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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 92년 3월 6일 화요공부방 “사요” 중 자력양성
□ 강연 : 청년 9단 김초마 교우님 강연
□ 보리상자 공연 :
유지나, 이진우(노래). 김혜향(피아노)
□ 김제원 교무님 설법
날씨가 좀 추워졌죠? 추우면 오지 마시지 오셨네요? 오늘 오신 분들. 아까 강연 들으시면서 참 좋다고 느끼셨죠? 돌아가실 때 오늘 정말 잘 왔다고 생각하실랑가 모르겠습니다.
저는 세세하게 원리적으로 설명할까 합니다.
ㅇ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인 원불교
원불교는 일원상의 신앙의 대상이요 수행의 표본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일원상은 사은의 본원이요. 참 내 마음자리인 것입니다. 사은의 본원자리를 신앙하는 거고요. 내 참 마음자리를 깨쳐서 회복하자는 소리입니다. 그것이 신앙이고 수행입니다.
신앙 -外 위력 사은. 대타 관계성
수행 -內 속성 삼학, 공원정, 대자 인격
우리가 저 일원상의 신앙은 무엇을 신앙하는 것이냐. 바로 인과보응의 신앙인데요. 위력을 신앙하는 것입니다. 어떤 위력이냐. 천지가 없어서는, 부모 동포 법률의 은혜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바로 부처님이고 하나님이다. 우리는 천지부모동포법률이 없어서는 일초도 살수가 없다.
나라는 존재는 그런 사은의 한량없는 은혜속에 존재하는 것이요.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존재인 것입니다. 죽어서도 사은을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사은의 은혜를 제대로 알지 못하느냐.
(1) 내가 사은에 대해서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2) 그리고 마음의 힘이 없기 때문이다.
내 마음의 힘이 있어야 합니다. 자력적으로 깨쳐 알아야 합니다.
신앙은 그 회복한 자리를 사은에다가. 원래 속성을 회복하면 사은을 떠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화분에다 꽃을 키우는데, 이것이 삼학과 같고, 사은은 세상에 뿌리를 박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사요는 사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참 나를 깨친다 하는 것은 나라는 존재를 아는 것이고, 그 존재가 사은과 “하나다” 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자기 인격관리가 잘 되는 것입니다.
그 중에 사은이라고 하는 것은 우주만유 전체에 대한 불공법이 사은인 것입니다. 우주 만유가 은혜의 관계로 되어 있다는 것을 밝혀주셨고. 이것은 세계 평화의 원리입니다. 사은이 들어가면 세계는 평화롭게 되어 있다. 사은 중에 구체적인 사은의 보은은. 천지는 어떻게 천지에게 보은하고 등등은 저번 시간에 배웠습니다.
사요는 인간에 대한, 사회에 대한 불공입니다. 사요는 평등사회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ㅇ 부분과 전체, 공과 사는 떨어질 수 없다
개인을 놓고 보면, 개인이 아무리 전체가 중요하다고. 결국 개인은 개체 개체가 묶여서 전체가 대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세포가 하나 있습니다. 이것이 작다고 무시할 수 있습니까? 세포가 썩었습니다. 봉와직염에 걸려서 죽으려고 하네.. 방심했더니 내 안의 살이 썩어가는 것입니다. 개체 하나하나도 중요한 것이고, 전체도 중요한 것입니다.
개인만 중요시하면, 그 사회에 풍파를 일으킵니다. 예전에 대구 지하철에 한 아저씨가 휘발류를 들고 불을 질렀습니다. 한 개인을 무시하고 그 개인이 버림을 받았을 때 그런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나라가 어려운데. 내 회사만 잘 하겠다? 때가 왔습니다. 다 죽죠. 중국도 잘 살아서 나무도 심고 해야 황사가 덜 날아오죠.
제가 지금 무슨 말씀을 드리는 것인가.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이 전체와 사회에 어떠한 연관성을 짓느냐. 공과 사는 떨어질 수가 없는 것이빈다.
부처님들은 진리를 깨치니까 나와 전체가 하나구나! 四恩一家
과거 부처님은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의두를 주신 것입니다. 천상천하에 홀로 존귀하다.
이 세상의 제일 문제가 무지와 질병, 빈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기적인 사회 무지의 사회, 차별의 사회, 원망의 사회, 의뢰의 사회. 이런 불완전한 사회가 현실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대종사님은 사은을 통해서 우주만유를 구제하려는 뜻이 이고요. 왜냐면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육쌍전을 왜 합니까?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사요를 실천해야 하느냐.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 있는것 조금 퍼주는 것이 사요가 아니고, 내 같은 포태라는 것입니다. 동포.
ㅇ 신앙과 수행은 결국 하나다!
인류사회에 대한 불공법이 사요입니다. 사은사요가 약재다라고 했습니다. 약재를 쓸라면 그 기술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삼학이다. 수행을 하면 지혜가 있어진다. 신앙을 하면 복이 있어진다. 그래서 부처님은 복족족혜족족이라고 합니다.
교무를 하면서 느끼는 것이. 저는 처음에 출가할 때 사은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수행에 체험이 있어서 . 야~~ 좋구나. 해서 . 한번 멋지게 살아서 내생에 잘 살아보자.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해보니까 나라는 존재가 정말 사은과 어떠한 관계인가? 나라는 존재는 우주와 하나이구나.
젊은 사람들은 처음에 수행에 관심을 갖습니다. 원불교를 공부하시면, 처음에 수행에 관심을 가지다가 사은사요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사은의 은혜를 알게 되면 수행을 아니 할 수가 없고, 사은에 보은하기 위한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나의 삶이 바로 사은님 덕택에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사은을 대하는 여러분의 마음이 공부를 하면서 달라진다. 과거에는 내 육신 하나도 내 맘대로 못하다가 조금 크면 내 가정을 이끌어가잖아요?
그러듯이 공부를 하시다보면 더 큰 세상. 나라는 존재가 엄청난 은혜 속에서 살고 있구나. 내 생명의 근원이 사은이구나. 내 몸 하나 움직이는 것도, 내 마음 청정하고, 일심을 위한 활동이 아니라. 일심 즉 보은이 되는 것입니다. 달라집니다. 이것이 철든 사람인 것입니다.
ㅇ 사요가 도대체 뭐냐
* 사은 - 우주만유 전체에 대한 불공
* 사요 - 인류사회 인간에 대한 불공
그 인간들이 어디에 있냐. 부모이고 동포이죠. 그것을 받쳐주는 것이 법률이고, 우리가 사는 바탕이 천지입니다.
(1) 사요 = 사은에 대한 구체적인 보은의 방법
사요는 사은에 대한 구체적인 보은의 방법입니다.
제일 크게는 동포보은입니다. 그러면, 보은이 아닌 배은은 뭐냐. 내 생명의 근원이요 터전인 사은. 사은에 대한 보은을 못하면 배은인 것이다. 의뢰생활이 배은이다. 배은을 하면 그 댓가가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앉아있는 것도 철저하게 은혜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얼마나 많은 은혜 속에서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가볍게 생각할 때는 잘 모르지만 한 생각만 더 들어가면, 천지 부모 동포 법률없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냐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조금만 생각하면 다 알 수 가 있는 것입니다. 그 사은에 대한 보은은 사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리이타가 된다.
그 동포들은 뭐냐. 죄복의 권능이 있다. 내가 나에게 죄와 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만나는 모든 대상에 나에게 죄와 복을 주는 권능이 있지 않냐?
인류사회 부처님인 것입니다.
(2) 사요 = 인류사회에 대한 불공법
인류사회에 대한 불공법이 바로 사요인 것입니다. 우리가 눈높이 교화만 하다 보니까 날마다 삼학 이야기만 하죠? 그런데 옛날에 한산 선생님이 사요를 많이 강조하셨는데, 정말 고마우신 것입니다. 사요에 대해서 일찍 눈을 뜨신 것입니다. 어디다가 불공을 할 것이냐!
(3) 일원의 진리에 근간한 평등사회 실현
그다음 세 번째는 일원의 진리. 평등한 진리에 근간한 평등사회 실현입니다. 그 방법이다. 사회개혁의 원리입니다. 인류사회가 바로 처처불상입니다. 처처불상에 불공하는 것. 그것이 사사불공입니다.
(4) 세계평화를 위한 새로운 가치 표준을 제시
성품의 본래자리에 무슨 남녀가 있겠습니까? 육신의 차이만 있을 뿐이죠. 무슨 마음에 차이가 있겠습니까? 여자는 맛있는 게 남자는 맛이 없겠습니까? 그런 평등한 진리를, 대종사님께서는 어떻게 그런 일원의 진리를 맞게 표현될 것이냐.
이 현실을 보면 무지와 질병이 난무하지 않느냐. 지식은 남녀가 불평등하지 않느냐. 권리가 인격이 동일하지 못한 것입니다. 결과는 동일할 필요는 없습니다. 결과는 노력에 따라 달라져야 합니다. 결과가 평등하면 안 됩니다.
이 사회가 지식평등의 사회냐! 지식 있는 사람이 대우를 받고, 지식을 가질 권리를 균등하게 받자 이겁니다. 그런 기회가 주어지고 해야 하는데, 지식 없는 사람이 큰 소리 뻥뻥 치고 있습니다. 돈이 없어도 그 사람이 지식이 있다면 교육의 기회는 균등하게 줘야하지 않느냐. 이것이 타자녀 교육입니다.
그리고 공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공도자라고 합니다. 이런 공도자를 숭배하는 사회가 되어야지 우리 생활에 도움을 많이 줍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숭배를 해주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자. 원불교 공부를 제일 잘 하는 사람이 무시선 잘하는 사람이고, 불공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일심
퀘이커라는 카톨릭 종파가 있습니다. 유럽에 가면 카톨릭 산하에 수행 단체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단체를 잘 봐야 합니다. 진리성에 근거했느냐. 부처님은 깨친 후에 둘이 아님을 아신 겁니다. 이런 단체를 보면, 자기 마음 편하면 됩니다. 이것은 오히려 사은의 은혜를 전혀 알지 못한 취사입니다. 사은의 은혜를 아는 사람이 내 마음의 평화만 오면 됩니까? 이것은 이기적인 사고이고, 무사안일주인인 사람인 것입니다.
나와 사은이 둘이 아니다.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대종사님은 다 깨쳐서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진리를 깨쳐서, 무지해서 고생하는 사람을 어떻게 하면 건져줄까 하는 마음으로 살다가신 분들이 성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분들의 삶에 박수를 치고 같이 함께 하겠다. 그렇게 사는 삶이야말로 가장 가치가 있다고 동의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그것이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이 태어나서 자기 이기적으로만 살아보세요. 그 사람은 빚이 쭉쭉 늘어납니다.
이 꺼지지 않는 영혼. 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것이 인과적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면 그렇게 못삽니다. 원불교 다니는 사람이 사은에 대해서 알게 됐다. 그러면 철들었다. 합니다. 공부를 해도 사은에 보은하기 위한 공부요. 사업을 해도 보은하기 위한 사업이어야 합니다.
내가 박수받기 위한 사업이고 공부이면 안되는 것입니다. 내가 내가 아닙니다. 세상을 보세요. 얼마나 전쟁 투성입니까? 달나라를 가는 시기에도 전쟁입니다. 국가를 보더라도 전부 남입니다. 여야도 그렇고 노사도 그렇고, 전부다 하나임은 알지못합니다. 사은의 은혜가 들어나면 이게 다 풀려 녹아납니다. 사요가 들어가도 그렇습니다.
교육평등, 생활평등, 생활평등, 지식평등이 되는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은, 오는 처음 왔더니 나한테 도움되는 이야기나 할 것이지 사요 이야기만 하냐 할 것입니다. 공부를 계속 하시면 알 것입니다.
1. 자력양성의 강령
자력은 셀프파워라고 되어 잇습니다. 자력은 일단 타력의 반대말이다. 참 자력은 타력도 포함한다. 이렇게 저는 생각합니다. 자력과 타력은 대비되면서도 타력을 포함하고 있다.
큰 자력이 라는 것은 타력은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슨 자냐. 사은과 하나인 자입니다. 나라는 것은 사은과 떠날 수 없는 자입니다. 사은의 주체인 나인 것입니다. 양성이라는 것은 내가 그런 힘을 키우고, 정신의 자주력, 육신의 자활력, 경제의 자립력. 이것을 길러서 나 잘 먹고 잘 살자.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약자들을 도와주자.
무자력자 보호의 도. 자리이타의 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양성을 해서 이렇게 하자 이겁니다. 자력을 양성해서 지자가 되고, 지자가 되어서 다른 사람 교육을 시켜주고, 공도자를 받들어주고 내가 공도자가 되자. 이런 순서로 되는 것입니다.
# 자력이 없는 어린이가 되든지, 노혼(老昏)한 늙은이가 되든지, 어찌할 수 없는 병든 이가 되든지 하면이어니와, 그렇지 아니한 바에는 자력을 공부삼아 양성하여 사람으로서 면할 수 없는 자기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동시에, 힘 미치는 대로는 자력 없는 사람에게 보호를 주자는 것이니라.
(1) 자력이 없는 사람 : 어린이 노인 병자. 이런 사람이 아닐 바에는 자력을 양성해라.
(2) 공부삼아 양성하라
공부삼아!! 공이라는 것이 천지인이라는 소리입니다. 工. 기질화 시켜라. 철저한 인과가 들어있다는 소리입니다. 아버지한테 유산을 많이 받았어. 몇천억을 받았습니다. 이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체질화 시키라는 말입니다. 그 사람의 심성 뿌리에 자력양성이 체질화되지 않으면, 교만해집니다. 돈 있으면 직업 안 갖고. 가능하면 직업 안 합니다. 영생을 놓고 봤을 때 몇생 안 가서 바로 가난해집니다. 아버지한테 물려받은게 지꺼여? 진리적으로 놓고 보면 빚입니다. 내가 짓지 않고 받은 것이 어떻게 자기 것 입니까?
그리고, 체질화된 사람과 어쩔 수 없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인과를 신앙하는 사람이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 아무리 좋은 남편 만나고 좋은 부모 만났다고 해도 인과를 믿는 사람은 자력양성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생에는 더 고생을 하게 됩니다.
공부삼아!
(3) 사람으로서 면할 수 없는 의무와 책임
자력을 양성해서 자기 의무와 책임을 하자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 범위가 다릅니다. 사은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이것이 엄청 큽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내가 이렇게 잘 사는 것이 얼마나 부모님의 은혜 때문인지를 압니다. 내가 지금 편하게 살고 있는 것이 과거에 육이오 전쟁때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 은혜의 범위가 작습니다. 내가 죄 안 짓고 살면 되지 뭐 그래. 그럽니다. 나 이만큼 하면 됐지 그럽니다. 사은의 은혜를 알면, 바뀝니다. 청년들과 임원을 해보면, 이렇게 많은 노력으로 훈련을 날 수 있고 영상이 태어나고 그것을 압니다.
책임과 권리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권리는 주장 잘 합니다. 왜 나는 월급 안 올려주냐. 선배대접 왜 안 하냐. 투표권을 줘라 그럽니다. 요구는 귀신같이 잘 합니다. 내가 어떤 책임이 있는 만큼 권리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은 책임은 싫다고 하고 권리는 좋다게 합니다. 교당에 와서도 단장을 하면 안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교당 몇 년 다녔다고 대우받고 싶어합니다. 직장에서도 나는 몇 년차인데 왜 안 올려주냐고 합니다. 그만큼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진급을 못 하는 것입니다. 설사 그 사람이 직책이 낮다고 할지라고, 그 사람이 책임을 잘 이행하면 그만큼의 인정을 받습니다.
사은에 대한 은혜를 알고 그러면, 진리에 대한 천권을 받고, 선물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대우는 받고 싶은데 책임은 지기 싫어합니다.
청소년 때는 학교 다녀야 하고, 대학교 때는 동아리와 알바 때문에 못하고, 직장에 다니면 그것에 바빠서. 결혼하면 애 키우느라고 교당에 못 다닙니다. 이 세상에 어떤 사람이 핑계가 없겠습니까? 자력적인 신앙을 해야 합니다. 철저한 자력이 들어가야 합니다. 사은에 대한 깨달음이 있는 사람은 기본적인 것이 항상 미안하고 그렇게 됩니다. 보은헌공 할 때도 그것밖에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은을 아냐 모르냐에 따라서 모든 행동이 달라집니다.
부모가 지 잘되라고 공부하고, 밥 먹으라고 하는데, 자식은 그것도 모르고, 싫어싫어 다 싫다고 합니다. 대종사님이 이것저것 하라고 합니다.
대우 받고 싶지 않으신가요? 하여튼 우리는 대우를 받든 안 받든, 사은의 은혜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필시 갚지 않을 수 없다. 사은의 은혜를 모르니까. 그것을 느끼기 전에는 신심이라는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서원, 공심의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신심이 없으면, 못하죠. 사심이 많으면 못하죠. 내가 불보살이 되겠다는 서원이 있는 사람은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없다. 사은에 대해서도 모르는데 신심공심서원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할지 저도 모르겠어요. 자력이 없으면 타력을 수용할 줄도 모릅니다. 내가 5억짜리 집이 있으면 담보로 3억은 빌릴 수 있습니다. 500만원짜리 월세 살면 돈도 잘 못 빌립니다.
2. 과거의 타력생활 조목.
1) 부모.형제.부부.자녀.친척 중에 혹 자기 이상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 의지하여 놀고 살자는 것이며, 또는 의뢰를 구하여도 들어주지 아니하면 동거하자는 것이며, 또는 타인에게 빚을 쓰고 갚지 아니하면 일족(一族)이 전부 그 빚을 갚다가 서로 못 살게 되었음이요,
과거에. 가족이나 친척한테 의지하고 살았다. 누구 하나 잘 살면 거기에 붙어서 살았죠. 의뢰생활이란게 참 편하지 않습니까? 제가 교무훈련에 갔더니, 여기에서는 바쁜데, 거기에서는 가만히 있으니까 참 좋더라고요. 그러면서 딱 드는 생각이. 중생은 불보살을 복전삼고, 불보살은 중생을 복전 삼는구나. 중생은 불보살들이 해주면 좋아합니다. 불보살들은 죽어라고 해주면서 그래!그래! 합니다.
경의 11장에 밝혀주셨습니다. 당신이 돈 벌어갖고와. 형님한테 붙어살고 그럽니다.
인과의 이치를 모릅니다. 인과의 이치를 아는 사람은 로또에 신경쓰지 않습니다. 내가 짓지 않은 돈 받아보세요. 다 빚입니다. 그것을 모르니까 한번 걸려봤으면 합니다. 똑같습니다. 인과의 이치를 모르니까 타력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단장이 단원한테 전화해서 단원이 딱 튕겼나봐. 그래서 내가 왜 이렇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나 했답니다. 거기에서 신심이 없거나. 인과의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못한다고 합니다. 억지춘향인 사람이 많습니다. 연극인생입니다. 봉사활동을 해도 어쩔 수 없는 봉사가 많고 그럽니다. 교무님 더 지을 것 없습니까? 그렇게 말합니다. 사은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그렇습니다.
2) 여자는 어려서는 부모에게,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늙어서는 자녀에게 의지하였으며, 또는 권리가 동일하지 못하여 남자와 같이 교육도 받지 못하였으며, 또는 사교(社交)의 권리도 얻지 못하였으며, 또는 재산에 대한 상속권도 얻지 못하였으며, 또는 자기의 심신이지마는 일동 일정에 구속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음이니라.
과거에는 이렇게 불평등했다. 삼종지위라고 해서. 늙어서는 자녀. 결혼후에는 남편. 어려서는 부모님. 의지만 한게 아니라 기회를 얻지 못한 것입니다. 육대요령이라고 있었습니다. 자력양성이라는 조목대신 남녀권리동일 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여자를 사람 취급을 안 해줬죠. 대종사님이 우리 여자들 개벽시켜줬다고 정말 좋아했습니다. 천지개벽의 소리라고 했습니다. 저도 어릴 때도요. 가만보면 여자들 쫌 무시하더라고요. 어릴 때 그렇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부엌에도 못 들어가고 밥도 따로 먹었습니다. 그런 교육을 받으니까. 우리 원불교 댕겨도 그것을 잘 못놓더라니까요. 우리 교도님들.
아랍에서는 지금도 여자들이 무시받습니다. 근원적인 것은 남녀가 본디 하나다. 인격과 권리가 같다. 그래서 기회를 균등하게 줘야한다. 지금도 대학생들 보면 남자가 훨씬 많습니다. 여자 안 보내버려요. 지금도 보면 남자는 서울로 보냅니다. 여자는 안 보내려고 합니다. 1.2학년때는 여자가 성적이 좋습니다. 3.4학년가면 남자가 성적이 좋습니다. 왜냐면 나중에는 시집만 잘 가면 되거든요. 이런 생각도 있습니다. 제가 대학을 두개나 다녀보니까 그러더라고요. 요새는 많이 달라졌어요. 지금은 여자들이 판검사가 40%에 육박하고 반절이 넘기도 하고 그럽니다.
□ 숙 제
- 다음주에 오실 때. 내가 지금 자력으로 할 수 있는데 타력으로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 있는가. 한번 찾아보세요.
- 내가 사은의 은혜를 느끼면서. 나의 책임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그 책임을 이행하려면 어디까지 해야 하는가?
□ 새로 오신 분
- 최현희 교우님
소대용 교우님 연원으로 오셨고 고려대 재학중입니다.
“반갑습니다. 22살이고 집이 분당이라서 주말에는 분당교당에 다닙니다. 아버지가 여기를 소개해줘서 여기 한번 와봤습니다.”
“반갑습니다.환영합니다.~!!”
- 김선주 교우님
토요일 법회 때 오신 분입니다. 직장에 다니는 31세입니다. 이렇게 좋은 말씀을 무료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개인주의적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느끼고요. 사은이라는 두글자를 새기고 가겠습니다.
□ 공 고
- 오늘 공양(바나나. 쌍화탕) : 김선근. 정원성. 청년훈련 정신단 희사
첫댓글 이기홍 교우님 타이핑이 예술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늦은 시간에.. 수고 많으십니다요 ㅎ
^^ 두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