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이사장의 내면 속에는 뿌듯한 감정이 용솟음치고 있다. 러시아 호텔에서 짐을 풀자마자 시베리아횡단을 무사히 마치고 모스크바 입성을 기념하기 위하여 우리는 모스크바종합대학(엠게우) 근처에 있는 아를료녹 호텔로 갔다.
아를료녹 호텔은 모스크바 시내 중심 가에 떨어져 있어서 원래 장사가 잘 되지 않는 호텔이었는데 한국인이 호텔 일부를 임대하여 임대 호텔을 개설하자 한국인들이 모여들었고, 더불어 한국식당도 많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제는 한국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지역이 되어 버렸다.
한 한국 음식점에서 나는 정재봉 선생과 이도규씨로부터 러시아의 민족, 문화, 예술, 역사, 정치 등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서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내가 여행에서 이룩한 업적(?)을 이야기하고 축하를 받기도 했다. 한국을 떠나온 지 2주만에 삼겹살과 된장찌개에 소주를 곁들여 오랜만에 포식을 했다.
정재봉 선생의 전공이 인류학이라 러시아에 산재해있는 많은 소수민족들의 역사와 생활풍습, 그리고 현재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우리 고려인의 위치와 생활정도에 관해서도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우리의 대화는 무르익어 가는데 모스크바는 꾸벅꾸벅 졸고있다.
러시아 호텔에서 하루가 시작되었다. 어제 밤 모스크바 입성을 기념한다고 술을 과하게 먹고 잠이 부족해서 인지 피곤했으나 우리의 일정을 포기하고 쉴 수는 없었다. 러시아 호텔과 인접해 있는 붉은 광장으로 나갔다.
바실리 사원을 따라 걸어가니 그 유명한 붉은 광장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바실리 성당 쪽에서 붉은 광장을 바라보니 붉은 광장 왼쪽에는 크렘린의 붉은 담 벽이 있고, 오른쪽에는 그 유명한 굼(국영백화점)이 웅장하고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정면에는 국립 역사박물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모스크바 하면 생각나는 관광 명소가 붉은 광장과 크렘린이다. 사회주의 상징으로 알려진 붉은 광장. 나에게 공포의 빨갱이라는 이념을 부각시켜준 상징적인 광장이다. 붉은 광장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크지 않았다. 중국의 천안문 광장과 여의도의 여의도 공원을 생각했던 나로서는 약간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크기보다는 광장이 가지고 있는 역사의 흔적이 더욱 유명한 것 같다.
끔찍한 반공정신으로 무장한 냉전의 중심에서 초, 중, 고를 다녔던 나는 붉은 광장이 빨갱이의 본산, 공산주의의 센터, 그리고 착한 이승복 어린이를 죽이는 천인공로 할 마피아 이데올로기 집단의 신전으로 생각한 곳이다. 이곳에 내가 왔다. 왜곡된 반공주의 교육을 받았고, 왜곡된 반공 교육에 반발한 친구들을 감옥으로 보내야했던 원인을 제공했던 곳을 방문한 것이다.
오늘은 레닌 묘를 관람할 수 있는 모양이다. 레닌 묘를 관람할 수 있는 날은 붉은 광장을 가로질러 갈 수 없다고 한다. 레닌 묘가 문을 여는 날 붉은 광장을 가로질러 가려면 웅장하고 화려한 굼(백화점)을 통과해야한다.
굼은 단순히 백화점이기보다는 중세 풍의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고 화려함이 부각된 건물이다. 굼은 최근에 보수를 해서인지 시설이 깨끗하고 현대적이다. 굼 내부에는 소방도로 만큼이나 넓은 복도가 있었고, 복도를 따라 아름다운 분수에서는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위 천정 돔에는 커다란 그림이 그려져 있고 자연 채광으로 매우 밝았다. 개방이후 수많은 외제상표들이 들어서 있고, 깨끗해서 외국인들이 쇼핑하기 편한 곳이다. 이 백화점은 물건값이 너무 비싸서 돈을 많이 들고 가거나 아니면 무일푼으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하기 위하여 붉은 광장을 가로질러 마네지 광장이 있는 쪽으로 나가니 왼쪽에는 화려한 모스크바 호텔이 있고, 정면에는 나오치날 호텔과 인투리스트 호텔이 자리 잡고 있으며 왼쪽에는 모스크바 대학 건물이 있다. 이 건물에는 신문방송학과와 인문대학이 들어서 있다고 한다.
크렘린 담벼락을 따나 내려가면 "용사의 불"이라는 것이 있다. 꺼지지 않고 타오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조국전쟁"이라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참혹한 침범을 이겨낸 무명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들이 각 지역 별로 조그맣게 써있고 헌화한 꽃들이 놓여있다. 마침 우리가 갔을 때는 용사의 불을 지키는 병사들의 근위대 교환식이 있었다. 3명씩 한 조를 이루어 교환하는데 영국의 근위대 교환식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초라했다. 어쨌든 이것을 볼 수 있는 시간대에 갔다는 것으로 만족했다.
남쪽으로 내려가니 아름드리 나무와 예쁜 꽃으로 장식한 알랙산드로프스키 공원이 나타났다. 많은 젊은 남녀가 대 낯인데도 서로 몸을 더듬고 키스를 하는 장면이 많았다. 그러나, 산책을 나온 시민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우리같이 유교 문화에 찌들은 사람들만이 눈요기를 할 뿐이다. 입맛만 다시고 다시 붉은 광장 쪽으로 돌아왔다.
붉은 광장 쪽으로 돌아오면 네 개의 탑을 가진 웅장한 붉은 벽돌 건물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국립 역사박물관이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박물관인데 불행하게도 공사 중이란다. 어느 도시를 가보아도 관광객이 많은 7월과 8월은 여기 저기서 공사중이다. 겨울이 짧아 어쩔 수 없지만 여행객으로서는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이도규씨는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인 모양이라고 한다. 자주 문을 닫는다는 레닌 묘를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레닌 묘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해야할 일이 너무 많다. 가방과 사진기를 가져갈 수 없기 때문에 근처의 보관소에 맡겨야 한다. 가방 하나를 맡기는데 60루블을 달란다. 레닌 묘의 입장료를 받지 않은 대신 이것으로 충당하려고 하는 것 같다.
레닌 묘를 들어가려는 관광객으로 레닌 묘 앞에는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레닌 묘의 관람은 크렘린 성벽을 따라 이루어진다. 붉은 벽돌로 쌓은 성벽 속에는 공산주의 지도자들이 묻혀있다. 그들이 묻힌 무덤 앞에는 흉상들이 설치되어 있는데 스탈린, 후루시초프, 안드로뽀프도, 뜨로츠키 등의 이름을 읽을 수 있었다.
소련의 모든 과학기술을 동원해서 돈이 없어 헐벗고 굶주리는 인민을 외면한 체 1년에 200만 달러를 들여 시체를 보존하고 있는 우상화의 현장교육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레닌은 아직까지 썩지 못하고 유리관 안에 보존되어 있었다. 볼세비키 혁명을 일으키고 공산주의를 확립하여 소련을 미국과 더불어 양대 강국으로 정립시킨 위대한 지도자의 모습은 포악한 모습도 아니고 작은 노인으로 담담하게 누워있다.
8년 전에 천안문 광장 앞에서 모택동 묘를 본적이 있다. 그도 작은 모습이었는데 20세기 위대한 작은 거인 두 명을 본 것이다. 그 위대한 거인도 나이가 들면 죽고 지금과 같이 화려한 여름날에도 싸늘하게 누워 비석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아침 식사도 하지 않고 관광을 해서인지 배가 고팠다. 나는 굼 백화점에서 가볍게 식사를 하고 크렘린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이한영 사장이 한국음식을 먹자고 한다. 어제 술을 많이 먹어 속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근처에 한국 음식점이 없어 할 수 없이 다시 택시를 타고 아를료녹 호텔까지 갔다. 택시 비로 100루블을 지불했고 한국음식을 먹어야하기 때문에 돈도 많이 들었으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시간을 허비한 것이다.
어제 먹은 술이 문제였다. 우리는 시베리아를 무사히 횡단했다는 기념이라며 과음을 한 탓에 우리 여행 일정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오후에 푸슈킨 미술관을 갈 것인가 아니면 크렘린에 들어갈 것 인가로 논란 끝에 크렘린을 먼저 가기로 했다. 사실 오늘 크렘린 가기에는 적당한 날이 아니다.
크렘린의 핵심 방문지인 무기고 박물관이 오늘 문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 크렘린을 방문하지 못하면 26일 일요일 아니면 우리가 귀국하는 27일날 방문해야 하는데 그것 또한 불안하다. 왜냐하면, 크렘린은 통보도 없이 갑자기 문을 닫는다고 한다. 아침 일찍 크렘린을 방문해야 하는데 어제 밤에 술을 너무 과하게 먹어 일정에 차지이 생긴 것이다.
26일이나 27일날 크렘린이 문을 닫는다면 우리는 모스크바를 방문한 의미가 없어진다. 모스크바에 와서 크렘린도 방문하지 않고 귀국한다면 이 무슨 낭패인가?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먼저 크렘린을 방문하기로 했다. 트로이츠카야 탑 옆에 있는 매표소에서 200루블짜리 입장권과 60루블을 주고 사진 촬영 권을 구입했다. 정문인 트로이츠카야 탑을 통해 크렘린에 입장하자 크렘린 광장이 우리를 맞이한다.
크렘린의 내부에는 많은 건축물들이 있는데 모스크바에서 가장 높았던 건물인 이반 대제의 종루, 짜르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던 우스펜스키 사원(성모승천 사원), 황제의 개인 사원이었던 블라고베시첸스키 사원, 20개의 망루 중에서 가장 유명한 트로이츠카야 탑과 스빠스카야 탑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크렘린이 유명한 것은 그 안에 있는 사원들과 궁정 무기고 그리고 이 나라 대통령이 집무를 보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궁정 무기고는 무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 공예미술품이나 왕관, 황제들과 왕족들의 보석뿐만 아니라 수세기에 걸쳐 모아진 외국 왕들의 선물과 러시아 제국이 획득한 전리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모스크바에 있는 어떤 박물관 보다 입장료가 비싸지만 그만큼 희귀한 것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중요한 박물관을 볼 수 없다니 땅을 칠 일이다.
크렘린을 돌아보면서 옥에 티는 대회궁전이다. 대회궁전은 1961년에 완공된 가장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다. 유리, 알루미늄, 우라늄의 대리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주위 경관을 압도하지 않도록 설계하여 지어졌다고 하나 주위 경관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허물어 버리는 것이 아름다운 크렘린을 유지하는데 바람직할 것 같다.
붉은 광장과 마네지 광장 그리고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을 산책하기 좋은 계절은 역시 여름인 것 같았다. 많은 관광객들과 시민들이 아름다운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분수대에서 뿜어내고 있는 아름다운 분수를 하염없이 지켜보고 있었으며, 지하로 세워진 지하백화점과 지상의 계단과 꽃밭엔 젊은이들, 가족들이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크렘린을 빠져나와 모스크바 호텔을 돌아 그 유명한 볼쇼이 극장 쪽으로 걸어나갔다. 볼쇼이 극장은 소문대로 웅장했다. 오페라와 발레의 공연장으로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러시아 예술의 전당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공사 중이라 지금은 공연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유명한 발레단은 외국 공연을 나가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여름에 유명한 발레를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볼쇼이 극장 길 건너에는 칼 마르크스 동상이 두 손을 불끈 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택시를 타고 푸슈킨 광장 앞에서 내려 화려한 트베르스카야 거리를 따라 걸었다. 푸슈킨 광장에는 푸슈킨 동상이 서 있었고, 많은 시민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역동적인 시민들의 발걸음 속에서 러시아가 발전하고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러시아 지방에는 아직 자본주의 개념이 없지만 모스크바는 빠른 속도로 자본주의의 물결에 순응해가고 있었다. 비즈니스맨의 핸드폰은 계속 울려대고 있었고, 카페에서는 서류를 펼쳐 보이며 심각하게 협상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우리는 푸슈킨 광장(푸슈킨스카야 역)에서 외곽으로 200m 떨어진 몽골식 음식점인 욜끼발끼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모든 직원들이 몽골의상의 복장을 하고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이 음식점은 뷔패식으로 음식과 양념이 놓여있는데 손님이 직접 음식과 양념을 선택해 가면 직원들이 중앙에 설치된 커다란 프라이펜으로 음식을 볶아준다.
나는 소고기와 양고기, 소간, 그리고 버섯, 파, 당근, 토마토 등의 야채와 양념을 담아서 볶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맥주도 한잔 요청했다. 나는 너무 맛있게 먹었다. 동료인 이한영 사장은 맛이 없는 모양이다. 거의 먹지 못하고 나를 보더니 "야 김 교수! 맛있니"라고 물어본다. "응! 너무 맛이 좋은데..."라고 무심코 대답하자 그는 얄미운지 "야! 너는 친구도 아니야."라고 푸념을 한다. 이 사장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었으나 오죽했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식사를 배불리 한 다음 우리는 젊은이의 거리인 아르바트 거리를 방문했다. 우리나라 신촌과 홍대 입구 그리고 대학로를 연상시키는 거리이다. 아르바트 거리는 폭이 대략 20m 정도 되는 좁은 도로지만, 차량 통행이 금지되는 보행자 도로로서 항상 붐비는 것 같다. 내가 방문한 날이 평일인데도 사람이 많아 보행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거리에는 소규모 악단이 연주를 하고 있고, 거리의 악사도 아름다운 선율을 뽐내고 있었으며, 많은 무명 화가들이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했다. 크고 작은 아름다운 카페에서는 젊은이들이 맥주 잔을 기울이며 사랑의 밀어를 나누고 있었다. 또한, 러시아 고유의 공예품인 마뜨로슈가와 목 공예품, 골동품, 그리고 그림 등을 팔고있는 노점상들이 손님과 어울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아르바트 거리는 허리를 조금만 구부려도 색깔 팬티가 드러날 정도로 아슬아슬한, 그래서 괜히 멀쩡한 사람들에게 조바심을 느끼게 하는 짧은 스커트가 거리를 휩쓸고 다닌다. 육감적인 히프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스판 재질의 스커트는 몸에 착 달라붙는 소매 없는 티셔츠와 함께 여체의 굴곡을 숨김없이 드러내 보였다.
미니스커트, 핫팬츠, 버뮤다 팬츠, 탱크 탑, 힙합 패션 등 용어마저 생소한 패션이 등장해 몸매가 뛰어난 러시아 여성들은 자신의 몸매를 과시하고 다닌다. 게다가 러시아 여성들은 예쁘다. 경제사정이 좋아진 요즈음은 좀 나아졌지만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전학적으로 잘 생긴 민족은 아니다.
간사한 여행객이 모스크바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아르바트 거리에서 쭉쭉 빵빵한 여성들을 보고 미모에 한번쯤은 탄성을 지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쭉 뻗은 다리에 백옥 같은 피부, 풍성한 금발, 깊은 눈, 현대적 미의 요소를 두루 갖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러시아의 미녀가 많은 도시는 모스크바보다 블라디보스톡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 내가 무슨 생각을 하지. 나의 가족, 나의 제자들, 그리고 우리나라 여자들이 제일 예쁜데...
식사를 하지 못한 이 사장은 한국 음식을 먹고 싶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아르바트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여 스몰렌스카야 거리에 있는 한국음식점 "신라"에 갔다. 가라오케와 바도 같이 운영하는 깨끗한 음식점이다. 이 사장은 정식을 먹었는데 43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우리는 저녁 11시 55분발 상트 뻬쩨르부르그 행 열차를 탄다. 8월 27일 저녁에 서울로 돌아가는데 비행기를 모스크바에서 타기 때문에 상트 뻬쩨르부르그를 먼저 관광한 다음,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와서 모스크바의 나머지 관광을 할 계획이다.
밤 11시에 식당을 나와 상트 뻬쩨르부르그 행 붉은 화살호가 출발하는 레닌그라드 역으로 향했다. 레닌그라드 역은 어두컴컴하고 음침해서 약간 두려웠다. 그 유명한 붉은 화살호가 플랫폼에 대기하고 있다. 우리는 열차의 문이 열리자마자 승차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세면을 하고 돌아오니 이 사장은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참 넉살도 좋다고 혼자 중얼거리며 눈웃음을 지어 주었다. 나도 졸렸지만 잠을 잘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열차가 출발한 다음 승무원이 여권을 검사하고, 열차 표를 돌려주기 때문이 다. 또한, 시트도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기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