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촛불 없이 미사 하면 안 되나요
제대 위 촛불, 예수님 십자가 희생과 영광 상징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가 주님 성탄 대축일 전야 미사를 주례하고 있다.
교구장 주교의 미사이기에 제대에 7개의 초가 밝혀져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신입 복사 학생이 복사를 서는 날, 성당에 와서 인사하더니 쭈뼛쭈뼛 옆으로 다가옵니다.
“왜? 할 말 있니?”
“그런데 선생님. 미사 때 촛불을 꼭 켜야 하나요? 안 켜고 하면 안 되나요?” 미사 때마다 촛불을 켜야 하는 이유가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제대 초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뜻한단다. 초가 스스로 타면서 빛을 선사해 주듯이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당신이 죽으심으로써 인간에게 새 생명을 주셨기 때문이지. 이야기를 더 이어가 볼까?”
“촛불은 예수님의 영광을 상징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부 오른편에서 영광을 받으심을 뜻한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8,12)라는 말씀을 통해 제대 초는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초는 ‘빛을 준다, 어둠을 밝힌다, 인간에게 진리의 빛을 주므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신다’란 뜻이 있지. 초대 교회에서 초는 빛을 밝히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후 전례 안으로 들어오면서 빛이신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모신다는 의미로 제대 초를 사용해.”
“그래서 미사 때는 촛불을 항상 켜놓는 거군요. 그럼 아무 초나 사용해도 되는 건가요?”
궁금했던 제대 초에 대해 알려주니 이번에는 다양한 종류의 초를 미사 때 사용해도 괜찮은지 궁금했나 봅니다.
“교회에서는 원칙적으로 꿀벌의 밀랍으로 만든 밀초를 사용해왔어. 밀초를 사용한 이유는 벌들의 처녀성과 순결성, 그리고 희생성에서 죄 없으신 어머니의 몸을 빌려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를 상징해.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는 양초를 많이 사용하고 있단다.”
밀초의 의미를 설명해 주었더니 이해하기 힘든 표정입니다. 그럴 만합니다. 성인들도 밀초라는 말은 알지만, 그 안에 숨은 뜻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테니까요.
“이제 복사 준비하러 가야지?” 했더니 한 가지 더 알고 싶은 것이 있다며 질문합니다.
“제대 초 개수가 왜 미사 때마다 달라요?”
“그건 말이야, 시기마다 전례의 중요도에 따라 등급이 정해져 있어서 그렇단다. 전례 등급에 따라 초의 개수도 달라지는 거지.”
▲ 1등급 전례일(초 6개) - 주님 수난과 부활의 파스카 성삼일, 대축일, 부활 팔일 축제 기간, 대림·사순·부활 시기의 주일, 재의 수요일, 성주간 월~목요일, 위령의 날.
▲ 2등급 전례일(초 4개) - 연중 시기 주일, 보편 전례력의 주님의 축일, 성탄 팔일 축제, 대림 시기 12월 17~24일 평일, 사순 시기 평일, 지역 교회와 수도회의 고유 축일.
▲ 3등급 전례일(초 2개) - 보편 전례력의 의무 기념일, 평일, 선택 기념일.
“각 교구 교구장 주교님이 주례하는 미사 때엔 초 7개가 사용된단다. 교구장 초 1개에 초 6개로 더욱 성대함을 드러내지. 교구장은 주교님 중에서도 교구의 총 책임을 맡는 분을 말하고, 교구의 모든 일을 관리하는 분이시지.”
“오늘은 평일 미사니까 제대 초 2개를 켜면 되는 거네요. 저 복사 준비하러 가겠습니다!”
복사 학생이 설명을 듣고 나서는 환한 모습으로 미사를 향해 갑니다. 참 대견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제대 초 개수를 보고 그날 전례의 의미와 성격을 알 수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5월 26일, 박모란 클라라(인천교구 박촌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