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이번 제주여행에서 본바닥 제주맛을 본 것은 전편의 음식점보다도
둘째 날 모슬포의 평범한 항구식당과 제주시 태을갈비였습니다.
점심때 들른 모슬포 항구식당은 4인분 한상 6만원이 채 안 되는 가격에
반찬은 팍 줄이고 주메뉴의 맛과 질이 훌륭했던 음식점이었습니다.
일행이 도착하자 별실로 안내하는지라 저 혼자 주방으로 가서보니 한참 방어회를 뜨고 있었습니다.
특수부위는 없었지만 접시에 올린 회가 양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넉넉한 인심을 보는듯하여 기분이 좋아질라 그럽니다.
예약된 방으로 올라가니 밥상 8개를 이어붙이고도 남는 방에 30명이 넘는 인원수가 앉은 모양이 장관입니다.
세팅이 다 된 밥상 위에는 배추김치, 멸치볶음, 시금치, 깍두기, 야채와 느닷없이 콩나물이 놓였습니다.
한눈에도 촌스럽기 짝이 없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지요. 회가 오기 전에 맛을 보니 멸치볶음과 콩나물이 괜찮습니다.
곧이어 방어회가 나오는데 접시에 몸을 밀치며 쌓여진 커다란 고깃점들이 우리 마음을 푸근하게 만듭니다.
‘사장님’하고 불렀더니 ‘난 마름머슴’이라고 대답하는 아주머니가 된장에 찍어먹는 게 더 맛있다 가르쳐줍니다.
그 많던 회가 눈 깜짝할 새 바닥이 날 즈음 고등어구이가 나옵니다.
어제 모식당에서 먹은 고등어와는 질이 다릅니다.
남이 먹다 남은 껍질과 고갈비, 아가미까지 걷어서 발라 먹으니 매운탕이 한사람에 한 그릇씩 국처럼 나옵니다.
뼈다귀가 들어간 매운탕을 대가리가 들어 간 그릇과 바꾸고 한 숟가락 퍼 넣으니 여기저기서 ‘어흐~’ 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감탄사가 나오는 사람들은 어제 밤에 술을 그렇게 퍼먹은 사람들, 뻔하지요.
남은 회로 쌈까지 싸먹고 자리를 털고 일어섭니다.
대학 초년에 제주에 내려가 혼자 거리를 배회한 적이 있습니다.
불쌍해보였는지 길을 지나던 젊은 아저씨가 애인이 근무한다던 삼성혈도 구경시켜주고
구 제주항에 늘어서있는 선술집에 들어가 대폿집 드럼통 연탄불 위에 뼈가 붙은 돼지갈비를 구어
지금의 냅킨 크기의 신문지나 포장용 미농지에 손에 묻은 기름을 닦아내며 골막까지 깨끗이 뜯어먹던 기억이 있습니다.
맛이요?
그때까지 불에 구운 고기라고는 불고기밖에 못 먹어보았으니 그게 소갈비인 줄 알고 있었지요.
이제 서울에선 쉽게 보지 못하는 돼지갈비입니다.
아마 젊은이나 아이들에게는 양념돼지 갈비의 맛은 그렇게 달아야하고
뼈는 온데간데없이 살덩어리만 주는 걸 돼지갈비라 알고 있을 겁니다.
원래 돼지갈비는 불고기 양념에 뼈가 온전히 붙어있어야지요.
이번여행에서 그게 꼭 먹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서울서도 먹을 수 있는 흑돼지 체인점을 예약해놓았습니다.
정 안되면 다른 집에서 포장해가기라도 해야겠다 마음먹고 있었는데
일행 중 한 사람이 ‘제주에서 무슨 (서울) 우리 동네에도 있는 체인점으로 가냐’는 바람에
다행히 장소가 변경되었습니다.
갈비는 그 옛날처럼 하나씩 나오는 게 아니라 등갈비처럼- 아니 메뉴판에도 등갈비라 붙어있습니다.- 나옵니다.
양념도 너무 달지도 캐러멜 색소나 쵸코렛을 넣지 않은 순수한 불고기 양념입니다.
순수한 불고기 양념이란 말은 ‘XX가지나 되는 갖은 양념’을 넣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서울에서도 이런 양념을 한 돼지갈비를 파는 곳이 한군데 있긴 한데 비주얼이 여기만은 못합니다.
하여간 석쇠에 등갈비와 멜젓이 가미된 양념장 그릇을 올려놓고
어느 정도 익기 시작하면 서빙하는 아줌마의 현란한 손놀림이 시작됩니다.
마치 칵테일 바에서처럼.
우선 함께 붙은 등갈비를 하나씩 분리합니다.
조금 더 익으면 다시 와서 칼집을 넣고 골막을 2/3까지 벗깁니다.
갈비뼈를 들고 ‘뜯어 먹으라’는 뜻이지요.
추억은 아픈 것도 달콤하게 만드는 것처럼 드럼통을 끼고 앉아 먹던 옛 추억을 따라가지는 못하지만
현대식 ‘뼈 붙은 돼지갈비’는 저를 흡족하게 만듭니다.
1인분씩 먹으니 배가 차오지만 저쪽 테이블에서 ‘형. 쌩갈비도 먹어 봐, 주겨줘~’합니다.
여행 이틀 동안 보진 바람만 맞아 바람 든 남자가, 아~ 이제야 비행기 값이 아깝지 않습니다.
저희가 어렸을 때는 대폿집에 돼지갈비 안주가 좀 있었던 것 같은데 기록이나 사진이 별로 남아있질 않습니다.
드럼통을 끼고 앉아 돼지갈비 구워먹는 사진이 있으면 한 장 올려 볼까 했는데요.
대신 홍성원의 <따라지산조>라는 소설에 사진 못지않은 대폿집 묘사가 있어 올려봅니다.
(1973년 2월 20일. 동아일보 연재소설)
유리문이 열린다.
“어서 옵쇼”
“어잇 추워”
“추우시면 이쪽으루 오십시오, 이쪽불이 훨씬 쎕니다.”
“특주 있어요?”
“예 있습니다.”
“그럼 특주 반되만하구 안주는.... 얘 안주는 뭘루 할래?”
부츠 신은 쪽이 판탈롱에게 묻는 말이다. 판탈롱은 힐끗 진열장을 돌아본 후 턱으로 까딱 가리킨다.
“저거 소갈비에요? 돼지갈비에요?”
“돼지겠지 뭐”
“저 생선은 무슨 생선이에요?”
“청어올씨다.”
“그럼 돼지갈비 여섯 대하구 청어 한 마리 구워줘요.”
“예, 예”
( 이 사진은 남대문 강원집 내부입니다. 아주머니 앞쪽 냄비와 닭살들이 쌓여있는 곳이 쇼케이스입니다.
외부로 돌출되어 있는데 옛날엔 스테인리스가 아니라 나무로 만들어 여기에 족발이니 곱창을 진열해놓곤 했지요. )
요즘 유행하는 새마을식당식 유리문, 드럼통 연탄불이 여기가 잘 피었다는 주인의 말이나
길쪽에 붙은 나무로 만든 유리 쇼케이스에 진열돼있는 돼지갈비와 생선
-이건 재래시장 생선 진열대좌판를 연상하면 꼭 들어맞습니다.-을 주문하는 모습이나
여섯 대라고 하는 걸보니 분명히 등갈비로 판 게 아니라 낱개로 팔았던 것이 맞군요.
http://blog.daum.net/fotomani
첫댓글 참 맛깔나는 글솜씨하고..아츰부터 침 고이게 만드시는군...동영상까지 곁들여 주시니 황송
나도 얼마전 제주에서 방어를 먹기는 했었는데
왜 더근선생이 소개하는 게 더 맛있어 보일까?
저렇게 큰 대방어를 잡수셨으면 당연히 특수부위도 줘야하는데,
아무리 사장님이시지만 지방에 가시면 지방소주도 한잔 드시구려...
살을 순식간에 2/3까지 발르는 솜씨는 정말 볼 만 합니다.
기름이 짜르르 흐르는 고등어, 아 ! 맛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