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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송(張松)의 계략 이이제이(以異制異) -
마초(馬超)가 패잔병(敗殘兵)을 이끌고 몸을 의탁(依託)하러 달려간 한중(漢中)의 장로(張魯)란 어떤 사람인가? 장로(張魯)는 그의 조부(祖父)를 거쳐 부친(父親)의 뒤를 이은 오두미교(五斗米敎) 라는 사교(邪敎)의 두령(頭領)이었다. 서촉(西蜀)과 한중(漢中)은 워낙 허창(許昌)에서 멀리 떨어진 험준한 산악 지대(山岳地帶)였던 관계로(특히 한중)오랜 옛날부터 천하통일의 야심(野心)을 가진 영웅(英雄)들이 눈여겨 보는 곳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自然)히 중원(中原) 천하(天下)의 세력(勢力) 다툼권에서 밀려난 변방(邊方)이었고, 이런 지방(地方)일수록 사교(邪敎)의 세력(勢力)이 창궐(猖獗)하기 쉬워, 장로(張魯)의 조부(祖父)인 장릉(張陵)이 서천(西川) 곡명산(鵠鳴山)속에서 수행(修行)하면서 서천(西川) 오두미교(五斗米敎)라는 새로운 종교(宗敎)를 일으켰다. 그 종교의 신자(信者)가 되려면 쌀 다섯 말을 바쳐야 되었기에, 사람들은 그 종교(宗敎)를 오두미교(五斗米敎)라고 불렀던 것이었다.
오두미교(五斗米敎)는 최고(最高) 두령(頭領)을 사군(師君)이라 부르고, 일반(一般) 신도(信徒)들은 귀졸(鬼卒)이라 불렀으며, 신도의 우두머리는 계급(階級)에 따라, 제주(祭酒)니 감령제주(監令祭酒)니, 치두대제주(治頭大祭酒)로 높여 불렀는데, 어지러웠던 후한 말기(後漢末期) 황건당(黃巾黨)이 만들어진 시기(時期)에 창시(創始)된 종교(宗敎) 집단(集團)이었다.
이 종교(宗敎)는 병(病도) 고치고 모든 죄악(罪惡)도 다스릴 수 있다고 하면서 하늘과 땅과 물에 그 죄를 빌거나 고백(告白)하면 영혼(靈魂)이 정화(淨化)되어 질병 (疾病)과 죄(罪)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고 하여 지역(地域) 백성(百姓)들의 큰 호응(呼應)을 얻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오두미교(五斗米敎)는 창시자(創始者) 장릉(張陵)이 죽자, 그의 아들인 장형(張衡)이 계승(繼承)하였다가 그 다음은 장형의 아들인 장로(張魯)가 사군지위를 계승(繼承)하였다.
한중(漢中)은 워낙 변방(邊方)인 관계로 관(官)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데다가, 그 지방에서는 오두미교의 세력(勢力)이 워낙 강대하므로, 한(漢)나라에서는 아예 장로(張魯)를 진남 중랑장(鎭南中郞將)으로 삼아, 한중(漢中) 태수(太守)로 봉(封)해 버렸다. 사실(事實)이 이렇다 보니, 파촉(巴蜀) 지방(地方)에서는 오두미교(五斗米敎)의 사군(師君)인 장로(張魯)가 사실상(事實上) 군주(君主)와 다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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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촉(巴蜀)(서천,익주)은 삼국시대에 <파촉(巴蜀)>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과거 이 지역에 파국(巴國)과 촉국(蜀國)이라는 두 나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천(西川)과 한중(漢中) 일대(一帶)를 아우러서 본 삼국지(三國志)에서 파촉(巴蜀), 서촉(西蜀), 한중(漢中), 서천(西川), 익주(益州) 등으로 함께 어우러 쓰고 있으니 지역(地域)의 명칭(名稱)에 혼동(混同)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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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馬超)가 조조(曹操)에게 패(敗)하여 몸을 의탁(依託)하러 쫓겨오니 장로(張魯)가 은근(慇懃)히 불안(不安)을 느껴, 수하(手下)의 무리를 모아 놓고 상의(相議한다.
"서량(西凉)의 마등은(馬騰) 이미 죽었고, 이제 그의 아들 마초(馬超)마저 패(敗) 해 버렸으니 조조(曹操)가 필시(必是) 우리를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대비(對備)를 해야 할 것인가 ?"
그러자 모사(謀士) 염포가 아뢴다.
"지금이야말로 사군(師君)께서 왕위(王位)에 즉위(卽位)하실 때가 아닌가 하옵니다. 우리 한천(漢川)으로 말하면 백성(百姓)이 십만여 호에 이르고, 재물(財物)도 풍부(豐富)하고 양식(糧食)도 넉넉한 데다가, 사면(四面)이 험준 (險峻)한 산악(山岳)으로 둘러싸여 나라를 보위(保衛)하는데 조금도 부족(不足)함이 없는 곳입니다. 그러하오니 사군께서는 용장(勇將) 마초(馬超)의 힘을 빌어, 파촉(巴蜀) 사십일 주를 완전히 통합하신 뒤에 한녕왕(漢寧王)으로 취임(就任) 하신다면 조조(曹操)도 감(敢)히 우리를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
장로(張魯)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음!... 매우 좋은 생각이오. 그러면 마초(馬超)를 받아들이고, 그 용맹(勇猛)함을 앞세워 군사(軍事)를 일으켜 파촉(巴蜀) 천체(全體)를 취(取)할 수 있도록 도모(圖謀) 해 봅시다!" 하고 쾌락(快諾)하였다.
그 당시파촉(巴蜀 :서천)의 영주(領主)는 유장(劉璋)이었다. 유장(劉璋)은 한(漢)나라 노공왕(魯恭王)의 후예(後裔)인 유언(劉焉)의 아들로, 그는 부친(父親)으로 부터 영주(領主)의 지위(地位)를 물려 받은 뒤에는 정사(政事)를 게을리하고 날마다 주색(酒色)에만 빠져 있는 우유부단(優柔不斷)한 인물(人物)이었다.
마초(馬超)가 장로(張魯)에게 귀순(歸順)하여 서천(西川) 공략(攻略)을 준비(準備)하고 있다는 소식이 비밀리(祕密裡)에 전(傳)해지자 장송(長松)과 법정(法正)이 그 소식(消息)을 먼저 알고 군주(君主) 유장(劉璋)을 찾아갔다.
그날도 유장(劉璋)은 많은 무희(舞姬)들을 불러들여 춤을 추는 것을 감상(鑑賞)하면서 미인도(美人圖)를 그리고 있었다.
유장(劉璋)이 미인도(美人圖)에 미인의 눈(眼)을 그려 넣으려는 바로 그때, 장송(張松) 법정(法正)이 들어섰다.
그리하여 법정(法正)과 장송(張松)이 무희(舞姬)들 틈을 비집고 유장(劉璋) 앞으로 나아가 인사를 여쭌다.
"아뢰옵니다."
그러나 유장(劉璋)은 대답(對答)은 물론, 법정(法正)과 장송(張松)을 한번도 쳐다보지 않은 채로 그림 그리기에 몰두(沒頭)하고 있었다.
"음!..." 법정(法正)과 장송(張松)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걱정 (半)반 한심(寒心) (半)반의 얼굴로 다시 한번 유장(劉璋)에게 시선(視線)을 돌렸다.
그러자 그제서야 미인도(美人圖)의 눈(眼)을 모두 그려 넣은 유장(劉璋)이 그림에서 눈을 떼지 않은 상태로 말 문을 연다.
"눈을 그릴 때에는 실수(失手)를 하기 쉬워.. 자칫 한눈을 팔면 애써 그린 그림을 망치게 되거든..."
그러자 키는 다섯 자가 될까 말까하게 작은 데다가, 코는 삐뚤어지고 이빨이 뻐드러진 볼품없는 사내 장송(張松)이 나서며 말한다.
"허! 주공(主公)께서 그리신 미인도(美人圖)는 지금 춤추는 미인(美人)들 보다, 훨씬 아름답습니다."
"허허.. 자네가 뭘 좀 볼 줄 아는구먼!"
유장(劉璋)은 장송(張松)의 칭찬을 듣자, 순간 마음이 바뀌어 무희(舞姬)들을 그만 물러가란 손짓을 해보인다.
무희(舞姬)들이 물러감과 동시에 유장(劉璋)이 두 사람에게 명한다.
"무엇때문에 왔는지 말해 보게."
"예, 아뢰옵니다. 조조(曹操)가 위수(渭水) 강변(江邊)에서 마초군(馬超君) 이십 만을 격퇴(擊退)하고 그 틈에 서량(西凉)을 취(取)했으며, 갈 곳없는 마초(馬超)가 패잔병(敗殘兵) 오만(五萬)을 규합(糾合)해서 한중(漢中)의 장로(張魯)에게 투항(投降)했다고 합니다." 법정(法正)이 최근(最近)에 일어난 외세(外勢)의 변화(變化)를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아뢰었다.
그러나 유장(劉璋)은 아직도 미인도(美人圖)에 미련(未練)이 남아 있었던지, 그림을 계속(繼續) 주시(注視)하면서,
"음?... 대단한 조조(曹操)로다, 서량(西凉)까지 손에 넣다니... 조조(曹操)에게 패(敗)한 마초(馬超)가 장로(張魯)에게로 갔다면 이젠 장로가 조조(曹操)에 맞서기 바쁘겠구먼 ?" 하고 다른 집 불구경 하는 듯이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법정(法正)이 안타까운 얼굴을 하면서,
"예? 주공(主公)! 그때문에 장로(張魯)가 우리 서천(西川)을 노리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뭐라구? 조조(曹操)와 대항(對抗)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우릴 노린다고?"
법정(法正)은 주군(主君) 유장(劉璋)의 대답(對答)이 하도 기막혀서 대답을 하는 대신 장송(長松)을 쳐다 보았다.
장송(張松)은 법정(法正)이 자신(自身)을 건너다 보는 의미(意味)를 알아채고 유장(劉璋)에게 아뢴다.
"주공(主公),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마초(馬超)도 조조(曹操)의 적수(敵手)가 안 되는데, 장로(張魯)가 어찌 조조(曹操)를 막을 수가 있겠습니까? 한중(漢中) 땅은 수비(守備)가 어려워 장로(張魯)가 살아남기 위한 방법(方法)이 바로, 마초(馬超)를 앞세워 우리 서천을 취(取)해서, 서천(西川)과 한중(漢中)을 하나로 묶어서 조조(曹操)에게 대항(對抗)하겠다는 거지요. 혹시(或是) 패(敗)해서 한중(漢中)을 잃더라도 서천으로 후퇴(後退)하면 수비(守備)는 되니까요..."
"그렇다면 우리 서천(西川)이 험준(險峻)한 것을 알면서 뭘 걱정하는가? 장로(張魯)가 쳐들어 온다고 해도 걱정할 일이 아니지, 우린 이십만(二十萬) 대군(大軍)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란 말인가?"
"주공(主公), 장로(張魯)는 계속 서천(西川)을 노려왔고, 지금은 맹장(猛將) 마초(馬超)를 얻어 더욱 강해졌습니다."
"마초(馬超)가 그리 대단한가? 우리 서천(西川) 장수(將帥)들이 못 당하나?"
"그렇다면 주공(主公께서는 여포(呂布)를 아시겠지요?"
"당연(當然)하지, 방천화극(方天畵戟)에 적토마(赤兔馬)를 타고, 중원(中原)을 누비던 천하무적(天下無敵)이 아니었나?"
"그렇습니다. 한데 조조(曹操)는 마초(馬超)의 무예(武藝)를 여포(呂布)에 비교(比較) 했습니다. 위수(渭水) 전투(戰鬪)에서 조조는 마초(馬超)에 쫓겨, 전포(戰袍)를 벗어 던지고 수염(鬚髥)을 잘라가면서 필사(必死)의 도망(逃亡)을 치다가 마초(馬超)에게 죽을뻔 했지요. 그러나 조조(曹操)가 마초(馬超)와 한수(韓遂) 사이를 이간(離間) 해서 결국(結局) 승리(勝利)를 거둔 겁니다."
"허!... 장송(張松) , 그럼 우린 어찌했으면 좋겠나?"
유장(劉璋)은 그제서야 외세(外勢)의 세력 변화(勢力變化)가 서천(西川)을 향해 심상(尋常)치 않게 다가오는 것을 깨닫고 향후(向後) 대책(對策)을 묻는다.
"제가 진헌(進獻)할 공물(貢物)을 가지고 허창(許昌)으로 조조(曹操)를 찾아가 우리와 동맹(同盟)을 맺도록 한 뒤, 조조로 하여금 장로(張魯)를 치게 유도(誘導) 한다면, 장로(張魯)가 조조를 막아내기도 바쁜데 무슨 힘으로 우리를 침범(侵犯)하겠습니까? 말하자면 우리는 이이제이(以異制異)의 술책(術策)을 써야 합니다." <以異制異 : 한 세력을 이용하여 다른 세력을 제어함을 이르는 말>
"하! ...그래 ! 좋아! 장송(張松)! 사자(使者)로 명하니 즉시 허창(許昌)으로 건너가 조조(曹操)를 만나보게!"
"알겠습니다!"
유우부단한 유장(劉璋)은 이때 만큼은 자신의 신변에 몰려오는 위급함을 느끼고 장송(張松)으로 하여금 그의 계획대로 실행할 것을 즉석에서 명하였다.
유장(劉璋) 앞에서 물러나온 법정(法正)은 장송(張松)의 집에서 단 둘이 만나, 조금 전에 유장(劉璋)과 겪었던 일을 되새기며,
"저리 아둔한 군주가 어찌 서천(西川)을 지키겠습니까? 이번에는 형님 덕분에 어떻게 넘긴 줄은 몰라도 다음에는 힘들 것입니다." 하고 자기 분을 삭이지 못하고 말한다.
그러자 장송(張松)이 한탄(恨歎)하는 어조로,
"애석하네, 우리의 넓은 포부(抱負)와 가득한 지략(智略)을... 아둔한 군주가 집을 지키는데 쓰다니..." 하고 법정(法正)의 분개에 동조하는 말을 하였다.
그러자 법정(法正)은 더욱 목소리를 높여,
"하늘이 내려주신 서천(西川)을 유장(劉璋)은 등한시(等閑視) 하니, 서천의 오십이 개(五十二個) 주(州) 백성(百姓)을 위해... 차라리 서천을 위해 명군(名君)을 찾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말하면서 장송(張松) 앞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응?..." 법정(法正)의 말이 끝나자,
갑자기 장송(張松)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장도(長刀)를 집어들고,
"스르릉!" 하고 곧 칼을 뽑아 법정(法正)을 향해 휘두를 듯이 위협(威脅)하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질렀다.
"법정(法正)! 반역(反逆)을 할 셈인가?"
"어 엇?... 장송(張松)! 여태껏 나는 그대를 우리 서천(西川)에 인재 여겨왔는데 이리 경박(輕薄)할 줄은 몰랐소. 좋아! 나를 밀고(密告)하여 상금(賞金)이나 챙기거라 !" 법정(法正)은 단말마적(斷末摩的)인 대꾸를 내질렀다.
두 사람간의 싸늘한 시간이 잠시 흐르고 장송(張松)이 갑자기,
"으하하하하!" 하고 웃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뽑다 만 칼을 칼집에 도로 넣는 것이었다.
이런 장송(張松)을 바라보는 법정(法正)은 의문(疑問)을 몰라 어리둥절하는데,
장송(張松)이,
"효직(孝直) : 법정(法正)의 字) 역시 용기(勇氣)가 있구먼!" 하고 법정을 추켜세우는 것이었다.
그러자 법정(法正)은,
"아! 영년(永年 : 장송(張松)의 字) 형(兄)!... 영년 형(永年兄)도 내 뜻과 같습니까?" 하고 동지(同志)를 만난 듯이 기쁜 어조(語調)로 소리쳤다.
"자, 이쪽으로!..." 장송(張松)은 칼을 내려 놓으며 법정(法正)을 자신의 깊숙한 내실(內室)로 안내(案內)한다.
그러면서 두루마리 한 필(疋)을 펼쳐 보이며 말한다.
"보게, 이게 뭔지!...."
"서천(西川) 오십이개 주(州) 지도(地圖)?" 법정(法正)은 서천 전체(全體)의 지도(地圖)임을 단박에 알아 보고 대꾸한다.
"서천(西川)은 험(險)하고 웅대(雄大)한 곳이라, 지리(地理)를 모르고서는 천군만마(千軍萬馬)를 동원(動員)해도 공격(攻擊)하기는 어렵지, 이 지도(地圖)는 내가 후일(後日)을 생각해서 삼년(三年) 동안이나 공(功)을 들여 만든 것이네. 서천(西川)의 지리(地理)와 도로(道路), 계곡(溪谷) 속에 요새(要塞), 군대(軍隊)의 요새(要塞), 군량고(軍糧庫) 까지 상세(詳細)히 기록(記錄)해 놓았다네, 이것만 있으면 서천(西川)의 절반(折半)을 얻는 셈이지."
"그럼 영년 형(永年兄)은 이 지도(地圖)를 누구에게 바칠 겁니까?"
"응?... 허창(許昌)의 조조(曹操)네, 그는 뛰어난 지략(智略)에 대군(大軍)을 보유(保有)해, 천자(天子)를 등에 업고 천하(天下)를 호령(號令)하니, 조조(曹操)야 말로 천하를 통틀어 최고(最高)의 군주(君主)일쎄, 그러니 우리 서천(西川)이 그의 손에 들어간다면 백성(百姓)들이 태평성세(太平聖歲)를 누리게 될 것이고, 우리도 재능(才能)을 펼칠 수가 있을 것이야!"
"조조(曹操)는 명군(名君)을 가장(假裝)한 한실(漢室)의 역적(逆賊)인데, 어찌 유비(劉備)에게 바칠 생각을 안하시는 겁니까? 그는 한실(漢室)의 후예(後裔)로 형주(荊州)를 점거(占居)하고 있고, 제갈량(諸葛亮)의 지략(智略)에 명장(名將) 셋이 있으니 장차(將次) 대업(大業)을 이룰 것입니다."
"으흠!... 형주(荊州) 땅은 조조(曹操)와 손권(孫權)사이에 있기 때문에 곧 잃게 될 것이야, 유비(劉備)는 제 앞가림도 힘든 처지(處地)인데 무슨 대업(大業)인가?... 방금(方今) 아우가 했던, 조조(曹操)가 한실(漢室)의 역적(逆賊)이란 말은 너무 고루(固陋)한 생각이네, 천하(天下)에 누가 욕을 먹지않고 정세(政勢)를 다스릴 수가 있으며 누가 욕을 안 하겠는가? 욕(辱)이 오가면서도 조조(曹操)는 대업(大業)을 이루지 않았던가? 유비(劉備)가 현명(賢明)한 군주(君主)라면, 조조는 타고난 군주일세! 난세(亂世) 속에서는 타고난 군주(君主)가 명군(名君)이야!"
"그럼, 언제 허창(許昌)으로 가시렵니까?"
"내일 출발(出發)하면 열흘 뒤면 허창(許昌)에 당도(當到) 할 것이네."
"좋습니다. 영년 형(永年兄)! 다녀오십시오!" 법정(法正)이 존경(尊敬)의 표시(表示)로 두 손을 읍(揖)하여 허리를 깊숙히 숙여 인사한다.
"그럼, 뒷 일을 잘 부탁(付託)하네!" 장송(張松)이 만면(滿面)에 미소(微笑)를 머금고 당부(當付) 하였다.
삼국지 - 250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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