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간
티비속 인간시장, 어린시절 어느 섬에서 지독히도 가난하게 자란 1남 3녀는 어느새 60,70대가 되어 타시도에서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부모 땅마지기 많으면 나누어 인근에 모여 살지만, 그렇지 못하면 살길 찾아 흩어져야 하는게 세상이치다.
그런데 고향 근처에 사는 둘째가 건강이 좋지않아 자매들은 자주 둘째를 챙겼다. 김장도 함께해서 나누어 가졌다.
그러다 첫째 언니가 죽기전에 한곳에 모여 살자며 혼자 고향근처에 터를 잡았다. 둘째를 생각하니 마음이 애잔해서란다. 처가집 식구들에 어울려 살기엔 아직은 마음 트이지 않는다는 남편을 5년째 설득중이다.
자매는 일년에 몇번씩 모여 부모님 제사도 챙기고, 부모님 같았던 오빠 생일상도 차려준다. 그들은 아직도 부족한게 많으니 생업에도 열중한다.
자매들은 오빠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부모님 일찍 돌아가시고, 돈벌어 동생들 셋을 연달아 출가시켰다. 그러다보니 오빠는 어려서부터 일터에서 잔뼈가 굵었다.
첫째는 가끔씩 둘째네 가계에 들러 일을 도와주며, 함께 할날을 꿈꾼다. 자식들도 한번씩 찾아주니 소망에 다가 서는 것 같아 삶이 즐겁다며 눈시울을 적신다.
우리세대 더러는 젊은시절 정든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며, 언젠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뼈를 묻을 것이라던 생각들을 했었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세태와 객지에서 자식키우며, 빠뜻한 삶의 현실에 그러한 각오는 한동안 뇌리에서 사라져 버렸고, 지금에 와서 잠시나마 그 흔적을 헤짓거려 볼뿐이다.
우리들은 부모님들이 일제 36년이란 치욕의 압제에서 견디다 피폐된 나라를 되찾았고, 6.25의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포화속에서 내가 태어났다.
그래서 나는 가끔 젊은 사람들에게 "우리 또래는 대포소리에 놀라 자다가 놀래 깨었고, 그래서 제대로 자라지도 못했다"는 우스개 소릴해댔었다.
모든 것이 부족한 시절이었다. 그러한 와중에 사라호 태풍으로 농사가 초토화된 해도 있었고, 계속된 5,60년대 보릿고개의 배고픔도 견디어 내야 했다.
세월이 흘러 동물이 자라면 어미곁을 떠나듯, 우리들은 빈손으로 고향을 떠나 잘 살아 볼것을 다짐하였고, 자식만큼은 가난의 대물림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힘든 세월은 쌓이고 엮어져 생은 어느듯 함께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는 작금의 나이에 다달았다.
비록 자식세대들에겐 '헬조선'이라며 환영받지 못하는 과거의 오염된 역사로 치부되었지만, 나름 열심히 살아온 인고의 세월이었다.
우리의 고향은 산좋고, 맑은 강물이 흘러내려 바다로 향하며, 기차가 지나가는 그리운 곳이다.
나는 지난시절을 생각할때마다 그러한 향수가 묻어나는 노천명의 시가 머리에 떠올랐다.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노천명]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 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엔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에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소
가진 것은 부족했지만 마냥 즐거웠던 어린 시절의 추억들...검은 고무신 신고 책보따리 대각선 둘러맨채 자갈밭 신작로를 내달렸고, 딱지치기, 구슬치기, 고무줄 놀이, 조약돌 놀이, 땅따먹기, 팽이치기, 강가에서 멱감으며 고기잡고 겨울에는 스케이트 타던 그리운 추억들, 백사장 버드나무 아래서 나무가지 꺽어 칼싸움 흉내내고, 물빠진 도랑에서 고기 잡으며, 시멘트보 오르는 은어 몽둥이로 잡던 즐거움, 소매어 놓은 정자나무에 기어올라 소꼬리 올가미로 매미 잡던 추억에다, 친구들과 산속헤치며 도라지 캐고, 남의 집 밭에 든 소때문에 혼나던때, 고구마로 점심 때우고 지게지고 뒷산 나무를 하려가고, 흙가마로 감자 삶아 먹던 추억에 더하여, 추석이면 마을 어귀에 모여 달구경하고, 설명절엔 세배다니고, 보름날에 달집 짓던 가슴 따뜻한 그러한 까까머리, 댕기머리 아이들은 모두 고향을 떠났고, 그곳엔 산업화 물결이 스며들어 먹을 것이 풍족해졌지만, 갖난 아이 울음소리 그친지 오래고, 농촌인심 사납다는 도회인들의 비난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러한 추억은 모든 것이 부족해서 힘들었던 시절의 부끄러움이 아니라, 물질 풍족한 이 시대에선 경험하기 어려운 값진 것이란걸 우리는 가슴속에 뿌뜻하게 간직하며 살아간다.
요즘은 고향 멀어진지 오래지만 예전엔 차를 몰아 동네 어귀로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서면, '골목집에 지금쯤 어느 누가 살고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조금은 낮선듯한 골목에다 변해있는 집의 형태들, 마당의 폼나는 승용차와 농기계... 그럼에도 얼굴 읶은 사람들의 모습이 드물었다. 뒷산을 오르며 이유를 뒷산에 올라 즐비하게 선 묘비들을 보고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어릴적 땔나무감이던 야산 나무들은 아름드리 숲으로 우뚝 자리잡았고, 돌뿌리 피하며 걸었던 거친 산길도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황소 매었던 느티나무는 태풍에 가지가 부러졌고, 높게만 보였던 뒷산 마루는 예전보다 낮아보여 내가 낯선 난장이 나라에 온 거인 같은 낮섬으로 다가왔다.
잠시 바위에 걸터앉아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눈에 보이는건 온통 푸르럼이다. 멀리 내려다 보이는 들판을 가로지르는 새로난 철길과 읍내로 통하는 직선도로, 멱감고 고기잡던 강물의 곡선이 시선을 압도하고 있었다.
한편으론 인구에 반비례하여 늘어난 들판의 비닐하우스를 보며, 그 폐쇄된 공간속에서 땀흘리고, 삶의 고뇌에 한숨짓는 농민들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시간은 빨라지고, 육신은 늙어간다.
추석을 앞두고 감과 밤 등 과일과 오곡이 익어가고, 서너 차례 강한 태풍을 견디어낸 벼가 무거운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뛰놀던 마을 앞 정자언덕, 아름답던 뒷동산은 나의 마음을 점차 밀어낸다.
슬픈 일이다. 어느새 내가 외지인이 되고 말았단 말인가? 풍문에 의하면 요즘 시골엔 외지인의 진입이 차별되고, 객지에 나가살다 죽으면 상여도 못들여 온다 는 가슴 저미는 말도 있긴 하였다.
다가서려면 더 큰 사랑과 용기가 필요할터, 어째 이제는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다. 거칠고 모자라는 먹거리에도 해맑은 웃음 웃던 우리들도 세상 탐욕에 어우러져 표정이 일그러져 변해간다.
또래 중 한둘은 안타깝게도 생을 마다하고 일찍 고향의 뒷산에 누웠거나, 여럿은 낮선 하늘아래에서 눈을 감았다.
대체 우리들은 행복이 무엇인지 알기는 하는걸까? 누군가는 맘편하면 그것이 행복이고, 그곳이 천국이라고 하였었다.
고독한 사람보다 활달하고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생의 마감을 더 긍정적으로 받아 들인다고 하였다.
평소 생활을 통하여 궁금증을 해소하고, 미련을 갖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운 사람에게 전화를 하고, 보고싶은 사람을 만나며, 하고 싶은 것을 즐기라는 말이 된다.
방법 중의 하나는 휴대전화의 연락처를 지우지 말고, 통화기록을 늘여 가는 것이다. 그속엔 그리운 고향의 모습이 담기고, 보고싶은 친구가 다가서게 될 것이다.
그러한 행복을 맞볼때면 이별의 시간은 가깝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팽창하듯 끝없이 멀어짐을 느끼게 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티비를 보며, 어린시절과 여러해전 추석을 앞두고 고향앞을 지나다 잠시 들였던 고향의 추억을 회상해 보았다.
[당신의 시간]
먼 하늘끝
동창은 밝아오고,
군데군데 하얀 새털구름을 띄웠다.
나는 하늘을 볼때마다 술 취한 그날 밤처럼 지구가 돌고 있음을 느낀다.
그렇다면 분명 나의 시간도 구름처럼 개념없이 흘러갈 것이 확연하다.
순간 공허함...
애써 스스로를 위안하며, '느림의 미학(美學)'이란 주제어를 공중에 띄웠다.
순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찰나에서 억겁으로 무한 팽창이 되어졌다.
그러나 당신의 시간
다가오는 시간, 머무르는 시간, 멀어져간 시간은 무심한 세월이란 치마폭에서 허우적 거렸다.
무언가는 붙잡지 않아 떠났고, 무언가는 붙잡으려 해도 버리고 떠났다.
행복과 불행의 시간들은 서로를 낯가림해 밀고 당긴다.
삶의 시간은 투쟁의 대상이고, 역사의 마중물(Priming Water)이다.
시간은 철부지 아이를 키우고, 중년의 어깨를 누르며, 소명을 다한 이들을 잠재운다. 그러한 당신의 시간은 마중의 대상이지 배웅의 대상이 아니었다.
시간은 돈이고, 시간은 행복이며, 시간은 남은 인생의 여정(旅程)이다.
오늘따라 뒷잠자리가 무겁다. 다시금 눈을 감고, 마음속 시간을 헤아려 보았다. 순간 자정 앞둔 수능생의 머리속처럼 지난 시간이 아쉽고, 남은 시간이 촉박하다는 생각이 솟구친다.
이렇듯 시간은, 시간은 점차 당신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다. 그러한 당신은 나란 지시대명사(指示代名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