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옛친구 그리고 팔각정과 김치찌개>
새해 첫 주말, 환경과 이념을 달리하며 살아온 34명의 소꿉동무들이 모여 남산 둘레길을 산책했다.
일부 친구들은 향수에 젖어 케이블카를 타고 팔각정에 오르고 대부분 순환도로를 따라 걸었다. 남산 높이만한 서울타워에 올라 서울 전경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러나 옛 친구들에게 마음 속 정상은 타워 전망대가 아닌 팔각정이었다. 그래서 기념촬영은 팔각정에서 했다.
명동서 시작한 트래킹은 2시간만에 국립극장에 도달했고 장충동 돼지한근탕 집에서 뒷풀이가 이어졌다. 커다란 양은냄비솥에 돼지 한근을 숭덩숭덩 썰어넣은 1만8천원짜리 김치찌개와 소주를 놓고 세상 시름 잊은 이야기꽃을 피웠다. 따뜻한 쌀밥에 찌개국물을 말아 이마에 땀흘리며 먹으니 어느 고급 한정식과 고깃집보다 좋았다.
세상이 동서남북, 상하좌우로 나뉘어 어수선해도 소꿉동무들이 갖추어 온 이념과 환경은 양은냄비솥의 김치찌개처럼 융합되었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한 자리가 되었다.
지난해의 묵은 갈등과 시름을 벗어던지고 새해의 각오를 재충전, 리셋하는 신년트레킹이었다. 팔각정과 김치찌개의 정서를 공유할 수 있는 옛 친구가 더욱 좋게 느껴진 시간이었다.
<새해 동창회는 이런 자리가 되자>
위 글은 내가 한주에 한번 정도 올려놓는 짤막한 페이스북의 글이지만 1월 4일 경산회 새해 첫 산행에서 내가 느끼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해 놓았다.
그러나 우리 카페는 더욱 세세한 뒷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정겨운 자리 아닌가. 보완을 해야할 것 같다.
새롭게 출범한 경산회 첫 산행은 예상외로 많은 친구들이 참석했다. 30여년 함께 살아와 이젠 함께 소꿉친구가 된 12명의 아내들도 동참해주었다. 싱가포르에서 온 황진두 부부도 첫 만남이었지만 스스럼이 없었다.
학준이 자신보다는 몇몇 부인들을 위해 케이블카를 이용한 것 같다.
팔각정이 우리 마음 속 정상이긴 하지만 비싼 서울 N타워 전망대를 단체관람한 것은 호강이었다. 화려했다. 곳곳에 사람을 심어 놓은 성률의 빽으로 무료관람이 가능했다.
짧지않은 트랭킹이었지만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산했다. 가끔은 경산회 산행이 이런 가벼운 코스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백미는 뒷풀이 장소인 돼지한근탕집. 온갖 안주시켜놓는 것 보다 푸짐했다. 깔끔했고 부담없어 좋았다. 명서가 장인상 조문 답례로 계산을 한 것 같다. 1만원 회비로도 충분할 것 같았는데...안주와 식사가 좋으니 술이 더 들어가 누군가 슬쩍 추가로 지불한 것 같다. 여하튼 경산회 새 집행부로서야 기금이 축적되어 좋았겠으나 되도록이면 이렇게 알뜰하면서도 분위기좋은 뒷풀이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자리를 파한 후 일행들은 국보 모친의 조문을 위해 목동으로 이동했다. 등산복 차림이라고 탓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나이 60이 가까워지니 어머니가 떠나시며 추모 겸 자식을 위한 자리도 마련해주셨다는 생각이 자연스럽다. 언젠가 우리도 우리 자식들에게 그런 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하지 않은가.
동대역에서 목동가는 차편을 놓고 의견이 갈려 결국 종로3가 5호선, 고속터미널 9호선 팀으로 나뉘었다. 남산 팔각정을 오를 때도 순환도로길과 산책길로 이견이 생겼었다.
나이가 좀 드니 자신의 생활방식과 환경에 따라 자기 것에 익숙한 주장을 펼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자기 주장이 옳다고 확신하더라도 가끔은 대의에 따라 굽힐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 것도 우리의 미덕인 것 같다.
* 우리 동창회도 지난해부터 알뜰살뜰 내실을 기하면서도 마음의 여유들을 갖춰가는 것 같다. 호텔서 웨딩부페로 옮겼지만 전혀 다를 바 없었다.
또한 동창회가 순대국 떠먹으며 옛친구들이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것 같다.
나아가 우리가 그간 쌓아온 경륜을 서로 공유하며 함께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욕이 집행부에서 강하게 일었던 것 같다.
물론 그러한 의욕에 대한 친구들의 이견도 있을 것이다. 경산회처럼 소꿉동무들간의 위로와 격려의 자리를 넓혀가는 것으로 족하다는.... 집행부는 그러한 이견들을 취합해 과욕을 줄이는 한편, 친구들도 적절한 선에서 힘을 모아주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란 생각이다.
주제넘은 발언이다.
그러나 그사이 경산회, 동창회가 쌓아온 좋은 전통과 업적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한 친구의 의견으로 받아주길 바란다. 역대 회장단의 노고는 나몰라라 하고, 혜택만 받은 회원이 이제사 그 고마움을 알고 철들어 하는 발언으로 받아들이시길...
첫댓글 참석은 못했지만 올려준 사진들과 함께 민형이의 글이 깔끔히 정리를 해주네. 우리 동창 모임의 현주소와 내일에 대해서도 딱 알맞는 제안을 한듯하네.. 모임을 이끌어가는 친구들에게 감사!
김치찌개와 앞에 놓인 소주병,멋있게 늙어가고 있는 친구들.양은냄비에서 피어 오르는 뽀얗고 하얀김이 살짝 패인
주름살을 가리워주니 더 없이 멋진 영화 같은 한장면.민형이의 보기 좋게 서리내린 백발과 묘한 어울림이 세월감의 아쉬움을 달래주며,친구들의 왁자지껄한 입담도 끓고 있는 양은냄비에 담겨진 하루였던 것 같다.
역시 민형! 깔끔하게 동창회와 소모임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리해주네..매우 동감!
민형, 쌈빡하게 정리했네. 사진, 글 고맙네~~~
공감. 그 진심에 공감하네. (김치찌게에는 두부가 넉넉하게 들어가야 하는데......)ㅎㅎ
한겨울 산에서 코펠에 끓여먹던 엄니표 김치찌개가 그리워지는 글이네. 보글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