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어(아이러니, irony) :
직선적인 표현만으로는 현실을 도저히 드러낼 수 없을 때 비틀린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더욱 큰 전달 효과를 노린 표현기법이다.
(반어란 겉으로 나타난 말과 감춰진 말 사이에 커다란 틈이 생긴 상태를 말하는데, 원래의 뜻과 반대되는 말을 하여 그 의미를 강렬하게 전달하기 위한 수사적인 표현이다.)
1) 언어적 반어 (verbal irony)
겉으로 드러난 말과 실질적 의미 사이에 상반된 관계가 있는 말.
잘~했다~~(속뜻 잘못했다). 똑똑해라(어리석다) 식의 표현은 상대방에게 우회적 기능에 의존하여 진술하는 언어적 반어로 빈정거림, 욕설, 비난 등의 경우에 쓰인다.
2) 상황적 반어 (situational irony) = 구조적 반어
현재 진행 중인 상황과 전혀 반대되는 결말이 드러나도록 장치된 사건이나 삶의 과정.
즉 미리 예상했던 상황과는 정반대의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경우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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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로 논문을 쓴 미진선배님이 자세히 알고 있지 않을까 싶지만.. 일단..)
이 시는 1942년에 지어진 윤동주의 마지막 작품으로, 국외로는 태평양 전쟁 발발로 전시동원체제가 구축되고 국내로는 일제의 수탈과 만행이 정점에 달하던 때였습니다. 한국인들은 모두 긴 식민지 생활로 고통받고 있었고, 윤동주 또래의 한국의 청년들은 일본군으로 강제징용되어 전쟁터로 끌려갔으며, 노동이 가능한 여성들은 정신대와 일본군의 성노예로 착취당하고 있었던 때죠.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윤동주는 일본에서 학비를 조달받으면서 대학을 다니며 공부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가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나머지 시를 쓰는 것조차 부끄럽게 여긴 것이 아닐까요? 물론 윤동주의 시창작은 작가로서 쉽지 않았던 과정이겠지만 그런 시창작이 상대적으로 쉽게 느껴져서 오히려 부끄러운 정도로, 조국의 현실은 극심하고 혹독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 뜻이 되는 거지요. 지금은 민족시인이라고 누구나 이야기하지만 그 상황에서는 윤동주의 이 시조차 큰 힘이 되기는 커녕 알려지지도 않았을 터, 애국심을 지닌 양식있는 지식인이라면 스스로의 저작활동이 초라하고 무력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겠지요.
그를 표현한 부분인 '시가 쉽게 씌어진다'는 '시=쉽게 씌어진다'는 이야기가 아니며, 반어적인 표현이라는 겁니다
첫댓글 저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슬픈 천명'의 시인으로서 글 이외의 방법으로는, 암울한 현실에 직접 나서 싸울 수 없는 무력감이나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큰 어려움 없이 유학까지 했지만 외면할 수 없는 조국의 처지에 대한 지식인으로서의 자괴감 등으로 나타난 '부끄러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불행한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 해서 그의 인생이 진정한 행복이 아니었음은 그의 작품에서 '부끄러움'으로 나타나는 것이겠지요.
오~ 기다렸다는 듯 강한 어조의 글쓰기.ㅎㅎ 지연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일제의 --- 시대적 상황에서 시인에게 '시 쓰는 일'이 쉬웠을 리 없습니다. 그렇지만 시 쓰는 일밖에 할 수 없는 자신에게 시가 '쉽게' 써진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두 반어 중 어느 쪽일까요? 다른 해석은 없나요? 역설이나 다른 해석을 하고 싶으신 분~//채원 님도 부끄러움의 미학에 대해 일반적인 내용 잘 정리해 주셨습니다.
아.. 하나, 국어학 문제들도 그렇듯이 여기서도 인용한 출처는 정확히 밝혀주시고 되도록 교과서에서 인용하는 게 좋겠지요?
3-2학기 현대시론을 봤어요. 여기서는 구조적 아이러니와 상황적 아이러니를 별개로 놓고 설명을 하네요. 긴 내용이라 굳이 옮기진 않겠습니다. 지금 일반적인 정리 수준에서 너무 무난하게 마무리가 되는 것 같은데 다르게 접근해 보실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