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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禪軒 독서일기 2025년 8월 24일 일요일]
《『대동야승』 中 조경남 『난중잡록』 趙慶男 亂中雜錄
1608년 영부사 이덕형 상소》 [122]
○ 영부사(領府事) 이덕형(李德馨)이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삼가 아룁니다. 신은 본래 용렬하고 비루한 사람으로 선왕의 넘친 은덕을 입은 지 29년이나 되었는데, 이처럼 신을 사람답게 만들어주신 은공을 보답할 길이 없어 한 번 죽는 것으로 국가의 위급할 때에 바치겠다는 맹서가 신의 당초부터 쌓였던 생각입니다. 선왕께서 덧없이 승하하셔서 애통한 마음 비할 데 없고, 전하께서 또 태양처럼 계속하여 밝게 임하여 임금의 자리에 오르시니 만물이 모두 새롭게 즐거워함이 다시 살아난 것 같습니다. 신은 우활하고 멍청한 사람으로 선왕께 갚지 못한 것을 전하께 옮겨 받들어서 장례라든가 새 정사에 지극한 정성으로 끝마치려 하였던 마음 어찌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서러워함과 감동되는 것이 밤낮으로 간절하던 중 마침 천한 몸에 병이 위급해져 병상에 누운 채 기동하지 못하여 사무를 전폐하고 휴가를 청하여 다만 엄중하신 꾸지람만 기다렸는데, 도리어 천지같은 지극하신 인자하심으로 간곡하게도 염려하여 주시어 이미 따뜻한 말씀도 내리시고 동시에 의생과 약까지 겸하여 주심을 입어 감격하고 황공하여 눈물이 저절로 떨어집니다. 생각하건대, 신의 병든 것은 몸을 상한 것이 쌓여서 한열(寒熱)이 왕래하고 날마다 제감(除減)됨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거대한 옥사는 바야흐로 확대되었는데 오랫동안 문초하는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여 사가에다 짚자리를 깔아놓고 죄만 기다리고 있으니 죽음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22일에 정원(政院)에 내린 교시를 삼가 보니, 정신이 놀랍고 아찔하여 어찌할 줄 몰라서 바로 부축하고 끌려서 죄주시기만 기다리려 하였습니다만, 학질이 심해서 몸이 흔들리고 눈은 현기가 나서 더욱 안정할 수가 없고 억지로 일어나보려 하였으나 이미 달려가 사죄하지 못하고 품은 생각이 있어도 아뢰지 못하여 숨김이 없어야 한다는 옛 훈계에 또 어긋났으니 그 전부터 충성하기를 바란 뜻이 진퇴에 의거할 바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감히 병을 억제하고 충심으로 한두 가지 아뢰오니, 성상께서 살펴주시기를 원합니다.
전날 대행대왕 승하하시던 때에 신등이 명령에 따라 어전에 입시하였는데, 삼가 보니, 죽음을 바르게 하시고 유언을 받자온 의리가 엄정하고 명백하여, 흠서하고 탄복하여 물러나와 외정(外廷)에 있으면서 들으니,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생각하는 말이 있어서 신 혼자 의아하게 여겼습니다. 호위하기를 오래되어도 철수하지 않자 밖에서는 자못 임해(臨海)를 의심했었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임해의 어리석고 패악함은 나라 안 사람들이 다 아는 바이며, 순화군(順和君)의 예에 의하여 이미 외방(外方)에 안치되었고 무사로서 왕자와 친밀한 자는 명백하게 대명률(大明律)에 따라 처리할 것이고, 궁노(宮奴)로서 백성들에게 손해 끼친 자는 베어 죽여도 애석할 것이 없으니, 일을 먼저 잘 처리하고 아뢰어 군대의 수비를 철수하면 무슨 불가한 일이 있겠습니까? 지난 14일에 빈청에 들어가 영의정 이원익(李元翼) 등과 함께 좌석에서 이 일을 말하였는데 조금 있다가 삼사가 은밀히 아뢰어서 명령이 빈청에 내리게 되었습니다.
대개 진(珒)은 미친데다 제멋대로 하여 무식한 종실의 무사들을 불러서 활 쏘는 계(契)를 만들고, 완악하고 반역할 마음을 먹던 종들과 백정들을 모아 사적으로 길러내고 많은 총검과 궁시를 모으며, 노복의 재물을 강탈하여 방자하게도 불의한 짓만 행하여 국가에 원망만 거두게 되고 그가 죄를 짓고 도망다니는 악당들의 주인이 되어서 불측한 말을 한 것은 지난해 10월에 이르러 극도에 이르렀습니다. 진실로 듣는 사람이라면 누구인들 놀랍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다만 성상의 등극하신 처음을 당하여 지친의 변이라 해서 선뜻 처리하기가 곤란했으나, 이제 이미 발각되었으니 이 일을 발론한다면 나라에 정상적인 형법이 있어서 친족이라 하여 사정을 둘 수가 없는 것인데, 더구나 그 동류로서 종유한 것들은 사실대로 따져서 사형에 처하는 것을 더욱 조금이라도 지연시킬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진(珒)의 평일에 일삼는 것은 개나 말이나 노리개 등속이요, 지방 물산의 상납과 활쏘기와 사냥질이며 잔치놀이 하는 일이니, 왕자의 존귀한 처지로서 이러한 것으로 한 번이라도 보기를 청한다면, 종실의 무변(武辯)으로 무식한 사람들이 누가 한 번이나마 진(珒)의 면목을 보는 것으로 영화스럽고 다행하다 하여 즐겁게 나가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은 사람이라고 하여 반드시 전부 역모에 참여하였다고는 볼 수 없는데 조사하는 말에 하나만 관련이 되면 결국 자세히 살피지도 않으니, 방관하는 무리들이 의심과 공포 속에서 발을 제대로 딛지 못할 지경이므로 종실의 무사(武士)들은 사람마다 자신을 안보하지 못하게 되니, 그도 또한 염려되는 일이요, 또는 각 도에서 궁노라고 명의를 걸고 있는 자 그 종류가 지극히 많은데, 이제 모두 집을 비우고 망명 다니게 되니 혹시 산골에서 서로 모이게 되면 그 걱정도 적지 않습니다.
백성에게 피해가 심한 자는 이름을 내걸고 현상금을 걸더라도 체포하여 법대로 문초받아 죽여서 백성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할 것이요, 나머지 죄로서 사형 외의 것은 방(榜)을 걸어 자수하기를 일깨울 것이요, 오랫동안 도피시키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나무의 새싹이 돋는 봄날을 당하여 관청에서 문초받는 일이 오랫동안 설치되어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한길로 가득하게 되면 인심이 타락될 듯하니, 단서가 이미 나타나서 자복하여 죄로 단정지을 사람 이외 꼭 잡아오지 않아도 될 만한 사람은 속히 명령을 내려 의논하여 처리하면 전국적으로 모두 즐거워하여 성인의 덕택이라고 축수할 것입니다.
삼가 듣자오니, 진(珒)이 유배지로 나갈 때에 임금께서 중사(中使)를 보내어 위문하셨고, 교동(喬桐)에 이르러서는 연달아 물품도 내리셨다 하니, 진(珒) 자신이 전하를 끊은 것이지만 전하께서는 더욱 천륜의 사랑을 두텁게 하셨으니, 듣는 사람마다 흐느껴 울지 않는 이 없습니다. 지난해 유백(柳舶)을 삼성(三省) 합동으로 취급하던 옥사에 외정(外廷)에서는 온당치 않은 일이라는 말이 있어서 여러 신하들이 서로 돌아보기만 하고 감히 입을 열지 못하였습니다. 신은 걱정스럽고 분한 생각이 나서 말하기를, “일이 진실로 이보다 중대한 것이 있으면 장차 싫어져 한마디 말도 하지 않겠는가?” 하고, 감히 망령된 말을 아뢰었다가 진(珒)의 손에서 거의 죽을 뻔한 일도 있었습니다. 신은 그 때에 온 조정이 군부에 대해 사랑이 박한 것만을 걱정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외간에서 이 옥사에 연루된 자가 점점 지나친 것으로 많이 염려하기는 하면서도 한 사람도 말을 다 하는 사람이 없으니 신은 괴이하게 여깁니다. 또 생각해 보면, 요사스러운 귀신 떼들이 어둔 밤에 뛰놀다가도 태양이 중천에 떠오르면 모두 없어지고 물리쳐지는 것입니다. 비록 어둠을 타서 음모를 하는 자가 있다 하여도 이제는 간담이 떨어져 목숨을 바치려고 하여도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것이니, 무슨 염려할 것이 있겠습니까? 주성왕(周成王)의 상(喪)에 제후를 소집시켜서 병대로 호위함이 매우 엄숙했었습니다. 이는 대개 소공(召公)과 필공(畢公)이 삼숙(三叔)의 변에 놀란 일이 있어서 배치하기를 주밀하게 하여 크게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킨 것이요, 만일 오래되도록 이러한 조처를 하다가는 도리어 의심만 생기게 됩니다. 행궁(行宮)의 호위를 한 달이 지나도록 그대로 둔 것은 한갓 보는 데에만 온당치 않을 뿐 아니라 빈한한 군졸들이 밤을 새우면서 오랫동안 수직하게 되니, 혹시 원망과 슬픔을 가져오게 되어 털끝만치라도 백성들의 원망이 있게 되면 새로 시작하는 정치에 훼손됨이 클 것입니다. 살피시어 쌀과 베를 내려서 그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철수시켜서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대개 사람이란 의심하면 두려운 마음이 나는 것이요, 두려운 마음이 나면 걱정을 막아줄 꾀가 지나치게 되어 틀린 데로만 뒤바뀌어 나가다가, 소인들이 그 짬을 타게 되면 말류의 화변이 마침내 하늘에 닿을 만큼 커지게 되니 깊이 두려워할 일입니다. 지난번에 하늘에서 흙비와 과일 만한 우박이 내렸고 또 유성(流星)의 흰 기운의 변이 있었으니, 이는 하늘이 인애로운 마음으로 전하께 경고하신 것이 지극히 깊고 간절한 일입니다. 위상(魏相)의 명당(明堂)에 관한 주(奏)에 이르기를, “봄에 가을 행령(行令)인 정치를 하게 되면 일식과 월식을 하게 되고, 여름에 겨울 행령인 정치를 하게 되면 우박이 내리게 된다.” 하였고, 《여기》월령편에 이르기를, “사시의 기후도 그 당시 정치의 실수에 따라 행해지게 된다.” 하였으니, 전하께서 깊이 살피심을 삼가 비나이다. 형제의 은의를 보전하고 옥사도 삼가라는 것. 신이 삼가보건대 《주송(周頌)》에 성왕(成王)이 상례를 마치고 사당 참알을 하면서 〈불쌍한 나 소자[閔予小子]〉의 시를 지었는데, 여기에 이르기를,
불쌍한 나 소자가 / 閔予小子
집이 완성되지 못함을 만나서 / 遭家不造
외로이 외로이 병듦에 있으니 / 煢煢在疚
아 황고여 / 於乎皇考
길이 종신토록 효도하셨도다 / 永世克孝
이 황조를 생각하여 / 念玆皇祖
뜰을 오르내림을 보는 듯하니 / 陟降庭止
나 소자가 / 維予小子
밤낮으로 공경할지어다 / 夙夜敬止
아 황왕(皇王)이여 / 於乎皇王
대를 이을 것을 생각하여 잊지 못하리로다 / 繼序思不忘
하였고, 성왕이 상복(喪服)을 끝마치고 여러 신하를 맞아 볼 때에 〈방락(訪落)〉의 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내 처음 시작할 때 물어서 / 訪予落止
이 소고를 따르려 하나 / 率是昭考
아 아득히 먼지라 / 於乎悠哉
내 미칠 수 없노라 / 朕未有艾
장차 나를 나아가게 하나 / 將予就之
이음이 오히려 나누어지고 흩어지도다 / 繼維判渙
나 소자가 / 維予小子
집에 다난함을 견디지 못하나니 / 未堪家多難
뜰에 오르내리며 / 紹庭上下
집에 오르내림을 계승하여 / 陟降厥家
아름다운 황고로써 / 休矣皇考
그 몸을 보호하며 드러낼지어다 / 以保明其身
하였습니다.
성왕이 무왕(武王)을 사모하여 계술하기를 도모한 것으로 이 두 편의 시는 그 뜻을 간절하게 반복하여 깊은 뜻이 무궁합니다. 공경하며 아침저녁으로 선왕을 계술하기를 잊어버리지 못한다는 구절을 깊이 생각해 보면, 성왕이 공경함을 한 시각이라도 게을리하지 않았으므로 능히 무왕의 영구한 효도를 계승하여 선왕을 섬길 때에는 이 공경하는 마음이 선왕의 오르내리시는 때에 나타나고, 하늘을 섬길 때에는 그 공경이 서로 대한 곳에 있었고, 〈경지(敬之)〉 한 편에서는 또한 여러 신하들의 경계하는 뜻을 서술하여 깊이 그 뜻을 발명하여 안으로는 스스로 학문에 힘쓰고 밖으로는 신하들에게 도움을 구함으로써 그 공경을 극진하게 한 것입니다.
생각건대, 그가 상례를 끝마치고도 공경함이 이와 같으니 상을 당해서의 정성과 효도의 극진함이란 반드시 지극하였을 것입니다. 성인이 이르기를, “상을 당해서는 공경이 제일이요, 슬픈 것이 다음이요, 몸의 수척함이 최하가 된다.” 하였는데, 더구나 제왕의 효도는 서민과 달라서 나물밥과 물 마시며 애곡하는 등등의 자잘한 예절은 논할 바가 아니고,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을 미루어서 사람을 사랑하여 미워하는 바가 없으며, 부모에게 공경하는 마음을 미루어서 사람을 공경하여 거만하거나 가소롭게 여기는 일이 없게 하여서 사랑과 공경이 부모 섬기는 데에 극진하고 덕의 가르침이 백성에게 펴지게 하는 것이 임금의 효도요, 부모 섬기기를 하늘 섬기듯 하고 하늘 섬기기를 부모 섬기듯 하여 훈훈하기가 봄 기운같아서 여러 생물들을 길러주며 이것은 임금의 효도다 한 개의 나무를 찍어도 시기를 맞추어 하며 한 마리 짐승을 죽여도 시기를 따라서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미루어서 친족을 친애하여 백성을 인애롭게 하고 물건을 사랑하는 데에 베푸는 것 이것이 임금의 효도인 것입니다. 공경하게 되면 반드시 효도하게 되고 효도하면 반드시 인애롭게 되나니, 한 개의 집안이 인(仁)을 일으키게 되면 한 개의 나라가 인에 흥동되는 데 이르는 것이 모두 효도의 효과입니다. 대상(大喪)이 아직 졸곡(卒哭)을 지나기 전에는 여러 신하들로서 마땅히 의논할 것은 오직 상례일 뿐이며 산릉(山陵)일 뿐이며 성궁(聖躬)을 보호하는 것뿐인데 하물며 27일 이전에 있어서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비전은 냉기도 가시지 못하고 애구(哀疚)는 바야흐로 심한 때이어늘 정사에 대한 말만 다 털어서 의논하여 날마다 서성대는 것은 신으로서는 마음 아프게 여기는 바입니다. 더구나 임금께서 일년내내 선상에게 올린 약을 맛보았고 그 뒤 애통으로 몸의 훼손됨이 너무나 지나침이 있고 옥체(玉體)가 파리해지시므로 조섭하는 일이 바야흐로 급함에 있어서이겠습니까. 가령 죄가 국가에 관계된 것이라도 공의를 참작하여 한꺼번에 논하여 아뢰는 것이 가할 것인데, 오늘에 한 사람을 논하고 내일에 또 한 사람을 의논하여 계장(啓章)이나 상소(上疏)가 정원에 분잡하게 들어와서, 임금의 보시는 데 괴롭게 하여 심려로 인하여 편치 못하심이 있을까 염려되니, 신은 이 일에 대하여 민망스럽게 여기는 바입니다. 진언하는 것도 또한 마땅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선조(先朝) 때에 실수된 정사를 모두 대행대왕(大行大王) 계실 때에 간한다면 가하지마는 지금에 이르러 말하는 것은 바로 충성스럽지 못한 일입니다. 위태로운 일을 도모하고 봉하여 주기를 청하는 것은 정인홍(鄭仁弘)의 멀리 귀양가는 날에 말을 하였다면 가하거니와 지금에 이르러 말하는 것은 기회를 노린 것이라 하겠습니다. 은밀하게 일을 처리하고 자신이 충성한다 하는 것은 자신을 이롭게 하고 임금에게는 해를 끼치는 것이요, 권신(權臣)을 죄주자고 청하는 일이 서로 아는 사이에서 나왔으니 이것은 그전에 아부했다가 나중에는 등져버린 것입니다. 대개 선비가 벼슬 구하려고 걱정하고 벼슬 잃어버릴까 염려하는 자는 오직 좋은 벼슬만을 생각하고, 무식한 무리들은 오직 그 당시에 유리한 의논만 따르는 것을 옳다 하여 일의 체통도 돌보지 아니하고 염치도 돌보지 아니하며 시비도 가리지 아니하여, 권세 있는 데에는 옷자락을 걷고 다투어 따라가고 싸움판이 일어나게 되면 팔을 걷는 것으로 공을 삼으니, 조정의 추잡함이 이러한 것들로 인하여 많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뒤로 또 살육을 가지고 전하를 인도할 사람이 있을까 두려우니 전하께서는 깊이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상례에 삼가고 요사한 말을 살피라는 것.
정치를 하는 기구는 사람을 들어 쓰는 것이 제일이어서 새로운 정치와 교화를 눈을 씻고 바라는 이때 이에 관계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됩니다. 지난번에 전조에 하교하시기를, “이것저것 논할 것 없고 오직 어진 재주만 들어 쓰라.” 하시어 선비들이 모두 흥동되어서 조정에 나오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생각건대, 수년 이래로 시국이 날로 그르게 되어 아부하고 타산적인 버릇과 찾아다니며 세력에만 의탁하는 태도가 고질병 모양으로 오래 되어서 치료하기가 어렵게 되었으니, 하늘 같은 강력한 결단으로 지난날의 폐단을 쓸어 없애지 않는다면 실정과 거짓에 현혹되기 쉽고 편당도 버리기가 어려울 것이니, 정도에 따라 미루어나가는 혈구(絜矩)의 도를 얻기가 어찌 어렵지 않겠습니까? 또한 소박하고 진실한 사람이 마음껏 말하는 것은 염증나기가 쉽고 영리하고 재주 많은 사람의 말은 뜻에 맞기 쉬운 일이어서, 사람을 들어 쓰고 버려두는 것을 거꾸로 하는 예가 예전부터 여기에서 나오게 된 것입니다.
반드시 세상을 조심하는 임금만이 밝게 보고 공정하게 들어서 여론으로 하여금 막힘이 없도록 하고, 근본 자리를 단정하게 하며 근원부터 맑게 하여 사특한 길은 열리지 못하게 하고, 마음이 안정되어 밝은 거울과 가라앉은 물과 같이 되어 백성을 대하는 것이나 사물을 판단하는 것이 털끝만큼도 틀림이 없게 된 뒤에 말이 마음에 거슬리는 것과 공손하게 나온 것을 분간하되, 도(道)로써 거스르는 자는 충성스러운 자이니 나오게 하고 친하게 하며, 도 아닌 것으로 공손한 자는 아첨하는 자이니 배척하고 멀리해야 됩니다. 정대광명한 사람은 군자니 들어 쓰고 사특하고 음흉한 사람은 소인이니 살펴 물리쳐야 합니다.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을 위에서 바르게 하면 따라오고 향하는 경향이 하부에서도 바르게 변화되는 것이니, 정직한 사람은 들어 쓰게 되고 아첨하는 사람은 물러나게 되어 조정이 자연 맑게 되고 착한 말이 숨겨지지 않을 것입니다. 요순(堯舜)의 이목이 총명하여 구관(九官)들이 서로 사양하던 것과 주 문왕의 알고 보는 것이 명백하여 모두 떳떳한 길한 선비라는 것을 전하께서 깊이 살피심을 삼가 바랍니다. 어진이는 친하고 간사한 자는 멀리 한다는 것.
옛날 제왕이 세자를 교양할 때에 부(傅)는 덕의(德義)로 돕고 사(師)는 도훈(道訓)으로 가르쳐서 그의 몸도 안보하려니와 그에게 덕으로 일깨워서 인효예의(仁孝禮義)의 도를 얻게 되고, 그의 몸을 편안하게 호위하여 용모와 말씨가 바르게 길러졌습니다. 다음에는 단정한 선비와 바른 사람을 뽑고 겸하여 도술(道術)이 있는 사람을 뽑아서 세자와 함께 거처와 출입을 하게 하면, 날마다 바른 일만 보게 되고, 바른 말만 듣게 되며 바른 도리만 행하게 되고, 그렇게 조용하게 인도해 나가면 점점 덕화의 분위기 속에서 기질을 변화시켜서 덕의 성품으로 육성하는 것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육으로 좌우에 가깝게 있는 사람이 바르게 되면 나라의 근본인 세자도 바르게 되는 것이고, 나라의 근본이 바르면 치국평천하하는 기초 사업이 두드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삼대(三代) 때에 가르치고 기르는 방법은 탁월해서 더할 말이 없거니와,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인묘(仁廟)가 동궁에 계실 때에 중묘(中廟)께서 특별히 이언적(李彦廸) 등을 뽑아 보도(輔導)하는 책임을 맡기어 강론해서 열어주고 받아들이게 한 것은 지금까지도 미담으로 전해집니다. 이것이 전하의 집안 법이니 만큼 당연히 거울삼아야 할 것입니다.
지난번 성교(聖敎)로써 먼저 초야에 있는 선비를 뽑았고 이어서 이기설(李基卨)을 뽑아서 파격적으로 대관을 제수하였으니, 전하의 이러한 마음가짐은 넉넉히 삼대의 다스림을 하겠습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미루어 사람을 얻어 쓰게 되면 무슨 일을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하늘이 우리나라의 억만 년 큰 왕업을 사랑하여 동궁께서 나면서부터 비상한 자질이 있어서 임금의 체도(體度)와 주옥같은 바탕이 존엄하게도 숙성하시어 책봉받고 난 뒤부터 중외가 목을 빼어서 촉망하며, 먼 데나 가까운 데나 다같이 부응하고 심복하여서 태평성대의 상서로움이 이미 여기에서 나오게 되었으니 이는 실로 종묘사직의 끝없는 복이며 이는 실로 신민들로서 만나기 어려운 경사라 하겠습니다. 전하께서 이와 같이 맡겨 부탁할 바가 있으니, 돌아보건대,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세자의 춘추가 아직 어리신 터이라 보호하고 인도하는 것이 시급한 일입니다. 습관이 조금만 익숙해지게 되면 마땅히 함께 있을 사람을 골라야 할 것이니, 태공망(太公望)이 자반을 주지 않을 것은 예가 아닌 것을 염려한 것이고, 소광(疏廣)이 외가를 물리쳐서 감독하여 보호케 함으로써 사사로운 정으로 하지 않음을 천하에 보여준 사실은 다 취하여 법으로 삼을 만한 것들입니다. 신은 생각건대, 전하께서 동궁에 계실 때에는 춘방(春坊)의 관속을 전조에서 전연 조심성있게 선택하지를 않았고, 경박하고 구차하며 속스럽고 부잡한 사람들을 삼사에 등용시키고자 한 것은 먼저 여기에서 시험하여 화려한 벼슬에 나가는 경로를 하였고, 익위(翊衛)하는 관원도 역시 인물에 대해서는 묻지 아니하고 다만 사적인 부탁만을 보게 되어서 재상가 자제들의 벼슬길에 나가는 출발점이 되었으니 신은 마음 아프게 생각했습니다. 이제 세자가 다시 동궁에 계셔서 중외가 촉망하고 있는 중인데, 오직 염려되는 것은 보필하고 인도하는 관원이 그의 직분을 극진하게 하지 못할까 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동궁 관원을 뽑을 때에는 마땅히 내려오던 종래의 예를 따르지 말고, 당대의 학식과 행실이 있는 사람을 가려서 오랫동안 돕고 인도하는 책임을 지게 하여 조종조(祖宗朝)의 옛날 일과 같게 하고, 익위하는 관원도 조심할 줄 아는 저명한 사람을 뽑아서 그로 하여금 좌우에서 받들어 인도하도록 하여 날로 친근하게 되면 도움되고 유익함이 많을 것입니다. 오늘날 국사로써 이보다 더 큰일이 없으니 전하께서는 깊이 생각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세자를 교양하는 것.
임금의 한 몸은 국가의 근본이며 왕위에 올라 정치에 임하는 것은 또한 임금의 시초이니, 그 시작을 바르게 하기 위하여 삼감을 다해야 할 것이니, 어찌 경솔하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동중서(董仲舒)가 말하기를, “임금된 사람은 마음을 바르게 하여 조정을 바르게 하고, 조정을 바르게 함으로써 백관을 바르게 하고, 백관을 바르게 하여 사방을 바르게 한다.” 하였습니다. 임금은 조정의 표준이며 마음은 만사를 수작(酬酢)하는 중추이니, 마음이 제대로 수양이 되면, 정성은 남고 망령된 일은 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제자리에 안정되어 일정한 곳에 평정(平靜)을 얻으면 동하는 것이 능히 순응하게 되는 것이니, 한 개의 생각에서 선악의 기미를 살피고 한 가지 일에서 희로(喜怒)의 절도를 경계하여, 맑고 밝은 기운이 몸에 있고 법도가 이치에 합하게 함으로써 중(中)을 세우고 극(極)을 세우는데 근본으로 삼는 것이 전하께서 시초부터 바르게 해야 하는 급선무가 아니겠습니까?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함.
《역경》 가인괘(家人卦)의 첫 효사에 이르기를, “집안 다스리는 일의 법이 당초부터 잘되어야 후회가 없으리라.” 하였고, 상효(象爻)의 말에는, “가정에 법되게 하여 믿음이 있게 되면 위신이 서게 되어서 끝내 길하다.” 하였습니다. 첫 효는 치가(治家)하는 처음에 법도만으로 방지하면 그것으로 인해서 후회가 없어지는 것이요, 상효는 지극히 존엄한 자리에 있어서 안으로 지극한 정성을 극진하게 하여 자숙하기를 엄하게 함으로 해서 끝내 길함을 얻게 된다 하였으니, 나라 다스리는 것은 집안을 바르게 하는 데 있고, 집안을 바르게 하는 것은 자신을 반성하여 집안에 모범이 되어 다스리는 교화의 기본이 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안에서 하는 말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고, 밖에서 하는 말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여 안과 밖이 엄숙하게 되고, 부탁하려고 찾아다니는 일이 없어지게 되어서 이것으로 집안에 법되게 하는 것과 국가를 다스리는 근본을 삼는 것이 전하께서 시초부터 바르게 해야 하는 급선무가 아니겠습니까? 궁중을 엄숙하게 하라는 것.
《역경》에 이르기를, “어머님의 하는 일을 정(貞)으로만 할 수 없다.” 하였는데, 《정전(程傳)》에 이르기를, “자식이 어미에게 마땅히 부드럽고 공손한 것으로 돕고 인도하여 어머님으로 하여금 옳은 데에 이르게 할 것이요, 만일 자신의 억센 도리로만 양보없이 고집하여 대번에 바로잡고자 한다면 손실된 것이 크다.” 하였고, 서산(西山) 진덕수(眞德秀)는 말하기를, “임금으로 어머니 섬김에는 더욱 이러한 도리를 알아야 된다.” 하였으니, 생각건대, 전하께서는 바야흐로 지극한 서러움을 당하시어 불안하기 이를 데가 없으시고 효도로써 자식의 도리를 극진하게 할 때는 오직 자전(慈殿)뿐이시니 지성으로 받들어서 뜻을 앞서 얼굴을 살피시어 화기애애한 속에서 시종일관하게 하시고, 그것으로 백성을 가르쳐 효도를 일으키게 하는 근본이 되게 하는 것이 전하께서 시초부터 바르게 해야 하는 급선무가 아니겠습니까? 대비를 존엄하게 받든다는 것.
관숙(管叔)ㆍ채숙(蔡叔)이 은(殷)에서 반기를 들게 되어 주공(周公)이 천자의 명을 받들어 토벌하게 되었는데, 그들이 도리를 잃어버린 것을 불쌍히 여겨 〈상체(常棣)〉의 시를 지었는데, 슬프고 민망하며 측은한 인정이 따뜻하고 도탑게 서술하는 뜻이 말 밖에 넘쳤습니다. 전하께서 변을 치르면서 천륜에 극진하시어, 여러 왕자에게 우애만을 펴나가시며 여러 번 교서로 일깨워서 옳지 않은 데에 미혹되지 않게 하여 은총과 사랑이 더욱 돈독하며, 친족된 정리에 엇갈림이 없게 하시고 궁중과 액정(掖庭)의 사이에 화기가 아름답고 흡족하여, 상서와 복록이 내릴 장본이 되게 하는 것이 전하께서 시초부터 바르게 해야 하는 급선무가 아니겠습니까? 동기들을 사랑하고 구원해 준다는 것.
소공(召公)이 성왕(成王)에게 고하면서 백성들을 화평하게 하는 것이 하늘에 운수를 비는 근본이요, 빨리 덕을 공경하는 것이 백성을 화평하게 하는 근본이라 하였습니다. 천명(天命)이란 지극히 엄정한 것이나 떳떳하게 나타나는 것이고, 백성의 마음이란 지극히 미세한 것이나 두려워할 만한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일이 다 되었다가도 한 가지 조처의 실수로 재앙을 부르는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이 다 즐거워하는 데 한 사람의 원망으로 난리가 일어나게 되니, 능히 백성만 안보하면 능히 하늘의 운수도 안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백성들이 흩어진 지 이미 오래 되었고 백성의 원망도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남방의 왜놈은 처치하기 어려운 형편에 놓였고, 북쪽 변방은 저절로 망하게 된 형편이어서 걱정거리의 조짐이 이미 아침 저녁으로 임박하였습니다. 이러한 때에는 인심을 수습하는 것이 가장 급한 일입니다. 음양의 기후만 고르지 못하여도 항상 백성에 대한 일이 실수되었나 생각하고, 명령을 한번 내린 때면 오직 실제로 혜택을 받지 못했나 염려하여 공경하고 두려워함이 끊임이 없고, 좋아하고 미워함을 백성과 똑같이 하여 백성을 안보하는 것으로 운명을 비는 근본을 삼는 것이 전하께서 시초부터 바르게 해야 하는 급선무가 아니겠습니까? 백성의 마음을 수습하라는 것.
자유(子游)가 무성(武城)의 읍재가 되었을 때 공무가 아니면 그의 처소에 들르지 않는 점으로 담대멸명(澹臺滅明)을 취하였고, 사마광(司馬光)은 간관이 되었을 때 서간 왕래를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취했다 합니다. 저분들이 일세의 재상으로서 또한 간관으로서 사람 취하는 것이 오히려 이와 같으니 임금으로서는 더욱 이러한 데에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야비하고 아첨하는 사람은 등용하여 쓰지 마시고 아주 법도 있는 정직한 사람만 취하여서, 벼슬자리가 점점 중하여지고 조정도 저절로 존엄하게 되어 보고 듣는 것으로 사람을 취하고 버리는 것이 전하께서 시초부터 바르게 해야 하는 급선무가 아니겠습니까? 어진 선비를 골라서 취할 것.
한(漢) 나라 때 두광국(竇廣國)은 강후(絳候)ㆍ관영(灌嬰)이 사부(師傅)를 골라준 힘을 입어 겸손하고 사양할 줄 아는 군자라는 이름까지 듣게 되었고, 번굉(樊宏)과 음흥(陰興)은 모든 영화와 권세가 가득찬 것을 경계삼아 청정하고 검약하였으므로 종족들이 그의 교화에 물들어, 전한ㆍ후한의 세상을 통하여 황후의 귀척들이 재앙으로 패망되었으나, 유독 이 두어 사람만은 충성스럽고 조심한 덕으로 은총과 국록을 온전하게 하여 경사가 자손에게까지 흘러가게 하였고 이름이 역사에 나타나게 되었으니 참으로 뒷세상에 법이 된다 하겠습니다. 위로 한 문제(漢文帝)가 개인에게 사정을 두지 않은 일을 생각하시고 아래로는 곽고(郭刳)의 가만히 사양하는 것을 본따서, 그에 대한 복록을 안보하여 조정을 맑게 하고 덕을 아름답게 하는 근본이 되게 하는 것이 전하께서 시초부터 바르게 해야 하는 급선무가 아니겠습니까? 외척에 사정 두지 말 것.
상(商) 나라 고종(高宗)이 가르침을 주고 덕을 도와달라고 부열(傅說)한테 명하였는데 부열은 간언하는 것을 따르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임금께 답하였습니다. 임금이 간언한 것을 따르는 실제의 덕이 있으면 아랫사람은 명령하지 않아도 또한 간언하게 되어서, 비유하자면 강물과 바다가 모든 것을 용납함과 같으니 여러 개울물이 들어와 모이지 아니할까를 어찌 염려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군자는 산택(山澤)의 기운이 서로 통하는 기상을 보고 겸허하게 사람을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겸허는 사사로운 마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합당한 것만 골라서 받는 것은 겸허가 아니며 용량(容量)에 따라서 등용하는 것도 겸허가 아닙니다. 법에 맞는 말이거든 따라서 고치고, 겸손하면서 인정하는 말에는 즐거워하면서도 사색해 보아서 자기 마음은 버리고 남의 것을 따르며, 마음을 공허하게 하고 묻기를 좋아하여 그것으로 몸을 검찰하고 일 마련하는 근본을 삼는 것이 전하께서 시초부터 바르게 해야 하는 급선무가 아니겠습니까? 곧은 말로 간언한 것을 받아들이라는 것.
〈태갑(太甲)〉에 이르기를, “이제 왕께서 내려주신 덕을 이어받으셨으니 그 시초에 있는 것이 아니냐.” 하였고, 또 이르기를, “종(終)을 삼가는 것은 시(始)에서 비롯한다.” 하였습니다. 새로 큰 명을 받으셨으니 한량없이 아름다우며 또한 한량없이 근심하여야 할 일은 시작부터 조심하는 데 있으니 어찌 힘쓰지 않겠습니까? 지난달 전하의 교서를 삼가 보니, 깊이 스스로 겸손하시어 은연한 가운데에 도움을 구하는 지극한 뜻이 있어 봉독한 뒤로부터 충심으로 새겨 흠복되어서 조그마한 정성이나마 진작 원하던 것을 아뢰려 하였으나, 병이 틈을 타고 일어나 정신이 캄캄하여 오직 우리 임금이 요(堯)와 순(舜)같은 임금이 되기만 기다리고, 말은 마음에 있는 것을 다하지 못하니 오직 부디 전하께서 재량하시어 골라 쓰기만 바랍니다.
답하기를, “하늘의 변괴는 실로 박덕한 나에게 기인된 것이니 조심하고 두려워 어찌할 줄 모르겠고, 옥사에 있어서는 나도 또한 할 바를 알지 못하겠으니, 경은 속히 벼슬에 나와 조사하는 자리에 참석하여 잘 처리하도록 하라.” 하였다. 29일에 계(啓)가 내리다. [한국고전종합D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