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더니 아침 하늘에 놀이 들었다.
나가려다가 어제의 술을 달래느라 또 잔다.
2시에 집을 나서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얼른 오지 않는다.
광천터미널 앞에서 한참을 또 기다린다.
온 차는 손님이 가득 차 있고, 내리고 또 가득 찬다.
내내 서 가다가 도청앞을 지나자 자리에 앉아 간다.
증심사에는 모두 내려오는 사람들이다.
올라가는 날 보고 한번씩 처다본다.
모자를 눌러쓰고 짧은 지팡이를 들고 오른다.
배가 고프다. 옛날 국밥을 시켜 먹는다.
650ml 플라스틱 잎새주를 하나 시킨다.
해장 삼아 세 잔을 마신다.
땀이 난다.
식당을 나오니 3시 15분을 지나고 있다.
하늘이 맑으면 일몰도 보고, 살 오른 달도 어쩌면 볼 것이다.
증심사 아래서 봉황대쪽으로 길을 잡는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토끼등 보다는 완만한데 계속 오르막이다.
길은 미끄럽다.
가끔 내려오는 사람들이 이제 가서 어쩔거냐고 묻곤 한다.
봉황대를 지나쳐 오르니 백운암터다.
중머리재 약수터는 두 곳 다 물을 멀리 뿜어내고 있다.
한 시간이 걸렸다.
식당에서부터 흘린 땀이 힘들다.
지팡이를 짚은 왼팔이 낯설어 아프다.
중봉 쪽으로 바로 오를까 하다가 장불재 쪽으로 간다.
장불재에서는 한 청년을 만난다.
5시가 다 돼 간다.
일몰은 보기 어렵겠다.
시간도 그러려니와 하늘이 해를 보여주지 않는다.
입석대 아래에서 입석대를 처다보고 사진을 찍어본다.
입석대 뒤를 돌아가자 기분이 좋아진다.
아무 노래라도 부르고 싶어진다.
다리 아픈 것도 모르고 작은 바위들을 건너다 보니
어느 새 서석대 위에 닿았다.
구름 속에서 주그마한 붉은 기운이 해가 지고 있음을 알린다.
소주를 꺼내 마신다.
내가 이 산의 주인이다. 내가 세상의 주인이다. 건방지긴.
다시 점퍼를 꺼내 입는다.
이리저리 사진을 찍어보고, 카메라를 바위 위에 놓고
나도 찍어본다.
천왕봉 곁으로 달이 뜬다.
보름달은 아닌데 하얀 구름 속에 밝다.
랜턴은 필요없겠다.
중봉 쪽으로 내려오다 하늘을 본다.
중봉에서 또 술을 마신다.
병 바닥이 가까워진다. 땀이 난다.
봉우리 위에 괴물처럼 선 안테나들이 그 아래 불을 켰다.
내려오는 길에는 지팡이가 도움이 된다.
바위 위에 자꾸 미끄러지는데 지팡이로 버티곤 한다.
중머리재에 내려와 벤취에 앉아 다시 옷을 벗는다.
증심사 아래에 7시 반에 도착한다.
가게들 문은 대부분 닫히고, 데이트하는 사람들이
붙어 지난다.
9번을 타고 남광주시장에 내려 되장찌개를 4천원에 먹는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온다.
지하철 계단을 올라오는데 다리가 뻐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