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로또 보류지 강남서 수억내려도 안팔려요.
이데일리, 오희나 기자, 2023. 4. 12.
[이데일리 오희나 기자] 부동산 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그간 무조건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다던 재개발·재건축 ‘보류지’의 몸값도 떨어지고 있다. 수차례 유찰을 겪으면서 첫 입찰가보다 4억~5억원을 낮췄지만 주인을 찾지 못한 채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보류지는 도시정비 조합에서 누락·착오·소송 등을 대비해 분양세대 가운데 일부를 분양하지 않고 남겨두는 물량을 말한다. 전체 세대 수의 최대 1%까지 보류지로 남겨놓을 수 있고 이는 조합 의무사항이다. 공개경쟁입찰 방식이어서 청약통장도 필요 없다. 조합원 매물이기 때문에 전매 제한도 없다. 따라서 일반 청약과 달리 ‘아는 사람만 아는’ 로또로 통했다. 보류지는 그동안 입찰에 성공하기만 하면 무조건 시세 차익을 볼 수 있다며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아파트값이 하락하면서 강남 재건축 보류지가 유찰을 거듭하는가 하면 경쟁률 높았던 단지들도 맥을 못 추고 있다.
4월 12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이날 ‘서대문 푸르지오 센트럴파크’ 재건축 조합은 보류지 3가구에 대한 매각공고를 냈다. 지난달 31일 한차례 공고를 냈지만 7일 마감까지 매각되지 않아 다시 진행키로 했다. 전용 55㎡ 2가구는 8억5000만원, 전용 59A㎡ 1가구는 10억원에 나왔다. 조합 관계자는 “보류지 매각공고가 나갔지만 성사되지 않아 다시 내기로 했다”며 “가격을 내리지 않고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매각 공고가 나왔던 보류지는 줄줄이 유찰을 이어가고 있다. ‘대치푸르지오써밋’ 재건축 조합은 지난달 30일 아파트 보류지 13가구에 대한 매각 공고를 냈다. 전용 51㎡~117㎡로 최저입찰가가 17억1000만원부터 40억원까지다. 이달 14일 입찰 마감이지만 매각이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앞서 인근 ‘르엘대치’ 재건축조합도 작년 4월부터 올해 2월까지 보류지 매각 공고를 다섯 차례 냈지만 줄줄이 유찰됐다. 지난달 말 올라온 5차 매각공고 최저입찰가는 전용 59㎡가 19억2600만원, 전용 77㎡가 23억7600만원이었다. 1차 최저입찰가와 비교하면 각각 4억2800만원, 5억2800만원을 각각 하락한 셈이다.
청약시장에서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기록했던 단지도 보류지 시장에서 외면을 받고 있다. ‘더샵파크프레스티지’ 재개발조합은 지난달 6일 보류지 2가구에 대한 매각에 나섰지만 유찰됐다. 지난 1월에 이어 2차례 유찰이다. 1차 매각공고 당시 전용 59㎡와 84㎡의 최저 입찰가를 각각 13억원, 16억원에 책정했던 조합은 2차에서 11억7000만원, 14억4000만원으로 입찰가를 내렸지만 매각에 실패했다. 지난해 7월 입주를 시작한 이 단지는 2019년 1순위 청약에서 187가구 모집에 2만1367명이 몰리며 평균 11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바 있다.
문제는 이들 아파트 단지 보류지의 입찰가가 시세를 웃돌아 흥행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입지 좋은 구축아파트에서도 ‘급급매’가 나오고 있어 굳이 시세대비 비싼 보류지를 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대치푸르지오써밋 인근 단지인 ‘래미안대치팰리스’ 1, 2단지 전용 84㎡가 지난달 28억1000만원에 거래됐다. ‘대치푸르지오써밋’의 같은 평형에 비해 1억원 이상 낮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부동산 시장 침체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보류지 역시 시장 여파를 피하지 못해 입찰가를 낮추고 있다”며 “앞으로 보류지도 청약 시장처럼 입지가 아주 좋거나 시세 차익이 크지 않다면 시장의 관심을 더욱 받기 어려울 것이다. 유찰이 이어지면서 일부 조합에서 가격을 내리고 있지만 무작정 내릴 수 없어 조합과 수요자 사이의 가격 차가 커 한동안 이 같은 상황은 이어지겠다”고 내다봤다.
오희나 (hnoh@edaily.co.kr) 기사 내용을 정리하여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