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정권을 붕괴시킨 원인은 바로 '유공자 취업 특혜‘
- 젊은층의 분노를 자극한 기폭제가 된 점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 크다.
인구가 1억 7,400만 명이나 되는 방글라데시 정권이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졌다.
그 원인이 흥미롭다. 독립유공자 자녀에 대한 취업 특혜에 대학생들이 반발, 전국적 시위로 확대되고 이에 경찰이 발포, 300여 명이 죽은 사태에 직면, 셰이크 하시나 수상(76)이 헬기를 타고 관저를 탈출 인도로 도망친 것이 다.
이슬람 국가인데도 여성인 하시나 수상이 20년간 철권 통치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버지가 방글라데시(東파키스탄)를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워 초대 수상이 되었다가 쿠데타를 만나 가 족과 함께 피살된 후광(後光) 덕분이었다.
육군참모총장 자만 장군은 과도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보다도 큰 인구대국을 안정적으로 이끈 지도자가 국민적 저항에 부딪 쳐 일 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새삼 정치의 묘함을 느끼게 한다. 하시나 수상은 경제 성장과 외교술, 그리고 군대의 지지를 믿고 야당 탄압 을 일삼으면서 부패한 정권을 유지해왔는데 군 장교들이 시위 진압을 꺼 리는 가운데 시위대가 관저를 위협하자 도망자가 되었다.
부정 선거로 당선되어 국내외의 압력에 노출된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도 간담이 서늘할 것이다.
하시나 수상은 섬유공업의 발전과 능란한 외교술로 입지가 튼튼한 것으로 정평(定評)이 나 있었다.
인접한 인도 및 중국과 두루 사이가 좋았다. 서구 민주국가들도 그의 독재에는 너그러웠다. 이슬람 과격파를 잘 통제하는 데 감사하기도 했다.
사태의 시작은 방글라데시 독립운동 후손들에게 주는 '유공자 특혜' 문제 였다.
하시나 수상이 정부 관련 일자리 중 30%를 1971년 독립투사 후손들에게 배정하는 특혜를 다시 살린 것이 젊은층의 분노를 터트렸다.
수혜자는 거의가 집권당원들이었다. 대학생들이 불공정성에 항의하는 평화적 시위를 시작했는데 정권이 경찰 을 투입, 강경진압하여 300명을 죽이고 1만 명 이상을 투옥하고 대학교, 고교 등을 폐쇄하였다.
정부는 시위 주모자들이 방글라데시 독립을 반대한 반역자들 후손이라고 규탄했으나 시위는 격화일로였다.
경찰과 군인들도 진압의지를 상실, 시위대를 방치하니 신상(身上)의 불안 을 느낀 수상은 도망을 결심한 것이다.
야당이 탄압을 받아 약해진 상태에서 안정적 정권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 가 하는 임무는 군대에 맡겨졌다.
민주적인 전통과 제도가 약한 이슬람 국가에선 독재자를 타도한 이후 혼 란을 수습하는 데 실패, 가다피를 몰아낸 리비아처럼 국가가 거의 해체되 기도 한다.
인구대국(8위) 방글라데시의 혼란은 심각한 국제문제가 될 것이다. 민주화 유공자에 대한 오만한 특혜정책이 젊은층의 분노를 자극한 기폭제 가 된 점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세계 어디서나 젊은층은 ’공정한 경쟁’을 원한다. 이 나라에 대한 직접투자액 부문에서 한국은 상위권에 있다.
영원무역 등 많은 섬유, 특히 기성복 업체가 진출해 있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 최보식의언론 :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202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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