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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삶에 대한 기록’이란 뜻의 <만인보>는 세계 최초로 사람만 노래한 연작 시집이다. 1986년 <세계의 문학>에 연재를 시작해 1~3권이 간행된 후, 25년 만에 2010년 4월 총 30권이 완간되었다. 총 작품 수 4,001편, 등장인물은 5,600여 명에 이르며, 시로 쓴 인물 백과사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인이 개인적으로 만난 인물들과 사회 운동을 하며 만난 사회적, 역사적 인물들을 탁월한 이야기꾼의 솜씨로 형상화하였고, 특정 인물들을 실명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인간의 한 세대만큼 오랜 기간과 어마어마한 규모로 쓰인 <만인보>는 결코 평단하지 않은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온 작가의 인생을 그대로 반영하듯 우리 민족의 다양한 모습을 다양하게 녹아내고 있다.
새 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
상머슴으로
누룩도야지 한 말리 번쩍 들어
도야지 우리에 넘겼지요
그야말로 도야지 멱따는 소리까지도 후딱 넘겼지요
밥 때 늦어도 투덕댈 줄 통 모르고
이른 아침 동네 길 이슬도 털고 잘도 치워 훤히 가라마 났지요
그러나 낮보다 어둠에 빛나는 먹눈이었지요.
머슴 방 등잔불 아래
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
그리하여 장화홍련전을 주룩주룩 비 오듯 읽었지요.
어린아이 세상에 눈 떴지요.
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없었지요.
대길이 아저씨더러는
주인도 동네 어른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지요.
살구꽃 핀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
홑적삼 큰아기 따위에는 눈요기도 안 하고
지게 작대기 뉘어 놓고 먼데 바다를 바라보았지요.
나도 따라 바라보았지요.
으르르 달려가는 바다 울음소리 들었지요.
찬 겨울 눈 더미 가운데서도
덜렁 겨드랑이에 바람 잘도 드나들어지요.
그가 말했지요
사람이 너무 호강하면 저밖에 모른단다.
남하고 사는 세상인데
대길이 아저씨
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지요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 새우는 불빛이었지요.
-<머슴 대길이>
이 시는 고은의 연작 시집 “만인보” 1권에 수록된 작품으로, 시인이 실제로 만났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머슴 대길이는 화자가 어린 시절 만났던 인물로, 비록 신분은 머슴이었지만 화자에게 올바른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준 인물로 그려져 있다. 대길이는 머슴으로 소외받고 천대받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부지런한 생활 태도를 지녔으며, 생각이 깊고 진지한 인물이었다. 또한 화자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었고 함께 사는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몸소 가르쳐 준 인생의 큰 스승이자 선각자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시인은 가난하지만 남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했던 ‘대길이’를 통해 민중의 건강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결국 이 시는 ‘대길이’라는 인물을 통해 민중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먹밤중 한밤중 새터 중뜸 개들이 시끌짝하게 짖어댄다.
이 개 짖으니 저 개도 짖어
들 건너 갈뫼 개까지 덩달아 짖어댄다.
이런 개 짖는 소리 사이로
언뜻언뜻 까 여 다 여 따위 말끝이 들린다.
밤 기러기 드높게 날며
추운 땅으로 떨어뜨리는 소리하고 남이 아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의좋은 그 소리하고 남이 아니다.
콩밭 김칫거리
아쉬울 때 마늘 한 접 이고 가서
군산 묵은 장 가서 팔고 오는 선제리 아낙네들
팔다 못해 파장떨이로 넘기고 오는 아낙네들
시오릿길 한밤중이니
십릿길 더 가야지.
빈 광주리야 가볍지만
빈 배 요기도 못 하고 오죽이나 가벼울까.
그래도 이 고생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못난 백성
못난 아낙네 끼리끼리 나누는 고생이라
얼마나 의좋은 한세상이더냐.
그들의 말소리에 익숙한지
어느새 개 짖는 소리 뜸해지고
밤은 내가 밤이다 하고 말하려는 듯 어둠이 눈을 멀뚱거린다.
-<선제리 아낙네들>
이 시는 ‘선제리 아낙네들’의 고단한 일상을 평이한 진술과 사실적 묘사를 통해 드러내고, 그들에 대한 화자의 긍정적 정서를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개들이 짖어 대는 깊은 밤에 먼 곳으로부터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고단함과 배고픔을 이기며 늦게까지 장사를 하고 돌아오는 ‘선제리 아낙네들’의 정겨운 대화 소리가 점차 가까워진다. 화자는 돌아오는 ‘선제리 아낙네들’의 고단한 일상의 구체적 모습을 회상하며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한편 시의 후반부에서 화자는 그들의 삶의 모습뿐만 아니라, 고단한 삶을 함께 이겨 내는 공동체적 삶의 자세를 긍정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깊어 가는 밤을 의인화하여 표현하고 시상을 마무리하고 있다.
아버지, 남북통일이 되지 않았습니다.
일제시대 소금 장수로
이 땅을 떠도신 아버지 .
아무리 아버지의 두만강 압록강을 생각해도
눈앞에 선지가 생길 따름입니다.
아버지의 젊은 시절
두만강의 회령 수양버들을 보셨지요.
그리고 아버지는
모든 남북의 마을을 다니시면서
하얀 소금을 한 되씩 팔았습니다.
때로는 서도(潟) 노래도 흥얼거리고
꽃 피는 남쪽에서는 남쪽이라
밀양 아리랑도 흥얼거리셨지요.
한마디로, 세월은 흘러서
멈추지 않는 물인지라
젊은 아버지의 추억은
이 땅에 남지 않고
아버지는 하얀 소금이 떨어져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 남북통일이 되면
또 다시 이 땅에 태어나서
남북을 떠도는 청청한 소금 장수가 되십시오.
"소금이여", "소금이여"
그 소리, 멀어져 가는 그 소리를 듣게 하십시오.
-<성묘>
이 시는 일제 강점기의 힘겨운 시기를 살았던 ‘아버지’를 등장시켜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아버지는 일제시대 남북을 자유롭게 오가며 소금을 팔았던 ‘소금 장수’였다. 화자는 아버지의 무덤에 성묘를 가서 통일되지 않은 조국의 현실을 전하며, 동서남북을 구분하지 않고 한 민족으로 서로의 노래를 부르며 흥겹게 살던 그 시절의 정신적 가치를 상실한 분단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에서 아버지가 팔았던 ‘하얀 소금’은 단순히 아버지의 생계 수단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라는 고통의 시대에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해 주었던 정신적 가치를 상징한다.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세계의 어디선가
누가 생각했던 것
울지 마라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세계의 어디선가
누가 생각하고 있는 것
울지 마라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세계의 어디선가
누가 막 생각하려는 것
울지 마라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 세계에서
이 세계의 어디에서
나는 수많은 나로 이루어졌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나는 수많은 남과 남으로 이루어졌다
울지 마라
-<어떤 기쁨>
이 시는 ‘나’와 ‘남’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인간이 타인과 관계 맺음을 통해 자아를 형성하는 보편적 존재라는 깨달음을 보여 준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다른 사람이 생각했거나 생각하고 있거나 생각하려는 것이라는 인식은 내가 남과 상호 교섭하며 형성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시인은 이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나’가 ‘수많은 남과 남’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있다. 즉, ‘나’는 다른 사람과 교섭하고 관계를 맺는 과정을 통해 자아를 형성하였다는 것이다. 시인은 같은 논리로 다른 사람의 내면에서도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이 보편적인 존재로서 상호 소통하고 이해하는 공동체적 문화 형성의 가능성을 노래하고 있다.
걸어가는 사람이 제일 아름답더라
누구와 만나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제일 아름답더라
솜구름 널린 하늘이더라
-<순간의 꽃>
이 시는 공동체적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직관적 인식을 극도로 압축된 형식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1행에서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표현하였고, 2~3행에서는 다른 사람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며 삶의 길을 걷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표현하였다. 즉 시상이 전개되면서 아름다움의 대상이 개인에서 공동체로 확대되어 시적 인식의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4행에서는 공동체적 삶에 대한 화자의 인식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솜구름 널린 하늘’은 화자의 마음속에 순간적으로 떠오른 풍경으로 공동체적 삶의 아름다움에 대응되는 자연물이다. 이 시는 이러한 소박한 비유를 통해 공동체적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직관적 인식을 표현하고 있다.
이제 바라보노라.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눈길을.
온 겨울을 떠돌고 와
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
나의 마음속에 처음으로
눈 내리는 풍경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레는 평화로서 덮이노라.
바라보노라 온갖 것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눈 내리는 하늘은 무엇인가.
내리는 눈 사이로
귀 기울여 들리나니 대지의 고백.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
나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
안에서는 어둠이노라.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
이제 와 위대한 적막을 지킴으로써
쌓이는 눈 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눈길>
이 시는 '눈 덮인 길'을 통해, 방황과 고통의 삶을 살아왔던 시적 화자의 내면 의식이 무념무상과 평화로움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시는 화자가 '눈길'을 바라보며 시작된다. 이때 '눈'은 화자가 걸어 온 길을 모두 덮어 버린다. 이러한 인식은 곧 화자가 살아온 번민과 고통, 방황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마음의 안정과 평화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화자는 처음 경험해 보는 새로운 정신적 경지에 대해 벅찬 감동과 희열을 느끼게 된다. 한편 시의 후반부에서는 이러한 정신적 경지를 바탕으로 기존에 인식하지 못했던 '보이지 않는 움직임'과 '대지의 고백'을 인식하게 된다. 이는 고요와 평화의 경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정신세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라는 상징적인 표현을 통해 화자가 도달한 평화로움과 무념무상의 상태를 집약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서 '어둠'이란 절망의 세계가 아니라 지나온 삶 속에서 경험해 온 삶의 애증과 욕망, 슬픔, 고통 등이 모두 사라진 무념무상의 경지를 뜻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 십 년 동안 가진 것
몇 십 년 동안 누린 것
몇 십 년 동안 쌓은 것
행복이라든가
뭣이라든가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화살>
이 시는 1970년대 독재 정권이 만들어 놓은 부조리하고 비민주적인 현실에 대해 격렬하고 헌신적으로 투쟁하여야 한다는 시인의 결연한 의지가 드러난 작품이다. 이와 같은 결연한 의지는 1연에서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와 같은 자기희생의 강력한 표현으로 시작하여 시의 전반을 지배한다. 특히 2연에서는 이렇게 부조리한 사회에서 개인의 안위와 행복을 위해 추구하던 것들을 모두 버리고, 우리 현실에 당면한 궁극의 목표를 위해 과감한 자기희생을 강조한다. 아울러 2연은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자신의 삶과 세속적 욕망 속에 안주하려는 소시민들을 각성시키는 경구(警句)이기도 하다. 그리고 3연에서는 '화살'이 되어 무너뜨려야 할 비민주적인 사회와 그것을 추종하는 세력들을 의미하는 '과녁'을 제시하면서 격렬하고 자기희생적인 투쟁을 지속적으로 촉구한다. 그리고 마지막 4연과 5연에서는 단순하고 간결한 영탄적 표현을 통해 결연한 의지와 투쟁의 당위를 언급하며 시상을 마무리하고 있다.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다다른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이 세상의 길이 신성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달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소백산맥 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빈부에 젖은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끼고 서서 참으면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꽉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무덤으로 받는 것을.
끝까지 참다 참다
죽음은 이 세상의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지난여름의 부용꽃인 듯
준엄한 정의인 듯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나면 우리 모두 다 덮이겠느냐.
-<문의 마을에 가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보여 주고 있는 명상시이다. 이 시는 작자가 신동문 시인의 고향인 문의 마을에 가서 그의 모친상을 주관하면서 느낀 깨달음을 담고 있다. 시인의 개인 경험에 바탕으로 둔 이 작품에서 공간적 배경인 ‘문의 마을’은 죽음과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시적 공간으로 이해될 수 있다. 두 개의 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의 1연에서 죽음은 길이 적막하기를 바라고,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어, 죽음과 삶의 길이 어떻게 다른 것인가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2연에가면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또한 죽음이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다가 뒤를 돌아보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어, 죽음과 삶의 길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로 만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에 이르고 있다.
즉, 1연과 2연은 서로 대립적이면서도 대응하는 구조를 보이고 있다. 1연의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 거기까지 닿은 길이 / 몇 갈래의 길과 /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이라는 시구는 2연의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 한 죽음을 받는 것을.’이라는 시구와 대응하는 것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는 시구에서는 기묘하게도 죽음과 삶의 거리감과 일치감을 함께 읽을 수 있다. 결국 죽음과 삶의 길은 서로 모순된 것이면서도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시인의 생각인 것이다. 따라서 살아 있는 자가 아무리 돌을 던져 죽음을 쫓고자 하여도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 편지>
이 시는 일반적인 고은의 시와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는 독특한 작품이다. 주로 민주화 운동과 통일 문제, 인간의 근본적인 본질에 대해 질문해 온 시인이 매우 일상적이고 정서적인 시를 쓴 것은 의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의 본질은 서정성과 운율이며 그를 잘 알고 있는 시인은 이에 충실하여 쉽고도 공감적인 서정시를 썼다. 이 시는 총 3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연의 구성이 모두 같고 일부분의 시어들에만 변화를 주어 반복에 의한 운율을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했다. 또한 '외로운', '헤매인 마음' 등의 직접적인 정서 표현과 낙엽이 쌓이고 흩어지고 사라지는 일련의 변화를 통해서 가을날의 쓸쓸함과 애수를 잘 드러내고 있다. 가을날 여인이 느끼는 쓸쓸한 감정들에 공감하고 가을날의 정취를 한껏 느껴볼 수 있게 해주는 시이다.
시인 고은(高銀: 1933년-)은 전북 옥구군(현 군산시 미룡동)에서 고근식씨와 최점례씨의 3남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본명은 고은태(高銀泰). 1947년 군산중학교 수석 입학. 화가의 꿈을 키우다가 한하운의 시집을 읽고 문둥이 시인이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1950년 출가. 법명은 일초(一超). 1957년 효봉스님 상좌, 해인사 대교과(大敎科)를 거쳐 선(禪)과정을 이수. 1958년 조지훈의 천거로 현대시에 시 <폐결핵> 발표, 현대문학에 서정주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1960년 첫시집 『피안감성(彼岸感性)』발표.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초대 대표, 『실천문학』 창간. 1976년 한국인권협의회 부회장. 1979년 국민연합 부위원장. 1980년 5·18 광주항쟁에 연루돼 구속된다. 연작시 『만인보(萬人譜)』는 1980년 여름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제7호 특별감방의 구상에서 나왔다. 만일 살아서 나간다면 지나간 삶의 역정에서 만난 1만명을 통해 한국 최근세사를 훑어보겠다는 의도로 86년부터 함석헌 전태일을 시작으로 10∼12권에 걸쳐 펴냈다. 그 사이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군법회의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은 뒤 82년 8·15특사로 사면, 석방되며 1983년에는 함석헌 주례로 이상화씨와 결혼하여 경기도 안성군 공도면에 정착했다.
1989년 한국민예총 공동의장. 1990∼91년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1994년부터는 경기대 대학원 교수를 함. 제1회·12회 한국문학작가상, 제3회 만해문학상(88년), 중앙문화대상, 제1회 대산문학상, 만해대상(98년) 등 수상.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때 남쪽 수행단이 되어 평양에서 열린 만찬에서 즉흥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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