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묘(點描) / 박용래
싸리울 밖 지는 해가 올올이 풀리고 있었다.
보리 바심 끝마당
허드렛군이 모여
허드렛불을 지르고 있었다.
푸슷푸슷 튀는 연기 속에
지는 해가 二重으로 풀리고 있었다.
허드레,
허드레로 우는 뻐꾸기 소리
징소리
도리깨 꼭지에 지는 해가 또 하나 올올이 풀리고 있었다.
※바심 : 곡식의 낟알을 떨어서 거두는 일2.곡식이 완전히 여물기 전에 베어서 떨거나 훑음
※허드레: 낡거나 허름하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함부로 쓸 수 있는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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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 시인은 " 점묘의 시인"이라고도 불린다. 그의 시는 짧은 시행 안에 풍경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면서도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과 같이 다가온다. 여기에는 함축적인 이미지와 엄격한 언어 조탁에서 비롯 된 그의 독특한 회화적 형식미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를 박용래 시인은 스스로 ’점묘(點描)의 기법“이라 부른 바 있다. 그는 일체의 감정을 배제하고 극단적일 만큼 간결한 형식을 구사함으로써 오히려 응축된 시적 감흥을 담아내는 이러한 방법은 박용래 시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사라져가는 가난하고 가여운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이 깔려 있다. 그것은 때로는 아득한 고향을 그리는 슬픔으로, 때로는 소박한 사물을 들여다 보는 다정한 눈길로 드러난다. 생전 어느자리에서고 자주 눈물을 보여 ‘눈물의 시인’으로 불렸던 박용래 시인은 그 눈물을 고이 모아 그 정수를 시로 세공 해 내곤 했다. 사랑하는 모든 것에 대한 다정(多精)과 스스로에 대한 엄격과 염결이 그의 시를 지탱하는 원동력인 셈이다.
우리말을 능숙하게 구사하고 있는 이 시에서도 목도하듯 시에서도 인과관계의 언술 말하자면 주관적 객관적 묘사의 인과관계적인 결합이 시의 탄력을 지탱해주는 역활을 하기도 한다. 제목도 그렇거니와 시적 서사의 구조도 마치 점묘화처럼 장치가 되어 있는 이런 형태의 시에서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점묘( 點描 / pointage) 이기에 더욱 주객관적인 묘사들을 모아 점을 찍어 그림, 즉 시로 완성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시에의 행간에서 그러한 점묘를 찾아본다. "해가 올올이 풀리는 것"은 "해가 싸리울 밖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 지는 해가 이중으로 풀리고 있는" 것은 "푸슷푸슷 튀는 연기속으로"지는 해였기 때문이리라. 그뿐인가? "도리깨 꼭지에 지는 해였기에" 그 해는 " 또 하나 올올이 풀리고 있었을" 것이다.
<참고>
點描法 / pointage
점을 찍어서 그림을 그리는 화법. 프랑스의 화가 조르주 쇠라가 개발한 독특한 화법이다. 이를 이용한 그림을 점묘화라고 한다. 그리고 쇠라와 친구이던 화가 폴 시냑(Paul Signac,1863~1935)도 같이 점묘법 개발에 이바지했다
첫댓글 작년 내가 올렸던 시는
점묘의 길들이기 수순이었을 .
역시 시의 매력을 느끼게 해주신 좋은작품 올려주시니 아, 오늘도 기쁨의 밤으로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