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4일(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응답한 사람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나타나엘은 바르톨로메오 사도와 같은 인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동료 필립보가 소개해 줘서 예수님을 만나 제자가 됐다. 사도에게는 그날이 첫 만남이었지만, 예수님은 그전에 벌써 그를 눈여겨보셨고, 그의 사람 됨됨이를 알고 계셨다.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수님 시대는 랍비라고 불리는 율법 스승을 그의 문하생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찾아다니고 청해서 그에게 수학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반대로 그들을 직접 불러 당신 제자가 되게 하셨다. 나타나엘도 자신이 찾아온 게 아니라 사실은 예수님이 이미 그를 마음에 두고 계셨다. 이는 예수님 말씀 그대로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6) 열두 사도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 다 그렇다. 우리는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하느님을 찾아온 게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를 부르셨다. 사실 우리는 하느님을 모르거니와 알 수도 없다. 당신이 보여주고 알려 주셔서 겨우 그분을 알게 됐다. 이를 계시(啓示)라고 한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분이 스스로 그것을 걷어내서 우리가 당신을 볼 수 있게 된 거다. 그런데 사람들은 신을 찾는다.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고,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존재로서, 악당에게 벌주는 신을 찾는다. 반대로 하느님은 우리를 불러 당신이 앞서가시며 보여주신 그 길, 진리의 길로 따라오라고 초대하신다. 하늘나라로 가는 길은 예수님이 가셨던 십자가의 길밖에 다른 길은 없다. 사람들이 찾는 신과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은 완전히 다른 분이다. 아니, 사람들이 찾는 그런 신은 사실 존재하지도 않는다.
최고의 계시, 계시의 절정은 십자가 위 예수님이다. 복음서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실 때 성전 휘장이 두 갈래로 찢어졌다고 전한다.(마태 27,51; 마르 15,38; 루카 23,45) 지성소, 하느님이 계시는 데라고 지정해 놓은 그곳을 가렸던 휘장이 찢어진 것이다. 그런데 그 성전 지성소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본래 모세가 받은 십계명 돌판을 담은 계약의 궤가 있어야 했지만, 침략과 유배 생활을 거치면서 그 상자와 돌판은 사라졌다. 휘장이 찢어짐이 의미하는 바는 아주 명확하다. 모두에게 하느님께 가는 길이 열렸다. 대사제만이 아니라 율법을 지킬 수 없어 죄인이 될 수밖에 없는 일반 서민들도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성당 문은 언제나 열려 있어서 누구나 들어가 감실에 계신 예수님과 만나 대화할 수 있는 것과 같다. 그 공간은 이제 특별한 사람만 간신히 들어가는 특별한 장소가 아니다. 참된 거를 찾고 참되게 살고 싶은 누구나 십자가 위 예수님을 만난다. 나타나엘이 그런 사람이었고 우리도 그런 사람이기를 바란다.
예수님, 십자고상 위 축 늘어진 주님 몸은 완전한 그리고 가장 큰 사랑입니다. 개신교회 예배당에는 구약의 규정을 들어 그건 우상이라고 빈 십자가만 걸어 놓는다는데, 왠지 제게는 그건 그냥 큰 나무 같습니다. 그 몸은 제 어머니 퉁그러진 발처럼, 지극한 송구함과 더 지극한 감사를 불러일으킵니다.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로또가 당첨되는 게 아니고, 모든 게 제 뜻대로 술술 풀리는 것도, 악당들이 망하는 것도 아닌 줄 압니다. 그런 신은 강아지에게나 주고, 성인들이 일생을 헌신하고 순교자들이 지켜 전해 준 이 신앙을 끝까지 지키겠습니다. 부르셨으니 응답합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천상 계명 길로 저를 인도해주소서.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