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영의 대속(代贖)
“여러분들도 누군가가 대속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쌍방울그룹 부회장을 지낸 이화영이 지난 4월 30일 면회 온 민주당 다선 의원 2명에게 쏟아놓은 고백입니다.
그는 이에 앞서 “이재명 대표를 만나 안부를 좀 전해 달라”, “김광민 변호사(이화영의 변호인)가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부탁도 했습니다. 의원들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지난달 26일 이화영의 항소심 첫 재판에서 검찰이 공개한 구치소 면회 녹취록 내용입니다.
# ‘대속’이라고?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인지, 아니면 소도 웃을 일인가 싶어 마른하늘을 쳐다보며 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대속이라는 말이 어울리지도 않는 데다, 그 말의 여운이 스스로 허방을 파는 짓 같아서입니다.
# 대신 속죄한다면 죄지은 범인 있다는 암시
대속(代贖)은 남의 죄를 대신해 벌을 받거나 속죄한다는 뜻입니다. 종이 주인 대신, 스승이 황태자 대신 벌을 받거나 인간 대신 속죄양(贖罪羊)을 제단에 바치기도 했습니다.
기독교 용어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만민의 죄를 구원한 일을 의미합니다. 세속의 이해관계와는 동떨어진 성인(聖人)의 조건 없는 믿음·사랑과 희생의 정수입니다. 이화영이 입에 담을 가벼운 말이 아닙니다.
이화영의 “대속” 발언에는 몇 가지 개연성과 의문점이 있습니다. 첫째, 자신은 누군가의 죄를 대신해 벌을 받고 있다는 암시입니다. 면회 온 국회의원들에게 “누군가가 대속했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그 자리에 있는 것…
” 운운한 것은 직접 이름을 대진 않았으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떠올리게 합니다. 또 자신이 누군가가 저지른 죄의 속죄양이라는 사실도 내비치고 있습니다.
# 이재명의 적극적 도움 간절히 바라는 듯
둘째, 이화영은 이재명 대표의 적극적 도움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의원들 면회 보름 전인 4월 15일 수원구치소를 찾은 부인 백정화 씨에게도 “이재명 대표를 한번 만나 달라"고 했습니다.
(백씨) “내가? 싫어!” / (이) “왜 왜 왜, 이재명 만나기 어렵나?” / (백씨) “난리 칠 거 아니야?” / (이) “아니, 비공개적으로….” “이화영이 유죄면 이재명도 유죄” 주장을 더 굳히는 것은 아닌지.
셋째, 그는 9년 6개월이라는 1심 형량에 대해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형량은 쌍방울에서 받은 뇌물(징역 8년)과 정치자금법 위반(징역 1년 6개월) 등 거의 자신이 저지른 죗값입니다.
방북 비용 등 800만 달러의 쌍방울 대납을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보고했다고 한 진술(작년 6월)도 스스로 번복했으니 도움 받기는 한층 어려울 것입니다.
정치인들은 고사성어 같은 문자 쓰기를 좋아합니다. 옛일을 거울삼아 현실을 은유 비판하고, 글줄이나 읽었음을 과시하려는 심리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진술 번복 같은 말 바꾸기, 검찰 조사실의 회유 술자리 같은 소설 쓰기도 마다하지 않는 잡범이 자신의 처지를 성인의 대속에 비유한다면 과대망상이나 착각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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