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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7:14-24
진리는 이성의 결과가 아니라 예수라는 인격과의 교제입니다. 그분께 순종하는 것은 진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순종하는 자는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그분을 위해 살게 됩니다. 기독교는 기준을 세상에 두지 않고 예수님께 두어야 하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그분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Truth is not the result of reason, but rather the connection with the personality of Jesus. Being obedient to him is closely related to the truth. Those who know and obey Jesus do not live for themselves, but live for him. Christianity begins by setting standards in Jesus, not in the world. Because he is the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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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대중을 흔들 수 있는 엄청난 영향력이 있기에 상반된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은 종종 권력으로 진실을 편집하거나 은폐합니다. 유대인들은 가르침의 옳고 그름보다는 출신과 배경에 치중하였고, 안식일이 갖는 본질적 정신보다는 형식을 내세웠습니다. 상실의 시대에 다수의 유대인 권력 집단을 향해 그들의 모순과 불의를 드러내며 예수님은 혼자 진실 싸움을 하십니다. 논쟁의 초점이 무엇인가?
People with conflicting interests often edit or conceal the truth with power because truth has a tremendous influence that can sway the public. Jews focused on the origin and background of the teachings rather than the right or wrong, and put forward the form rather than the essential spirit of the Sabbath. In times of loss, Jesus fights the truth alone, revealing their contradictions and injustice toward multiple Jewish power groups. What is the focus of the deb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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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할례, 또는 율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함이다. 2. 안식일을 지키는 것 역시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함이다. 3. 동시에 안식일에 일하시는 것도 하나님 뜻에 순종하기 위함임을 알아야 한다. 4. 할례가 모세 율법 이전에 제정 되었지만, 그것이 안식일의 의미와 충돌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 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더 더욱 안식일의 의미를 성취하러 오신 예수님이 한 사람을 치료한 일을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1. The circumcision, or observance of the law, is to obey God. 2. Observing the Sabbath is also to obey God. 3. At the same time, you should know that working on the Sabbath is also to obey God's will. 4. It should be noted that circumcision was established before the Moses Law, but continued because it did not conflict with the meaning of the Sabbath... Isn't it natural that Jesus, who came to achieve the meaning of the Sabbath, cured one p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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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자체이신(1:1,14)예수님이 가르치는데도 무리는 기이히 여길 뿐 하나님께로부터 온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랍비에게 정식 교육을 받지 않은 것을 알고 지레 마음을 닫은 것입니다. 외모로 판단하다가 영생의 기회를 놓칠 처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영광을 구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하면 누구든 예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교육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Even though Jesus, who is the word itself (1:1,14), teaches, he considers it strange, but does not recognize it as a word from God. Knowing that Jesus had not received formal education from the rabbi, he closed his heart. Judging by his appearance, he was in a position to miss the opportunity of eternal life. Jesus thoroughly did God's will and asked for glory. If a saint tries to do God's will, anyone should be able to hear God's voice in his words. It is not a matter of education, but of the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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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할 마음이 없으니 판단력을 잃고 외모만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광을 사모하고(5:42,44), 하나님 뜻에 순종하려는 마음으로 말씀 앞에 다가선다면 분명히 성령께서는 내 수준에서 들어야 할 말씀을 조명해 주실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킨다고 자부하면서도 정작 안식일 법을 성취하기 위해 사람을 치유하고 살리러 오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시도함으로서 오히려 율법을 어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소유나 자랑의 대상이 아니고, 자기 합리화나 정죄의 도구도 아닙니다.
Since I am not willing to obey, I lose my judgment and only see my appearance. If you love God and adore glory (5:42, 44) and approach the word with the desire to obey God's will, the Holy Spirit will surely illuminate what you need to hear at my level. Jews pride themselves on abiding by the law, but they are actually trying to break the law by attempting to kill Jesus, who came to heal and save people to achieve the Sabbath law. The law is not an object of possession or pride, nor is it an instrument of self-justification or condem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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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율법의 참 의미를 모르고 껍데기만 붙들다가 자기모순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안식일에 신체의 일부를 베어 언약의 증표인 할례를 해하더라도 율법을 어기는 일로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할례언약을 성취하시고 인간의 전 인격을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은 일로 간주하여 죽이려 한 것입니다. 식당 하는 사람이 주일에 문을 닫아야 하나 열어야 하나, 예배는 도대체 몇 번 드리는 것이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인가?
The Jews were creating a contradiction by sticking to their shells, unaware of the true meaning of the law. Even if they cut off a part of their body on the Sabbath and circumcised, which is a token of the covenant, they were not condemned as violating the law. However, Jesus' ministry, which accomplishes the circumcision and embodies the entire human personality, was considered work and tried to kill him. Should the restaurant be closed on a Sunday or should it be held, but how many times should I wo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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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에 돈 쓰는 것은 가한가, 불가한가? 안식일 법은 폐지되었는가, 아직도 유효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제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원리만 제시해 주기 때문에 바른 해석학의 틀을 가지고 각자가 공부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안식일 문제를 다루기 위해선“태초에 하나님이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창1:1)로 거슬러 가야 합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빛과 궁창, 육지와 바다, 수많은 종류의 식물들, 해와 달과 별들, 물고기와 새들, 육지 동물들,을 만드셨어요.
Is it possible or not to spend money on a Sunday? Has the Sabbath law been abolished or is it still in effect? I have had the question of biting the tail. But it seems that each person has no choice but to study with a correct hermeneutic framework because the Bible only presents principles. To deal with the Sabbath problem, one has to go back to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in the beginning" (Gen. 1:1). In Genesis 1 and 2, God created light and gungchang, land and sea, countless kinds of plants, sun and moon and stars, fish and birds, and land anim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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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까지 모두를 창조하셨고, 정돈하셨습니다. 이 창조사역은 24시간의 하루로 계산한 6일이 아니고, 오랜 기간에 걸쳐서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사람을 창조하실 때도 남자를 먼저 만드신 후, 그 남자로 하여금 오랜 기간에 동물들을 관찰하고 분류하여 이름을 짓게 하시고 그 후에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여자는 같은 날에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1:1에서 한 마디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고 하신 후, 같은 원리로 사람을 창조하셨고, 여자는 그 남자에게서 만들었다고 하였습니다.
And finally, he created everyone, including people, and he organized them. You can see that this creative mission was not six days calculated as a 24 hour day, but over a long period of time. Especially when you created people, you made men first, and then the men observed, classified animals, named them, and then you made women. Of course, women were not built on the same day. In Genesis 1:1, he said that he created heaven and earth, and then he created men on the same principle, and women made them out of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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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후로는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갓난아이가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생성된 것이 아니고 단계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거대하고 다양한 세계를 6일이라는 표현으로 정리해서 말씀하신 이유는 7일이라는 완전수와 연결된 문학적 수식들 입니다. 창세기 2:2을 보면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 6일에 마친 것이 아니라 제 7일에도 창조사역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Of course, after that, parents' sperm and eggs combined to give birth to a newborn. Not all were created in one moment, but in stages. The reason why you summarized this huge and diverse world with the expression of the 6th is the literary formulas linked to the 7th complete number. In Genesis 2:2, it is recorded that "the work of God's construction was completed at the end of the 7th day." It means that there was a creative work on the 7th day, not on the 6th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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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이 미완성을 나타내고 7은 완성을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6일간의 창조는 아직 완성품이 되지 못하여 제 7일에 가서야 완성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럼 제 7일에 하신 일이 무엇일까요? 6일에 창조된 사람을 거룩하고 온전한 사람으로 다시 새롭게 창조하신 일입니다. 이것을 구원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출애굽기 31:13에 보면“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내가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Six is the number indicating incomplete, and seven is the number indicating completion. The creation of the six days is not yet complete, so it was not completed until the seventh day. So what did you do on the seventh day? You recreated the man who was created on the sixth day into a holy, intact man. This is also called salvation. In Exodus 31:13, "Keep my Sabbath, for I know you as the Lord who makes you ho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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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에 창조된 사람은 하나의 인격체인 사람으로는 완전하지만,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알고, 믿고, 따르고, 순종하는 일은 아직 잘 하지 못하는 인격체였습니다. 그래서 선악과도 따먹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까, 뱀의 말을 들을까? 바르게 결단하지 못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면서 알아가게 되고, 그 분을 두려워하고 섬기게 되고 그분의 뜻을 알고 따르게 되기까지의 양육이 필요합니다. 이를 양육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창조'라고 성경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The person created on the 6th was a person who was complete as a person, but was not yet good at knowing, trusting, following, and obeying God, the Creator. That's why I did it with the good and evil. Should I follow God's word or listen to the snake? It was a level of inability to make a proper decision. Therefore, it is necessary to nurture the person until he meets God, becomes aware of him, is afraid of him, serves him, and knows and follows his will. This is sometimes expressed as a parenting, but the Bible expresses it as a 'new cre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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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날 병 고친 일로 유대인들이 태클을 걸어오자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일침을 가하신 일이 있습니다. 초점은 할례, 또는 율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함입니다. 할례가 모세 율법 이전에 제정 되었지만 그것이 안식일의 의미와 충돌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 되었다는 사실을 상기면서 나아가 안식일의 의미를 성취하러 오신 예수님이 한 사람을 치료한 일을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주님의 말씀은 안식일에 하나님이 일하셨으니 나도 그 일을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On the Sabbath, when the Jews tackled him for his cure, he said, "My father is working, I work, too." The focus is circumcision, or compliance with the law, to obey God. Recalling that circumcision was enacted before the Moses Law, but continued because it did not conflict with the meaning of the Sabbath, isn't it natural that Jesus, who came to achieve the meaning of the Sabbath, treated one person? The Lord's word means that God worked on the Sabbath, so I will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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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은 바로 제 7 일 날 하신 일입니다. 그렇다면 제7일에 쉬셨다는 말씀이 일을 안 하시고 그냥 쉬셨다는 뜻이 아니고, 거룩한 일을 하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주일은 그냥 노는 날도 아니고 아무것도 안 하는 날은 더더욱 아닌 것 같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라면 아버지의 그 일? 은 사단의 권세 아래 놓여있는 자들을 해방시켜주는 일이며 죄에서 생명으로 옮기시는 새 창조 사역이기 때문에 그 일을 따라서 한다는 것이지요.
It happened on the seventh day. Then, when you say you rested on the seventh day, it doesn't mean you didn't work and just rested, and because you must have done something holy, I don't think Sunday is just a day of play or nothing. According to the Lord, your father's work? It is the liberation of those who are under the power of the division and because it is a new creative ministry that transfers sin to life, you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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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면, 안식 교단의 반론에 대하여 울 개신교가 안식이 주일로 옮겼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주일 성수를 문자적인 몰이해로 획일화 시킨다면 그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게 아닙니까? 신약 어디를 살펴보아도 사도들이 안식일을 주일로 바꾸었으니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라고 하고 있지 않고요. 만일 아직 폐지되지 않은 규례라면 그토록 중요한 법을 한 번도 엄하게 준수할 것을 권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한 거 아닌가요?
If this is the case, isn't there any difference between the Protestants who claim that the Sabbath has been moved to the Sunday or that the Sunday holy water is standardized by literal misunderstanding? No matter where you look at the New Testament, the apostles change the Sabbath to a Sunday, so they don't ask you to observe the Sunday as a Sabbath. Isn't it strange that I don't recommend strict observance of such important laws if it is a rule that has not yet been abol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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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사도들은 그것들에 대하여 폄론하지 말고 각기 마음에 확정한 대로 하라고 가르치면서 이 날에 지키든 저 날에 지키든 상관없다고 한 이유인즉 진정한 안식일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를 사모하면서 날마다 주님과 교제를 누리며 그 분의 통치를 받고 주를 위하여 사는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끝으로 상당수의 교회가 안식일을 주일성수로 강조하면서 율법적인 예배 참여에 집중시키고 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주일 성수 라 굽 쇼? 우리의 삶과 신앙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Instead, the apostles instructed them not to denigrate them but to do what they had in mind, saying that it doesn't matter whether they observe them on this day or on that day. The true Sabbath is to live under the rule of the Lord, longing for the Lord to come again. Finally, although many churches emphasize the Sabbath as a Sunday holy week, they do not seem to be the case. Sunday holy water? Where do we set the standard of our lives and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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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놀라운 가르침(14-16)
a.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는 유대인들:14-15
b.하나님의 교훈을 말하는 예수님:16
하나님의 교훈(17-18)
a.하나님의 교훈인지 분별하는 방법1:17
b.하나님의 교훈인지 분별하는 방법2:18
율법의 정신(19-24)
a.예수님을 죽이려 하는 유대인들:19-21
b.율법의 정신을 실천하시는 예수님: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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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14a)
예수께서(14b)
성전에 올라가사(14c)
가르치시니(1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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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이(15a)
놀랍게 여겨 이르되(15b)
이 사람은(15c)
배우지 아니하였거늘(15d)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15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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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16a)
대답하여 이르시되(16b)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16c)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1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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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하나님의 뜻을(17a)
행하려 하면(17b)
이 교훈이(17c)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17d)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1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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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말하는 자는(18a)
자기 영광만 구하되(18b)
보내신 이의(18c)
영광을 구하는 자는(18d)
참되니(18e)
그 속에(18f)
불의가 없느니라(18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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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너희에게(19a)
율법을(19b)
주지 아니하였느냐(19c)
너희 중에 율법을(19d)
지키는 자가 없도다(19e)
너희가 어찌하여(19f)
나를 죽이려 하느냐(19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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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가 대답하되(20a)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20b)
누가 당신을(20c)
죽이려 하나이까(2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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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21a)
대답하여 이르시되(21b)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21c)
너희가 다(21d)
이로 말미암아(21e)
이상히 여기는도다(2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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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22a)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22b)
(그러나 할례는(22c)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22d)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22e)
그러므로 너희가(22f)
안식일에도(22g)
사람에게 할례를(22h)
행하느니라(22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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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율법을(23a)
범하지 아니하려고(23b)
사람이 안식일에도(23c)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23d)
내가 안식일에(23e)
사람의 전신을(23f)
건전하게 한 것으로(23g)
너희가 내게(23h)
노여워하느냐(23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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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로 판단하지 말고(24a)
공의롭게 판단하라(24b)
하시니라(2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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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지식을 따르지 않는 신앙_a faith that does not conform to human knowledge_
순종을 통해 진리를 아는 신앙_faith in the truth through obedience_
진리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신앙_a faith judged by the standards of truth_
주님을 통해 아버지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을 대면할 때 마다 가르침과 삶이 일치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성경이 지식이 쌓여간 만큼 예수의 사람으로 변화되기 위해 순종하게 하옵소서.Thank you for letting me know my father through the Lord. Let me be a saint whose teaching and life are consistent every time we face each other. Let the Bible be obedient to be transformed into a man of Jesus as knowledge has been accumulated.
2026.2.22.sun. C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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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비평//
1) 본문의 핵심 구조: ‘지식의 권위’ vs ‘보냄 받은 자의 권위’
요7:14–24는 크게 세 장면으로 흐릅니다. 1. 예수의 가르침에 놀라는 유대인 (14–16) 2. 진리를 분별하는 기준 제시 (17–18) 3. 안식일 논쟁과 공의로운 판단 (19–24) 표면적으로는 교육받지 않은 예수 vs 학문적 권위를 가진 유대 지도자의 충돌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진리를 아는 방식에 대한 인식론적 충돌입니다. “배우지 않았는데 어떻게 글을 아느냐?" 이 질문은 사실상 현대적 질문입니다.
* 학위가 있는가?
* 제도적 권위가 있는가?
* 검증된 시스템을 통과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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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그들은 진리의 근거를 제도·지식·전통에서 찾았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답은 완전히 다릅니다.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다” 여기서 예수는 진리의 근거를 존재론적으로 이동시킵니다. 진리는 인간의 축적물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보냄 받은 계시”라는 것입니다. 이 지점이 신학적으로 매우 급진적입니다.
2) 철학적 핵심: “순종이 이해를 낳는다”
17절은 요한복음 전체의 인식론 핵심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알리라” 이 문장은 기독교 인식론을 완전히 뒤집습니다. 일반적 인식 순서(이해 → 확신 → 순종) 예수의 인식 순서(순종 → 이해) 이것은 철학적으로 말하면 실천적 인식론(practical epistemology)입니다. 진리는 논증으로 입증되는 대상이 아니라 삶으로 검증되는 실재입니다. 이 점에서 기독교 진리는 플라톤적 진리(이성)도 아니고 근대적 진리(과학)도 아닙니다. 오히려 히브리적 진리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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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야다(ידע)’ = 알다 = 관계하다 성경에서 “안다”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관계와 순종의 경험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모르는 이유는
지식 부족이 아니라 **순종 부족**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가 가장 불편해하는 주장입니다.
3) 안식일 논쟁의 철학: “율법의 목적 vs 율법의 형식”
본문의 클라이맥스는 안식일 논쟁입니다. a.유대인 논리: 안식일 = 노동 금지 b.예수 = 병 고침 = 노동 → 율법 위반 이에 예수의 반박은 “안식일에도 할례 하지 않느냐?” 이 반박은 단순한 반례 제시가 아닙니다. 율법 해석의 철학적 오류를 폭로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규칙(rule)으로 이해했습니다. 예수는 율법을 목적(telos)으로 이해합니다. 율법의 목적은 무엇인가?→ 인간의 생명과 회복 그래서 예수는 말합니다.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노여워하느냐?”
이 문장은 안식일의 정의를 완전히 재구성합니다. 안식일 = 노동 금지의 날 no 안식일 = 창조 회복의 날 창세기 안식일은 “쉬는 날”이 아니라 완전함이 드러난 날입니다. 따라서 병 고침은 안식일 위반이 아니라 안식일의 완성입니다. 이것이 요한복음의 안식일 신학입니다.
4) 현대 교회에 대한 철학적 비평
이 본문은 오늘 교회를 정면으로 겨냥합니다.
유대인들의 오류 = 현대 교회의 유혹
| 전통 중심 | 시스템 중심 |
| 학문 권위 | 신학 지식 |
| 율법 형식 | 종교 관습 |
| 외모 판단 | 신앙 퍼포먼스 |
예수의 경고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여기서 ‘외모’는 단순한 겉모습이 아닙니다. 헬라어 opsis= 보이는 기준 / 표면적 기준 오늘식 번역하면 출석률/봉사량/헌금/직분/종교적 언어입니다. “그것이 정말 하나님 기준인가?” 이것이 본문의 신학적 폭탄입니다.
5) 안식일의 존재론적 의미
안식일은 단순한 규정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목적 선언입니다. a. 창조 → 안식 b.구속 → 안식 c. 종말 → 안식 히브리서가 말하는 것처럼 구원의 목표는 “쉼”입니다. 따라서 예수의 안식일 사역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종말론적 표지>입니다. 병 고침은 미래 하나님 나라의 안식을 현재로 끌어온 사건입니다. 즉, 예수는 안식일을 어긴 것이 아니라, 안식일을 미래에서 현재로 가져오신 것입니다. 안식일은 시간 규정이 아니라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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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진리는 정보가 아니라 인격이다. 안식일은 규정이 아니라 예수다. 지식은 순종 뒤에 온다. 그래서 본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지금 지식을 쌓아 이해하려 하는가? 아니면 순종하며 이해되기를 기다리는가? 나는 지금 안식일 규정을 지키는가? 아니면 안식일이신 예수와 살고 있는가? 우리의 삶과 신앙의 기준은 지식인가, 전통인가, 아니면 보냄 받은 그분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