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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nasica/6862363 요 아래글은 왼쪽의 Nasica의 뜻은? 이라는 님의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톰클랜시옹의 소설 베어앤드래곤을 좀 텍스트라도 구해볼까 싶어서 검색을 해보다가 글이 재미있길래 퍼왔수요
집에 베어앤드래곤이 5권만 있네요,,,,1권부터 다 어디를 간거지,,,,누가 버린거야 아아아,,,,
오래전 색칠도 안하고 완성해둔 기갑사단분량을 아주오래오래전 오마니가 버릴때,,,책들도 같이 동반입대한건가,,,
테크노-스릴러라는 현대판 무협 소설 장르를 창조한 미국 작가 톰 클랜시의 작품 중에, 중국과 러시아의 충돌을 그린 '베어 & 드래곤'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매우 졸작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입니다만, 이 소설 중에 군인의 봉급 이야기가 나옵니다. 즉, 러시아군 장군 하나가 몰락한 러시아군의 현실을 개탄하면서, 최소한 하사관의 봉급이 공장 근로자가 받는 봉급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건 변하지 않는 군인 봉급의 척도를 나타내는 부분입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몰라도 (아마 필연에 가깝다고 생각됩니다만)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군인의 봉급은 그와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수공업자 숙련공의 하루 일당이 1 드라크마 정도였는데, 각종 병종들 중에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하는 병종이었던 삼단노선 노잡이의 일당이 대략 1/2~1/3 드라크마 (2~3 오볼) 정도였습니다. 중장보병의 경우 그보다는 많이 받았을 것이고, 당시 그리스의 수공업자 숙련공의 봉급이 아무래도 요즘 공장 근로자보다야 높았을 테니까, 대략 중장보병 일당 = 오늘날 공장 근로자 일당과 비슷하다고 보는 것이지요.
(일당 2오볼 짜리 월급쟁이들의 모습...)
확실한 것은 장교가 아닌 일반 병사들의 봉급은,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낮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요즘 우리나라 병사들처럼 낮은 경우는 정말 이례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병장의 경우 요즘은 9만원 좀 넘던데요. 제가 군 생활 할 때는 1만 몇천원이었는데, 그때에 비하면 정말 많이 올랐지만 그래도 여전히 과자값 정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장교들의 경우는 아무래도 직업이니까, 훨씬 더 많은 것은 당연합니다. 표를 보니 대위 정도되면 140~220만원 사이던데, 실제로는 이런저런 수당을 많이 붙여주므로 그보다는 많이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과연 나폴레옹 시대에, 장교들이나 병사들의 봉급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 또, 영국군은 모병제의 직업군인들로 이루어졌었고, 프랑스군은 징집병들로 이루어졌었는데, 봉급에 차이가 있었을까요 ? 또 세금은 얼마나 냈을까요 ?
(자, 다들 연봉들 까보자구 !)
먼저, 영국군 사병의 하루 일당은 아주 쉽게, 1실링(shilling)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프랑스군 사병의 하루 일당은... 당연히 영국돈 실링이 아닌, 프랑스 돈 수(sou)로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양국의 화폐 단위의 차이부터 아셔야 비교가 됩니다.
영국의 화폐 단위는 파운드(pound)입니다. 파운드라는 것은 무게 단위인데, 이것이 왜 돈의 단위가 되었을까요 ? 예, 짐작하시는 바와 같습니다. 바로 은 1파운드의 가격이 바로 영국 돈 1파운드의 가치였습니다. 원래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화폐의 기본 단위는 은화였거든요. 금이 화폐의 기준 가치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훨씬 후대, 거의 17세기 이후의 일입니다.
(이 표시 몰라요 ? 응 ?)
그런데 영국 파운드화의 표시는 £ (L)입니다. 왜 L일까요 ? 이는 원래 영국과 프랑스의 관계가 얼마나 깊은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입니다. 이 L은 바로 프랑스어의 livre를 뜻합니다. Livre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책을 뜻하기도 하지만, 역시 무게의 단위로 영국 파운드와 같은 뜻을 가집니다. 또한, 프랑스의 화폐 단위이기도 했습니다. 역시 은 1파운드의 가치를 가집니다. 사실 프랑스 대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영국과 화폐 단위는 매우 유사했습니다. 영국에서는 1파운드 = 20실링(shillings), 1실링 = 12펜스(pence)였고, 프랑스에서도 1리브르 = 20수(sous), 1수 = 12 데니에르(deniers) 였으니까요.
그렇다면 영국군 병사의 일당이 1실링이라고 했으니, 프랑스군 병사의 일당도 1수겠군요 ? 글쎄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1794년 혁명 정부에 의해 개정된 프랑스 군인들의 봉급표를 보면, 일반 사병의 하루 일당은 약 10~13수였습니다. 와 ~ ! 영국군에 비해 10배가 넘는군요 ! 장교들의 연봉은 더 큰 차이를 냈습니다. 영국군 보병 대위가 받는 일당은 10실링 6펜스였는데, 프랑스군 대위의 일당은 9 리브르였습니다. 약 17배 정도의 차이지요. 왜 직업 군인도 아닌 징집군인 프랑스 군대의 봉급이 영국보다 훨씬 많았을까요 ?
(대위님, 왜 프랑스군 월급이 우리의 10배지요 ? 설명해보시지요...)
짐작하시다시피, 그건 환율과 상관이 있습니다. 영국이나 프랑스나, 1파운드(453g)의 은을 1파운드/1리브르로 정했던 것은 정말 까마득한 옛날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통화 가치는 점점 인플레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영국은 활발한 식민지 무역을 통해 많은 금을 긁어모으면서 금 본위제로 흐르게 되었지요. 이미 16세기 들어, 영국에서 1파운드 무게의 은은 60실링, 즉 영국돈 3파운드의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가치가 상승했습니다. 나중에 1816년에 영국이 정식으로 금본위제를 채택할 때는 1파운드의 은은 영국돈 3.3파운드의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정해졌습니다.
(1811년 주조된 40프랑 짜리 나폴레옹 금화. 전체 무게 12.904g, 금 무게 11.614g)
이에 비해, 1795년 프랑스 혁명 정부가 프랑(franc)화를 제정할 때, 1프랑의 가치는 4.5g의 은으로 정했습니다. 당시 1리브르는 4.505g의 은이었고요. 그러니까 1816년 가치로 따져보면, 영국돈 1파운드는 은 137.27g에 해당하니까, 영국 1파운드의 가치는 프랑스 1리브르의 약 30배가 약간 넘는 가치를 가집니다. 하지만 이건 약간 불공평합니다. 전쟁이 승전으로 끝난 1816년 당시의 영국 사정과, 이제 막 혁명의 혼란 속에서 화폐 가치가 바닥을 치던 프랑스의 상황을 비교하는 것은 약간 무리가 있겠지요. (당시의 악명 높은 프랑스 아시냐 지폐에 대해서는 재정 적자, 아시냐 지폐, 그리고 나폴레옹 http://blog.daum.net/nasica/6862340 참조)
실제로 당시의 환율표를 보면, 1 수는 약 0.5 펜스에 해당했습니다. 그러니까 영국돈 1파운드는 프랑스 리브르의 24배 정도의 가치를 가집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위에서 언급된 영불 양군 병사나 장교들의 연봉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저렇게 은의 가치로만 따지자면, 영국군 사병이 오히려 프랑스군 사병보다 약 2배의 일당을 받는 것이 됩니다. 또 장교들은 영국군 장교가 프랑스군 장교보다 약 1.4배 정도 더 많은 일당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봐, 환율 때문에 실제로는 영국놈들이 우리보다 오히려 2배나 더 고액 연봉이라더군 ! - 뭥미 !!)
이렇게 영불 양군의 일당이 크게 차이가 난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합니다. 프랑스군은 징집제였던 것에 비해, 영국군은 모병제였으니까요. 게다가 영국군 장교들은 그 계급을 돈주고 산 것이쟎습니까 ? (영국 장교들의 매관매직 제도에 대해서는 나폴레옹 전쟁 - 왜 영국군이 이겼을까 ? http://blog.daum.net/nasica/6862323 를 참조)
자, 이렇게 설명이 되어도, 아직 저때 당시 병사들 또는 장교들의 연봉이 얼마 정도였는지 짐작이 안가시지요 ? 21세기를 사는 우리들로서는, 저때 당시 물가에 대해 전혀 감이 없기 때문에 당연합니다. 사실 2백년 전은 고사하고, 20년 전의 100원의 가치가 어느 정도였는지도 가늠하기 어렵지요.
특히 브레턴우즈 체제가 무너지면서 돈의 가치는 정말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지만, 금의 가치는 별로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요 ? 사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라는 말은 과학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모 다이아몬드 회사의 로비로 그런 007 영화 제목이 만들어졌다고 들었습니다만...) 다이아몬드는 그냥 탄소 결정체이니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매우 조금씩이나마 다이아몬드는 약간씩 탄소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억만년이 지나면... 그렇지만 억만년이 지나도 정말 금은 영원합니다. 자, 금의 가치로 볼 때 당시 병사들의 연봉이 어느 정도였는지 보시지요.
(여러분 지갑 속에 든 종이는 진짜 돈이 아닙니다. 돈이란 바로 이거죠. 금 !!!)
요즘의 금융위기로 인해 금값이 워낙 변동이 심하긴 하지만, 2009년 3월 현재 금 1g의 기준 가격은 약 4만2천원입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의 표준 금화였던 1기니(guinea) 금화의 가치는 21실링이었는데, 그 금화를 이루는 금의 무게는 8.39g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당시 전쟁 통에 금값이 많이 올라서, 1기니 금화는 실제 가치보다 더 많은, 27실링에 거래가 되었습니다. 물론 병사들이나 장교들이나 봉급을 금화로 받지 못하고 지폐로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금 1g에 3.218 실링이었던 셈입니다.
(1792년 조지 3세의 기니 금화... 지금의 가치는 무려 250파운드나 나갑니다.)
그러니까 당시 영국군 병사들은 하루 0.31g의 금을 받고 싸웠던 셈입니다. 이는 요즘 가치로 13,051원 정도입니다. 대략 월급 39만원 정도인데요 ? 영국군 대위의 경우 약 4.195g의 금을 일당으로 받았고, 이는 현재 원화 가치로 대략 월급 411만원 정도에 해당합니다. 와, 이 글을 혹시 읽고 계신 현역 육군 대위님들의 함성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 !" 하지만 잊지 마십시요. 그 영국군 대위들은 그 계급 돈 주고 산 겁니다. ㅋ 당시 대위 계급의 가격은 대략 1800 파운드였는데, 이를 금으로 환산하면 약 11.18kg이고, 이를 원화로 환산하면 대략 4억7천만원입니다. 대한민국 대위 여러분, 여러분은 4억7천만원을 국가에 헌납하고 군 생활하고 싶으십니까 ? 투자금 뽑는데만도 10년 정도 걸립니다 !!!
(간지좔좔 나폴레옹 근위대, 월급은 얼마일까 ?)
반면에 프랑스군의 일반 사병은 약 25만원 정도, 대위는 약 377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았습니다. 흠... 요즘 우리나라 대위들의 봉급을 평균잡아 180만원이라고 하면, 당시 프랑스 대위가 2배 정도 더 많이 받는군요. 게다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당시 프랑스군 사병의 봉급과 대위의 봉급 비율은 약 15배 차이인데, 우리나라 병장의 봉급을 9만7천원이라고 하고 대위들의 봉급 180만원과 비교하면 역시 비슷하게 18배 정도의 차이가 됩니다. 반면에 모병제였던 영국의 경우, 그 비율은 더 작아져서 약 10.5배 정도지요.
혹시 돈을 더 받고 싶으십니까 ? 그러자면 일선 보병부대보다는, 기병대에 입대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장교나 사병이나, 그런 쪽이 약간 더 많은 봉급을 받았습니다. 또 기병대보다는 포병이 더 높은 보수를 받았습니다. 뭐 큰 차이는 아니고요.
(고액 연봉자들의 충돌 - 니들이 왜 우리보다 더 많이 받아 ? - 꼬우면 너도 포병 해 !)
아무튼 이렇게 번 돈을 장교들이나 병사들이나 다 고스란히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을 수 있었을까요 ? 물론 아니지요. 요즘 월급장이 못지 않게 이것저것 공제되는 것이 많았습니다. 최소한 영국군은 그랬습니다. (프랑스군도 이렇게 각종 공제가 많았는지 여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먼저, 급식 비용이 있습니다. 급식 비용이 1년에 8 파운드나 되었습니다. 하루에 대략 6펜스 씩, 즉 하루 일당의 절반을 식비로 냈던 셈입니다. 당시 영국군은 잘 먹었느냐가 문제인데, 하루 배급 식량은 대략 다음과 같았습니다.
빵 또는 밀가루 1.5 파운드
쇠고기 1 파운드
완두콩 0.25 파인트
버터 또는 치즈 1 온스
쌀 1 온스
럼주 0.3 파인트 (또는 포도주 1 파인트)
뭐 나쁘지는 않지요 ? 하루에 쇠고기를 453g씩 먹는다면요. 그러나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형편없는 질과 양의 식사가 나왔습니다. 전투가 벌어지던가 식량이 떨어지던가 해서 실제로는 배급이 아예 없었다고 해도, 그래도 여전히 식대는 꼬박꼬박 공제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세탁비 및 바느질 비용으로 일주일에 4펜스 씩 내야 했습니다. 이 세탁비는 누가 갖냐고요 ? 당시에는 대대마다 부대를 따라다니는 부대 공식 부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부대 하사관이나 상병들의 부인들이었는데, 이 부인네들이 부대원들의 세탁과 바느질을 해주고 약간의 수고비를 벌었습니다.
(빨래 해줘서 고맙다고 ? 고맙긴 뭘... 돈이나 내.)
그 외에도 구두약이니 뭐니하는 각종 소모품과 정작 병사 본인은 평생 가 볼 기회가 없는 첼시 또는 킬맨햄의 육군 병원에 내야 하는 비용 등도 다 공제가 되었습니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생활하다보면 구두도 닳고 옷도 떨어지고 혁대도 망가지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렇게 닳고 망가지는 물건 값도 병사들의 봉급에서 공제했습니다. 유일하게 봉급에서 공제하지 않는 것은 장교가 인정한 '전투 중 파손' 뿐이었습니다. 가령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후퇴했는데 그 와중에 머스켓 소총을 잃어버렸다 ? 부대 지휘관이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얄짤없이 월급에서 공제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마도 뭔가 망가뜨렸거나 한 병사가 있다면 검열 이전에 하루라도 빨리 전투에 임하고 싶어 안절부절하는 병사들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보통 그렇게 다 제하고나면 1년에 '777', 즉 7파운드 7실링 7펜스만 남았다고 하네요. 결국 원래 연봉의 무려 60% 정도를 각종 공제로 떼였던 것입니다. 강도가 따로 없지요 ?
장교들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대위의 하루 급료는 10실링 6펜스였는데, 이 돈의 절반 이상이 장교 식당의 비용으로 공제되었고, 거기에 추가로 와인 및 식당 하인 비용으로 2실링 8펜스를 매일 내야했습니다.
(장교 식당엔 웨이터도 있고 아주 좋다고요 ? 세상에 공짜는 없답니다.)
문제는 불쌍한 소위들이었습니다. 급료로 받는 돈보다 장교 식당에 내야 하는 식대 및 회비가 더 많았던 것입니다 ! 게다가 나폴레옹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당시 영국에 새로 도입된 새로운 세금인, 소득세도 내야 했습니다. (소득세에 대해서는 인쇄술, 통계, 그리고 세금 http://blog.daum.net/nasica/6604521 참조) 그럼 어떻게 살았냐고요 ? 별 수 없이 집에다 손을 벌려야 했습니다.
이렇게 초급 장교들의 생활비보다 더 적은 액수의 급료가 나오도록 책정한 것도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이건 저 위에 말씀드린 당시의 전통인 매관매직과도 상관있는 것인데, 바로 있는 집 자식, 즉 당시 기준으로 보았을 때 '점잖은 신사 집안의 자식들'만 장교로 임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고 하네요. 신사 중의 신사인 '국왕의 장교'가 벌지 않으면 먹고 살 수가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라는 것이 당시 영국 중산층 사회의 상식이었다고 합니다. 즉 역시 돈 = 사회적 지위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것이지요.
대한민국 현역 장교 여러분, 혹시 아직도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군에 복무해 보고 싶으십니까 ?
첫댓글 말머리 달아주세요.
네 아론공님 말머리 달았습니다,,,분류가 저게 맞는건지 ^ㅡ^;;
숙식을 해결해줘서 좀 적은 게 아닐까 했는데, 그것도 다 돈을 받는군요.
어차피 저 시대 장교들은 죄다 귀족들이라서.
왠지 저런 사회가 자본주의가 갈때까지 가면 벌어지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