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셀리의 세레나데와 함께, 거리 樂士로
토셀리라는 이름 석 자만 듣고, 그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으리라. 그러나, 사랑의 노래 들려온다/ 옛날을 말하는가 기쁜 우리 젊은 날/ 동산 위에 달빛이---노래를 불렀다 치자. 그는 무릎을 칠 것이다. 아, 세레나데!!
뒤틈바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에 나 자신이 취해 있다면? 남들이 코웃음을 칠지 모르는 일 아닌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한데 이게 사실인 걸 어쩌랴. 지금 이 순간도 나는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를 보면대 위에 펼쳐 놓고 시선을 붙박고 있다. 여차하면 주섬주섬 색소폰을 둘러메고 거리로 나설 참이다. 참, 토셀리와 세레나데 이야기를 십육절지에 인쇄한 것도 챙겨야지.
칠십에 능참봉이라더니, 나이 일흔을 넘겨 색소폰을 글쎄 두 개나 샀다. 붙잡고만 있어도 힘에 부치는 테너와, 그와 반대로 아주 작고 앙증맞은 앨토. 먼저 마련한 테너 색소폰은 부주의로 음색을 죄우하는 목(neck) 부분을 망가뜨려 버렸다. 수리를 하려 했지만, 악기상에서 그것만 중고로 대체하라고 했다. 보기는 약간 싫어도-색깔이 표가 나니까-고유의 음을 내는 데는 지장이 없다면서. 그러나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한숨만 푹푹 오래도록 쉬었다. 애면글면 아껴쓰고, 아내에게 간청해서 겨우 마련한 것에 대한 반사적인 미련이라고나 할까. 하기야 사고(?)가 난 뒤 테너란 놈, 바라보기만 해도 덩치부터 은근히 겁이 났다. 그러니 생게망게없는 사실을 까뒤집기 위해 이러는 게 아니라고도 하겠다. 대신 앨토가 마치 죽부인처럼 가슴에 파고드는 맛이라니, 아닌게 아니라 내가 녹아들 것 같기도 하다. 첩장가드는기분이 이럴까?
서울 낙원 악기 상가에 갔다 온 지 이제 한 달 남짓이다. 그런데 시원찮다. 테너와 생김새는 같지만 앨토는 음역이 그것과는 다르다. 그게 문제일 수밖에. 특히 노래와 색소폰 연주를 번갈아야 하는 처지에서 보면 당황하기 마련, 제법 곤욕을 치렀다. '창밖의 여자'를 들이대 보니, 앨토로써도 소리야 나겠지만 악기 음이 높아서 내 노래가 따라갈 수가 없다. 나는 신음소리를 뱉어 내었다. 반주기라도 있으면 조바꿈이 가능하겠는데, 아직은 그걸 하나 사 달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는 데는 어쩌랴. 그래 울며 겨자 먹기로 <<색소폰 가요집>>만 들추면서 여기저기 음표며 쉼표 들을 낙서처럼 그려넣고, 애오라지 높이 올라가지 않는 곡만 택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목포의 눈물'!! 육성으로 가창이 가능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안도의 숨이 나올 때 나는 조금 행복하다.
그러다가 공연히 심술을 부렸다. 왜 색소폰은 심하게 말하는 사람들끼리는 저급한 악기라 하는가? 오케스트라에도 못 끼는---.겨우 대중가요 연주에나 쓰이고 말야. 이 나이에 '죄 많은 내 청춘' 따위로 인해 땀을 흘려야 할까? 나는 그 날 고개를 한참이나 갸웃거리기도 했다. 그건 차라리 절망이었다고 하자.
그런데 사람은 죽으란 법이 없다더니, 우연히 시선이 책장 한구석에 꽂혔다. 거기에 작년에 사 두었던 <<고등 학교 음악 교과서 >> 다섯 권이 다투어 얼굴을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책장을 미친 듯이 마구 넘겼다. 그러다가 소스라치게 놀라게 한 노래가 확 뜨겁게 내 얼굴을 덮쳤으니, 클레멘타인과 토셀리의 세레나데다. 클레멘타인이야 밤낮없이 내가 부르던 거라, 그래도 감흥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하지만 토셀리의 세레나데, 그건 달랐다. 나는 악보를 훑었다. 뭔가 굉장히 복잡해 보이지만, 초보자인 내 마음을 이끄는 것은 다장조라는 점이다. 그리고 비교적 가락이 단조롭고 박자 또한 걸거침이 별로 없어 보인다.
나는 색소폰 피스를 입에 물었다. 몇 번 도레미파솔라시도 소리를 냈다가 한 옥타브 높여 그 연습을 반복했다. 그러고 나서 부지런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서투르지만 소리가 난다. 도솔라미솔도도미시라솔/ 도레미도 시도레도솔라시솔레미도---나는 단숨에 끝까지 색소폰을 연주했다. 물론 도중에 삐 소리도 나고, 틀리는 곳도 나올 수밖에. 그러나 어쨌든 나는 끝장(?)을 보았다. '점점 여리게'/ '점점 세게'/ '조금 세게'/ '조금 여리게' 등이 끝없이 반복되지만 나는 독백했다. 까짓거 뭐 대순가? 몇십 번이고 씨름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아내와 함께 택시를 타고 김량장동 어느 조그마한 암자 뒤에 올라갔다. 거기서 '찬불가'며 '성가', '찬송가'-대개 쉽다-등을 연습하다가 귀가하는 길이었다. 우덜거지로 겨우 덮여있는 간이 정자 밑에서 아내와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이심전심, 저기서 한 곡 어떨까? 중년 남자가 앉아 있기에 양해를 얻으려 했는데, 오히려 내가 허리를 굽히는 게 얼토당토않다는 표정이다. 아내의 눈치를 보았다. 아내는 두말 않고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를 펼쳐든다. 김성수 외 두사람이 만든 책, 108쪽에 당당하게 드러나는 '토셀리의 세레나데'! 다만 그 가사가 내 머릿속에 들어 있던 것과는 다르다. 꿈을 따라 노래 들리어 온다/ 사랑의 추억은 모두 사라져 갔네/ 따스했던 그 미소는 가고--
하나 나는 거기에 괘념치 않았다. 아니 그럴 틈조차 없었다. 음표와 쉼표를 따라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이 버거울 따름, 어쨌거나 혼신의 힘을 쏟았다. 이윽고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초로의 남자에서부터 아기를 유모차에 실은 아주머니, 일찍 수업을 마친 고등학생 등등. 초등 학교에도 못 들어간 꼬마가 두서넛. 건넛길을 걷는 몇몇이 시선을 내게로 던지는 모습이 잡힐 때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어쨌든 정말 은혜로운 공간이었다, 거긴! 앞은 틔여 있고 뒤는 높다랗게 자란 수목들이 나를 감싸 주는 형국, 더더구나 어느 누구도 시끄럽다며 항변할 그런 궁지에 몰릴 리도 만무했다. 30분을 버텨냈다. 그리고 마지막, 언제나 그리운 내 사랑 아아아아의 아를 세 박자 반으로 악보대로 길게 뺐다. 피아니시모, 아주 여리게 그리고 데크레센토(점점 여리게).
집에 돌아오니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슴이 미어지는데 어찌 그 이름을 모두 들먹이겠는가? 잠자리에 들어서도 토셀리의 세레나데는 색소폰 반주가 없는데 내 귓전을 어지럽혔다.
나는 오늘도 토셀리의 세레나데를 붙잡고 울고 있다. 내일도 나는 거리의 악사로 나갈 것이다. 삼류 소리는 안 들으려면 토셀리를 넘어 슈베르트의 세레나데 등과도 맞닥뜨려야 한다. 늘그막에 다시 척박한 땅에 씨앗을 뿌리는 기분이다. 부지런을 떨면, 이 녀석이 자라긴 하겠지. 설사 열매를 맺지는 못할지라도.
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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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정말 잘하시고 계십니다. 저는 아코디언을 하고 있는데요 칠순에 하고 있는 이 짓이 잘 하고 있는 것이라네요.
오랜만입니다. 아코디언은 색소폰보다 어렵다고 봅니다. 누구한테 배우는 건가 하는 것도 문제겠지요.
제가 참 못난 데다가 배짱 하나 좋은가 봅니다. 막무가내도 이만저만 아니지요. 그제도 거리에 나갔습디다. 힘들지만 토셀리의 세레나데를 부르기도 하고 연주하기도 하고---.한데 저보다 훨씬 오래 색소폰을 연습해 왔던 분이 슬그머니 제 뒤에 다가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소스라쳐 놀랐지요. 김진찬이라는 이름을 가진 분입니다. 철도 공무원으로 퇴임했답디다. 꾸짖지 않고 오히려 격려를 해 주었습니다. 가끔 그 자리에서 만나기로 했지요. 중학교 음악교과서를 여섯 권 새로 샀습니다. 그리운 곡들이 여기저기 수록되어 있습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