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정치, 경제, 교육 등 각 분야에서 발군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리더를 키워낸 아버지’들의 아주 특별한 교육법을 소개한다.
부녀의 밤샘 토론이 여성 정치 리더를 만들다
힐러리 클린턴의 아버지, 휴 로댐
그는 딸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하나로 자식이 능력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낸 아버지다. 이들 부녀는 정치적으로 정반대의 성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베트남 전쟁, 닉슨과 워터게이트 사건 등에 대해 매일 밤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 어떤 격한 표현도 다 받아주고 좋은 논쟁 상대가 되어 주었던 아버지. 그래서 힐러리는 당시 또래 여자 아이들과는 달리 자신의 정치적인 의견을 표출하는 데 자연스러웠다. 힐러리는 “아버지가 나와의 ‘싸움’을 즐기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논쟁거리가 생기면 난 즐겁게, 기꺼이 먼저 싸움을 걸었다.
아버지가 나한테 화를 낼 때도 속으로는 내 자립심과 성취욕에 탄복하고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항상 느낄 수 있었다”고 그때를 회상한다. 딸에게 어떤 의견이든 자유롭게 말하게 한 아버지는 훗날 딸을 미국 최고의 여성 리더로 만들었다.
리더가 되려면 먼저 인맥을 쌓아라
대통령 존 F. 케네디家
‘큰사람이 되려면 큰물에서 놀라’고 했다. 영국인들에게 멸시를 받던 아일랜드인, 그것도 시골 농부 출신인 케네디 가문은 이 명제가 참임을 증명한 산증인이다. 아일랜드계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한 존 F. 케네디의 할아버지는 자신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지만, 아들 조지프 케네디를 아일랜드인 최초로 하버드에 입학시켰다. 그가 하버드를 고집한 이유는 하버드가 인맥의 산실이라는 점 때문. 리더가 되기 위해 인맥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알았던 것이다. 아버지의 계획대로 기숙사 생활을 하며 보스턴 명문가 자제들과 사귄 조지프 케네디는 이때 맺은 인맥 네트워크 덕분에 아일랜드계 최초로 은행장이 되었다. 조지프 케네디 역시 자신의 네 아들을 모두 하버드에 입학시켜 다양한 인맥을 쌓게 했으며, 후에 존 F. 케네디가 정치가가 되었을 때 이런 인맥이 큰 힘이 되어 주었다.
헝그리 정신이 자수성가형 리더를 만든다
빌 게이츠의 아버지
게이츠가는 시애틀의 이름난 은행가와 변호사 집안이지만 빌 게이츠는 아버지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혼자만의 힘으로 세계 컴퓨터 산업을 주도하는 업계의 황제가 되었다. 게이츠의 아버지는 매년 사회에 엄청난 돈을 기부하며 상속세 폐지 반대 운동을 주창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는 아들에게 항상 “내 돈은 사회에 환원할 것이지, 너에게 물려줄 것이 아니다”라고 주입시켰는데 그 이유는 아이가 너무 부족한 것 없이 자라면 부모에게 의지해 스스로 발전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 이처럼 부모한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는 헝그리 정신이 오늘날 IT 업계의 세계적 리더 빌 게이츠를 만들었다.
아버지의 살아 있는 교육이 최고의 교육 리더를 만들다
라빈드라나드 타고르의 아버지
동양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타고르의 유년기는 순탄치 않았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열네 살에 자퇴한 그는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지만 거기서도 적응에 실패했다. 타고르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그의 아버지. 당시 캘커타의 문화예술인들을 거의 매일 집으로 초대해 산스크리트어 경전과 철학, 과학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으며 응접실 한쪽에서는 인도의 전통 음악이 연주되도록 했다. 또한 타고르는 아버지와 함께 한 4개월간의 히말라야 여행을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사건이라고 회상한다. 자식에게 나침반 역할을 해주었던 아버지는 아들을 인도 최고의 교육 리더로 만들었다.
한번 사귄 사람과 헤어지지 말고, 헤어진다면 적이 되지 말아라
LG 구인회 회장
LG가 사람들은 한번 인연 맺은 사람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시한다. 이런 가르침은 70년 이상 지속되었던 구씨와 허씨 가문의 동업 관계에서 빛을 발했다. 양가는 자손이 많으면서도 큰 불협화음 없이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고, LG에서 GS로 분사 역시 순조롭게 진행돼 ‘아름다운 이별’로 회자되고 있다. 이들이 동업 관계를 훌륭하게 유지해 온 것은 어정쩡한 가족주의나 온정주의가 아니라 상호 합의한 원칙을 존중하고 지키는 책임의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때문이었다. 대인 관계에서 신의를 지키는 철저한 책임의식은 LG家 리더 교육의 핵심 요소였다.
말 잘하는 사람보다는 잘 듣는 사람이 되어라
삼성 이병철 회장
이건희 회장은 부회장이 되었을 때 아버지인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경청(傾聽)’이라는 글귀를 받았다. 이병철 회장은 늘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해 어떤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전문가들을 초빙해 그들의 견해를 듣고 해결 방법을 모색했다. 이병철 회장의 경청에 대한 강조는 아들 이건희 회장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삼성 신경영의 단초가 되었던 ‘후쿠다보고서’. 이는 이건희 회장이 일본인 후쿠다 시게오 삼성전자 정보통신 부문 디자인 고문을 포함한 전문가들과 새벽 5시까지 이어진 마라톤 면담을 통해 나온 결과물이었다. 여러 사람을 이끄는 리더로서 올바른 결론에 도출하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고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 경청은 삼성가의 가장 중요한 교육 지침 중 하나다.
큰 뜻을 품고 세상으로 나아가라
헤럴드 미디어 CEO 홍정욱의 아버지 남궁원
보통의 부모라면 자녀를 키우면서 ‘공부 열심히 해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겠지만, 홍정욱은 코흘리개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남자는 역사에 큰 획을 긋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고 자랐다. 홍정욱은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리더는 케네디라고 생각했고 그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중학교 3학년, 아직 어린 나이에 유학을 결심했다. 유학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아버지로서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늘 아들에게 이야기했던 ‘역사에 큰 획을 긋기 위한 큰 뜻’을 품은 것이라 생각해 말리지 않았다. 그는 매달 아들에게 한국에서 이슈가 되는 신문과 책, 잡지를 한 박스씩 보내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현재 『헤럴드 미디어』의 CEO로, 언론계의 리더로서 활동하고 있는 홍정욱이 있기까지, 그 뒤에는 큰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아버지 남궁원이 있었다.
리더는 토론을 즐겨야 한다
SK 최송현 회장
최종현 회장은 다양한 분야에 관해 자녀들과 토론하기를 즐겼다. 아들 최태현 회장에게 결재하고 결정하는 방법보다는 늘 ‘기업과 그룹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토론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최종적인 합의를 도출해 나가는 과정을 거쳐야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친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최태원 회장은 최근 ‘이사회 중심 경영’을 내세우며 기존 ‘오너 중심 체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다. 경영자 한 사람이 기업의 모든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이는 최태원 회장이 기업을 어떻게 키워 나갈 것인가를 두고 선친과 끊임없이 토론한 뒤 나온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