라는 유명화가를 시켜 새하얀 수염에 털 달린 빨간색 외투를 입고, 삼각형 모자와 굵은 가죽 벨트를 착용한 할아버지를 탄생시켰다. 그해 겨울 그런 산타 입간판의손에 선물 대신 쥐어진 코카콜라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여기에 몽고메리 워드 백화점은 한 술 더 떴다. 백화점 광고 카피라이터 로버트 메이의 시에 덴버 길렌의 사슴 그림을 넣은 팜플렛을 제작했던 것. 이 사슴은 길렌이 동물원에서 몇시간을 보낸 후 나온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47년 자니 믹스는 「루돌프 사슴 코는…」으로 시작되는 메시의 시에 곡을 붙여 한편의 동화를 완성했다. 지난 49년 진 오트리가 부른 이 곡이 실린 음반은 지금까지 8천만장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이렇게 마케팅은 어린 동심에 꿈을 심어주는 산타클로스까지 비즈니스에 이용한다.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사업을 하는데 있어 사실 이보다 좋은 마케팅은 없다는 게 경영학 이론이다.
3) 고객심리 서비스
햄버거 하나로 세계를 재패한 기업 맥도날드.
감자칩 두 개를 타원형으로 구부려놓은 듯한 상징물로도 유명한 맥도날드는 서비스로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업체다.맥도날드의 성공은 「맛」도 맛이지만 「교묘한」 응대법에 기초한다. 한 예로 아시아 지역 맥도날드 카운터는 대부분 72㎝. 이는 고객이 호주머니에서 가장 쉽고 편안하게 돈을 꺼내는 높이다.
햄버거의 두께도 철저히 과학적이다. 입 크기가 미국인보다 작은 동양인의 경우 햄버거 두께는 17㎜.이 두께는 입에 넣었을 때 가장 맛있게 느껴진다고 한다. 서비스의 과학화는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점포에 가면 주문을 받은 종업원이 큰 소리로 『대단히 감사합니다』를 외친다. 거기에 손님이 고개를 끄덕이면 정확히 3초 후 『콜라는 어떠세요?』라고 묻는다. 종업원의 밝은 얼굴에 내심 만족을 느끼던 손님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OK』를 한다. 괜찮을 듯한 메뉴이기 때문이다. 절대로 두 가지 품목을 한꺼번에 권하지 않는다. 거절 받기 십상인 까닭이다. 이런 서비스 접대법은 맥도날드 매뉴얼에 깨알같이 담겨져 있다.
한국맥도날드 전응준 부장(35)은 『세계 어디든 적용되는 이 매뉴얼은 지역차에 따라 약간의 융통성을 부가하도록 돼있다』고 말한다. 어린이들에게 주문을 받지 않는 것도 특징중의 하나. 아이들을 부추겨 매출을 올릴 수 있지만 돈을 내는 부모들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다는 이유다. 또 계산대에서 앞 손님의 계산을 기다리는 시간은 2분, 계산하는 시간은 1분 내에 끝내도록 돼있다. 이 서비스를 무기로 맥도날드는 창업 22년만에 95개국에 진출한 거대기업이 됐다.지난 92년 국내에 첫선을 보인 「TGI프라이데이즈」도 서비스로 성공한 외식업체로 꼽힌다. 4년만에 5백만명의 고객을 끌어들인 것은 그 반증 에피타이저는 10분, 주식은 15분 내에 나오는 스피드 서비스에 넓은 주차공간은 이 업체의 특징. 이와 함께 손님의 눈높이에 쪼그리고 앉아 메뉴를 설명하고 주문을 받는 퍼피독」은「고객은 원하는 대로 대접받을 권리가 있다」는 TGI의 경영모토에 따른 것이다.
일본 긴자에 자리잡은 와코우 백화점도 독특한 서비스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 백화점의 비주얼 서비스 전략의 핵심을 이루는 빳빳한 지폐 거슬러주기가 대표적인 예. 매일 2백만엔 가량의 1,000엔권과 5,000엔권을 은행에서 새 지폐로 바꿔 고객들에게 잔돈으로 바꿔준다. 새돈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심리를 노린 것이다. 시장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면서 서비스가 중시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소비자들은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를 찾는다. 좋은 대우를 받고 싶어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공통심리이기 때문이다. 서비스는 실천할 때 가치를 발한다. <서광원 기자>
(4) 소비확대 전략
칫솔에 듬뿍 짜내 스는 치약광고, 소주첫잔 '고시레'.성인용 기저귀등 마케팅기법 중에 소비확대 전략이라는게 있다. 기존 고객들에게 더 많은 소비를 유도하거나 신규 소비자를 끌어들이기도 하고 판매되는 제품의 새로운 용도를 찾아내 틈새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이런 방법들은 아주 교묘하게 진행된다. 한 예로 TV에 나 오는 치약광고는 칫솔의 머리부분에서 끝까지 치약을 듬뿍 바른다. 절반만 해도 충분하지만 시청자를 「세뇌」시키는 것이다. 「 이만큼은 짜야 한다 」는 것을 은연중 강조하는 것. 8㎜의 치약구멍을 8.3㎜까지 늘려 소비 확대를 유도하는 업체들도 있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소주 첫잔을 『고시레』 하며 버리는 것도 소주회사들을 「의심」해볼만한 대목이다. 병 안 위쪽에 불순물이 떠 있다는 것. 얼마전에는 상표에 그려진 두꺼비 배를 손톱으로 긁은후 고시레를 하기도 했다. 두꺼비 배가 터져 소주가 씁쓸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소주는 6잔만 나오게 돼 있을까. 여기에도 「교묘한 상술」이 숨어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인의 술자리 인원은 3∼4명. 이 인원이 소주를 마시면 항상 한두 잔 정도가 남는다. 「잔은 채워야 맛」이라는 한국인들에게 조금씩 나눠먹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일. 당연히 추가주문을 하게 된다. 이외에도 맥주를 주문할 때 때 1,3,5병으로 시켜야 한다는 「홀수음주법」도 그렇고 넘치듯 따르는 맥주광고, 크림을 듬뿍 찍어 바른 화장품광고도 같은 맥락에 속한다. 몇년전 우유소비 촉진을 위해 180㎖(한 홉)이던 우유용량을 200㎖로 한 것도 이같은 기법에 속한다.
제일기획 마케팅팀 성장현 부장(39)은 『치약을 많이 바른 광고나 소주 첫잔을 버리는 기법은 총수요확대의 전술적기법에 불과하다』며 『 암 앤드 하머 같은 회사처럼 상품의 새로운 용도를 개발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틈새시장에 효과적으로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베이킹 파우더라는 첨가물을 전문적으로 만들던 암 앤드 하머는 사실 이 상품 하나로 성장한 기업. 소비자들이 베이킹 파우더를 냉장고 탈취제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우연하게 발견, 포장용 탈취제를 만들어냈고 주부들이 식기 기름때를 제거한다는 데 힌트를 얻어 이 상품을 따로 만들어 판매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베이킹 파우더가 미백효과가 있음을 알고 이를 함유한 치약을 생산해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다. 코카콜라가 소화제로부터 시작한 것처럼 아이디어를 이용해 수요확대를 이룩한 것이다. 국내의 경우도 곰팡이 제거제로 시작한 「팡이제로」를 신발내에 부착시켜 무좀 예방 상품을 만든 것이나 아이용 기저귀를 성인용으로까지 확대한 것도 수요확대 전략의 하나이다.
반면 국내 커피크림 회사들이 새로운 용도개발 기회가 있음에도 상품화를 미루는 아쉬운 사례도 있다.일부 식당에서 「프리마」같은 커피크림을 설렁탕이나 콩국물에 넣어 구수한 맛을 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제품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될 수 있다고 판단해 상품화하지 못하고 있다. 구수한 맛은 커피크림의 주성분인 야자유에서 나온다고 한다
(5) 매복 마케팅
경쟁사 허 찌르는 기습 판촉 전략, 경기장 중계 카메라에 '깜짝홍보' 등 지난 86년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 폴시에서 열렸던 슈퍼볼대회의 음료부문 공식후원사는 코카콜카였다. 코카콜라는 이 슈퍼볼 공식후원 자격을 따내기 위해 수백만달러에 이르는 거금을 납부해 끈질기게 뒤따라붙던 펩시콜라를 따돌렸다. 그러나 정작 이 슈퍼볼 대회의 최종 승리자는 펩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공식업체에서 탈락한 펩시가 매복마케팅이라는 독특한 전략을 구사해 방심하고 있던 코카콜라에 카운터펀치를 날렸기 때문이다. 당시 펩시는 세인트 폴시 광장에 펩시콜라병처럼 생긴 높이 50m의 얼음궁전을 지어 코카콜라의 허를 찔렀다.말이 50m이지 그 높이는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것이었고 슈퍼볼을 보러온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커다란 펩시콜라병」속에 들어가보는 즐거운 체험을 했다. 매스컴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해 얼음궁전은 12일간 무려 2백50만명의 관람객을 끌어들였다.
한 리서치사의 조사에 의하면 관람객들은 슈퍼볼을 펩시가 후원한 것으로 착각했다고 한다. 이처럼 상대의 허를 찌르는 매복(Ambush)마케팅은 이번 올림픽 때도 어김없이 나타나 조직위원회에 수백만달러씩 납부했던 공식업체들을 울렸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독일의 바르스타이너 맥주다. 이 회사는 단돈 30만달러(2억4천여만원)를 들여 도심 차량통제 구간인 「올림픽링」바로 바깥 공터 노른자위에 텐트 맥주촌을 차리는 기지를 발휘했다. 그리고 「싸구려 맥주를 마시고 있기에는 게임기간이 너무 짧다」는 도전적 슬로건을 내걸어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는 후문이다. 특히 애틀랜타 곳곳에 「승리하지 못하면 관광객일 뿐」이라는 도전적인 내용의 입간판을 세워 눈길을 끌었던 나이키사는 마이클 페인IOC 마케팅 분과위원장으로부터 『참가에 의의를 두고 있는 올림픽 정신을 위협하는 것』이라는 경고까지 받았다.그러나 광고전략은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7월말 USA 투데이지와 갤럽에 의하면 나이키는 이번 올림픽의 공식 후원사가 아닌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후원사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4천만달러(약3백20억원)라는 거금을 내고 스폰서가 된 기업들로서는 기가 막힐 일이었다. 매복마케팅은 국내에서도 간간이 발견된다. 특히 중요경기가 열릴때 관람객 겸 특정회사 직원들이 중계 카메라를 통해 이 매복작전을 사용하고 있다.
지난 94년 월드컵 최종 예선전에서 기아자동차가 운동장에 나온 현지 교포와 관광객들에게 「세피아」라는 유니폼을 무료로 제공해 공짜 광고를 한 것은 유명한 일이다. 최근에는 기업체의 홍보피켓 등이 너무 많을 경우 방송카메라맨이 보통 관중석을 비추지 않는다는 점을 활용해 재치가 번득이는 매복마케팅을 하는 회사도 있다. 즉 피켓이나 현수막등을 바닥에 내려놓고 있다가 카메라가 관중석을 비추는 순간 일제히 피켓이나 현수막을 들어올리는 것이다. 생방송인 점을 활용하는 것이다.이「순간」은 중계카메라 뒤쪽에 매복한 직원이 무전기로 신호를 전달한다. 기업들의 생존싸움은 이렇게 치열하다.
(6) '기성세대'공략
엄청난 구매잠재력 지닌 안정된 중년의 베이비부머
「기성세대를 알면 돈이 보인다」미국 최대의 패스트푸드 업체인 맥도널드. 1천억달러 규모인 미국 패스트푸드시장의 42%를 점유하고 있다. 2위인 버거킹은 18%, 3위 웬디스는 11%에 불과하다.이런 맥도널드가 사상 최대의 개발비를 투자하여 최근 「아치 디럭스」라는 새로운 이름의 햄버거를 선보였다. 이 햄버거는 상추.베이컨.토마토 등 나이가 든 사람들이 옛날에 즐겨 먹던 재료들을 사용하여 만들었다.「어른들을 위한 맛 」이라며 대대적으로 광고하고 있다. 맥도널드가「아치 디럭스」를 주력 상품으로 만든 이유는 단 한가지.베이비부머를 공략하기 위해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후인 1946년부터 64년 사이에 태어난 이 세대는 이제 50대에 접어들었다. 사회적으로 안정된 이 세대는 숫자상으로나 구매력면에서 무시 할 수 없는 존재이다. 기업들로선 눈독을 들일 수 밖에 베이비 부머들의 구매력이 커지는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58년 개띠」로 상징되는 베이비붐 끝 세대들도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마흔이다 .못 먹고 커서 돈 쓰는 데 익숙하지 않던 이들도 이젠 X세대 못지 않게 유행을 따르고 물건을 사는데 열심이다. 이 세대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향수」이고, 다른 하나는 「안전」이다. X세대 등과의 현격한 가치관 차이를 느끼며 옛것에 대한 진한 향수를 가지고 있고,전쟁의 포연이 채 가시기 전에 태어나 안전에 대한 갈망이 강하다.그래서 기업들도 향수와 안전에 대한 욕구를 자극하는 데 마케팅의 초점을 두고 있다.미국 우편국은 제임스 딘과 마릴린 먼로를 소재로 기념우표를 만들었다. 두 왕년의 스타를 배경으로 한 이 기념우표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미국 투자회사인 Fidelity Investments사는 기업PR광고를 베이비부머들의 향수를 달랠 수 있는 흑백사진 10장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전쟁에서 귀환하는 군인, 춤추는 먼로, 달 표면의 암스토롱 등 한 시대를 상징하는 이들 사진은 고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베이비부머들은 너도나도 돈을 싸들고 이 회사에 투자상담을 하러 왔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는 기업 이미지 광고에 옛날의 흑백사진을 즐겨 사용한다. 56년 겨울 한강에서 얼음을 채빙하던 사진은 40∼50대들에게 즐거운 「추억 여행」을 선사한다. 세계적 자동차회사인 볼보가 칸 국제광고제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한 최신 광고에는 「볼보는 믿을 수 있는 차」라는 말 이외에는 단 한 마디의 카피도 없다. 과거에는 흔했던 작은 옷핀 하나로 안전한 차 라는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50대들에게 승차감, 디자인, 중후함보다는 오로지 안전만을 강조하여 성공하겠다는 것이 볼보의 전략이다 .베이비 부머들. 그들은 인생의 잔치가 끝나버린 집단이 아니다. 새로운 잔치를 준비하는 구매력 있는 세대인 것이다. 향수와 안전을 매개로 「기성세대」를 공략하라. 그러면 돈이 굴러온다.
(7) 물타기 작전
'실력 없으면 훼방이라도 놓자' 경쟁사 신상품.경영정보 입수 선제공격…
지난 84년의 일이다. 미국의 포드사는 어느날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중요한 정보를 입수했다. 경쟁사인 제너럴 모터스(GM)의 신차가 세계 최초로 ABS를 장착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포드사는 곧바로 긴급대책회의에 들어갔다. 그러나 두 달도 안되는 기간에 ABS를 만들어낼 수는 없는 일. 궁여지책으로 포드는 소비자를 잠시 속이는 방법을 택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포드의 기존 차종 중 브레이크 장치를 약간 개량한 「링컨타운」이라는 신차종(?)을 GM의 「캐딜락 시빌」보다 보름 먼저 출시해버렸다. 그리고 모든 역량을 동원, 『브레이크 장치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고 선전했다. 포드는 소비자들이 믿든 말든 다른 장점은 다 접어두고 브레이크에만 매달렸다. GM으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개량품밖에 안되는 「링컨타운 」이 북치고 장구치며 자신들의 공을 다 가로채고 있었던 것이다.아무리 최첨단 브레이크라고 설명해도 복잡한 기계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는 소비자는 거의 없었다.「포드의 링컨이 브레이크를 개선하니까 GM도 덩달아 따라가는구나」라는 오해를 사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GM은 할수없이 「지금까지 나온 차중 가장 품위가 …하며 포드의 브레이크 열기가 식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 사이 포드는 총력을 다해 ABS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고 최초로 ABS를 개발했던 GM은 헛고생만 한 셈이 됐다. 「실력이 없으면 훼방이라도 놓아야 한다」는 물타기 기법은 기업들이 종종 이용하는 「수법」이다. 전쟁에서의 야밤 기습공격과 같은 효과로 치명타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빠른 정보력과 장기간 맞대응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자본력이 필요하다.
이런 사례는 국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지난 92년 코카콜라사는 미국에서 한창 유행을 타던 무색탄산음료 「스프라이트」를 국내에 출시했다. 그러자 롯데칠성이 「스프라이트」와 제품포장까지 비슷한 「 스프린트」로 물타기를 시도했다. 두 회사는 상표를 두고 법정공방을 벌였다. 법원은 두 회사 가운데 코카콜라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시장에서의 승리자는 롯데칠성이었다.「롯데도 비슷한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니 스프라이트도 별 것 아닌 모양」이라는 것이 소비자들의 판단이었다. 당연히 판매 실적이 저조할 수밖에.
롯데칠성의 이 전략은 세계 음료업계에서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세계의 모든 음료를 모두 패배시킨 스프라이트가 기록한 유일한 실패였기 때문이다. 롯데는 「스프린트」가 유사상표 판정을 받자 그 직후 「스프린터」라는 새로운 상품으로 출시해 또 법정공방을 벌였다. 그러나 선출원상표라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 승소할 수 있었다. 이「스프린터」는 사실 롯데의 상표가 아니라 제일제당의 등록상표였는데 롯데가 공동사용을 요청했던 것.이에 스프라이트를 공동 수입 판매하던 한국코카콜라와 두산에서는 한때 제일제당의 설탕구매를 거부하자는 주장이 제기돼 제일제당이 한때 긴장했었다는 후문이 파다하게 퍼지기도 했다
(8) 브랜드의 마력
미국 생활용품회사인 「프록터&갬블」
( Procter & gamble : P&G )이 애지중지하는 상품이 하나 있다. 118년이 되는 현재까지 비누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인지도가 높은 「아이보리」가 그것이다.효자상품을 넘어 효손상품쯤 되는 브랜드다.
그러나 처음 생산되던 1878년 이 비누는 소비자들의 눈길을 전혀 끌지 못했던 천덕꾸러기였다. 당시 24가지나 되는 많은 종류의 비누를 생산하던 P&G는 흰 비누를 단순히 「프록터 앤 갬블의 하얀 비누」라고 명명해 판매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입비누에 밀려 판매는 저조했다. 그러던 1879년 어느 날 창업자 중 한 명인 할리 프록터는 예배 도중 귀가 솔깃해지는 말을 들었다. 성경의 시편 45장을 주제로 한 『모든 그대의 옷은 상아공에서 나오는…』이라는 설교였다. 그는 하얀 비누에 상아(Ivory:아이보리)라는 이름을 붙여보았다. 괜찮았다. 회사로 돌아온 그는 당장 팔리지 않던 하얀비누에 「아이보리」라는 이름을 붙인 후 주간 종교지에 광고를 실었다 반응은 예상외로 좋았다.
그렇게 시장에서의 평가가 나날이 좋아지고 있던 어느날 P&G사는 이상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아, 거, 물에 뜨는 비누 있잖아요? 그거 좀 더 보내줘요』라는 한 소매상의 전화였다. 당장 「진상파악」에 들어간 회사는 제조과정에서 원료 혼합물에 공기가 주입되는 바람에 물에 뜨는 비누가 생산되고 있음을 알게 됐다. 한 공장 직원의 실수였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이 「불량품」만을 찾고 있었다. 목욕중 비누를 떨어뜨리더라도 쉽게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P&G는 호기를 놓치지 않고 「깨끗하고 순하며 물에 뜨는 비누」로 새로운 포지셔닝을 시도했다. 그 이미지는 한 세기가 흘러간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시장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브랜드의 중요성은 갈수록 높아진다. 사람에게도 이름이 중요하듯 물건도 마찬가지다. 특히 브랜드가 한 제품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지 못할 경우 전체적인 이미지를 떨어뜨리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 만약 「프로스펙스」가 아직도 「왕자표」라는 이름을 달고 있고 「월드컵」이 옛날의「기차표」를 유지했다면 지금의 판매량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 89년 제일제당이 겨울철 특수를 노리며 출시했던 「고기순대 」도 그런 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지만 소비자들의 평가는 『 징 그럽다』『순대는 역시 김이 모락모락나는 시장 순대가 제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제품에 대한 사내평가회가 열렸을 때 한 직원이 무심코 『모양은 순대지만 맛은 동그랑땡과 같다』는 말을 했다. 제일제당은 이 말에서 힌트를 얻어 전면개조작업에 들어갔고 아예 「동그랑땡」으로 이름을 바꿔버렸다. 매출이 큰 폭으로 뛰어올랐음은 물론이다. 이외에도 서구적으로 변하는 청소년층에게 외면 받았던 동양제과의 「님에게」초콜릿이 「투유」로 바꿔 인기를 끈 것이나 대우전자의 전자레인지 「퀵」이 「요리박사」로 변신해 히트상품이 된 것도 이름바꾸기의 덕분이었다
(9) 히트 후의 자만
승리감 도취 '과거'연연하면 기술혁신.시장흐름 못따라
1905년 제국주의 야심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일본은 러 일일 겨울에도 얼지 않는 항구를 가지기 위해 남하정책을 폈던 러시아와의 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 일본은 예상을 뒤엎고 러시아에 승리했다. 그해 처음 만들어져 실전에 사용된 조준식 소총에 힘입은 결과였다. 승리에 도취한 일본 군부는 그 총에 「38식 보병총」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그해가 「명치 38년」이었기 때문이다.그런데 바로 이 총 때문에 일본은 미국과의 태평양전쟁에서 형편없이 허물어졌다. 40여년간 한 발씩 조준해서 쏘아야 하는 구식총을 가진 일본군은 자동소총이나 기관총으로 무장한 미국에 상대가 안됐다.러일전쟁에서 이긴 승리에 젖어 기술개발을 포기했던 대가였다.
일본이 얼마나 승리감에 젖어있었는가는 러일전쟁 때 「제국주의 병사」들이 신었던 무겁고 딱딱한 군화를 남태평양에서까지 사용했다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미국이 2차대전시 군화모델을 여러차례 변화시킨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일본군 간부들은 군화가 발에 맞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신병들에게 『이 병신같은 놈, 군화에 발을 맞춰!』라고 말했다. 물집, 무좀이 생겨 전투에 차질이 있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경영학자들에 의하면 성공체험은 조직에 하나의 문화를 생성케한다고 한다. 승리했던 당시의 모델을 그대로 간직하려는 관성이 생겨 행동 양식을 고정시키는 것이다. 바로 성공에 따르는 위험이다.
몇년전 한 중소기업에서 만들어낸 「스카이콩콩」이란 게 있었다.
도시의 좁은 공간에서 어린이들이 콩콩 뛰며 놀기에는 더없이 좋던 상품이었다. 이 상품은 나오자 마자 불티나게 팔렸다. 감당할 수도 없을 만큼 주문이 밀려들었고 전국엔 스카이콩콩 열풍이 불었다.그러나 생산시설에 한계가 있었다. 회사는 동원가능한 돈을 모두 끌어들여 대형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장이 완성돼 갈수록 주문이 줄어들었다. 적기에 공급을 해주지 못하자 모방업체가 우후죽순으로 나타났고 소비자(어린이) 도 콩콩 뛰는 것 외에 다른 기능이 없어 싫증을 냈던 것이다. 결국 이 회사는 도산을 했다.「히트상품을 내놓고도 망한다」는 말은 결코 과장된 얘기가 아니다.
성공을 했을 때는 그 요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해놓아야 한다. 시대가 바뀌고 소비자가 바뀌면 성공요인이 실패요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영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언러닝(unlearning) 개념」이 라고 부른다. 성공체험에 연연해 혁신의 가능성이 적어지고 과거에 매달리는 것이다.이렇게 되면 시대변화에 따른 조직의 전환이 느려지고 적응하는데도 상당한 애로가 따른다.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 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벨트 컨베이어 시스템을 개발해 자동차왕으로 불리는 포드1세가 초기모델만을 고집하다 GM에게 선두를 빼앗겼던 것도 이런 맥락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10) '럭비공'소비자
요즘 소비자들을 가리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잘 나가고 있는 상품을 계속 생산해야 할지, 아니면 대체상품을 개발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다는 의미다. 긴팔옷을 입어야 할지, 반 팔 옷을 입어야 할지 모르는 봄날씨와 비슷해 장단을 맞추기 힘들다고 업자들은 투덜댄다. 그런점에서 80년대를 풍미하다 어느날 사라져버린 보리음료 「맥콜」은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지난 84년 남아도는 보리를 이용해 「맥콜」을 만든 일화는 86년 음료시장에 한바탕 회오리바람을 몰고 왔다. 콜라.사이다류가 잡지 못하고 있는 시장, 즉 이 음료수를 싫어하는 40대 이후의 장년 남성층을 겨냥한 게 적중했던 것. 특히 목욕탕 공략이 맞아떨어 졌다.「맥콜 어떤 맛인가? 콜라맛이 아닙니다…우리의 음료 맥콜」로 된 광고카피는 신선한 것이었다. 슈퍼스타 조용필이 예쁜 소녀와 함께 현실과 이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애니메이션 광고도 효과 만점이었다. 그런 추세에 힘입어 일화는 88년 칠성사이다를 추월했고 1위인 코카콜라까지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설마」하고 지켜보던 기존 음료회사들에게는 섬뜩한 일이었다. 경쟁사들은 서둘러 「비비콜」 「보리텐」 「보리보리」같은 유사음료를 내놓으며 맥콜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럼에도 맥콜은 가을 들녘에 불이 번지듯 시장을 확대해갔다. 87년 매출이 86년 대비 400%나 신장(약 8백20억원)될 정도였다.
그러나 일화는 중대한 실수를 범하고 있었다. 자신감만 가졌을 뿐 소비자가 맥콜을 포함한 보리음료 전체에 식상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경쟁사들이 공동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몰랐다.그러던 89년 여름. 그때까지 맥콜을 잡으려고 헉헉거리며 쫓아오던 여타 경쟁사들의 태도가 일순간에 변했다. 약속이라도 한듯 일제히 보리음료 광고를 중단하고 「밀키스」 「크리미」 「암바사」 광고를 퍼부었던 것이다. 홍콩영화에서나 보던 주윤발이 『싸랑해요 밀키스』를 외치고 왕조현이 크리미를 들고 소비자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 우유 탄산음료의 포문이었다. 갑작스런 동시다발 공격에 일화가 멈칫 하는 순간 소비자들의 눈길은 우유탄산음료로 옮겨가 버렸다. 호기심에 우유 탄산음료를 집어들기 시작했고 달콤한 맛에 「우리의 음료」를 외면해버렸다.
일화의 한 관계자가 말한 대로 『너무도 무정한 소비자들』이었다.그러나 이는 전략의 승리였다. 경쟁사들이 인지도가 높아진 맥콜을 따라잡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일단 비슷한 보리음료를 내놓고 열전을 벌이며 소비자들을 물리게( 라이프사이클을 짧게 )한 다음 동시다발로 소비자들을 다른 시장으로 끌고가버린 것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유사음료는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떨어진 논개였던 셈이다. 사회가 개성화.차별화로 진행될수록 때로는 소비자를 유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때 유념할 것은 소비자를 절대적으로 믿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안 믿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