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찬송가 505장 (구 266장) / 사도행전 5 : 33 - 42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505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사도행전 5장 33절 – 42절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33.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34.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35.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36.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40.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아멘!
지금까지 함께 생각해 본 사도행전 5장은 다음의 몇 가지 사건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절 – 11절 말씀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저주받아 죽은 사건을 설명하고 있고, 12절 – I6절 말씀은 사도들이 표적을 행한 기사이며, 17절 – 32절 말씀은 사도들이 투옥되었다가 기적적으로 탈출한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오늘 본문 33절 – 42절 말씀은 당시 율법 교사였던 가말리엘이 사도들의 행적을 변호한 기사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 본문 40절 – 42절 말씀은 가말리엘의 설명을 듣고난 유대인들이 사도들을 채찍질하여 석방했다는 기사입니다.
사도행전 5장 1절 - 11절에 소개되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은 초대교회 공동체의 성격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자신들의 약속을 번복하고 부동산을 처분한 돈의 일부를 감춘 탓으로 부부가 저주를 받아 죽은 사건은 정직과 순결, 그리고 약속이행이 교회와 신앙의 중요 조건임을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거짓이나 허위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2절부터 16절은 교회는 신령한 기적이 일어나는 곳임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났다는 것은 교회의 성격을 말해 줍니다.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고 병자가 고침받고 영혼이 성장하는 신령한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라야 합니다.
17절 - 42절은 복음과 세상과의 층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복음은 계속 유대인들과 층돌을 빚고 있습니다. 성령과 만나고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처음엔 시끄럽고 귀찮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이 들어가면 문화적 층돌이 일어나고 영적 전쟁이 벌어집니다. 처음 예수를 믿으면 마음속에서 영적 전쟁으로 충돌이 일어납니다. 처음 예수를 영접한 가정은 전에 있던 악령과 충돌이 일어납니다. 기독교 복음이 들어가면 그 나라의 전통문화와 충돌이 일어납니다만, 그러나 기독교가 들어갔기 때문에 불행해진 나라도 없었고 타락하거나 퇴폐한 문화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평안과 안정과 기쁨이 찾아오게 됩니다.
초대교회는 다양한 은혜와 복을 받은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시작된 성령층만을 체험한 교회였고 계속해서 신령한 사건 과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가 하면 교회가 급진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로 시작된 교회가 오백 명, 수천 명, 수만 명으로 불어나는가 하면 자원하는 사람들의 헌금으로 교회재정이 충족했습니다. 그 돈으로 가난한 과부와 형제들을 구제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날마다 모여 예배를 드렸고, 성경을 공부했고, 성도의 교제를 나누므로 끈끈한 정이 넘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교회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가장 이상적이며 바람직한 교회를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로 꼽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초대교회를 닮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아예 교회 이름을 초대교회라고 부르는 곳도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교회, 신령한 사건과 기적이 일어나는 교회, 경제적으로 넉넉해 선교와 구제에 힘쓰는 교회, 성도의 사랑과 교제가 넘치는 교회라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초대교회의 잘못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주님이 베푸신 은혜를 확산시키지 못했습니다. 땅끝까지 가라는 명령을 접어둔 채 예루살렘에 모여 세월을 허송하고 있었습니다. 교인들 끼리끼리만 모이는 데만 힘썼지 복음 전하지를 못한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고 잘못이 있습니다. 그들은 성령 주신 이유나, 교회 재정을 넉넉하게 해 주신 이유와, 신령한 사건이 일어나게 해 주신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성령 주신 이유는 능력 받고 전도하라고 주셨습니다. 신령한 사건과 기적은 교회가 성장하라고 주신 은총이었습니다. 교회가 성장한 다는 것은 믿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이기 때문에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초대교회가 세계선교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골고루 구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축복과 은혜로 일하지 않았습니다.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의 순교를 시작으로 사울의 박해가 시작되는가하면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투옥 등, 구체적이고도 집요한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40절 말씀의 경우도 사도들이 매를 맞았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로 그 성격을 구분합니다. 모이는 이유는 힘 얻고 능력 받고 훈련받기 위해서입니다. 흩어지는 이유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교회는 마지막 축도를 파송과 강복의 예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성도들에게 파송의 말씀을 준 후에 축복의 기도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여러분을 각각 세상으로 보냅니다. 보냄 받은 그 곳에서 그리스도의 증인과 제자로서 살아 가십시요. 복음의 증인이 되십시오. 여러분의 삶으로 세상을 변화시키십시오.'라는 등의 파송사와 함께 축도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새벽도 찬송과 기도와 말씀으로 엮은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 힘을 얻어 결단하고 가정과 사회로 나갑니다. 예배와 기도를 마쳤으면 가야 합니다. 가서 전도하고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베드로에겐 일평생 가장 황흘했던 체험이 있었습니다. 장소는 변화산이었습니다. 광채 찬란한 모습으로 변화되신 주님과 그 좌우에는 엘리야와 모세가 서 있었습니다. 꿈에도 상상 못한 장관이었습니다. 그는 주님 이 곳에 장막 셋을 짓고 여기서 살자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받은 응답은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산 아래로 내려와야 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정신이며 선교공식입니다. 우리는 가야합니다. 흩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초대교회가 흩어질 생각을 뒤로 미룬 채 예루살렘에 모여 쓸데없는 일과 생각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정력을 소모하자 하나님의 섭리가 시작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주신 시간을 안 쓰면 흩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돈을 바로 쓰지 않으면 쓸 수밖에 없도록 흩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주와 능력과 건강과 생명을 쓰지 않으면 쓰도록 흩으실 것입니다. 교회도 일하지 않고 쓰지 않으면 마치 고인 물처럼 썩거나 냄새가 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셨습니다.
오늘 본문 40절을 보면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 하는 것을 금했다.”고 했고, 4l절을 보면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고 했고, 42절을 보면 “저회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성전에 있는 것은 모이는 것이고 집에 있는 것은 흩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모이든지 흩어지든지 예수님을 가르치고 전하는 일을 쉬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교회오면 신자, 나가면 불신자, 교회에선 칭찬받는 신자, 밖에 나 가면 지탄받는 신자일 수는 없습니다. 성전 있든지 집에 있든지, 교회에 있든지 직장에 있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가장 바람직한 신앙과 생활은 교회에 있든지. 가정에 있든지, 회사에 있든지, 길거리에 있든지, 혼자 있든지, 여럿이 있든지 한결 같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회로 나갑시다.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나갑시다. 가서 전합시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항상 기도하고, 전도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