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달리기꾼
나는 중풍질에서 벗어나려고 삼십육계 줄행랑치다가 마라톤 세상까지 달려갔다. 어떤 이는 줄행랑친 나를 보고 ‘지독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새벽마다 10년이 넘도록 도망쳤으니 지독하다는 말을 들을 만도 하다. 그러나 머릿속에 그려 보라, 몸에 쌓인 굳기름은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성인병 늪으로 내 몸을 밀어붙이고, 거기에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그런 데도 대책 없이 그냥 있다면 얼간이요, 그런 와중에서 칼로리 높은 음식을 즐겨먹어 굳기름을 자꾸 보태준다면 ‘미련한 송아지 백정 모르는 격’이 되는 것 아닌가?
사실상, 몸이 점점 무너지는 데도 술*담배를 즐기고 칼로리 높은 음식을 배불리 먹으면서 운동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강심장이요, 지독한 사람이며, 미련한 사람이다. 나는 지독하다기보다 질병에 덜미라도 잡힐까 지레 겁먹고, ‘오금아, 나 살려라.’하고 멀리 도망간 ‘겁쟁이’이에 지나지 않는다. 굳기름을 많이 태워 없앤 뒤에는 젊음도 지키고, 호연지기(浩然之氣) 기르는 재미도 쏠쏠하고, 달리면 느껴지는 황홀감이 좋아서 마냥 달린 ‘꾼’에 지나지 않는다.
무슨 일이든 처음부터 꾼으로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나도 처음에는 약한 몸을 튼튼하게 바꾸는 수단 중에 하나로 뛰다가 그 속에 ‘건강*젊음*즐거움*황홀감’이라는 ‘보물’이 들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뒤, 보물을 몸에 넣고 동련기락(動練氣樂)1)하며 계속 달린 것이 시나브로 달리기꾼이 되었다.
나는 가까운 사람에게 달리면서 겪어본 ‘신나는 세상’을 기껍게 이야기한다. 남에게 주지도 못하고 받을 수도 없으며 사고 팔지도 못하는 튼튼한 몸과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삶의 수단에서 ‘최고 부자’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하루 세끼 밥먹듯 규칙적으로, 무리 없이 달리는 생활습관만이 그 보물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길임도 알려준다. 은혜 입은 기독교 신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따르고 은혜를 입어라.”고 전도한다. 나는 뚱뚱해서 약해진 몸을 달리기를 통해 튼튼하게 바꿔서 생기 넘치게 살아가므로, 지방이 많이 쌓인 주변 사람이나 제자들에게 깊은 애정으로 부드럽게 규칙적으로 걷거나 달릴 것을 정성껏 당부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걷기와 달리기의 권유자가 된다.
없는 살림에 4륜 자동차를 굴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퇴근길 고생이 많은 아내를 그대로 둘 수도 없어서 퇴근용으로 부랴사랴 타게 된 것이 모터사이클이다. 날마다 뛰므로 나이를 먹더라도 운동신경이 별로 무뎌지지 않아서, 퇴근용으로 필요가 없게 된 뒤에도 스릴을 맛보려고 타곤 한다. ‘길들면 정든다.’고 라이딩에도 속절없이 매니어가 된다. 마라톤에서도, 모터사이클에서도 꾼이 되어 달린다. 다같이 꾼이 되어 달리되 두 발은 거의 매일 달리고, 모터사이클은 가끔 달리는 것이 다르다.
온갖 헤살에서 벗어날 수 있으므로, 나는 주로 꼭두새벽에 달린다. 물론, 마음은 나가고자 하더라도 몸이 따라주지 않거나 날씨가 궂을 때는 일어나는 것이 싫을 때도 많다. 그 때마다 ‘벌써 무덤이 가까운가? 아니야, 아직 멀었네. 눈비가 내릴 땐 밥도 안 먹고 숨도 안 쉬고 사는가? 그렇게 게을리 살려고 하지 마시게.’하면서 마음을 도사려2) 먹고 즉각 일어난다. 일요일의 새벽은 대체로 모터사이클로 달리고, 오후에는 호숫가 또는 산길에서 두 발로 뛴다.
어떤 사람은 “힘들지도 않나? 무슨 재미로 날마다 그렇게 달려.”라고 말한다. 그건 꾼의 세계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달리기와 라이딩에는 꾼만이 맛보는 쾌감이 있다. 이 맛에 홀려서 달린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멀쩡한 사람이 계속 누워서 잠만 자는 것도 매우 힘든 노릇이니,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 우리에게 힘들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꾼이 되어 달리면서 달리는 세상에 펼쳐지는 쾌감을 맛보며 튼튼하게 살아가니 마음이 넉넉해져서 신바람이 절로 난다.
1)동련기락(動練氣樂) :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몸과 마음을 잘 닦고, 음식을 고루 먹어 기를 돋우며, 가난한 마음으로 즐긴다. 2) 도사리다 :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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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모터싸이클은 기름으로 달리지만, 인다 선생님은 정신으로 달리는 무공해 탱크 이지요..
건강하셔서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