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테러방지법의 독소조항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국가정보원장이 테러위험인물에 대한 민감 정보를 포함하는 개인정보와 위치정보를 ‘개인정보처리자’와 ‘위치정보사업자’에게 요구할 수 있다”(9조 3항)는 조항은 이전까지 발의됐던 테러방지법에 없던 내용을 새누리당이 끼워 넣은 것으로서 국정원장이 개인정보를 취급하는 사업자에게 국민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무제한적으로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심지어 이를 처리하는 절차나 보고 의무도 없다. 이 외에도 ‘테러위험인물’이 너무 광범위하게 규정되어 있어 사실상 국정원장 마음대로 테러위험인물을 지목할 수 있는 상황이다. 야당은 9일 간의 필리버스터에서 이런 점을 수도 없이 비판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필리버스터에서 드러난 테러방지법의 많은 문제점을 KBS에서는 들을 수 없었다. 공영방송인 KBS가 필리버스터의 내용을 전달하기는커녕, 여당이 주장하는 테러방지법의 효용성만 반복적으로 선전하고 테러방지법 통과를 막으려는 야당에 대한 공세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알아야 할 내용, 방송이 알려야 할 내용에는 완벽하게 침묵하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발언까지 왜곡하며 오로지 정권의 나팔수 노릇만 한 <KBS 뉴스9>을 2016년 2월 ‘이달의 나쁜 방송 보도’로 선정한다.
필리버스터 이전부터 시작된 KBS의 테러방지법 여론전
테러방지법 통과에 군불을 떼는 KBS의 여론전은 일찍이 시작됐다.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국회를 방문해 테러방지법 통과를 촉구한 지난 19일, KBS는 북한의 테러 위협과 우리 정부 주요 인사 경호 강화 조치를 전한 데 이어, 지상파와 케이블 7개 방송사 가운데 유일하게 테러방지법 필요성을 강조하는 꼭지를 덧붙였다. <“OECD 31개국 반테러법 시행중”>(2/19, 김경수,김기현,조태흠 기자)은 “미국은 DNI 즉 국가정보국이 신설돼 CIA와 FBI는 물론 국토안보부까지 15개 정보기관을 통합해 관리”한다며 미국 사례를 들어 테러방지법의 필요성을 강변했다.
하지만 이는 왜곡이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직후 ‘애국자법’을 통과시켜 테러방지법과 마찬가지로 정보기관에 '테러혐의자 색출'을 위해 시민들을 감청하고, 입수한 통신기록을 5년간 보관할 권리를 부여했다. 하지만 곧 민간인 사찰 등의 부작용이 불거지면서 2015년 6월 폐지됐다. 심지어 보수적인 공화당 랜드 폴 의원은 장장 10시간의 필리버스터로 오바마 대통령의 애국자법 연장 시도를 막기도 했다. KBS는 이런 사실을 외면한 반쪽짜리 사례로 국민의 눈을 속인 것이다.
KBS는 22일에도 <“총기·실탄 적발 급증…대테러팀 신설”>(2/22, 오수호 기자)을 톱보도로 배치해, 정부가 각 세관에 대테러 전담팀을 신설했다면서 북한의 테러 위협을 강조하고 국민 불안을 자극했다.
노 전 대통령이 원조? 부끄러움 잊은 ‘아전인수’
필리버스터 이전에 테러방지법 여론몰이에 주력하던 KBS는 필리버스터가 시작되자 본격적인 야당 폄훼에 나섰다. KBS <“무차별 감청 확대” “인권 보호 장치 마련”>(2/25, 류호성 기자)는 고 노무현 대통령 발언을 끌어들여 테러방지법이 참여정부 시절 이미 추진된 법안이므로 야당의 반대는 자가당착이라는 식의 논리를 펼쳤다. 2006년 8월 국정원을 방문한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의 명령으로 국정원이 그와 같은 대테러 업무를 수행하는 데 지장 없도록 일단 뒷받침을 하겠습니다”라며 지금의 정부 여당과 같은 주장을 펼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2006년 당시 KBS 보도의 기조는 사뭇 달랐다. 2006년 8월 17일, KBS는 단신으로 노 전 대통령의 위 발언을 보도했는데 "강력한 정보기관이 사전 정보 파악을 하면서 유사시 정보를 가지고 상황을 관리해야 하는데, 국정원이 원죄가 있어 그 부분까지 국민에게 위임을 받지 못했다"는 발언도 소개했던 것이다. 실제 참여정부는 정치 개입과 불법 도청으로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던 국정원 개혁을 강력히 추진했고 노 전 대통령의 해당 발언 역시 국정원 개혁 수행 이후 ‘개혁된 국정원’이 제대로 된 일을 맡을 수 있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주요 맥락은 싹 빼버린 채 지금의 정부 여당 입맛에 맞게 각색한 보도를 내보내는 것이 공영방송 KBS의 현실이다.
△ KBS <“무차별 감청 확대” “인권 보호 장치 마련”>(2/25)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공영방송 KBS의 추락은 끝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총선을 앞둔 2016년 2월 이후에는 특히 북한의 핵위협, 테러 위협을 지나치게 부각하며, 기본적인 검증조차 부족한 보도를 쏟아냈다. 이와 함께 안보 정국을 틈타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고 표심을 잡으려는 여당의 행보를 적극 지원하는 보도 역시 범람하고 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발언까지 왜곡하여 테러방지법 통과를 밀어붙였던 KBS의 보도는 그 중에서도 최악의 보도였다.
나쁜 신문보도, 동아일보
'카더라 북한 테러 시나리오'로 청와대발 북풍몰이 나팔수 자처
납치‧테러 가능성 제기하며 북풍몰이 나선 정부 여당
새누리당은 2월 18일 국회에서 국가정보원, 국방부, 외교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안보상황 점검 긴급당정협의를 열었다. 국회 정보위원회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은 해당 협의회 직후 브리핑에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최근 남한에 대한 테러 역량을 결집하라고 지시했으며, 대남·해외공작 총괄기구인 정찰총국이 이를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당국의 보고가 있었음을 밝혔다.
이 의원은 발생 가능한 테러 유형으로는 반북활동가, 탈북민 등을 상대로 한 독극물 공격, 중국으로 유인한 뒤 납치, 정치권 인사와 반북 인사에 대한 협박 소포·편지 및 신변위해 기도 등이 꼽혔다고 전했다. 이어 지하철, 쇼핑몰을 비롯한 다중이용시설과 정수장, 발전소 등 국가기간시설 역시 주요 테러 목표가 될 수 있다는 보고도 덧붙였다.
같은 날 오후 청와대는 긴급 브리핑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재차 강조했다. 김성우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해당 브리핑에서 “최근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직접 위해할 수 있는 대남 테러 역량을 결집하라는 김정은의 지시가 있었고, 정찰총국이 이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아직도 테러방지법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어 너무도 안타깝다”고 강조했다.
공공기관 테러‧주요인사 암살 가능성 제시…근거는 ‘無’
4·13 총선과 테러방지법 통과를 앞두고 정부 여당과 국정원 등이 주도한 이 같은 ‘아젠다 셋팅’에 가장 적극적으로 동참한 것은 동아일보다. 실제 동아일보 윤상호 군사전문기자는 긴급당정협의 바로 다음날인 2월 19일, <심상찮은 김정은…정관계 인사-지하철 등 노릴 가능성>(3면) 보도를 내고 “청와대 고위 당국자가 실명으로 북 테러 위협을 언급한 건 매우 이례적”이며 “그만큼 북한의 관련 동향이 심상치 않”음을 적극 강조했다.
먼저 동아일보는 “가장 우려되는 북한의 테러 시나리오”를 하나하나 꼽아가며 불안감을 조성했다. “대북 강경 유력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등의 “주요 인사 암살 시도” 가능성이 있으며, 이에 더해 “북한 최정예 특수부대인 11군단(폭풍군단)과 정찰총국 산하 공작원들은 한국 주요 인사 암살 리스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는 식이다.
“탈북자로 가장한 간첩을 보내 탈북 인사들을 노릴 가능성”도 제기됐다. 동아일보는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해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의 독침 암살”이나 “북한 공작원의 총탄에 숨”진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 씨”의 사례를 제시했다.
동아일보는 북한이 “불특정 다수에 대해 기습 테러를 할 가능성”도 소개했다. 이를테면 “4·13총선 직전 지하철역이나 공항 등 다중이용시설을 겨냥해 원격장치를 이용한 독가스나 폭발물 테러”가 벌어질 수 있으며, “원전(原電)이나 가스저장시설, 변전소, 정수장 등 국가 기반시설” 역시 “북한 특수부대의 핵심 표적으로 꼽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주장의 근거는 어디에서도 제시되지 않았다. 기사 전반에서 모두 ‘카더라’에 의존한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테러가 발생할 시점 예측도 이어졌다. “북한의 7차 노동당 대회가 5월 7일”에 열릴 것이며 “당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렀다’고 선전하기 위해 북한이 3, 4월 중으로 여러 형태의 도발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고자 동아일보는 노동신문의 “5월의 하늘가에 승리의 축포를 어떻게 쏘아 올리는가를 세계 앞에 똑똑히 보여주어야 한다”, “위성을 더 많이 쏘아 올리라(올려라)” 등의 내용을 인용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온갖 방법으로 테러 위험을 강조한 동아일보는 연이어 박 대통령의 “북한이 어떤 방식으로 테러할지 예측 가능하지 않다”는 발언을 소개하며 테러방지법 통과 촉구 의지를 부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보도 어디에도 테러방지법의 독소 조항들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조선‧중앙‧한국도 국정원 발표 비판 없이 1면에 그대로 보도
공안정국을 조성하며 북풍몰이에 나선 정부의 충실한 나팔수 역할을 자처한 것은 동아일보만이 아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각각 <“독극물 공격 요인 납치 우려” 테러공포 부추기는 당정청>(2/19, 4면), <일제히 ‘테러방지법’ 촉구>(2/19, 1면)에서 국정원의 당정 협의회 보고 내용과 청와대 브리핑 등이 공안정국 조성과 테러방지법 통과 촉구를 위한 밑 작업임을 부각하는 사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한국일보는 동아일보와 마찬가지로 정부 여당의 ‘북풍 확산’에 기여하는 보도를 내놨다.
중앙일보는 <“북한 테러 납치 대상자 명단에 김관진·윤병세·홍용표·한민구”>(2/19, 1면)라는 단독 보도를 내놨다. 중앙일보 보도만 봤을 때는, 마치 북한이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윤병세 외교·홍용표 통일·한민구 국방부 장관 등을 납치 테러 대상자 명단을 올려놓은 사실이 밝혀진 것 같지만, 사실 18일의 긴급 안보상황 점검 당정회의에서 보고된 내용을 소개한 것에 불과하다.
조선일보와 한국일보 역시 19일 관련 보도를 1면에 내고 18일 긴급 안보 상황 점검 당정 협의회에서 보고된 국정원의 북한 테러 가능성 보고를 그대로 소개했다. 각각 <“김정은, 대북 사이버테러 준비 지시”>, <“북, 김정은 지시로 대남 테러 준비 중”> 보도에서 한국일보는 당정 협의회 보고 사항 뿐 아니라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의 춘추관 브리핑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전달 한 뒤 “우리 군은 최고 수준의 무력시위로 이에 대응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기사를 마무리 지었다. 조선일보는 “청와대와 국정원은 이날 북한의 테러 움직임과 관련된 구체적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고 정부가 “실제로 북한이 테러를 자행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한국일보의 보도는 정부 여당의 ‘종북 몰이’ 행태를 비판 없이 부각시켰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북한군 특수부대의 대남 침투 및 테러 시나리오’를 그래픽까지 제시해가며, 그 어떤 매체보다 북풍몰이에 몰두했다.
이처럼 동아일보는 온갖 방법으로 테러 위험을 강조하며 청와대발 북풍몰이에 총대를 메고 테러방지법 통과 촉구의 의지를 부각했다. KBS와 마찬가지로 이 보도 어디에도 테러방지법이 사실상 '빅브라더법(국민감시법)'이 되는 독소 조항들과 문제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이에 선정위원회는 동아일보를 2016년 2월, 이달의 나쁜 신문보도로 선정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