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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존재를 거부하는 에베레스트에 서다
에베레스트 트레킹 전체일정
총거리 : 루클라 ㅡ 에베레스트 ㅡ 루클라 / 약125 KM
인천(1/15) ㅡ 카트만두(1/15/16/17/18) ㅡ 루클라(1/18) ㅡ 팍팅(1/19) ㅡ 남체(1/20)
ㅡ 탕보체(1/21) ㅡ 페리체(1/22) ㅡ 로부제(1/23) ㅡ 고락셉(1/24) ㅡ 칼라파트라 ㅡ
고락셉(1/25) ㅡ Everest base camp ㅡ 고락셉 ㅡ 로부제(1/26) ㅡ 탕보체(1/27) ㅡ
남체(1/28) ㅡ 루클라(1/29) ㅡ 카트만두(1/29) ㅡ 서울(1/30)
장도의 길에 오르며 (2007.01.15)
첫째날 ( 2007.01.15 ) :
인천공항 ㅡ 카트만두 도착 (16시40분) ㅡ 타멜 시가지 ㅡ 호텔
세계 최고봉을 향하는 꿈은 부풀어 새벽잠을 설치며 4시에 기상
가져가야할 장비들을 나열하고 같은 종류끼리 분류해 비닐 봉지에 넣으면서 한없이 늘어나는무게를 저울에 달아보며 선별 작업을 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장비 정열을 마치고 간단한 식사를 하고 공항 터미널로 향했다.
6개월 전 한진 관광에 에베레스트 트레킹 신청을 해놓고 기다린지 5개월 후쯤 에베레스트
신청자가 없어 환불을 받든지 아니면 랑탕이나 안나푸르나로 계획을 변경하는 것이 어떨런지 하고 전화가 왔다.
황당했지만 며칠의 시간적인 여유를 부탁하고 인터넷 사이트를 항해하기 시작했다.
혜초 여행사에서 6명의 신청자가 있어 출발을 하지만 문제는 카트만두까지 비행기표가 매진되어 같이갈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한진 여행사와 혜초 여행사 담당자와 연결하여 한진에서 확보하고있는 표를 넘겨받아 어렵게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을 출발하여 카트만두에 도착했을 때 혜초여행사의 표시판을 들고있는 현지 가이드 앞에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함께할 6명의 40대 전후 친구들을 만나 타멜에 있는 한국 음식점에서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가이드인 파상과 가이드 보조와 산행 일정에 관해서 의논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둘째날 ( 2007.01.16 ) : 05시 기상
ㅡ 카트만두 국내선 도착 (06시) ㅡ 공항 활주로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자욱한 운무 ㅡ 타멜로 돌아옴 (14시)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 도시락을 지참하고 일교차로 인해 운무가 자욱한 트리뷰반
공항으로 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랑탕이나 안나푸르나로 트레킹할 사람들은 공항을 빠져 나가버리고
썰렁한 공항에 우리 일행을 포함한 에베레스트 트레킹할 사람만 남게 되었다.
기상관계로 지금까지 5일 전부터 루클라로가는 비행기가 이륙하지 못했고 우리 또한 이렇게
기다리고 있지만 공항에서 어느 누구도 왜 기다려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애써 물어보는 사람도 없다.
10시가 조금 지나 하늘이 열리면서 했살이 들어온다. 그러나 공항내에 있는 카고빽들은 안으로
들어갈 줄 모르고 마냥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호텔에서 사준 도시락을 식당에서 먹고 기다리다 지쳐있을 때쯤 네팔 가이드가 왔다.
오늘은 비행기가 기상 악화로 이륙하지 못한다고 한다.
네팔에서 제일 번화한 수도 카트만두의 타멜 시가지로 발걸음을 돌렸다.
빽빽이 들어서서 먼지로 뒤덮혀 허술한 건물들,수없이 양철이 굴러가는것 같은 고물
자동차의 경적소리,먼지가 휘날리는 비포장 도로옆에 널어놓고 장사하는 털벗긴 닭들,
바같에 내어놓고 있는 정육점의 고기들, 할 일없이 길거리에 어설렁거리는 수없는 사람들,
중앙선도 없이 무질서하게 매연을 품으며 달리는 오토바이 대열,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얼굴 찌푸린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불교 사원을 둘러 타멜 시가지로 돌아와 저녁 식사를 한후 호텔로 돌아와 내일을 위한 준비를
했다.
셋째날 ( 2007.01.17 ) : 05시 기상
ㅡ 카트만두 국내선 도착 (06시) ㅡ ㅡ 타멜로 돌아옴 (14시)
오늘은 비행기 탑승을 첫 번 째로 한다기에 상당한 기대감을 갖고 하늘을 보니 루클라쪽 사정만
좋다면 여기는 좋아보였다.
어제 그렇게 분주하던 공항 내부는 사람이 드문드문하다.
호텔에서 준비해준 음식을 들고 레스토랑으로 올라가 아침 식사를 하고 바깥을 나와보니 점차
시계가 흐려져간다.
지금쯤 무슨 이야기가 있을 법도한데 출발 여부에 관해서는 오리무중이다.
어느 누구도 말이 없다.
한참 후 빠상이 검색대로 오라고 한다. 아~ 이제 정말 가는 가보다.
검색을 마치고 공항 버스를타고 비행기가 있는 쪽으로 간다.
야타항공의 낡은 경비행기 앞에 버스를 세워놓고 비행기에 탑승하라는 말이 없다.
여때껏 느껴보지 못한 침묵이 흐른다.
빠상이 온다.
수신호로 두손을 크로즈 시킨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마주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출발할 비행기 앞에서 돌아서야 하는마음.
카트만두의 중심부 타르바르광장의 남쪽에 있는 Kumari Bahal을 둘러보았다.
힌두교와 불교 건축양식이 혼합된 훌륭한 목조 건축물로 보존의 가치가 높았으나 빈곤 해결이
절박한 네팔 사람들로서는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존하기에는 의식 수준이 너무나 낮고 빈곤했다.
사원을 관람하는 데는 입장료가 없으나 살아있는여신Kumari를 볼려면 소정의 사례금(1~2달러)을 내어야한다.
넷째날 ( 2007.01.18 ) :
카트만두국내선 (5:10) ㅡ Lukla (2,840m) ㅡPhakding(2,610m) (17:40)
(산행시간 : 4시간10분 ) / 산행높이 : 230m 내림
티켓팅을 하고 출국장을 나와 공항 활주로에서 마냥 기다린다.
3일째 공항에서 기다림으로 인하여 랑탕이나 안나푸르나로 발길을 돌리자고 의견이 분분 했지만 오늘까지 기다려보고 출발하지 못한다면 내일 다른 곳으로 가도 충분한 시간이 있으니 오늘만 기다려 보기로 했다.
태양은 운무속에 깊숙이 숨어 눈부심을 감추고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을 지긋한 눈으로 보고있는 가운데 탑승 신호가 왔다.
불안한 마음으로 두근그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낡고 오래된 경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멀리 히말라야 설산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50분쯤 지났을까.
절벽끝에 500m도 안되는 경사진 활주로 가보인다.
불안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주는듯 사뿐이 내린다.
4대가 이륙하여 3대는 루클라에 내리고 한 대는 기상 악화로 되돌아 갔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일행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카고빽이 돌아간 비행기에 들어 있다고 한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본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우리 일행은 큰 문제없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Phakding으로 향했다.
비행 고도 때문인지 고소 증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조금 어지러움을 느끼며 천천히 두드코시 강의 물소리와 산새소리의 오케스트라를 즐기며 내리막 길을 내려오는데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험준하고 장엄한 Gonglha(5,813m) 봉우리가 폼을 잡고 위엄을 한 껏 부리며 나를 향해 “라마스테”라고 인사를 할 때 겁없이 온몸과 마음이 열려 오는 것은 지금까지 기다려온 설레임 때문일까?
길가는 곳마다 큰바위에 음각으로 세겨진 마니석에는 “옴마니반메홈” (우주에 지혜와 자비가 우리의 마음에게 퍼짐으로해서 간절히 바라면 모든 공덕을 성취할 수 있다/ 더 이상 사바 세계에 윤회로써 태어나지 말게 해달라는뜻 )여섯 글자의 연속으로 가득 체워져있다.
오름과 내림의 완만한 경사길을 어둠이 내리기 전에 Phakding에 있는 롯지에 도착했다.
롯지라는 개념은 추위을 막아주는 정도의 벽체에 바닥은 메트레스가 없으면 솟아오르는 바람 때문에 잘 수가 없는 곳으로 알았는데 한 평 반쯤되는 조그마한 방에 양쪽으로 나무 침대가 두 개가 있어 상상외로 아늑했다.
쿡들이 만든 된장국에 김치와 밥으로 저녁 식사를 하면서 일행 중 한 명이 렛시라는 네팔 전통소주를 찾았으나 없었고 창이라는 전통 막걸리가 있는데 한국의 막걸리와 비슷하지만 조금은 싱거운 편이고 도수 또한 낮지만 맛은 비슷했다.
방안의 전등은 낮동안 집열판으로 태양열을 받아 밧테리에 연결하여 전기 에너지로 바꿔 사용하고 있었고 어둡지만 불편함은 없었다.
사람들은 순수하고 맑고 밝다.
행복지수로 보아서는 세파에 짓눌려 시간에 쫏겨다니는 한국의 중류층보다 가진 것은 없지만 더 행복해 보인다.
바깥은 별로 춥지않은 영하 2~3도 될것같고 운무로 뒤덮힌 밤하늘엔 별빛 하나 없었다.
주변은 한치의 앞도 알 수 없는 칠흑같은 밤이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산행이 기다리고있어 침낭속에 들어가 잠을 청해보지만 들떠있는 마음 때문인지 잠이 오지를 않는다.
다섯째날(2007.01.19):
Phakding(2,610m)출발(07:30)ㅡMonjo(2,815m)ㅡJorsale매표소 ㅡNamche Bazar(3,450m)
(산행시간 : 7시간50분) / 산행높이 840m 오름
아침 식사를 맛좋게하고 무게를 최소한으로 하기위해 물을 잔득 먹고는 빈 수통에 물을1/3정도 체우고 입은 옷 그대로를 입고 산행 길에 나서니 저만큼 Thamserku 봉우리가 아침 햇살에
기지게를 키면서 위용을 자랑한다.
지도를 보니 점심 식사를 해야할 Jdrsale까지는 완만한 오름이고 NamcheBazar까지는 700m를 올라야하며 경사 또한 심하게 보인다.
카트만두에서 고소에 적응해야할 시간들을 다 보냈기 때문에 Namche Bazar 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 천천히 고소에 적응시키는 게 일정에 무리가 없을 것 같아 체력 안배를 하면서 호흡과 걸음의 조화를 이룰려고 노력해본다.
출렁다리를 건너고 조그마한 마을 Monjo를 지나 국립공원 Jorsale매표소에서 입산체크를
하고 입장료를 지불하고 가파른 돌계단 내리막 길을 조심해서 내려간다.
한참을 내려가니 쿰부지역에서 제일 긴 100m이상되는 현수교가 나타나고 현수교를 지난지 얼마되지않아 조그마한 동네 Jorsale가 나왔다.
현수교를 지날 때는 어느 한 쪽 편에 있는사람들이 다지나야 건너가는 일방 통행이 무언 중에
지켜지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하고 보데코시와 듁코시의 두물이 합쳐 흐르는 두드코시강 계곡의 출렁다리 현수교를 건너 힘찬 계곡 물소리에 정겨움을 느끼며 오르는 데 파상과 일행들은 힘들어서인지 뒤쳐져 보이질않고 나는 상당히 가파른 꼬불고불한 오르막 길을 천천히 가뿐 숨소리와 함께 쉬임없이 오른다.
에베레스트 베이스 켐프를 오르는데 3군대의 큰오르막을 올라야하는 데 이곳이 첫 번쩨가 남체
바자르를 오르는 오르막 길인 동시에 처음으로 3000m이상을 접하는 곳이기도 하다.
아마 여기오기 전 한겨울에 설악동에서 대청까지 쉬지않고 올랐던 예행 연습이 많은 도움을 주는것 같다.
3시10분쯤 Namche에 도착해보니 언덕과 언덕 사이로 무수한 장사꾼들이 바닥에 물건을 놓고 사고 팔고 있었다.
일행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린지 한 시간이나 지난 후에야 일행들이 도착해서 오늘 묵을 롯지로
향했다.
롯지에 도착해서 차한잔을 하면서 내일의 산행일정에 관해 의논하는데 일행들은 여기서
고소적응을 위해 하루를 쉬겠다고 한다.
여기서 하루를 쉬게되면 우리의 목적지인 EBC와 칼라파트라를 갈 수가 없기 때문에 지도를 보면서 천천히 올라가다가 일행중 고소가 왔을 때 그때 적응해도 될 수 있다라고 설득 했으나 허사였다. 도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혼자 내일 출발하기로 결심을 하고 지도를 정치시켜놓고 가는 길을 세밀하게 분석해
본 결과 기상변화등의 위험성은 극복해 보기로 하고 고소 적응없이 혼자 갈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혼자 가기 위해서 가이드인 파상을 불러 포타 한 사람을 부탁했으나 우리 팀은 포타 대신 야크로 모든 짐을 운반하기 때문에 나보고 포타를 고용하라고 하면서 만약 혼자 출발하게되면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과 비용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나에게 책임이 있으며 보험 적용도 되지않는다고
정색으로 말했다.
그런 문제는 혜초여행사와 나하고 풀어야할 문제임을 이야기하고 경비는 내가 부담을 하기로 하고 오늘 저녁에 포타한 사람을 구해 내일 아침 8시에 출발할 수 있도록 해달라라고 부탁을 했다.
포타만 부탁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가이드는 짐을 지지않기 때문에 가이드를 대동하면 포타가
한 사람 더 있어야한다. 가이드까지 대동하기엔 내 호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포타의 비용은 식사를 제공하면 하루에 500루피이고 식사를 제공하지않고 자신의 일당에서 숙식비를 해결할경우 하루에 800루피라고 한다.
일행들은 반신반의 하면서도 속으로는“저 사람이 죽을려고 환장했나?” 생각했을거다.
내일부터는 나침반과 지도 한장으로 가이드도 없이 고소적응도 하지않고 어떠한 난관과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낮설고 험한 산악길을 혼자서 올라야한다.
단지 산행길에 기상의 변화가 지장을 주지 않도록 바랄 뿐이다.
세계 최고봉을 향해서 이제 혼자만의 트레킹을 해야만 한다.
불가능이란 있을 수 없다.
잠을 설친다.
여섯째날(2007.01.20) :
NamcheBazar(3,450m)출발(08:00)->phunkiTenge(3,250m)ㅡ> Tengboche(3,860m)
산행시간 : 7시간30분) / 산행높이 200m 내림 ~ 600m 오름
아침 식사후 포타가 왔다.
나이는 불과 17~18세전후에 키는155cm정도의 가냘픈 얼굴에 우리의 50년대 중반쯤 먹지도못해 마른 것같은 몸매였다. 이름은 첩대라고 한다.
웃으면서 악수를나누고 무사히 트레킹을 끝내고 돌아 올 것을 서로의 눈빛으로 교환하며
식사를 제공하고 하루에 500루피를 주기로하고 잘 해주면 보너스와 팁을 별도로 줄 것을 약속했다.
이제부터 나이어린 포타와 함께 모든 걸 서로 의지하고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해서 상황을 판단하고 대처하면서 헤쳐 나가야한다.
앞으로 Lobche(4,910m) 나 Gorakshep(5,140m)에서 만나기로 하고 만나지 못하면 여기 롯지
에서 만나기로하고 파상과 6명의 일행을 뒤로 하고 아침 8시에 Tengboche(3,860m)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롯지를 나와 돌축대로 쌓인 가파른 언덕 길로 마을을 벗어나 능선에 올라서니 히말라야 고봉들이 자태를 나타내기 시작한다.
좌측엔 흰 눈을 살짝 머리에 이고있는새까만 돌산Khubiyul lha(5,760m)가 보이고,앞쪽 저멀리 설산 에베레스트의 오른 팔 Nuptse(7,861m),14좌중의 하나인 왼팔 Lhotse(8,393m), 우측으로는 아침 햇살의 찬란한 광체를 뒤로 이고 눈이 부시도록 황홀한 세계 3대 미봉의 하나인 Ama da blam (6,856m)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불구굴하면서도 평평하게 이어지는 Sanasa 길위에 이와같은 장엄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볼 때 함께느끼는 두려움과 짜릿함은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대자연의 오묘함을 느끼게 한다.
phunki Tenge(3,250m)로 가는 길은 걷기에 평탄하면서도 천길 아래로는 두드코시 강이 우람한 폭포수 소리로 흘러가고 푸른 하늘과 만년설의 조화로 이루어진 8,000m고봉들의 전경들이 시원하게 펼쳐보이는 아름다운 길이다.
phunki Tenge로 내려서자 제법 운치있게 물레방아도 돌아가고 집밖같엔 야외용 테이블도 놓여 있었다. 약간 타들어가는듯한 목에 차한잔의 여유를 즐기며 점심을 네팔의전통 음식인 달밧으로 하는데 여태껏 이런 일이 없었던 달밧의 찐한 향이 거부감을 나타낸다.
점심 식사후 계산서를 보니 차 한 잔에도 100루피로 계산되어 있었다. 일상적으로 음식점에서
내어주는 보리차 정도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phunki Tenge(3,250m)에서 Tengboche(3,860m)까지 지도상으로짧은거리로 약 600m정도의 고도를 높혀야 하는 힘든 오르막 길로 나타나있다.
아니다 다를까 마음의 다짐을하고 오르지만 막상 발을 붙혔을 때 발이 잘 붙지않는 지그제그의 오름 길로 돌고돌길 수 백번을 반복하고나니 몸은 점점 지쳐가고 얼마를 더올라야 Tengboche에 도달 할려는지 까마득하다.
이렇게 오르기를 한참 후 시야가 확 트일 때쯤 첩대가 환한 얼굴로 내 등산 가방을 받으러 오고있었다.
지금까지 첩대를 바라보는 내시각은 저 무거운 카고빽을 힘들게 지고가는데 저놈이 가다가 주져앉아버리면 내가 저놈을 들쳐업고 가야할까 무척이나 극정스러웠는데 저놈은 머리 하얀노인네가 중간에서 가지못하거나 고소증세라도 일으키면 두어달 먹고 살아야할 생활비가 날라 갈까봐 걱정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저놈의 환한 얼굴 표정을보니 내가 여기까지 올라와 있을 줄은 뜻밖이었던 모양이다.
여장을 풀고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티벳트 사원인 콤바를 참배하고 무사히 트레킹을 끝낼 수 있도록 마음속으로 묵념을 올리고 나왔다.
Tengboche롯지 주변에는 인적도 없고 삭막하다. 롯지에서 라면을
끓일 수 있느냐고 물어보니 식사를 시켜서 같이는 먹을 수가 있다고해서 첩대를 불러 라면 끓이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라면을 끓이고 달밧이 아닌 토스트와 애그를 시켰다.
달밧의 찐한 향이 속을 메스겨웁게 했기 때문이었다.
첩대에게 끓인 라면 절반을 주었더니 멈칫거리다 맛이 좋았던지 손놀림이 빨라진다.
식사후 첩대에게 내일 아침 출발시간과 점심먹을 곳 저녁에 도착해야할 롯지 등을 상의하고 방으로 들어와 참을 청했으나 추위로 인하여 잠이 들지를 못한다.
롯지내에는 중간에 복도를 두고 양쪽으로 10개정도의 단칸방들로 구성되어 있고 롯지 중앙에는 식당이고 한쪽 끝은 화장실로 되어있었다.
첩대는 카스트제도 때문인지 어디에서 잠을 자는지는 몰라도 이곳에서 잠을 자지 않는 것은 확실했다.
단칸방들 속에는 훵하니 문이 제멋대로 열려있고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없다.
일곱째날(2007.01.21) :
Tengboche(3,860m)출발(08:00) ㅡ> Shomare (4,040m)ㅡ> Pheriche(4,240m)
산행시간 : 7시간30분
산행높이 : 380m 오름
설친 잠으로 토스트와 애그를 간단히 하고 가져간 선식 가루에 잣과 은행알을 넣고 스프를 끓여
첩대와 나누어 먹고 오늘의 숙식비 870루피를 계산하고 8시에 문을 나서면서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며 천천히 평단한 내리막 길을 호젓하게 걷는다.
가는 도중에 나이 34세정도의 한국인 여자를 만났는데 혼자서 인도에서 시작하여 한 달 여 동안 여행을 하면서 칼라파트라를 다녀오는 길이라고 한다.
용기가 대단한 여자다.
오름 길을 천천히 올라 Shomare(4,040m)에 도착하여 기념 촬영을 하고 화면과 전체구도를 "o"와"x"로 그림을 그려가면서 첩대에게 DK찍는법을 가르킨다.이렇게 알으켜주기를 수십 번하고나니 이젠 제법 사진찍는 폼도 그럴사해 진다. 마음에 든 사진을 보았을 때 “very good” 이라고하면 아주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점심(480루피)을 먹고 혼자만의 오름길에 내눈치를 보아가며 오르는 첩대를 보며 내 지나온 날들을 생각나게 한다. 바나를 들고있으면 라이터를 찾고 코펠을 들고있으면 물을 가져온다. 쉴때는 DK를 받아주고 배낭을 벗겨 한쪽에 세워 놓는다.
뭔가 표정을 보면서 생각을 알아내고 서로를 배려할려고 하는 첩대의 행동이 고맙게 느껴진다.
첩대에게 앞으로는 워낙 내가 천천히 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22kg의 무거운 카고빽이 첩대에게 주는 부담감은 커질 수 밖에 없어 나보다 약1km~2km정도 먼저가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내가 도착하면 출발하고 내가 보이는 범위내에서 먼저 가서 쉬라고했다.
Shomare를지나 갈림길이 나왔다.
지도상에는 Dughla에서 만나는 길인데 오늘의 목적지인 Pheriche로 가기위해서는 오른쪽 길로 가야한다.
평탄한 오름길에 현수교를 지난다.
라마교를믿는 네팔사람들은 출렁다리 현수교위를 다니면서 형형색색의 천으로“롱다 ”를 걸어놓고 꿈과 희망을 기원한다.
그러한 기원도 저버린 듯 아무도 찾지않는 외로운 들판길에 푸모리봉 등정을 끝내고 내려오다
영원한 삶속으로 떠난 한국인 등반가(정상균,김도영) 두 명의 묘비가 돌탑속에 동판으로 새겨져 있어 쓸쓸한 마음으로 머리숙여 고인의 넋을 위로하며 묵념을 올리고 저멀리 내려다보이는 Pheriche(4,240m)마을로 향했다.
Pheriche가 4,240m 이라면 이곳은4,350m정도는 되리라.한참을 내려오는데 사방으로부터
가스가 차 내려온다.운무속에 솟아있는 설봉들이 나를 매료시킨다.
롯지문이 닫혀있어 추위 속에 한참을 기다린 후에 주인이 나타났다.롯지에 배낭을 풀고 따듯한 차 한 잔으로 추위를 달래고나니 15시 30분이다.5시경 앞도 뒤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운무가 휩싸인다.
4,200m 정도에서 이렇게 운무에 차 있다면 내일이 걱정스럽다. 이런 운무속에서는 지도도 나침반도 필요없다. 그런데 지도상으로는 내일 산행길이 쉽지않게 나타나있다. 서서히 어둠이 깔려온다.
저멀리 히말라야 설산들이 저녁 노을 햇살속에 운무를 헤치고 나타나는 환상적인 자태를 바라볼때 신비롭고 경이로워 이것을 DK에 담으러 나갔을 땐 운무속에 자테를 감추고 사라지고 없었다. 아쉬웠다.
아마 내일 등반이 고소에 적응되어야 하고 거리 또한 멀면서 700m를 올려야하는 제일 힘든 날이 될 것 같다.
내일의 일정을 첩대와 이야기하고 잠자리에 든다. 내일부터는추위에 견딜 수 있는 옷으로 준비를 달리 해야겠다.
여덟째날(2007.01.22):
Pheriche(4,240m)출발(07:30)ㅡDughla(4,620m)ㅡLobche(4,910m)
(산행시간 : 7시간10분) / 산행높이 670m 오름
세월의흐름을 망각하고 문명의 혜택을 단절하고 있다보니 오늘이 며칠인지도 모르겠다.
Pheriche에서 일어난 시간은 6시였다.
걱정했던 것 보다 잠을 푹잤다.
원래는 고소에 적응도 하고 신체적인 리듬도 살리기 위해서는 여기서 하루를 쉬고 산행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한 번도 고소 적응없이 계속 산행을 강행한다는 것은 사실 무리다. 허지만 어쩔수 없다.강행할 수밖에.
아마 지금까지의 일정 중에 오늘의 산행이 고도를 700m 올리면서 고소와 싸워야할 제일 힘든 구간이 될 것같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복장에 대한 재점검을 하고 다른 때보다 30분 일찍 출발을 했다.
역시 추위는 보통이 아니다. 서있으면 발이 얼고 스틱을 잡고있는 손가락 끝도 추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조심하자. 더더욱 천천히 신체의 리듬도 살리고 고소에 적응할 수 있는 걸음걸이로 걷자. 잘은 모르지만 고소는 높은 곳에 있으므로 해서 산소의 결핍으로 오는 신체적인 반응일 것이다. 절대 힘들 게 하지말자. 숨도 될수있는 데로 빨리 쉬어 산소의 흡입량을 늘리자. 가면서 물도 많이 먹자. 그러면 고소를 이겨낼 수 있으리라
호흡을 조절하면서도 내쉬는 숨소리는 한여름 날 뛰는개의 숨소리와 다를 바 없다.
지금의공기밀도는 아마 평지의60%도 안될 것 같다.그만큼 산소가 희박하다.
무거운 카고빽을 진 첩대도 보이질 않는다.
내주위엔 인적의 그림자라곤 없다.
그른데도 외롭다거나 혼자라는개념이 들지않는다. 무기력한 증세도 없다.
마음은 풍요롭고 편안하기 그지없다. 주변에 있는 히말라야고봉들이“ 비스따리(천천히)“”비스따리(천천히)“하면서 나를 반기며 격려한다. 아직까지는 본능에 따라 행동해 왔지만 두려움이나 극한적인 한계를 느껴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여기까지 올라올수 있었던 내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한다. 나를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께 단냐바트(감사합니다)를 드린다.
점심식사를 하기로한 Dughla(4,620m)마을에 도착하니 시간은 11시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달바트를 주문해놓고 지도를 정치시켜 왼쪽으로 보이는Cholatse(6,335m), Arakamtse(6,423m)우측으로보이는 Mhra peak(5,816m),앞으로 보이는 설산 Pumori(7,165m)등등 주변 고봉들의 이름을 첩대에게 말하면서 맞는지 확인해 본다. 맞다고 하면서 신기한 듯 나를 쳐다 본다.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 오를수록 식사 비용이 조금씩 비싸진다.이상하리만치 달바트의 음식고유향이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몇 잔의 물을 마시고 12시20분에 출발했다.
Dughla(4,620m)마을을 뒤로하고 Lobche(4,910m)로향하는 길은 흙먼지로 뒤덮힌 거대한 쿰부빙하를 가로질러 산허리를 감아오른다.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돌무리 너덜길 고산 속에 단 한 번의 고산적응도 없이 8일동안 쉬임없이 혼자만이 고도를 높혀 가다보니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정신적 신체적 부담이 몸속을 파고든다.
먼저 에베레스트를 트레킹한 사람들은 세계 각국에서 트레킹오는 사람들이 많이있고 롯지에서는 각국의 언어들로 재미있는 자리가되어 혼자라도 별 불편함이 없이 안전하게 트레킹을 할 수 있다라고 산행기에 적혀 었는데 메마르고 쌀쌀한 날씨에 청명하다못해 뻥뚫린 하늘과
선그라스가 없으면 눈을 못뜰 햇살과 가뿐 숨을 내몰아쉬는 거치른 소리만이 내리누른다.
주변은 황량하기 그지없고 제법 가파른 언덕 길을 올랐을 때 가이드 한 사람이 두 사람을 부축하면서 내려오고 있었다.
온몸이 연체 동물처럼 걷기에 위험할 정도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고 가이드한테 물어보니 고소에 적응을 하지못해 하산하고 있다고 한다.
고소증이 그렇게 무서울 줄을 몰랐다.더욱 조심스러워진다.
천천히 더더욱 천천히 걸어가다보니 지난 날들의 뭇 상념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학창 시절의 청운의 푸른 꿈이 한낱 바램으로 바뀌어 가면서 집착과 아집속에 얼켜 삶의 변두리에서 가슴 져미며 살아온 날들과 회노애락의 장막뒤에 인간의 존재를 한꺼풀 벗겨보면 아무것도 아닌 이것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매달려 살아온 내인생의 뒤안길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이러한 생각과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갈 때 내평생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비워보지못한 쓰레기통이 내머리 속에 들어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이러한 모든잡념들의 무개를 지탱하면서 살아왔을까?.
고도가 상당히 높은 모양이다. 머리가 아프면서 약간 멍 해온다. 생각때문일까?.
비워라
비워서 가볍게 살자.
이제 막 상념이 골짝을 벗어나고 있을때 첩대가 DK와배낭을 받으러 왔다.
Lobche(4,910m)에 도착후 토스트와 에그를 시켜놓고 코펠과 바나를 꺼집어내어 라면 끓일 준비를 했다. 커피봉지와 라면봉지가 손만 대면 터질 듯이 부풀어 있다. 고도가 높을수록 기압이 낮아서 이러리라. 식사후 약간의 구토 증세를 느끼면서 몸이 조금씩 이상해져 온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으면서도 몸이 팽창되어 열이 오르는 것같고 눈도 많이 충열되고 얼굴 전체가 부어 오르는 듯한 느낌이다. 큰일이다.
이제 나에게도 고소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내육체의 한계가 여기까지 인가?.
여기까지와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좋다.
극복해보자.
혈압약을 먹고 다이나막스를 먹고 밤새 한숨자지 않고 물을 마시며 열심히 심호흡 한다. 어떻하든 산소의 흡입량을 늘리기 위해서다. 이 적막강산 고봉속에 혼자만의 적막의 울타리 안에 눈을떠도 깜깜하고 눈을 감아도 깜깜한 영하15도 이상의 롯지 속 방안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화장실을 해드렌트를 켜고 수없이 들락 그러다보니 창밖이 훤해져 온다. 첩대가 아침에 께울 때는 잠시지만 깊은 꿈속에 있었다.
아홉째날(2007.01.23):
Lobche(4,910m)출발(07:20)ㅡGorakshep(5,140m)ㅡ KALAPATTHAR (5,550m) ㅡPumori 봉
(5,750m) ㅡ Gorakshep (5,140m)
(산행시간 : 10시간10분) / 산행높이 840m 오름
이제 대망의 최종 목적지인 칼라파타르를 오른다. 오늘도 640m정도의 고도를 올려야할 힘든 구간이다. 밤새 노력 덕분에 아침 양치질을 해보니 헛구역질을 하지않았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보아도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다행이다. 이정도의 콘디션이면 올라갈 수 있겠다라는 판단이 선다. 첩대한테도 지난 밤의 일을 이야기했다. 조금은 걱정스러워했지만 출발하기로 했다.
Gorakshep (5,140m)으로 가는 길은 지금까지 풍경과 다른 너덜길의 연속이었고 제대로 길을 판단하기가 쉽지않는 구간도 있었다. 첩대도 지쳤는지 혼자 갈 길을 가버리고 없다. 오름과 내림이 계속 반복되고 호흡은 갈수록 거칠어진다. 주변에는 움직이는 물체라곤 흘러가는 구름뿐이고 살아있는 물체라곤 풀 힌 포기도 없다.
지도상으로는 3시간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는거리로 보았는데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지루한 너덜길이었다. 추위와 함께 바람도 세차게 불어온다. 언덕밑 저멀리 Gorakshep (5,140m)의
몇집되지않는 지붕이 땅바닥에 움추려 앉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몇집 되지않은 롯지에 10시50분경 도착했을 때 첩대가 롯지 앞에 주저 앉자 있었다.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단다.
그러면서 이산속에 롯지에 숙박하는 사람이 없어 아마 다 내려간 모양이라고 한다.
얼마를 그렇게하고 기다렸을까 한 젊은이가 잠겨있는 문을 열고 나온다. 들어오라고한다.
불을 피우고 차를 따쓰하게 데워 한 잔을 준다.
반가웠다.
첩대는 남겨두고 따라 오라고 한다.
롯지안 미로 속을 가는 것 같은 꼬불꼬불한 복도를 따라 방 한 칸을 정해준다.
그리곤 나가버린다.
여기 롯지에서도 나를 제외한 어느 누구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조금 후 카고빽을 가지고 첩대가 들어왔다.
계획은 EBC를 먼저 다녀오기로 되어있지만 현재 몸의 상태로 보아 KALAPATTHAR (5,550m)를 먼저 가기로 하고 점심은 바나와 코펠을 가지고가서 Kalapattar에서 라면을 끓여 먹기로 하고 간단한 복장으로 롯지를 나왔다.
지금까지의 산행에서 느껴보지못한 이상한 기운이 온몸을 억누르고 한 걸음에 여러 번 숨을
쉬고는 있지만 들어오는 산소량이 적은지 머리속에 뭐라고 표현조차 할 수 없는 무엇이 찡하게 조여온다.
주변은 화산재 형태의 푸석한 느낌을 주는 흙길이고 하늘은 그렇게 짓푸를 수가 없는데 인간세상에서는 도저히 느낄수없는 야릇한 환경이다.
한참을 내려와서 오름이 계속된다.
갈지자로 올라야할 만큼 경사가 심하다. 바람도 강하게분다. 고도 때문에 내리 누르는 기압으로 인하여 걸음걸이가 한없이 느려진다. 숨은 쉬는 게 아니라 헐떡인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가뿐 숨을 몰아쉰다. 스틱에 몸을 의지하고 쉬어본다.
바위와 바위사이의 너덜길의 연속이다. 첩대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않고 적막강산에 오직 나혼자 이산을 흘떡이면서 오르고있다.
너덜지대의 바위와 바위들로 깔려있고,희박한 공기,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조차 힘들게 느껴져
오는 이상한 기분들은 여기가 과연 인간세상으로 볼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갖도록 한다.
한참후 기다리고있는 첩대에게 우리의 오름 목적지인 Kalapattar가 어디쯤 되느냐고 물어본다.
제법 높은 흰눈 덮힌 가파른 산을 가르킨다. 올라가는 길이 만만치 않게 보인다. 아무리 보아도
올라갈만한 산이 아닌 것같은 느낌이 든다. 머리가 갑작히 복잡해진다.갈 수 있을까?.
포기하는 편이 나을까?
별 생각을 다해본다.
발걸음의 무게가 한없이 무거워져 오면서 체력의 한계를 느낄 때쯤 검은 바위들 틈새 사이로 세찬 바람에 휘날리는 타르쵸가 보였다.
첩대가 말한다.
저기가 Kalapattar 라고 한다.
뭐! 저기가
이제 출발한 지가 2시간도 안되었는 데
내가 Kalapattar라고 생각했던 흰눈 덮힌 봉우리는 Pumori 봉 이라고한다.
바디 랭게지의 대화가 처음으로 틀렸지만 7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오색 깃발의 타르쵸가 바람에
휘날리는 것이 보일 때 온몸에 새로운 힘이 솟구쳐 올랐다.
Kalapattar에는 10여명정도 사람이 서있을 공간에 아무도 없었다.
인터넷속에 검색을 할때는 혼자 트레킹을 한다 해도 산을 좋아하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혼자라기보다는 이국적인 분위기 속에서 언어가 다른 사람끼리 모여 이색적인 여행이 될거라고 되어 있었는데 지금까지 혼자만의 트레킹이었고 지금 이Kalapattar 에서도 혼자다.
타르쵸가 바로 눈앞에 나타나고 에베레스트의 오른팔 Nuptse(7,861m)와 14좌중의 하나인 왼팔 Lhotse(8,393m)가 힌눈을 덮어쓰고 사천왕 같은 위용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그뒤에 흰수염을 바람에 휘날리며 세계의 최고봉 에베레스트가 두눈을 지긋이 감고 억급의
심연속에 엄숙한 얼굴로 좌선을 하고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까지 배움이 무엇이었는지 삶을 어떻게 전개 해와야 했는지 삶의 목표도 없이 흘러온 대로 부질없이 살아온 내삶의 허상이 부끄러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정면에 마주하고 앉는다.
무언지 모를 안온하고 차분하면서도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열기가 온몸을 감싼다.
내평생에 단 한 번도 비워본 적이 없는 머리속에든 상념의 쓰레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온몸이 가벼워져오면서 힘이 저절로 쏟구친다.
뭉클한 것이 가슴에 인다.
내평생에 한 번도 느껴보지못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북밭쳐 오르면서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이 확트여 오며 머리속이 맑아져온다.
부처의 해탈의 경지가 이런 것일까?
Kalapattar는 앞도 뒤도 절벽으로 둘러 쌓여있다.
첩대가 말한다.
Pumori 봉 으로 약 200m정도 더 올라가면 뉴 베이스켐프를 볼 수 있다고 하면서 가자고 한다.
아직 시간도 있고해서 라면을 끓여 먹고 올라가자고 했다.
바나와 코펠을 끄집어 내어 바람이 없는 바위와 바위 사이에서 라면을 끓인다.
물은 끓고 있는 데 라면은 익지 않는다. 아마 기압의 차이로 물은60도 정도에서 끓는 모양이다.
그르니 라면이 익지않을 수밖에
그래서 라면을 끓이는게 아니라 아예 삶는다.
아마 높이5,550m인 Kalapattar에서 라면을 끓여 먹어본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Pumori 봉쪽으로 오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오솔길처럼 잘 보이지도 않는 눈길을 따라 오른다.
200m 오르는 데 3시간이 걸렸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하겠지만 발걸음조차 옮기기 힘든 오름
이었다.
첩대가 뉴베이스켐프라고 가리키는 곳에는 황량하기 그지없고 단지 조금 완만해
보일 따름이고 인적도 아무런 흔적도 보이질 않았다.
다시 Gorakshep (5,140m) 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5시30분이 지나고 있었다.
세찬바람에 무지하게 추운날씨다.
Gorakshep 에는 첩대와 젊은 집주인 그리고 나 세사람 밖에 없다.
난로가에 앉아 토스트와 에그를 주문하고 라면을 끓이고 물을 끓여 선식 가루와 은행 알을 타서
먹는다.
첩대는 라면을 무척좋아한다.
식사후
바깥에 나와 인적없는 캄캄한 밤하늘에 별들을 우러러 본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한웅큼 별들을 따다 줄 수 있을 만큼 손을 뻗으면 손에
잡힐 듯하다.
트레킹을 하는 동안에 설산의 호연지기속에 나를 느껴도 보았으며 어두움이 깔려오는 밤하늘에는 쏟아지는 별들 속에 뭍혀 지나온 얫추억을 더듬어도 보았다.
너무 추워 나간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들어온다.
캄캄한 복도를 찾어가기도 어려운 미로 속에서 헤드렌튼을 켜고 방을 찾아 침낭에 몸을 누인다.
렌튼을 꺼버리면 보이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눈을 뜨고 손을 뻣으면 캄캄한 어둠 속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움 그자체 이외는
아무 것도 없다.
눈을 감아도 캄캄한 어둠 밖에 없다. 오직 혼자만이 이 어두움속에 있다.
침낭위에 몸의 열기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카바를 씨우고 잠을 청한다.
열째날(2007.01.24):
Gorakshep(5,140m) : 7:00출발 ㅡ Everest Base Camp(5,364m) ㅡ Gorakshep(5,140m)
ㅡ Lobche(4,910m)
산행시간 : 8시간50분
산행높이 224m 오름/454m내림
7:00시에 Gorakshep(5,140m) 롯지를 여기서 2시간정도의 거리에 있는 Everest Base Camp(5,364m)를 향한다.
얼어붙은 호수를 끼고 왼쪽으로는푸모리 오른쪽으로는 눕체를 사이에 두고 거대한 쿰부빙하로 들어서니 약간의 눈발이 휘날려 길을 찾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너덜길이 눈속에 뭍혀 첩대도 발걸음 옮기기가 쉽지않는 모양이다.
잘못 미끌려 삐긋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계속되는 눈덮힌 너덜길을 올라
가는데 추위에 손끝이 얼어오고 갈수록 숨이 차고 힘들다.
오렌 세월을 두고 빙하를 타고 내려온 흑갈색의 퇴적층 암석이 광대한 지역에 쌓여 있었고 고르지 않은 돌밭 너덜 길을 걷는 데 바람과 함께 추위가 엄습해온다.
쿰부 빙하는 황량하고 삭막한 빙하위에 앙상한 나무 한 그루도 말라 비툴어진 풀 한 포기도
없는 대부분 흙과 자갈, 바위들이 얼음과 뒤범벅이 되어 있는 너덜 길이다.
오르락 내리락 하며 천천히 가는데도 숨이 차고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않는다.
조금은 지쳐가는 모양이다.
쿰부 빙하를 따라 북쪽으로 거슬러 계속 올라 아이스폴에 이르는데 여기 황량한 돌밭에 EBC라는 표시석 하나없고 EBC라는 흔적 하나없는 이곳이 베이스캠프라고 한다.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기위해 온 단 한 사람의 등반가도 텐트도 보이지 않고 채석장 같은 얼음돌밭에 첩대와 나 이외의 그무엇도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도 없는 황량 그자체이지만 신의 존재를 허락하지않는 에베레스트좌우로 로체와 눞체로 이어지는 히말라야 산맥의 장엄하고 웅대한 대자연의 신비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내마음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11시30분쯤 Gorakshep(5,140m)에 도착을 해서 점심 식사를 하고 12시 20분에 Lobche(4,910m)를 향해 출발을 했다.
올라왔던길을 다시 내려가는데 그길 자체가 왠지 생소한 느낌을 주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바람과 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하고 첩대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보이질 않는다.
아마 이친구는 올라왔던 길이니까 내가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먼저 가버린 모양이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져 오고 가스가 차기 시작한다.
2시간30분정도 왔으면 보여야할 Lobche(4,910m)는 어디에 붙어있는지 알 수도 없고 가스가
눈앞의 시야를 가로막는다.
Everest 트레킹중 지금 이순간 만큼 난감하고 힘들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한 발자국의 걸음걸이가 천근만근 무디어져 오고 가스가 서서히 걷혀갈 때 저멀리 크레파스
비슷한 개울가로 부터 움직이는 물체가 보인다.
첩대가 오고 있었다.
정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내등산 가방을 받는다.
Lobche가 바로 눈앞에 보인다. 안도의 숨을 쉰다.
Lobche에있는 롯지에 도착해보니 헤여진 우리 일행들이 빠상과 함께 있었다.
벌써 첩대는 따뜻한 차 한 잔을 가지고 와서 내민다.
방 배정을 받고 열쇄를 손에 쥐어준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먹고나니 이제 방안에 외국인 젊은이들도 보였다.
우리 일행중 한 명이 아무른 말없이 내DK를 들고 나간다.
왜 그랬을까?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저녁 식사로 닭백숙이 나왔다.
오렌만에 한국 음식을 먹어보니 꿀맛이다.
천천히 천천히 그고유의 맛을 음미하면서 먹는 즐거움을 어디에 비할까?
식사후 빠상과 지도를 마주하고 가이드 보조와 앉아 내일 고교로 둘러서 갈려고 하는데 가는 도중에 롯지가 있는지 물어본다.왜냐하면 지도상에 롯지 표시가 있는 지도도 있고 없는 지도도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간에 의견을 한참 주고받다보니 이틀을 가지고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Lobche(4,910m) ㅡ>Kharka Lobuche Tea Shop(4,830m)에서점심식사 ㅡ> Cho La(5,330m)에서 1박 하는데 4,830m에서 다시 5,330m 로 오르는 것이 만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여기서 Gokyo(4,700m)까지가서 또 하루를 지내야 하고 여기서 Namche 까지도 하루 만에 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늘은 롯지안이 사람들로 인해 시끌했다.
어제는 밤에 별로 잠을 이루지 못했는 데 오늘 밤은 푹 자야지.
열하룻째날(2007.01.25):
Lobche(4,910m) : 7:30출발 ㅡ Pheriche(4,240m)ㅡ> Shomare(4010m) ㅡ>
Pangboche(3,930m) ㅡ>Deboche(3,710m) ㅡ>
Tengboche (3,860m)
산행시간 : 9시간
산행높이 150m 오름/380m내림
잠을푹자고 아침6시에 일어나 짐을 꾸리고 6시30분에 라면과 밥을 먹었다.
밥맛이 아주좋아 두그릇을 거뜬히 배속에 담고 트림을 해본다. 지금까지 롯지에서 사먹는 음식이
입에 맞지않아 고생을 했는데 이렇게 포식을 하고나니 살 것 같았다.
지금 가이드 인빠상과 우리 일행은 고소 적응을 위해 쉬었기 때문에 시간을 단축할려고 바삐 서둘고 있다.
그들의 산행이 심히 염려 스럽다.
느긋한 나를 보고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Pheriche(4,240m)를 지나 Shomare(4010m) 에서점심식사를 하고 저녁은 Pangboche(3,930m)에서 하기로 첩대와 이야기하고 7시30분에 출발을했다.
올라올 때 머물렀던 Pheriche(4,240m)를 지나 Shomare(4010m) 까지오는 데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잘 왔다.
12시20분쯤 Shomare(4010m)에도착해서 오렌만에 점심으로 달밧을 시켰다. 어제 닭백숙을 먹어서인지 별 거부 반응없이 잘 먹었다.
첩대가 오늘 저녁을 Tengboche (3,860m)에서 하기로 하면 어떨까하고 묻는다.
왜냐하면 Pangboche(3,930m)는 롯지가 밤에 매우 춥다고 한다.
하루 일정상 조금은 무리인것 같았으나 Pangboche(3,930m)에서 잘려고 하면 시간적으로 많이
남아 Tengboche (3,860m)에서 자는 게 시간적으로 일찍 Namche에 도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좋다고했다.
그런대 갈 때는 내리막 길이라 잘 몰랐지만 Pangboche(3,930m)에서 Tengboche (3,860m)올라가는 오름이 예사로운 오름이 아니었다.
4시30분경 Tengboche (3,860m)에 도착하니 젊은 친구가 안면이 있는지 라마스테하고 반갑게
웃으면서 대한다.
방을 정하고 식당에 앉으니 중앙에 놓인 난로에 불을 붙혀 주었으나 연통이 막혔는지 연기만
자욱하고 불은 피지않았다.
짐을 정리하고 라면 두개와 바나와 코펠을 들고 나오니 언제 고쳤는지 불이 들어와 아주 따뜻했다
첩대 역시 제빠르게 코펠과 바나를 받아들고 물을 끓인다.
Tengboche 에서 저녁은 감자와 계란 후라이를 시켜 라면과 같이 먹었다.
내일 오후쯤이면 Namche에 있을 나를 생각하면서 깊은 잠의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열이틀째날(2007.01.26):
Tengboche (3,860m) : 8:00출발 ㅡ> phunkiTenge(3,250m)ㅡ> Kyangjuma(3,550m) ㅡ>
NamcheBazar(3,450m)
산행시간 : 5시간
산행높이 150m 오름/380m내림
토스트와 계란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850루피를 지불했다.
오늘12시~1시쯤이면 Namche 에 있으리라
phunkiTenge(3,250m)에서 Kyangjuma(3,550m)에 오르느 길은 오색에서 대청가는 것보다
더한 오름길이다.오름이 있으면 내림이 있고 계속되는 오름과 내림의 연속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으나 NamcheBazar(3,450m)로 내려오는 길은 마냥 즐겁기만 했다.
Kyangjuma(3,550m)정도에서 첩대가 점심 식사를 하자고할 때 NamcheBazar(3,450m)에 가서
푸짐하게 식사를 하자고 하니 좋다고 한다.
Namche에 그의 도착될 무렵 헬기 소리가 났다. 산속에서 헬기소리를 들으면 별로 기분이
않좋다.
Namche에 도착했을 때 묵었던 롯지에 여장을 풀고 5L 정도의 끓인 물을 바케스에 담아
얼어붙은 화장실에서 루클라에서 비행기에 내린 이후 처음으로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목욕을 했다.
공짜는 없었다.따스한 물 한 바케스에 300루피라고 한다.
그동안 혹 고소에 고생을 할까봐 물티쉬로 세수를 했기 때문에 얼굴과 손은 형편 없었고
또한 눈의 난반사와 햇살로 그을러진 얼굴은 셀파들보다 더 검었으며 씻지못한 머리결은
석가의 머리와 다름이 없을 정도로 뽀글뽀글 했다.
온몸을 씻고나니 기분이 날라갈듯 상쾌했다.
옷을 갈아입고 마을에 있는 인터넷방으로가서 사용을 할려고 했지만 엄청나게 후진 컴퓨터
속에 무얼 그리도 많은 프로그램을 깔았는지 아예 돌아가질 않는다.
포기하고 돌아서면서 건강하게 EBC를 잘 디녀왔노라고 집에 전화를 했다.
시계가 7시30분을 가르킨다. 칠흑은 어둠에 오늘은 잠도 잘 올 것 같다.
그러나 막상 잠을 청할려고 누워보니 예상 외로 눈이 말똥거린다.천정에 쥐들이 달리기를
하는 소리에 살풋이 잠이 들었나보다.
열세째날(2007.01.27):
NamcheBazar(3,450m) : 8:00출발 ㅡ> Khumjung(3,780m)ㅡ> Hillary School ㅡ>
NamcheBazar(3,450m)
산행시간 : 7시간
산행높이 330m 오름/330m내림
Khumjung(3,780m)에 올라가는 길은 여러곳이 있는데 첩대는그중 제일 험난한 코스로 나를
안내했다.
칼날의 양날과 같은 등성이로 45도이상의 발붙일곳이 마땅찬은 경사로에 갈지자로 오르는
이길은 떨어지면 수백미터 아래에서 뼈도 못추릴 것 같은 그런길로 나를 안내 했다.
이렇게 험난한 오름길도 아마다블람의 아름다움과 먼 시야에서 들어오는 천군만마를 거느리고
있는 에베레스트의 모습을 보고 즐기면서 걷고 있노라니 마음도 편한해지고 굳어있는 몸도
피로를 느끼지 못하는듯 했다.
평탄하면서 조금의 오름에 힘들다고 툴툴대면서 걸어오는 사람과의 힘듬의 차이는 무엇일까?
산모퉁이를돌때쯤 Khumjung의 지붕 윗부분이 보인다.
이렇게 험난한 길을 올라보니 시계가 확트인 별천지가 눈에 나타난다.
밑에서는 그냥 산봉우리로 보였는데 평탄한 분지가 한 마을을 이룰 수 있는 넓은초원지가
있었다.
경치와 전망이 수려한 이곳에 일본사람이 호텔을 크게 지어 놓았다.
호텔로 들어가는 정문앞에서 첩대는 들어가지 못하고 망설이며 내눈치를 볼 때 내가 먼저
들어가니 싱긋시 웃으면서 따라들어 온다.
호텔 내부를 둘러보고있으니 안내인이 나타나 바깥 경치를 보라고 한다. 반대편 문을 나서니
아마다블람을 시작으로 해서 히말라야 파노라마가 눈앞에 전개되는 시야는 인간세상이
아닌 선경에 들어있는 듯하다.
안내인이 첩대와 무슨 이야기를 한다.
무슨 차를 들겠느냐고 하는 것 같다. 첩대와 함께 메뉴판을 들고 나온다.
첩대 이놈도 들어올 때는 망설이더니만 내가 있으니 안내인에게 대하는 태도가 당당하다.
지금까지 첩대와 있으면서 잠자리를 제외하고는 먹을 음식이던 무엇이던 동등하게 똑같이
행동했다.
그동안 첩대에게 그렇게 동등하게 대해준 것이 상당히 기분이 좋았던지 나에게 정말 잘 해주었다. 안내인이 가격표를 들고 들어왔다.
첩대에게 지갑 체로 주면서 계산을 하라고 하니 안내인한테 무슨 이야기인지 하고 있었다.
알 수도 없지만 모른 체하고 열심히 사진을 담고 있으려니 커피 잔에 커피가 다시 리필되고
있었다.
호텔을 나와 한참 밑으로 내려오니 가히 100여호는 될 것같은 셀파들이 사는집들이 완만한
산비탈에 마을을 이루고 있는데 따사로운 햇살에 평온하기 그지없다.
HillaryHigh School 을 둘러 양지바른 언덕을 찾아 사들고온 네팔 라면을 끓여 점심으로
대용하니 첩대는 식당에서 사먹는것보다 이것이 훨씬 맛이 있는지 엄지 손가락을 내밀며
베리굳이라고 한다.
내려와서 첩대에게 그동안의 고마운 마음으로 등산옷 한 벌을 사주기위해 등산 가게에서
옷을 골라보라고 하니 싼 옷을 선택할려고 한다.
좋은 옷 한 벌을 가리키면서 입어보라고 하고 어떠냐고 물으니 눈이 동그래지며 좋아한다.
가게 주인과 옷 한 벌을 두고 흥정을 해보니 장사하는 사람도 심성이 고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네팔 사람들을 영혼이 순수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첩대에게 내가 가지고 있던 선그라스와 장갑을 넘겨주었다.
오후늦게 헤드렌튼을 켜고 가이드인 빠상과 나머지 일행들이 그동안의 산행에 지친 몸을
이끌고 롯지에 도착했다.
고소적응을 위해 쉬고난 이후 그동안의 무리한 산행 일정으로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대구에서 온 일행 중 한명이 쿡을 데리고 영양보충도 해 가면서 단체로 움직인다는 것이
서로를 의지할수 있어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를 자랑스럽게 이야기들을 하면서 그동안의
무용담을 늘어 놓는다.
열넷째날(2007.01.28):
NamcheBazar(3,450m) : 8:00출발 ㅡ> Phakding(2,610m) ㅡ>Lukla (2,840m)
산행시간 : 8시간30분
산행높이 230m 오름/840m내림
아침 식사를하고 8시에 NamcheBazar(3,450m)를 출발하여 Phakding(2,610m)에 도착12시쯤
도착해서 올 때 숙식을 했던 그롯지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빠상일행과 함께 첩대도 계속 따라오면서 한 번씩 내눈과 마주친다.
Lukla (2,840m) 에 내려와 롯지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경비행기를 탈려고 나가는데 첩대가
카다(환영 및 환송의 의미로 목에 걸어주는 베이지색 천) 를 목에 걸어주면서 눈물을 글썽거린다.
손을 잡고 어께를 다둑인다.
살아 생전에는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너와 나의 만남이리라.
카트만두 트리뷰반 공항에 내려 호텔에 여장을 풀고 맨 먼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샤워를 했다.
저녁 식사를 하기위해 타멜 시가지에서 어느한 식당으로 들어가 술을 청했는데 석청으로빚은
빼갈을 먹을려냐고 묻는다. 얼마냐고 물으니 20달러를 달라고 한다.
네팔에서 20달러는 꽤 비싼 편이었지만 20달러를 주었다. 조금 후 가져왔는 데 1.6리터짜리
페드병에 가득 가져왔다.
맥주 컵에 한 잔을 따루어 마신다.
목구멍에 넘어가는 감촉이 발끝까지 짜릿하다못해 황홀하다.
한 컵을 다 들이킨다.
발끝으로부터 올라온 열기가 온몸을 감산다.
이 한 잔의 술맛
내생애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진정한 술의 진맛을 여기서 느껴볼 수 있었다.
열다섯째날(2007.01.28):
아침 식사를 마치고 네팔의 화장장 파슈파티나트를 들렸다.
인간의 삶과 죽음이 왜 이렇게 보잘 것없이 보일까?
화장장이라기 보다는 노천에서 시신을 테우는 곳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를 장작더미의 높이에서 볼 수 있는 데 부자의 시신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속에서 완전 연소되어 한 줌의 가루로 강에 뿌려지지만 돈없이 죽은 자는 시신이 다 타지도
못한 체 바그마티강으로 버려진다.
네팔인들은 재가 겐지스강에 이르면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 영생의 길로 들어선다는 성스러운 의식이라고 하지만 서로 말이 통하지않는이장소에서 볼 때 동물과 사람의 죽음이 똑같다고
생각이 드는것은 왜일까?
윤회를 믿는힌두교
현세의 삶은 전생에서 정해졌고 현생에서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따라 내세가 결정된다고 믿는
그래서 고통이 심한 삶일수록 내세에 다시 태어나기를 기원하면서 죽음이란 두려움을
행복으로 느끼는지 모르겠다.
나오는 길에 놋그릇 하나를 샀다.
들려오는 음이 영혼을 달래는 것 같아 놋그릇을 두드리면서 망자의 영혼을 위로해 본다 .
점심 식사후 카트만두에 있는사원중 가장 고풍스럽고 불가사의한 사원으로 꼽히는
Swayambu Nath ("스스로창조된","스스로존재하는")를 들렸다.
하얀돔 위에 황금빛 스투파(탑) 에는 세 가지의 의미가 있는데 "부처의 마음,부처의 말씀,
부처의 이미지" 라고 하며 스투파에는 두개의 눈과 미간에 제3의눈("우주의눈,지혜의눈,
통찰의눈")이 있고 물음표처럼 생긴 코는 "1이라는숫자를 형상화한 것으로 진리에 도달하는
길은 하나이며 스스로의 깨닮음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비행기 탑승수속을 마치고 잠시 눈을 붙여본다.
열여섯째날(2007.01.28):
인천 공항에서 보는 햇살이 정겨웁게 느껴진다.
세계 최고봉을 향해 깊은 산속을 혼자 트레킹하는 동안 나는 배웠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그래서 자신을 최상으로 대해주고 항상 자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을
또한 아무리 어려운 난관이 다가와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배웠다.
그동안 체험하고 느껴본 일들이 밑거름이 되어 풍요로운 마음으로 내삶을 영위하고 싶다.
첫댓글 대단한 열정입니다. 화이팅!
선배님이 다녀와서 무용담을 얘기할 때는 산행이 다 그렇지 했었는데,
짧게나마 다녀오고 보니 선배님이 얼마나 무모했는지(진짜 그랬어요!) 알겠더군요.
그 도전심 정말 존경합니다. 잘 읽고 그 코스를 가려고 또 꿈을 꿉니다.
잘 보고 갑니다.
아 ! 정말 무지무지 대단하십니다! 감히 꿈으로만 꾸던 일을 감히 해치우신 박회장님의 도전과 열정 ! 저희들이 배우고 따라야 하겠습니다 .
막연하게 산행을 좋아 할때는 지금의 저의 몸상태 어딘들 못가하고 덤빌 것 같았지만 일본 산행 후는 산이란 것을 조금 배우고 나니 진정 힘들 때는 자신과의 전쟁 꿈만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