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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오르페(포르투갈어: Orfeu Negro)는 1959년 브라질에서 제작된 마르셀 카뮈감독의 영화이다.
브라질의 시인 비니시우스 지모라에스가 극본을 쓴 연극 《Orfeu da Conceição》을 영화한 것으로,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의 비극을 현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삼바축제를 배경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영화는 브라질, 프랑스, 이탈리아의 합작으로 만들어졌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이 참여한 사운드트랙으로 특히 유명해졌으며,
〈카니발의 아침〉(루이즈 본파), 〈아 펠리시다지〉는 보사노바의 클래식이 되었다.
1959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으며,
1960년 아카데미 영화제와 골든 글로브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
1961년 BAFTA상 최우수외국어 영화상도 수상했다.
1999년에는 카를로스 디에구에스(Carlos Diegues) 감독에 의해 《오르페우》란 제목으로 리메이크 됐다.
운명, 신화, 비극, 그리고 낙관 --- <흑인 오르페>
브라질에선 카니발이 시작되는 한달간은 거의 광란이라고 부를 정도로 엄청난 축제 열기에 휩싸인다고 하죠.
사상자도 심심찮게 발생하기 때문에 요즈음은 상당히 통제가 되고 있다지만 그래도 남미인 특유의 정열을 공권력으로 억제하긴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 경찰들도 통제하다 수틀리면 축제행렬에 동참한다니까요. 또 리우 카니발은 브라질의 훌륭한 관광상품이기도 하니까 어느 정도 일탈은 용인되는 분위기라는군요.
또 남미는 음악의 보고죠. 자메이카의 레게, 트리니댓의 칼립소, 쿠바의 맘보와 콩가, 멕시코의 마리아치, 브라질의 삼바와 보사노바, 아르헨티나의 탱고 등등. 특히 보사노바의 리듬은 50년대 이후 미국의 재즈에 영향을 주기 시작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우리가 흔히 듣는 가요에도 녹아들었죠.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의 우리나라 가요 대부분이 보사노바였죠.
이를테면 변진섭, 물론 우리나라식의 변형된 보사노바풍이었습니다만 지금도 노래 악보를 사면 악보 한귀퉁이에 '보사노바'라고 적힌 걸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아니, 갑자기 왠 노래이야기가 이렇게 기냐구요?
그럴 때 있지 않습니까? 영화를 보는데 화면보다 음악에 더 귀가 번쩍해지는 때. '쉘부르의 우산'이나 '사랑은 비를 타고(진 켈리가 빗속에서 부르는 '싱잉 인 더 레인')' 같은 영화가 그렇죠. 예? 이 영화들의 공통점을 찾으셨다구요? 맞습니다. 뮤지컬 영화죠.
그럼, 오늘은 <흑인 오르페> 이야기나 해볼까요?
제가 이 영화를 본 건 대학 1학년 말엽(97년)이였지 싶습니다. 추위와 권태에 시달리던 제게 꽤나 신선한 문화충격이었죠. 그 사운드 트랙을 구하고 싶었는데 지난 주에 드디어 구했답니다. 지금, 그 음반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어요. 아, 영화 장면장면이 떠오르는군요.
<흑인 오르페>의 브라질 원제목은 "Orfeo Negro"이고 영어로는 "Black Orpheur"입니다. 오르페,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같지 않으세요? 그래요. 그리스 로마 신화의 그 오르페우스입니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유리디스)"를 1959년의 브라질로 옮겨왔죠. 1959년 프랑스의 마르셀 카뮈가 감독한 영화로 모든 대사는 브라질어로 진행되고 나오는 인물들도 모두 브라질 흑인들입니다. 그해 칸느에서 그랑프리인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아카데미에서는 외국어영화상을 받았죠.
뮤즈(음악과 시의 여신)인 칼리오페와 트라키아의 왕인 오이아그로스 사이의 아들이자 처음으로 하프를 발명한 인간인 미남 오르페우스에게는 요정 에우리디케(유리디스)라는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죠. 둘은 서로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이 너무 깊어 둘을 질투한 신이라도 있었는지, 에우리디케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들판에서 독사에게 물려죽고 말죠.
에우리디케와 헤어져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생각한 오르페우스는 하프를 연주하며 명부의 신 하데스를 찾아갑니다. 오르페우스의 하프소리는 너무나 아름다워 그가 연주를 시작하면 주위의 나무며 풀들까지도 그가 연주하는 방향으로 기울 정도였기 때문에 살아있는 사람은 명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지키는 머리 세 개에 꼬리는 뱀인 파수병 케르베로스까지도 그를 막지 않았습니다.
물론 다른 악귀나 죽은 자들도 그 음악에 감동하여 그를 다치게 하지 않았죠. 명부의 왕 하데스의 아내이자 농업과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인 페르세포네는 오르페우스의 애절한 사랑과 슬픔의 노래와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하여 에우리디케를 데려가도 좋다고 허락하죠.
단 에우리디케보다 앞서서 걸어가야 하며 절대 뒤돌아보아선 안된다고 합니다. 만약 어기면 에우리디케는 영원히 지상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고 말이죠.
오르페우스는 즐거움에 가득 차 그러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쁨이 노래를 부르며 지상으로 돌아가죠. 그런데 에우리디케는 명부에 있는 동안은 여전히 망령이니까 발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오르페우스는 점점 불안해져 혹시 페르세포네가 자신을 속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의 지상에 다다르자 불안해진 오르페우스는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맙니다. 등 뒤에는 그리운 에우리디케가 서 있었죠. 그러나 이미 후회해도 때는 늦었습니다. 절망에 찬 에우리디케는 다시 명부로 돌아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다시 한번 잃은 오르페우스는 지상으로 돌아온 다음에도 에우리디케를 잊지 못하고 오직 그녀만 생각하며 다른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았죠.
그러나 오르페우스의 미모와 노래는 그가 살고 있는 트라키아의 여자들을 반하게 했습니다. 그녀들은 오르페우스에게 열정적인 사랑을 속삭였습니다. 그러나 오르페우스는 언제나 그녀들을 무시했죠. 결국 오르페우스를 향한 그녀들의 사랑은 엄청난 증오로 바뀌고 맙니다.
결국 트라키아의 여자들 몇몇이 자고 있던 오르페우스에게 덤벼들어 그를 죽이고 시체는 갈기갈기 찢어 강물에 던져 버립니다. 오르페우스의 머리는 생전 그가 아낀 하프와 함께 바다로 흘러들어가 표류하다 레스보스섬에 닿게 되죠. 섬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의 머리를 극진히 장사지내고 그의 무덤에 하프를 놓아둡니다.
오르페우스의 무덤에서는 때때로 아름다운 하프소리가 들려나왔고 그 때문에 레스보스섬에는 사포를 비롯한 많은 시인들이 배출되었다고 하죠. 이것이 그리스 로마신화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비극입니다.
영화의 내용도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단지 시인이자 하프연주가인 오르페우스는 젊고 기타 잘치고 노래 잘하는 흑인 전차 운전수 오르페로, 요정 에우리디케는 브라질의 시골에 살다가 카니발에 맞춰 리우에 사는 사촌언니를 찾아온 청순한 시골처녀 유리디스로, 오르페우스를 사랑하나 지독한 질투의 화신이기도 한 트라키아의 여자들은 오르페의 연인 미라로 바뀌었어요. 그리고 유리디스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은 들판의 독사가 아니라 영화 초반부터 유리디스의 뒤를 쫒는 얼굴모를 의문의 사내구요.
남미 특유의 정열과 우수가 교차하는 화면은 그 자체로 스펙터클합니다. 카니발이 벌어지는 시내와 오르페, 유리디스, 유리디스의 사촌언니, 미라가 사는 빈민촌을 주로 보여주는 카메라는 열정에 부풀어 거의 정신을 잃을 것 같은 흥분에 찬 시내와 흥분해 있긴 하지만 왠지 우수가 흐르는 판자집들을 풍부한 감성으로 잡아냅니다.
또 남미 문학의 영향이랄까요? 신비주의적인 구성도 많이 눈에 띕니다. 오르페와 미라가 약혼서약을 하러 시청에 찾아가서 접수원과 나누는 대화["신랑이름이 오르페라구? 그럼 신부의 이름은 당연히 유리디스겠군."(접수원) "유리디스? 그게 누구죠? 어떤 년이에요? 내 이름은 미라라구요!"(미라) "아, 그래요? 오르페의 연인은 유리디스지. 그건 누구나 알아요.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 하지만 그건 옛날이야기인걸. 약혼 축하해요, 아가씨"(접수원)]와, 유리디스의 뒤를 끝없이 쫓아다니며 그녀를 불안하게 하는 죽음의 그림자같은 의문의 사내, 그리고 그 사내에 쫓겨 도망치느라 패닉상태에 빠진 유리디스를 잃어버리자 오르페는 유리디스를 찾으러 시청 신고실에 가지만 엄청난 서류더미에 갇히고 만다거나["저 서류 어딘가에 그 아가씨가 있겠지. 하지만 그건 누구도 못찾아. 지금은 카니발이 아닌가."(신고실에서 만난 청소부)], 유리디스를 찾으러 들어간 신전에서 영매에게 유리디스의 목소리를 듣는 장면은 특히 그렇습니다.
이 영매는 유리디스의 목소리로 당신이 뒤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면 자신을 만날 수 있다고 하죠. 그러나 뒤돌아보면 자신은 죽게 된다고 합니다. 오르페는 유리디스를 보고 싶은 마음에 뒤를 돌아보고 유리디스의 목소리로 말하던 영매는 슬픈 목소리로 이제 유리디스는 죽었다고 하죠.(이 장면이 얼마나 슬프고 몽환적인지는 안 본 사람은 모릅니다. 정말 가슴이 찢어질 것 같죠)
영매를 붙잡고 거짓말이라고 소리치던 오르페는 불안한 마음에 유리디스를 처음 만났던 전차차고로 돌아갑니다. 마침 유리디스도 그 의문의 사내에게 쫓겨 전차차고로 피신해 있던 참이었죠. 유리디스는 뭔지도 모르고 전차의 고압선을 만지게 되고, 그 순간 오르페는 차고를 밝히기 위해 전원을 올립니다.
유리디스는 고압전류에 감전되어 비참하게 죽고 말죠. 그녀를 자신이 죽였다는 사실과 운명을 한탄하는 오르페는 유리디스의 시신을 안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만난 미라는 자신을 무시하는 그에게 엄청난 저주와 돌팔매를 퍼붓죠. 오르페는 집으로 가는 도중 유리디스의 시체를 안고 벼랑으로 몸을 날립니다.
이렇게 슬픈 이야긴데 무슨 낙관이냐, 라고 물으신다면...
영화를 보십시오. 그 비극적인 사랑의 끝에서 또 다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왠지 '희망'이란 단어가 떠오르실 겁니다.
<흑인 오르페>의 영화음악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죠. 98년 제작되어 흥행한 영화 <정사>에서 메인 테마로 <흑인 오르페>의 음악인 "카니발의 아침(Manha de Carnaval)"이 쓰였기 때문이죠. 루이즈 본파의 기타연주와 극중 유리디스의 사촌언니로 나온 여배우의 입을 빌려 아스트루드 길베르토가 부른 노래 모두 쓰였는데, 상당히 멜랑콜리하고 삶과 죽음의 희비를 느끼게 하는 곡이죠.
카니발이 시작되는 날, 사촌언니가 황폐한 빈민촌의 언덕에 앉아서 스스로 기타를 치며 부르던 쓸쓸한 노래, 그게 바로 "카니발의 아침"이죠. 가사는 행복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왠지 모를 불안에 떠는 듯 합니다.
영화음악을 맡은 루이즈 본파,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조아노 길베르토는 모두 이 영화음악으로 인해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게 됩니다. 하긴 이렇게 멋진 노래들을 누가 싫어하겠습니까.
아아, 워낙에 멜랑콜리한 영화에 음악이다보니 정신을 못차리겠군요. 너무 주절거리는 것 같더라도 참아주세요.
가끔은 이렇게,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시겠지만, 또 '운명의 상대라니, 너무 무겁고 지긋지긋한 인연이야!' 하고 주장하시겠지만(저만 그런가요?), 운명과 비극으로 점철된 처절한 사랑이야기 한편도 괜찮지 않습니까? 우수에 가득한 기타와 보컬이 영화 전편에 흐르고 아직도 따뜻한 사랑을 믿는 오르페와 유리디스가 수줍게 손을 맞잡는,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눈가가 뜨거워져서 '쳇, 이게 뭐야...' 하며 쓰윽 훔쳐내는 그런 이야기.
브라질에 가고 싶지 않으세요?
그리고 이건 "카니발의 아침" 가사 서비스, 서비스!!!
◆Manha De Carnaval
Manha Tao Bonita Manha 아침, 너무나 아름다운 아침
De Um Dia Feliz Que Chegou 다가왔던 행복한 날
O Sol, O Ceu Surgiu 태양과 하늘이 높이 솟았고
E Em Cada Cor Brilhou 그 모든 것은 현란한 색채로 빛을 내지
Voltou O Sonho Entao Ao Coracao 희망(꿈)이 가슴속에 다시 파고 들었지
Depois De Este Dia Feliz 이러한 행복한 날 뒤에
Nao Sei Se Outro Dia Vera 나는 또다른 이를 그가 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
Em Nossa Manha 우리의 아침에
Tao Bella Final 오, 너무나 아름다운 끝
Manha De Carnaval 카니발의 아침
Canta Ao Meu Coracao 내 마음의 노래가
Alegria Voltou 행복은 되돌아왔어
Tao Feliz A Manha Desse Amor 오, 너무나도 행복한 사랑의 아침
(참고로, 컴퓨터 문자호환문제로 부호가 바뀐 글자가 몇개 있습니다)
<유리핀, 비디오 보다2>- <흑인 오르페>
00.07.10 11:04 ㅣ최종 업데이트 00.07.29 10:49 우희정 (my-idaho)
출처 : 운명, 신화, 비극, 그리고 낙관 --- <흑인 오르페> - 오마이뉴스
Luiz Bonfa - Manha De Carnaval.wma
첫댓글 '흑인 올훼'로 기억하는 이 음악을 나는 내 좋아했던 '존 바에즈'의 목소리로 즐겼지요.. 음악의 내용과 엮어 들으니 한결 그윽하고 또 다른 맛이에요. '비둘기처럼'이라는 대중가요를 보사노바로 두들기며 악을 쓰던 고교시절, 칼립소와 삼바가 어디서 날아온 것인줄 몰랐지요... 항...
곡이 좋고 의미가 있어선지 많은 가수가 부릅니다. 존 바에즈의 노래 찾아서 들어봐야겠네요. 저는 아스트루 질베르토가 부르는 게 젤 좋습니다. 지금 나오는게 오리지널이죠. 쿠바의 살사, 브라질의 삼바, 보사노바, 아르헨티나의 탱고..라틴음악..참 좋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