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의 지혜: 황제와 염제
중국인들은 스스로“염황(炎黃)의 자손”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염황”은 어떤 인물일까? “염(炎)”은 염제(炎帝), “황(黃)”은 황제를 말한다. 전설에 따르면 염제(炎帝)와 황제(黃帝)는 모두 화하민족의 선조로 약 4000년전의 인물이다.황제는 성이 공손(公孫)이고 이름이 헌원(軒轅)이다. 하여 사람들은 그를 선원황제라고도 부른다. 황제는 화하민족의 형성과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황제 이후에는 또 요(堯), 순(舜), 우(禹)라는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나 사람들을 이끌어 땅을 개간하고 자연과 어우러지면서 더 나은 삶을 개척했다.
장장 5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은 이처럼 문자 기록이 없이도 신화나 전설로 지금까지 기억되는 훌륭한 인물이 있는가 하면 시대별로 역사 속에 기록되고 있는 인물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은 과연 어떤 지혜와 재능으로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에 의해 기억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살아 숨쉬는 선인의 지혜를 읽어본다.
황제(黃帝)와 염제(炎帝)
오랜 옛날 중국의 황하(黃河) 유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흩어져 살고 있었다. 그들은 가족관계에 따라 씨족을 형성했고 여러개의 씨족이 모여 부락이 됐다. 황제(黃帝)와 염제(炎帝)는 두개 큰 부락의 수령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자연재해에 대응하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홍수나 가뭄 등 재해를 입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 살았다. 한번은 염제 부락이 이동 과정에 황제 부락 영역에 들어섰다. 물과 풀이 풍성하고 비옥한 땅에 들어선 그들은 ‘참 좋은 곳'이라며 감탄했다. 그리고 그곳에 정착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멀리 사람들 무리가 나타나더니 "여기는 우리 구역일세! 어서 물러가게!" 라며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황제 부락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에 염제 일행은 "누구 마음대로? 우리는 기어이 여기에 머물것이네!" 라며 승복하지 않았다.
양측은 서로 양보하지 않았고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이다가 나중에는 큰 싸움이 벌어졌다. 그들은 판천(阪泉, 지금의 하북성)이라는 곳에서 오랫동안 전쟁을 치뤘는데 세차례의 교전으로 염제 부락이 패배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포로가 됐다. 염제는 황제에게 굴복하고 황제는 염제 부락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황제는 염제 부락 사람들이 허름한 삼베나 동물 가죽을 두르고 있는 것을 보고 즉시 부하를 시켜 정갈한 의복을 전해줬으며 황제의 아내 누조(嫘祖)는 염제 부락 사람들에게 누에 고치를 만들고 실을 뽑는 방법을 직접 가르쳤다. 한편 염제는 황제 부락에 목제 쟁기와 약초를 가져다 줬다. 당시 황제 부락은 이미 수레와 배를 만들수 있었고 간단한 문자를 사용했으며 이런 기술을 염제 부락 사람들에게 전수했다. 이렇게 두개 부락 사람들은 자주 왕래하면서 사이좋게 지냈다.
그 후 두 부락은 염황부락 연맹을 맺었고 황제가 연맹의 수령이 됐다. 중화민족의 전신인 화하족(華夏族)의 역사는 이로서 시작됐다. 후세 사람들은 황제를 중화민족의 시조로 받들어 ‘황제자손(黃帝子孫)', ‘염황세주(炎黃世胄)'라 자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