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화 당신은 정말로 내 남편이시네요 & 94년 9월 말 경부터 제 인생에서 가장 알찬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감사 드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장경 독송을 시작한 이유는 이혼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너무나 힘든 결혼 생활에 저는 찌들고 지쳐 있었습니다, 저는 집안 식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얼마후 24세의 나이로 결혼하였습니다, 남편이 된 사람은 인물도 잘 생겼고, 집안도 좋은 편이여서 저는 둘이 힘을 합치면 잘 살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저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고, 남편은 대학을 나왔지만 다시 시험 공부를해 한의과 대학을 가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임신한 아이를 유산까지 시켜 가면서 직장 생활을 하여 생활을 책임졌고, 남편은 입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너무 달랐습니다, 처음 결혼 했을 때부터 저는 시댁에 적응을 못하고 시부모님을 잘 모시지 못해 시숙님과 동서 형님들과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편을 가르듯이 형님은 형님, 우리는 우리, 시부모님은 시부모님의 상태까지 가게 되었고, 결국은 한 집에서 살 수가 없어서 집을 얻어 이사를 나왔습니다, 남편의 공부는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경제 사정은 날로 어려워졌습니다, 몇 년간 어려운 생활을 하다보니 저도 남편도 지쳤습니다, 게다가 시부모님도 경제 사정이 나빠졌습니다, 젊어서는 큰 사업을 하시던 분들이라 씀씀이는 무척이나 크셨습니다, 그런데 시부모님은 사회적인 지위나 경제적으로나 우리보다는 몇 배나 나은 두 분 시숙님들을 마다 하시고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남편과 저는 조그만 일에도 서로 다투기 시작했고 남편은 술까지 먹고 저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공부를 한다고 했다가 그만두고, 그러면 공부는 그만두고 돈이나 벌어 달라고 하면 공부를 계속 하겠다고 하는 등,,,, 부모님들 반대를 무릅쓰고 한 결혼이라 부모님께는 하소연 할 처지도 못 되었습니다, 의지할 곳을 찾지 못해 교회며 점치는 곳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시간만 마음을 채워 주었을 뿐 저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했으므로 저의 갈등과 고민은 더욱더 쌓여갔습니다, 저는 생기를 잃어 갔고 저의 결혼 생활은 해가 갈수록 악순환이 되었습니다, 살아갈 희망도 없었고 또 뚜럿이 살아 봐야겠다는 의지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잠재 의식에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고 죽으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정도로 저는 무지했습니다, 그러나 용기가 없어 죽지는 못하고 이런 고통에서 헤어나고자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하였습니다, 이혼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중 평소에 개인적인 앞면이 있는 보살님을 찾아 갔습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가슴속의 이야기를 털어 놓으면서 이혼을 하고 싶다는 말을 비쳤습니다, 그러나 보살님은 아마도 남편은 나에게 받을 빚이 많은 사람인가 보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빚은 갚아야지 회피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니 정 이혼을 하고 싶으면 지장경 독송을 한 뒤 맑은 머리로 판단하여 이혼을 해도 늦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용기를 가지고 지장경 독송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49번 독송을 발원하고 일주일에 한번씩 절에 와서 기도를 하고 나머지는 집이나 직장에서 독송하였는데 불심이 깊지도 못한 내가 기도를 한다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집에서 경전을 읽으면 무슨 나쁜 일이나 하느 것은 아닌가 하는 눈초리를 보냈고, 직장에서 쉬는 틈에 경전을 읽으려고 하면 직장의 상사들이 눈총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짬을 내 지장경 독송을 계속하였습니다, 직장을 다니고 가정 생활을 하는 제가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지장경 독송을 하루에 한번 씩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희한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렇게도 저에게 불만이 많으시던 시부모님과 시숙님들,그리고 동서 형님들께서 달라진 것입니다, 전에는 직장까지 전화를 하여 잘잘못을 따지시던 시어머니께서 일체 전화를 안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숙님들도 ,우리 재수씨가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다,는 말씀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도 감격해서 지장보살님께 한없이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지장기도를 드리면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저는 정말 실오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매달렸고, 불평도 많이 했으며, 울면서 때를 쓰기도 했습니다, 지장보살님은 이런 모든 것을 잘 받아 주셨고,그런 모든 것은 먼저 자신이 변화해야 된다는 것을 꿈을 통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나쁜 꿈으로 잠자리가 항상 불편했는데 지장기도 중반 쯤에 꿈 속에서 광륵사의 창건주 이신 여화스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여화스님은 ,부처님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며 말로 표현할 수 없고 근신 걱정이 없고 좋은 곳이다, 꼭 성불하여 부처님 세계에서 만나자, 나는 부처님 세계로 간다,고 하셨습니다,그 다음날부터 잠자리가 편안해졌고, 나쁜 꿈에 시달리는 일이 없어졌느며 지금은 꼭 보여 주실 것만 꿈에 보여 주십니다, 고민도 많고 말도 생각없이 하던 제가 조금은 여유있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말을 할 때도 조심하려고 노력하게 되었고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런 제 자신을 미워한 적도 많았지만 지금은 머리가 맑아져 조심해서 말을 해야 된다는 것을 알았고, 저로 인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도 차츰 술을 덜 마시게 되었고 조금만 마셔도 취해서 많이 마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지장경 49독이 끝난 후 유산한 아이와 남편의 어렸을 때 죽은 형의 천도재를 봉행했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좋아지던 남편이 갑자기 난폭하게 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혼을 원하면 하고, 은행에 있는 빚은 나중에 벌어서 갚아 줄테니 지금은 저보고 해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도 실망하여 절에 가고 싶은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지성으로 기도를 했는데 왜 그렇까? 왜 나만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보살님을 밖에서 만나 이런 사정을 애기 했더니, 내가 남편과 시댁 어른들게 진 빚이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결혼해서 이 날까지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빚을 졌다니,,,,, 그런데 빚쟁이도 아닌 사람들이 왜 그렇게 달라고 떼를 쓰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기도할 때 어떤 마음으로 했는가를 물어보셨습니다, 어른 이혼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다고 했습니다,빚 받으로 온 사람에게 빚도 안 갚고 내쫓으려고만 하니 빚쟁이가 더 날뛀 수밖에 없으니 이제부터는 지장경을 읽은 공덕으로 빚을 갚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라는 애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와 다음날부터 내가 진 빚이 있으면 정말로 갚을 거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다시 지장경 독송을 시작했습니다, 지장경 100번을 읽으면 사주팔자가 달라진다는 법사님 말씀에 저는 100번을 읽ㅇ을 것을 발원했고, 지장경 100번 독송을 끝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다시금 남편이 변했습니다, 직장에 나가기 시작했고, 적은 돈이지만 결혼 후 몇년만에 월급봉투를 가져왔습니다, 남편과 이혼 문제로 시작된 지장보살님과 만남으로 우리 집안에는 많은 변하가 생겼습니다, 그중 하나가 시댁 식구들의 변화입니다, 동서 형님 두 분 중 한분은 지장경을 독송하며 절에 다니기 시작 하셨고, 다른 한분은 관세음보살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시아버님과 남편은 집에서 지장경 독경 테이프를 듣고 또 지장경을 독송하고 계십니다, 어려웠지만 지장경 100번 독송하고 나니 이제는 모든 일에 자신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인생을 새로 시작하게 되었고 미래에 희망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장경 100독을 마친 뒤 꿈을 꾸는데 제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리는 꿈이었습니다, 꿈을 깨고 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사람이 정말로 나의 남편이구나, 아니 지장보살님이 모자란 나를 이끄시기 위해 남편으로 화현한 것이었구나,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어찌 지장보살님을 찾았겠으며 부처님을 만날 수 있었겠는가, 지금 이 시간 이혼을 생각하시는 분은 부처님과 지장보살님을 만나 뵙고 의론하여 결정 내리시면 어떨까요, 이혼은 아무 때나 할 수 있지만 부처님과 지장보살님과의 만남은 쉅지 않으며 한순간에 평생을 죄우할 것입니다, & 2024년 6월 29일, 오전 7시 50분, 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