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부처님
오늘도 달빛에 홀리어 마을로 내려갔다. 싸늘한 공기가 신선한 느낌을 주는 초겨울날씨는 쓸쓸해서 좋다.
노랗다 못해 주황색이 감돌던 은행잎도 모두 떨어져버리고, 을씨년스런 가지를 들어 낸지도 벌써 오래다. 해병대 영장이 나왔다며 강릉에 있는 집에 며칠 다니러 갔던 친구가 오늘은 짐을 싸서 아주 절을 내려가 버렸다.
같이 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혼자 있게 되니 무척 쓸쓸하다. 아궁이 끝에 덧대어 만든 작은 아궁이에 지핀 장작불빛이 열어놓은 부엌문밖으로 퍼져나가 어둠 속으로 흡수된다.
일찍 저녁밥을 해먹었지만 이젠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아 딱히 할 일도 없다. 골짜기를 흐르는 차가운 물소리는 더욱 을씨년스럽다.
이제 겨우 저녁6시인데도 어둠이 내려앉는 골짜기는 작은 사찰과 함께 밤을 맞을 준비를 한다.
이때쯤이면 “형 뭐해? 하면서 어슬렁거리던 올해 15살 된 화목지기 아들 복길이도 오늘은 어쩐 일인지 얼씬도 안한다.
해가 지면서 어두워지는 숲 속 오솔길이, 푸른색을 띤 보름달이 하늘높이 떠오르자 한층 밝아졌다.
절 마당에서 아래로 곧장 뻗어있는 오솔길을 한참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그 길을 따라 나섰다.
지난번처럼 친구마중이라도 가듯 조금씩 내려 가다보니 자신도 모르는 새 시오리 나 떨어진 마을에 다다랐다.
어성전리에서 유일하게 알고 지내던 여교사들도 방학이라서 돌아가 버리고, 여기저기 마을을 둘러보아도 딱히 갈 곳도 없다.
지난번에 친구와 같이 왔던 그 집에서 막걸리를 한 되 시켰다.
한잔주량인 나는 막걸리 한사발로 이미 취기가 느껴졌다. 아니 취한다기보다는 홍당무 같은 얼굴이 문제다. 그냥 앉아 있자니 겸연쩍기도 하여 또 한잔 자작해서 마시고는 그 집을 나왔다.
그리고 오던 길로 접어들었다. 올 때는 몰랐는데 막상 돌아가려니 멀게만 느껴졌다. 푸른 달빛은 더욱 을씨년스럽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밝은 달빛은 부담스럽다. 누군가 숨어서 나를 훔쳐보는 것 같다. 나는 달빛에 숲이 만드는 그림자에 숨어서 길을 걸었다.
흥얼거리던 노래 소리는 고함소리로 변하고, 나는 어느덧 주정뱅이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다시 시 오리 길을 걸어 절에 다다르니 스님 방에 켜져 있던 촛불도 이미 꺼지고 없었다.
대웅전 법당에 들어가 촛불을 켜고 부처님 앞에 꿇어앉았다. 마음이 울적할 때는 늘 그렇게 하면 마음이 편했다.
나도 얼른 취직하고 군대도 가야 하는데,, 생각할수록 막막하다.
젊은 날의 고뇌랄까? 정말로 머릿속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데 현실은 답답하고... 술기운 때문인지 한참을 기도 하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 그때였다.
"우두둑, 뚝” 하는 벼락만큼 큰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한 어마 어마하게 큰소리였다.
대들보가 부러진다면 아마 이런 소리가 날 것이다. ( 훗날 대포 소리도 가까이서 들어봤지만 그보다 크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소리를 듣고 나니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문득 부처님을 쳐다보니, 마치 누군가가 부처님 그림자 뒤에 숨어서 나를 엿보고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무서워지기 시작하였다.
불을 끄고 법당을 나가야겠는데 어쩌면 좋을지 몰랐다. 불을 켜놓은 채로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불이 날 게 뻔하니까, 두려움을 간신히 참고 불은 껐다. 그리고는 무서워서 뒷걸음질로 법당을 나왔다.
지난 몇 달간 절에서 지내면서 무서움은 없었다. 두려움은커녕 미소를 머금은 대웅전부처님께 친밀감마저 느끼며 드나들던 법당이었다.
대웅전에서 나온 뒤엔 대웅전뒷마당 절집에 딸린 내방미닫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그 속에도 누군가가 있는 것 같았다.
두려움을 참고 들어와서, 촛불도 안켰다. 불을 켜면 누군가의 표적이 될 것 같았다. 몇 달간하지 않던 짓을 했다. 문을 잠그려 더듬었으나, 허술한 미닫이문에는 시건장치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미닫이손잡이 둘을 맞대고 노끈으로 칭칭 묶어 두었다.
설령 잠근다 해도 성근 문살에 창호지 한 장이 전부 이련만 얼마나 무서웠으면 그 문이라도 잠그려 했을까?
나는 마치 누구한테 쫒기는 사람처럼 숨죽이고 그 밤을 보냈다.
자는 둥 마는 둥 아침이 오자 짐을 꾸렸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스님의 가족들이 추수한 쌀을 가져가는 날이어서 트럭한대가 왔다가는 교통편이 있었다.
나는 얼른 이불보따리와 책등을 트럭쌀가마위에 싣고 그 위에 앉아 그 절을 내려왔다. 트럭위에 타고 오는 동안 만감이 교차했다.
어떻게 해서든 성공해서 돌아가겠다던, 올 때 다짐은 어디가고 서둘러 이렇게 떠나다니, 너무 서두르다 보니 몇 달간 성심으로 돌봐주시던 스님께 하직인사도 빠트렸다.
이미 정이 뜨고 무서워서 더는 절에서 밤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집에 도착하자 조금씩 내리던 싸락눈이 점점 함박눈으로 변했다. 그리고 며칠간을 쉬지 않고 내렸다.
온 세상은 길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흰색으로 변했다. 라디오에서는 연일 몇 십 년 만의 대설이라고 시간마다 방송한다.
얼마나 많이 왔는지 처마 밑에 까지 싸였다. 꼬질(마른풀)가리와 변소 까지 굴을 뚫고 다닐 정도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울진에서 무장공비가 대거 침투하여 백두대간을 타고 이동하며 민심을 소란 시킨다는 소식을 라디오로 들었다. 주문진과 연곡에서 공비가 사살되고 더러는 생포되었으며,
민간인도 납치를 되었다는 소식도 들려 왔다. 그 중에 가장 기막힌 소식은 내가있던 절 주지스님이 지서(경찰파출소)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체포된 공비한명을 심문하니 그의 행적 중에 명주사에 들어가 주지를 협박하여 며칠간 숨어 지냈다고 자백을 하였다는 것이다.
당초의 계획은 퇴각에 필요한 식량과 물품을 빼앗고, 사람을 납치하여 동반하고 북으로 향하려던 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의치 않자,
다소의 식량과 옷가지를 빼앗아 그 절을 빠져 나왔다는데 주지가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안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주지가 감옥에 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소문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일 내가 그날 그 절을 빠져나오지 못했으면 곧바로 내린 눈길에 막혀서 어쩔 수 없이 그 절에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 공비한테 붙들려서 치도곤을 당하고 북으로 끌려갔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미치자 나는 부처님께 감사기도를 올렸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저를 살리려고 절에서 쫒아 내셨군요. 고마우신 부처님!”
첫댓글우왕 이번에도 조마조마한 사연이었네요.
에구 저두 오싹해져서 혼났어요.
무장공비까지 만났으면 더 무서울 뻔했네요.
정말 부처님이 싸인을 보내 주신 것같아요
그래요. 모든것이 운명인가봐요
공비라 참 오랫만에 듣는 단어네요
@오경석 오 무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