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수의 원샷원킬] 건국절 논란,
이승만과 제헌국회가 정한 ‘그날’이 맞다
안녕하세요.
일요서울신문사 입니다 :)
최근 건국절을 놓고 벌이는
보수 우파 진영의 행태를 보면서
떠오른 단어가 '웃픈'.
예를 들어 지금 우리 사회의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이 벌이는 건국절 논쟁 같은 일들인데요.
조선 시대 웃픈 사건 중 최고는 현종,
숙종 시대 서인과 남인간의 예송논쟁.
또 정파에 따라 홍동백서(紅東白西)라 하여
대추는 동쪽, 밤을 서쪽으로 갈라놓거나
‘조율이시’라 하여 대추와 밤을 붙여 놓았다는
전설도 조선시대 웃픈 사건 중의 하나
참으로 쓸데없는 논쟁이고 허무한 일인데요.
죽은 귀신을 볼모삼아 벌이는 권력투쟁은
예나 지금이나 다른 바 없습니다.
지금 건국절 논쟁도 그렇습니다.
물론 학문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논쟁이고
연구과제일 수 있답니다.
그러나 국민화합과 국가안정,
발전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국민 대다수가 함께 기뻐하고 축하하는,
공감 넘치는 건국절이 중요한 것이지,
지금에 와서 3.1독립선언과
상해 임시정부가 만들어진 1919년이면 어떻고,
1945년 일제로부터 독립한 해방일이면 어떻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이면 어떤가.
해방 이후 아니 1948년 정부수립이후
60여 년 동안 논란이 되지 않던
'건국절'이 왜 문제가 되는가.
개천절은 왜 개천절인가.
개천절은 서기전 2333년(戊辰年)
단군이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건국했음을 기리는 뜻으로
제정된 국경일(한국민족문화대백과)이랍니다.
지금으로부터 4천여 년전
건국절을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개천절을 국경일로 삼아 기념합니다.
임시정부는 1919년 9월 3.1운동(또는 혁명) 이후
중국 등 각지에 흩어져있던
통합해 중국 상하이에서 발족했습니다.
그 후 한반도 전역은 물론
미국 등 전 세계 한민족,
조선 동포들에게 모양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임시정부'는 엄연한 현실적 존재(정부)로
독립의 등불이고 희망이었습니다.
지금 1948년 건국절을 강조하는 세력이
곳곳에 붙이는 플래카드에 영토,
주권, 국민 등 국가의 3대요소가 없기 때문에
임시정부는 '국가'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럼 2차 세계대전 당시 침략국
독일과 싸운 프랑스와 노르웨이,
폴란드 등 각국의 임시 또는 망명정부는 불법단체인가.
더구나 세계 각국의 건국 기념일을 봐도
천부적, 태생적으로 3대 요소를
모두 갖춘 날이 건국절이 되는 것이 아니랍니다.
그때 당시 국민이 정하는 것으로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고 공감하는 날을
기념일로 정하면 된답니다.
일본의 건국절은
초대 천황 진무 천황의 즉위한 날.
우리로 말하면 개천절이 건국절인데요.
미국은 국가의 3대 요건을 갖춘 국가 탄생은
1789년 9월 24일이지만
건국절은 독립선언서를 선포한 7월 4일.
프랑스도 프랑스대혁명의 도화선이 된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7월 14일을
매년 건국절로 정해 기념한답니다.
보수진영에 한 가지
아이러니(irony: 사전에 모순, 반어적 능청)가 있는데요.
보수 세력이 국부로 모시는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
48년 건국절을 관철하기 위해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임시정부 계승'을 부인합니다.
또 좌파세력이 48년 건국절을 폄하하기 위해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한 백범 김구 선생을
대표적 ‘애국 독립투사’로 띄웠다고 주장하는데요.
최근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황당한 주장을 합니다.
'연호(年號)'가 무엇인지 모를 리 없는
이인호 교수는 이승만 대통령이
제헌국회 축사에서 분명하게 밝힌 연호
'대한민국 30년 1948년 5월 31일'을
애써 부인, 외면하는데요.
이승만 대통령이 밝힌 대한민국 30년,
즉 1948년은 대한민국이 개국한
1919년으로부터 30년째 되는 해라는 얘기.
이인호 교수는 또 "좌익이 김구를
이승만 죽이기의 도구로 이용...
암살당한 김구를 성역화해서
대한민국 하면 김구 선생이 떠오르도록 기획한 것"
"김구를 이용해 이승만 죽이기 작업을 하고,
1948년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로 만들려고)"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알다시피 김구 선생을
독립운동 최고의 지도자로 자리매김한 것은
다름 아닌 박정희 전 대통령인데요.
국부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보수진영이 하늘같이 모시는
근대화·경제개발의 시조 박정희 대통령이
지금의 용산 효창공원을 조성하는 등
백범 기념사업에 가장 열성적이었습니다.
실제 이 때문에 보수 진영 내에
박정희 대통령을 좌파의 꼭두각시라고
주장하는 환자(?)들도 있었답니다.
대한민국 건국 원년이 1919년이나
1948년 언제가 됐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국민 모두의 공감대를 모아 정하면 되는데요.
선언하고 선포하면 그 날이 건국일이 되고
국경일이 되는 것. 대한민국 최초의 의회,
제헌국회 의원들만큼 독립과 해방,
정부수립에 대한 국민들의 절절한 마음과
의미를 더 아는 이들이 없을 것.
1948년 5월 31일 오후 2시에 열린
제헌국회 개원식에서 초대 국회의장으로
피선된 이승만 대통령은 선언하고 선포합니다.
"나는 이 대회를 대표하여
오늘의 대한민주국(大韓民主國)이
다시 탄생된 것과...민국(民國)은
기미년 3월 1일에 ...대한독립민주국(大韓獨立民主國)임을
세계에 공포하고 임시정부를 건설하여
민주주의(民主主義)에 기초를 세운 것...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즉, 기미년(己未年)에 서울에서 수립(樹立)된
민국임시정부의 계승이니
이날이 29년만의 민국의 부활일(復活日)임을 공포하며...
민국년호(民國年號)는 기미년(己未年)에서
기산(起算)할 것...이 국회에서 탄생되는
민국정부는 완전한 한국(韓國) 전체를
대표한 중앙(中央)정부임을 공포하는 바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대한민국 연호 대신
단군기원을 사용하려는 국회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상고사(단군)에서 국가의 기년법을
끌어올 필요가 없다’며
1919년을 원년으로 하는
대한민국 연호 사용을 주장, 관철했습니다.
건국절 논쟁은 식민지근대화론자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2006년 7월
'건국절 만들자'는 기고를 계기로 공론화되었으나
이에 공감하지 못한 대다수 국민이
등을 돌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잡아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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